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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이 ‘진달래 꽃’은 소월의 시 중 가장 대중적인 시이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 시를 읊어보라고 요구한다면 비록 정확하게는 아닐지라도 대충 읊어낼 수 있을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시라고 칭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소월의 작품전체를 통과하는 정서로 우리는 ‘한’을, 그 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시로 ‘진달래 꽃’을 꼽는다. 우리의 민족적 정서인 ‘한’을 가장 잘 나타낸 시인으로 소월을 내세우는 데에 반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접할 때 어조가 ‘여성적이고 인내하고 이별에 순응하는 전통적 여인의 태도’라는 것을 근거로 시적화자를 여성으로 규정했다. 말없이 임을 보내겠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화자는 ‘임과의 이별’의 상황에 처해있고, 임이 자신을 떠난다고 할 때 붙잡지 않고 오히려 꽃을 뿌리며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아 사랑에 대해 소극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또한 배웠다. 교과서에 실린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이미 분석하며 다룬 이 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별에 순응하는 것은 여성으로 설정되는 것이 불만이었던 터라 그런 경우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이 시를 재해석 해보기로 했다. 화자를 남성으로, 배경을 현대로 생각하고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니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 시와 같은 내용을 말한다고 생각해보았다. 조금 더 생생하게 생각해보기 위해 배경설정을 자세히 해보도록 하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약간은 어두운 듯한 조명이 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것을 들려주는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이 구절에서 화자는 이별의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랑하는 이가 훗날 자신이 싫어져서 떠나는 상황을 가정했음을 알 수 있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연인이 자신을 떠날 때 붙잡거나, 매달리지 않고 연인의 선택에 따르며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예로부터 동서양 대부분 지역에서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꽃을 뿌린다는 것은 송축의 의미로 통한다. 떠나는 연인에게 원망이나 저주를 하지 않고 오히려 송축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기존의 해석은 꽃을 시적화자 자신으로 비유해서 꽃을 밟고 가는 임의 행위를 통해 화자의 희생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기존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크게 무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임이 떠난다고 하더라도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은 반어법이라기보다 떠나는 임에 대한 배려로 해석을 해보았다. 내가 흘린 눈물에 임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거나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던 길을 멈추길 바라기 보다는 임이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정도로 해석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를 구어체로 바꾼다면 어떨까.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네가 내가 싫어서 떠날 때가 온다면 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내줄게. 너를 붙잡거나 원망하지 않을게. 그냥 너의 행복을 기도하면서 보내줄 테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면 돼.”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반대로 “만약에 네가 내가 싫어서 떠나게 된다면 넌 절대 못가. 절대로 안 보낼 거야. 축복해주지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쿨-’하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화자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꿔 생각해보니 기존의 진달래꽃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통적인 한의 정서라기보다 현대적 사랑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달래 꽃’은 워낙 많이 언급되고 읽혔던 시라 식상한 감이 있었는데 이 과제를 통해 바꿔 생각해보면서 굉장히 신선했고, 재밌었다. 앞으로도 익숙한 시라고 그냥 넘기기보다 내 나름대로 재해석해보고 의미부여하는 과정을 거치면 좀 더 시에 대해 친숙해 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