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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잔가지들이 현처럼 늘어져 있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지휘자가 침묵으로 지휘봉을 대신하여 차갑고 흰 바람이 노래하는
그곳은 얼음나무 숲.>
워낙에 말이 많았던 작품이고, 기대가 크면 반드시 실망한다, 라는 징크스에 휩싸여서 읽을까 말까 수차례 고민을 했었다. (그래봐야 30분?) 그리고 책에 쓰인 찬사가 “사실”임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눈을 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천재와 초현실은 기묘하게 맞물린다. 그가 얼음나무 숲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위 문장은 이 이야기의 주제를 명료하게 들어낸다. 모든 것을 초월한 천재지만, 자신의 음악성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가 없기에 끝없이 연주를 하고, 끝없이 찾아 헤매는 바이올리니스트 바옐과 그에 못지않은 재능을 가졌지만 바옐의 유일한 청중이 되는 것이 소원인 피아니스트 고요. 그리고 음악의 도시 에단에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얼음나무 숲. 이 모든 것이 어울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읽는 내내 고요와 바옐이 살아 숨쉬고,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들려온다. 참으로 기이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영원함을 들었다. 끝없는 찬란함을 들었다. 음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무한으로 뻗어 가는 화음을 들었다.
아주 단순명료한 문장이다. 화려한 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엄청난 묘사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고요가 전달해 주는 바옐의 음악과 그가 연주하면서 생각하는 것들이 “글자”로 전달이 되면서 하나의 “음악”이 된다.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한 고요이기 때문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생생했다.
내용을 많이 알면 분명히 재미가 떨어질 거라서 극히 자제하는 중이다. 초반에 늘어지는 듯한 구성이지만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주인공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점과 음악도 하나의 언어라고 설정한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보면 전공자인 줄 알겠더라.)
여기까지 보면 <모차르트>를 상상하실 분이 많겠지만(분위기는 조꼼 비슷하다), 단순히 두 천재의 갈등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요는 절대 살리에리가 아니다. 고요는 오히려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을 갖고 다른 이유로 바옐을 추격했다면 아마도 에단의 역사에는 두 천재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인정받은 오만한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욕망으로 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욕망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신이라고 불리는 악마는 엄청난 장난꾸러기인 듯 그 욕망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기묘한 분위기의 얼음나무 숲, 그 나무로 만들어진 최고의 바이올린과 단 하나의 청중이 되기 위한 살인은 시종일관 작품의 중심을 잃지 않고(심지어 단 하나의 대사도 놓치지 않고) 긴박감 넘치게 흘러가고 있다.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 그리고 일관성 있게 환상 문학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린 서사가 최고다. 이러한 작가가 (무려 나이도 어리다 -_-) 나왔다는 것에 박수를!
게다가 ㄱ- 말이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고요와 바옐의 관계(?)는 정말! 이렇게 던져 주면 상상을 아니 하지 않을 수 없잖아! 주인공들 나이는 꽤 들은 듯한데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미청년이 상상되어 죽을 뻔했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올지.
그리고 몇 명의 대 작가님들 빼고 대부분 외면 받는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끝까지 글을 써 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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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간 적이 있다. 얼마나 몰입했던지 그가 연주한 피아노협주곡의 피아노, 포르테에 맞추어 숨을 쉬었고 바짝 긴장해서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끝까지 이런 자세로 들어서 나의 인내심과 감수성을 기르고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교연하게 살아갈 자양분이 될 마음의 여유와 영적 양식을 얻자, 뭐 그런 다짐을 하고 계속 집중하고 있으려니 난해한 소설책을 몇 시간동안 읽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5분은 진이 다 빠져서 몽롱한 상태에서 들었다.
물질문명이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사실 표 값이 아까워서 미련하게 굴었을 뿐이다. 분명 연주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얻은 게 없다.
