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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만나면 참 즐겁다. 대중적 역사책인데 깊이가 있으면서 저자의 열정이 느껴지는 책. 이런 저자 만나면 참 반갑다. 자기가 태어난 지역을 사랑하여, 그 지역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을 써서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것 같은 사람. 강단에 선 사학자와 다른 순수한 진지함이 느껴진다.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는 정조와 그가 세운 신도시 화성에 대한 역사대중서이다. 저자 김준혁씨는 수원에서 태어나 현재 수원에 살고 있으며 정조시대를 전공한 역사학자이자 수원시 학예연구사이다. 이 책은 정조의 일생을 다룬 다른 역사서와 달리, 철저히 '화성 건설'과 '정조'에 대해서만 서술한다. 문체반정조차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정조와 그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한 책이 아니지만, '화성 건설'의 정치적 의미를 통해 정조를 파악하고자 하거나, '화성 건설 자체'에 관심있는 독자에겐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구성을 보면, 1장에서는 정조의 생애를 짧게 다룬다. 2장에서는 수원 건설 과정을 아버지 사도세자 묘역 조성과 관련해서 서술한다. 3장은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데, 화성 축성 과정과 팔달문, 장안문, 황홍문, 봉돈 등 화성 각 지역 주요 건축물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옛 의궤 자료의 그림과, 현재의 사진, 개화기 독일인의 사진 등을 비교해서 실어 놓아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 4장은 화성에 대한 기록을 다룬다. 재건된 건축물이 많은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바로 <화성성역의궤>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새삼 우리 조상들의 기록문화에 감탄하게 된다.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역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 즉 이 책의 구성은 정조의 꿈 화성이 어떻게 백성들의 화성이 되고, 전 세계인의 화성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롭다.
찬찬히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문예군주 정조로 알고 있던 인간 이산이 무인의 성격이 강한 개혁군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부친 살해범들과 한 자리에서 앉아 국사를 논하며 의견을 조율해야만 했던 인간적인 고통을 어떻게 화성 건설 과정을 통해 애민정신으로 승화시켰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정조 사망직전, 마지막으로 처리하던 안건은 노비 해방문제였다는 사실!
결국 화성은 비명에 간 자신의 부친을 모신 인간 이산의 마음의 고향이자, 개혁세력을 길러낼 제왕 정조의 정치적 고향이었던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정조 드라마 붐이 일면서 정조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단연 돋보이는 책은 이덕일의 책과, 이 책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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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수원 화성(華城: 1997년 지정)을 무엇이라 부를까? 과학성과 합리성, 실용성 등을 두루 갖춘 동양 성곽의 백미? 강한 군사력에 근거, 왕도정치에 한 몫을 한 상징 건축물? 한신대학교 정조(正租) 교양대학 김준혁 교수의 ‘이산 정조, 꿈의 도시 수원 화성을 세우다’를 통해 바로 그 수원 화성의 정신과 물질적 토대를 알아보자. 무엇보다 먼저 말할 것은 1796년 축성(築城)된 수원 화성은 18세기 개혁 군주인 정조 자신을 가리키는 건축물이었다는 말이다.(340 페이지) 정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은 수원 화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힘이었고 정조는 바로 그 힘을 반대세력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 점은 화성이 성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성은 도시 전체를 의미한다.(175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정조는 수원이라는 신도시를 세우고 그 중심에 화성(華城)을 축조(築造)했다. 개혁을 주도할 선진적 인물과 도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성 축조의 배경은 무엇일까?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개인 차원의 죽음이 아니라 노론이라는 반대 세력의 정치적 행보가 작용한 결과다. 사도세자는 소론의 지지를 받았던 경종 궁녀들의 보필(輔弼)을 받으며 자랐다. 영조의 탕평책의 일환이었지만 이로 인해 사도 세자는 열 살이란 어린 나이에 노론 신하들의 잘잘못을 거론하는 등 소론의 시각으로 정세를 보았다. 자연히 이는 영조 및 노론 세력과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적이 이 책의 주요 성과이다. 물론 영조의 과오는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환원할 수 없다. 개인적인 과오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화성 성역은 1804년 정조의 양위 이후를 대비한 터전(303 페이지)이었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화성은 주인을 잃었다. 정조는 개혁과 호학(好學)의 군주였고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의 군주였다. 또한 만기친람(萬機親覽: 온갖 정사를 임금이 친히 보살핌)의 군주였고 남다른 효심을 가진 군주였다. 정조는 서얼 허통과 자휼전칙을 시행했고 노비제도 혁파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신분에 관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자가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정치색이 달라도 쓸모가 있으면 적재적소에 등용했다.(350 페이지) 둔전(屯田)을 운영하도록 했고 대규모 국영 농장을 만들었다.(144 페이지) 더욱 그는 수원을 국제 무역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147 페이지) 이렇듯 정조의 개혁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185 페이지) 정조는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은 물론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만들었다. 문무(文武)를 겸한 정조의 전일성(全一性)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조는 임금과 신하가 하나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268 페이지) 화성 행궁의 정문 이름을 신풍루(新豐樓)로 지은 데서 알 수 있듯 정조는 수원을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선언했다. 풍이란 말은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灃沛)에서 유래해 황제의 고향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305 페이지) 정조는 고도의 정치 역량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사도세자와 관련한 언급을 일정 선에서 그침으로써 노론으로 하여금 화성 축성과 관련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212 페이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듯 화성은 정조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작품이자 정조 자신을 가리키는 건축물이다. 정조에 대해 한 논자(백승종)는 정조가 조선 왕조의 오랜 국시(國是)인 성리학의 함양을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정조가 개혁 군주로 불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정조와 불량 선비 강이천‘ 346 페이지) 정조가 취한 물적 토대에 기반한 수많은 개혁의 시도들은 도외시하고 성리학이라는 학문만을 고려한 편중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정조는 정신에 대해서는 성리학을, 정신 이외의 여타 분야에 대해서는 실학 정신을 인정, 적용했다. “화홍문(華虹門)은 실학 정신을 실현한 평등 정신의 산물”(260 페이지)이란 말을 새기자. 정세에 대처하고 백성들에 대해 보인 정조의 태도에 실학 정신이 깃들지 않은 것이 있는가, 묻게 된다 . 화성 완공 1년 전 어머니 회갑을 치르기 위하기 위해 나선 행차를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 완공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자세히 보아야 하겠고 정조의 철학적 면모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다. 내가 정조를 좋아하는 것은 전기한 여러 면모들 외에 정조가 주역과 풍수 등에 능통해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하게,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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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의 열풍 그러나...