그리고 며칠 뒤, 집에서 컴퓨터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었다. 딴 짓하면서 들었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멜로디가 귀에 착 감기는 굉장히 명랑한 곡이었다. 반복되는 인상적인 악절은 흥얼흥얼 따라 하기도 했다. 돈 내고 듣는 것도 아니고 스피커도 형편없는데,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연주회에 갔을 때보다 집중이 잘 됐고 결말에 들어서자 가슴이 떨렸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그라졌는데, 마치 눈을 감는 것 같은 마지막 음 다음, 그제야 나는 내 의지대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얼음나무숲은 ‘또 하나의 영화 「아마데우스」이다.’, ‘환상에 대해 쓴 환상의 편린이다.’, 등등 아름다운 수식어가 가득한 찬사를 받고 있는데 그 중 나는 ‘한 편의 소나타이다.’라는 소박하다면 소박한 평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내게 얼음나무숲은 그때 들었던 피아노협주곡이다.
# 얼음나무숲의 백미는 단연 얼음나무숲에 대한 묘사이다. 보고 있으면 숲의 정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얼음나무숲을 걸어본다.
이 안데르센의 동화 속 같은 숲에 갈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작가의 극장좌석수를 나열할 정도로 섬세한 필치와 상상력 덕분이다. 또한 줄거리에 잡다한 꾸밈이 없으며 남들이 십 갑자의 내공 운운할 때 용감하게 독특한 음악이라는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것도 각광받을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다.
# 그러나 얼음나무숲의 단점 역시 묘사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의 연주 묘사 중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G음으로 시작하는 아르페지오’연주를 했다고 말하는 것은 음표 몇 개 주고 교향악을 상상하라는 것과 같다. 그 연주가 대체 어떻기에 주인공이 그토록 절절하게 슬퍼하는지 궁금해 하는 나 같은 독자가 알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만화 ‘신의 물방울(저자-아기 타다시)’이 와인애호가들 뿐만 아니라 술이라고는 아버지 맥주 몇 모금 홀짝인 것이 전부인 청소년들조차 열광하게 만든 주된 요인은 와인의 맛 묘사에 있다. 와인을 마시고 ‘아아, 나는 백장미 밭을 걷고 있다….’고 하면 우습게 들리기야 하겠지만 덕분에 독자들은 와인의 맛을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다. ‘「이 와인은 첫사랑과의 입맞춤이다.」라는데 첫사랑과의 입맞춤이라, 달콤한 초콜릿 맛일까?’, ‘「어릴 적, 석양이 고즈넉하게 깔린 우리 동네 길을 걷는 듯하다.」라고 하는데, 무슨 뜻일까, 와인에서 고향집 냄새가 연상되는 향이 난다는 뜻은 아닐까?’ 이런 한 편의 시같은 묘사를 참고하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을 좀 더 명확하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얼음나무숲의 대부분의 묘사는 무척 공들여 쓴 흔적이 보이고 또 그만큼 잘 썼다. 작가의 실력과 잠재력이 높기 때문에 기대치도 높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고, 어쭙잖은 조언을 한다고 생각하여 언짢아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철없는 팬이 스타에게 거는 기대와 비슷하다고 여겨준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 얼음나무숲은 장르문학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다. 장르문학, ‘판타지소설’로 더 잘 알려진 이런 종류의 소설들은 타 장르보다도 판매량에 크게 좌지우지된다. 그래서 판매량이 저조하면 당초 계획된 시놉시스와는 상관없이 후속편이 나오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줄거리가 아무리 허무맹랑해도 이제는 하나의 공식처럼 알려진 상투적인 요소를 집어넣으면 책이 팔리므로 책장사에 눈이 먼 어린 작가들은 상업성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몇 년 전 그야말로 광풍을 일으켰던 ‘인터넷소설’에서 먼저 나타났었다. 심하게 말하면 재미만 있으면 글이 아니라 종이에 낙서한 걸 책으로 내도 팔렸고, 작가 연령층도 낮아서 심지어 중학생이 책을 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판타지소설도 외설적이고 허무맹랑한 내용이어도 재미있으면 팔렸고 작가 연령층은 인터넷소설 못지않다. 또, 인터넷소설이 여학생의 대리만족을 해줬다면 판타지소설은 남학생의 대리만족을 해주고 있다. 찾기만 한다면 인터넷소설과 판타지소설의 더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격세지감, 한때 어마어마하게 팔리던 인터넷소설은 결국 단순한 유행이었다는 게 판명 되어 지나간 유행이 다 그렇듯 사라지고 있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판타지소설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나 “이번엔 게임판타지다!” 