요즘 단연 돋보이는 TV 드라마는 사극이다. 몇 해 전 온 국토를 이순신의 열풍으로 이끌었던 <불멸의 이순신>을 넘어, 고구려의 탄생과 슬픔을 그렸던 <주몽>,<대조영>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는 한껏 우리 곁에 다가 온 듯하다. 근래에도 이러한 열풍은 계속 이어져 MBC <이산>, SBS <왕과 나>, KBS <대왕세종>등은 숨 가쁜 시청률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들 작품 중 정조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산>은 현재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방극장의 터주대감임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숨막히는 혈투 속에 진행되었던 세손시절에서 조선의 국왕으로 등극하는 정조의 모습이 다가 올수록 시청자들은 이 작품에 더욱 깊이 사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역시 드라마는 시청률이라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것이기에 지나친 상상력으로 인한 역사왜곡이 곳곳에 묻어나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면 드라마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정순왕후와 세손 이산의 극한대결 구도는 관련 사학문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목이다. 또한 도화서 다모이며 훗날 정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의빈성씨 역의 ‘성송연’이라는 인물은 원래 그림을 그리는 다모가 아니라 화빈 윤씨를 수발하는 나인궁녀였다. 이와 같은 왜곡과 과도한 상상력은 다른 드라마들 또한 다르지 않다.
- 정조 이산의 모든 것 이 책에 담겨 있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조의 참 모습을 잘 풀어 놓은 책인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여유당>는 다양한 작은 이야기들과 함께 정조와 화성에 대해 잘 풀어 놓았다. 특히 이 책을 쓴 김준혁 박사는 정조 전문가로 현재 수원시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정조의 삶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소장학자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다. 물론 이전에도 정조와 화성(華城)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처럼 쉽고 넓게 다룬 책은 본적이 없었다. 정조 전문가의 눈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정조와 관련된 의구심을 콕콕 집어 하나씩 풀어서 설명하였기에 성군 정조에게 다가가는 길이 이 책을 보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의 주제로 엮어졌다. 그 첫 번째는 정조이야기로 억울하게 뒤주 속에 갇혀 승하한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재 드라마 <이산>에서 최고의 갈등구조를 만들고 있는 세손시절의 험난한 이야기와 정조의 죽음까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 정조의 최측근 신하인 홍국영에 대한 이야기와 정조 암살과 관련된 이야기도 함께 풀어 놓고 있어 왕이 된 후 정조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동양 최초의 신도시 수원에 대한 이야기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한 배경과 이후 그의 개혁정치의 시험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수원의 참모습을 하나씩 풀어 놓았다. 특히 수원에 선진적인 농업기술의 보급과 실험을 위하여 둔전을 설치하고 거대한 저수지를 쌓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잘 펼쳐 놓아 ‘결코 배고프지 않은 백성’을 위한 정조의 애민정책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주제는 바로 화성(華城)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펼쳐 놓고 있다. 비단 정조시대 당시 화성의 건축 배경은 물론이고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친 화성의 모습까지도 잘 이야기하고 있어 한편의 기록영상물을 보듯 화성의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화성 축성당시 소위 말하는 ‘땡땡이꾼’들로 인한 소동과 정조의 놀라운 활쏘기 실력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다. 마지막 주제는 화성에 대한 기록과 8일간의 행차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최고의 기록문화유산으로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배경인 <화성성역의궤>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뤘으며, 또한 화성을 지켰던 장용영 군사들이 익힌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에 대한 설명을 더해 한층 생동감 넘치는 정조시대를 이야기하였다. 물론 당시 백성들의 재미있는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는 글 읽는 중간 중간에 웃음을 줄 수 있어 즐거움이 더한다.
- 저자의 수원/ 화성 사랑이 담겨 있다.
이렇듯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여유당>에는 정조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인 김준혁 학예사의 수원과 화성사랑이 곳곳에 묻어나는 이 책을 통해 개혁군주 정조 이산을 좀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드라마를 보며 정조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바로 서점에 달려가 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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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대왕은 조선 후기의 빛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