하면서 게임판타지의 세종대왕뻘 되는 김민영작가를 한숨짓게 만드는 십대들 중에도 얼음나무숲 같은 자신만의 환상소설을 쓰려고 하는 작가들이 있어서 나는 좀 더 희망적이고, 얼음나무숲이 그런 작가들의 노력을 대표하는 것 같아 응원해주고 싶다. 각자 자신만의 꿈이 있듯이, 각자 꿈꾸는 ‘판타지’도 가지각색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환상소설을 구축해 나가고, 상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작품성을 우선하고, 퇴고도 하면서(철자만 바로잡아도 성공이다.)책을 낸다면, 판타지소설은 어엿한 소설의 한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뻔한 말이지만 판타지소설의 애독자로서 노파심에 하는 소리다.
# 다시 말머리로 돌아가 내가 책을 왜 피아노협주곡에 비유했는지 부연하자면, 일단 그만큼 몰입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결말까지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두 번째로 음의 강약과 박자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튀어 오르듯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좋은 의미로의)의외의 전개에 점수를 주고 싶다. 세 번째, 이게 중요한데, 읽는 내내 참 즐거웠기 때문이다. 얼음나무숲은 피아노협주곡을 듣고 있을 때처럼 딴 세상에 가 있는 듯 잡다한 생각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차이점. 이 책은 사서 봐도 그 연주회처럼 이상한 의무감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음나무숲을 읽는 내내 하나의 표제음악을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얼음나무숲의 최종적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굉장히 어둡고 의미심장한 곡이 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피아노협주곡에 견줄 바는 못 되었고, 단순한 음에 단순한 가락이었지만, 글에서 도레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조차 어지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감안하여 고심했을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음악이 생명을 얻고 또한 잃는 음악의 도시’ 에단을 방문한 관광객인 나에게 음악이 들리는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닌지 모르겠다.
Fine
추신. 얼음나무숲은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보면 집중력 2배! 문피아 홈페이지에서 '얼음나무숲'치면 작가님이 곡에 삽입한 배경음악이 목록이 있어염.
현대음악인데 영화OST도있고 좋은곡들 뿐이니까 한번 들어가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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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련한 선율이 들려오면,
여전히 겨울인 이곳, 에단.
목차
#01 세 명의 천재
[얼음나무 숲]은 17세기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세계는 지구 상의 어느 나라는 아니다. 클래식과 유사한 마르틴을 지향하는 마르티노와 서민들을 위한 음악인 파스그란을 따르는 파스그라노들이 등장한다. 물론 서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파스그라노인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나토제 바옐도 서민이지만 마르틴을 연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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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의 웃음
천재와 범재. 한글자 차이이건만 의미는 한없이 크다. 천재와 범재의 관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고자 한다면, 바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아닐까?
만약 음악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음악의 신에게 모든 사랑을 받았던 모차르트와 그를 끝없이
동경하고 또한 그 재능을 시기했던 살리에르. 누구도 뛰어넘지 못할 재능의 소유자인 모차르트와
그의 그늘에 가렸던 살리에르. 인간과 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모차르트와, 단지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살리에르. 그들의 관계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한결같다.
'천재와 천재 뒤에서 눈물흘리는 범재'라고. 하지만, 난 여기에 의문이 들었다.
천재와 범재의 관계는 정말 그들의 말대로 평행선이기만 할까? 범재가 천재의 뒤에서 눈물을 흘리
기만 할까? 범재만이 니는 그 무언가로 천재를 넘어설 수는 없는걸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언젠가 한번, 친구들과 천재와 범재와의 관계에 대해 열을 올려가며 토론했
었다. 토론 도중에 한 친구가 '이 책이 너에게 답을 내려줄 것 같아.'라면서 웃으며 권해주었던 책.
바로 '얼음나무 숲' 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친구의 탁월한 권유를 모든 마음을 담아 감
사한다.
'얼음나무 숲' 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상의 세계관을 통해서
엮어간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살았던 시기와 같이 '얼음나무 숲' 의 세계에서도 예술과 문학이
대중들에게 가장 추대받는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두명의 음악가가 역사의 표면 위로 부상한다.
'얼음나무 숲' 에는 두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나토제 바옐과 모르페 드 고요. 바옐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고요는 바옐만큼의 재능이 없었다.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서로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 결코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는 평행선과 마찬가지로, 바옐과 고요 또
한 그런것인가. 고요도 살리에르와 마찬가지로 노력만으로 당해낼 수 없는 한 천재 앞에서 결국 상
처받고 스러지고 마는건가 하며 어림짐작했었다.
하지만 고요는 달랐다. 자신을 한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살리에르와는 다르
게, 고요는 항상 저만치서 앞서가는 바옐을 순수하게 동경하는 마음으로 뒤쫒기 시작한 것이다. 처
음에는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지만, 어느순간부터 바옐이 연주하는 음악에 얼굴을 상기
시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고요의 모습에서 묘한 감동을 받았다. 분명,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바옐이다. 그렇기에 시기정도는 할 수있겠지. 그러나 그러한 질시를,
바옐을 뒤쫒겠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바꾸고 한걸음 한걸음 바옐에게 다가가던 고요의 발걸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던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고요는 '압도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정도의 재능의 소유자를 바로 눈앞에 두었다. 그리고 그 재
능의 소유자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다. 으레 이정도만 되어도, 보통사람들은 어떠한 두려움을 겪
을 것이다. 질투도 물론 느끼겠지. 아니면 살리에르처럼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데에 견딜 수
없는 열등감을 가질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고요 또한 바옐의 재능에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사람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의 대부분의 반응일 것이다. 다만, 고요는 거기에 하나를 보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몰랐었고 또한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기힘든.
바로 인정이다. 인정하는 것. 간단하지만, 실천하기에는 한없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
요가 지닌, 자신을 더욱 빛나게하고 진보할 수 있게 한 재능은 다름아닌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 아
닐까. 자신보다 뛰어난 바옐을 인정함으로써 고요는 질투와 열등감에서 벗어나 더욱더 앞으로 나
아갈 수 있었다. 바옐은 비록 천재이었지만, 남을 인정하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둔재였다.
그렇기에 화려한 기교를 보이는 바옐의 모습보다, 그러한 바옐을 인정하고 다가가는 고요의 모습
이 나에게는 더욱 눈부셔 보인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수있겠지.
살리에르가 알아야했던 것은 음악적 지식도 아니고, 기교도 아니고, 악기를 연주하는 실력도 아닌
고요의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바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인정하는 것. 비록 재능은 음악의 신이
내려주는 것이지만, 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 수 밖에 없는 후천적
인 재능이다. 그리고 그것은 범재가 천재가 가진 어느 재능보다 빛나는 보석이 되어 자신을 가치롭
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보석을 가슴에 품을 때 살리에르는 진정한 웃음을 그 누구보다도 당당히
지을 수 있을것이다.
나는 미소짓는 살리에르의 모습을 자꾸만 상상한다. 모차르트에게 끝없는 열등감을 가지고 자괴
하는 살리에르의 모습은 한때 나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머리속에서 살리에르가 자주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모차르트 앞에서 살며시 웃을때 나도 더불어 웃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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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보-난 이책을 읽기 전까지 아니 초반부까지는 환타지 소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만화는 좋아하지만 환타지 소설은 왠지 허무맹랑하다는 느낌 때문에 꺼려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차라리 영화를 보면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보지 못했다. 물론 영화는 극장이 아닌 영화채널을 통해서 봤다.
환타지 소설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가지게 한 책이다. 하지은이라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무명작가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니 놀랍다. 명망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신인작가에게서도 이런 느낌까지는 아니였는데 정말 즐거웠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 다 읽은 것은 아니다. 아직 뒷부분이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벌써 서평을 쓰는 이유는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잊기전에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 찾아보니 서평이 무진장 많이 올라와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책을 펼쳐보니 5쇄본이다. 1년만에 5쇄까지나, 대단히 인기있는 책인가 보다. 하긴 나같은 아줌마까지도 책 읽는 중간에 글을 쓰고 있을 정도니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일반소설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작품 속의 외국 이름들이 어색 했었는데 판타지라고 하니 좀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천재 바이올린리스트 아나토제 바엘, 영원한 드 모토베르토는 멋지지만 대신 우리이름을 넣는다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하다. 물론 세계적인 바이올린리스트 장영주가 있긴하지만, 그녀는 장영주가 아닌 사라 장으로 활동하는 미국국적의 한민족일 뿐이다.
난 천재들의 이야기가 좋다. 세상에는 많은 천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음악적인 천재들이 가장 끌린다. 멋지게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경지의 악기연주는 언제나 정신을 쏙 빼놓기 때문이다. 공인된 천재 바엘과 그늘에 숨어 있던 천재 고요. 그 둘의 관계속에서 어떤 이들은 커풀의 포스를 느끼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난 절대 H물은 사양한다고 밝히는 바다. 음악에 대해서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우정'정도 쯤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표지의 가지가 앙상한 하얀 나무들은 어쩌면 좀 섬뜩한 느낌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유령들이 사는 계곡이나 나무 귀신이 살고 있는 숲을 떠올린다. 이 얼음나무 숲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을때 쯤에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갑자기 로크 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에 관심이 많이 간다. 일반 대중문학의 하위개념으로 치부되어 침체 되어온 장르문학을 새로운 주류로 만들고자 기획된 <노블레스 클럽>에서 앞으로 어떤 책들을 계속 나올지 기대가 된다. 작품의 질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품들이 쭉 이어지길 바라며 이만 끝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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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논 홀의 그 많은 좌석을 관객이 메우고 있더군. 청중이 아닌 관객. 아무리 찾아봐도 한 사람이 없었어. 내 곡을 이해해 줄 사람, 내가 말하는 바를 온전히 그대로 느낄수 있는 사람, 진정으로 나의 음악을 들어 줄 사람‥‥‥ 그곳에도 없었어. 나는 오직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연주하고 있는데." (p.32)
아나토제 바옐, 영원한 드 모토베르토 1628년 마지막 연주회 카논 홀, 저녁 7시 관객이 아닌 청중을 원했지만 끝내 단 하나의 청중을 얻지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던 아니토제 바옐, 에단 음악원에서 그를 만난 이래 그의 단 하나뿐인 청중이 되고 싶어했으나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불우한 또 하나의 천재 고요 드 모르페, 귀족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부친의 권유에 따라 선택한 음악가의 길이었다. 그는 에단 음악원에서 평생을 함께 할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나토제 바옐과 트리스탄 벨레였다. 관객이 아닌 청중을 원한다는 그의 오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을 직접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 또한 그의 음악성이 아닌 명성때문에 듣고싶어하는 관객에 불과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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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색하지 않게, 화려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묘사들은 이 책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올립니다. 재밌기로만 따지자면 제가 읽은 장르 문학 중 당연 최고로군요. 제 부족한 미사여구로는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상투적인 묘사는 지겨우실테니. "살면서 꼭 읽어봐야 한다."까진 아니여도 "이런 소설도 있다는 걸 느껴봐라!"라고는 하고 싶은 소설.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책 내용이 취향을 잘 안 타요. (다만 여성향의 느낌이 약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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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떠올리는가. 판타지? 라이트노벨? 물론 환상문학이라는 범주가 판타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수 없이 쏟아져나오는 판타지는 이미 과다상태이다. 게다가 그것들 대부분이 검증받지 않은 채 출판되는 만큼 환상문학은 곧 싸구려 3류 판타지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진짜 환상문학 팬들(1세대 판타지를 포함해 서구의 판타지를 좋아하는)이 '환상문학'과 '한국 판타지'를 다른 선상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J.톨킨이나 A.르권 으로 대표되곤 하는 서구적 환상문학이 단순히 국내에서 출판되는 '양산형 판타지'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데, J.톨킨이 만들어낸 세계관이 보편화되고 대부분의 판타지들이 그것을 따름으로서 보편화되긴 했지만 사실 J.톨킨이 만들어낸 중간세계나 A.르권이 만들어낸 '어스시'라는 세계. 그리고 1세대 판타지를 대표하는 이영도씨가 만들어낸 '새 시리즈'의 세계관이 전형적인 환상문학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세계관을 치밀한 문체와 환상적인 소재들을 바탕으로 '웰메이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양산형 판타지는 세계관의 특이성 자체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환상문학이라고 하기 힘들다) 그리고 '얼음나무 숲'은 일반적인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치밀한 구성과 개성적인 캐릭터, 그리고 세밀한 묘사를 바탕으로 하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멋진 환상문학이다. '천재적인 음악가'라는 음악이라는 소재와 '전설'로서 존재하는 환상적인 소재가 미묘하게 크로스오버되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음나무 숲' 특유의 긴장감이고, 얼음나무 숲 만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얼음나무 숲'의 서사는 복잡할 뿐더러 매우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단순히 '리뷰'에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자세한 이야기는 작품을 읽어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는데, 일반적으로 음악계의 갈등을 소개할 때, '자유분방한 천재'와 '노력하는 범인'의 피할 수 없는 충돌과 그 안에서 '노력하는 범인'이 가지는 고뇌를 베이스로 한다면, 얼음나무 숲에서의 갈등은 조금 다르다. 얼음나무 숲이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둘 다 천재이다. 물론 하나는 전형적인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 천재의 실력은 따라가지 못하지만 감정의 전달이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또다른 천재이다. 그리고 그 두 천재는 서로에 대해 항상 '박탈감'을 가지고 서로를 경외한다. 단지 그런 '갈등' 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은 그야말로 작가의 능력에 기반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현실적인 갈등 뿐만이 아니라 '음악'의 세계를 '얼음나무 숲'이라는 전설에 연관시켜서 환상적인 요소를 덧붙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단순히 '감동적'인 것을 넘어서 '압도적'인 힘으로, 작품 내에서 감상하는 청자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독자 또한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천재들과의 갈등과 이런 환상적인 요소, 그리고 계속해서 긴장감있게 몰아치는 에피소드들의 전개는 그야말로 독자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얼음나무 숲'이 가지는 매력은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천재들의 갈등과 환상과의 연계를 뛰어넘어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짜임새'로서 단순한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천재와는 다른 방식의 천재-사교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를 두 천재와 동시에 연계시켜, 세 사람을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형성시킨다. 그럼으로서 단순화될 수 있는 갈등구조를 복잡화시키며 식상하지 않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런 '환상'과 '음악'이라는 소재를 접함시킴으로서 다른 환상문학과 음악을 소재로 한 문학들이 가지지 못한 특이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요소를 만들어내었다. 그야말로 환상문학의 팬이라고 자청한다면 한 번 쯤은 읽어야 할 한국 환상문학계의 고전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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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고나서도 쉽게 내용이 지워지지않는 제대로 된 책을 읽게되었다.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내용! 음악이 이렇게도 힘이 있는 것인지 몰랐다. 다음 내용을 예상할 수 없을정도로 신선한 내용이 맘에 들었다. 다소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 없이 오히려 남은 책 장수가 적어질수록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이런 책을 읽고 제대로 된 독서의 기분을 느끼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