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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좋고 비교적 짧아서 두번읽었다. 특히 1장이 무척 좋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20세기 시스템 구축자들의 행태를 예측, 기계를 개발하는 능력을 예전 사람들은 신이 준것으로 보았다. 인간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활용한 것이 테크놀로지이고 생산,시스템, 통제,정보의 원천으로 여겼다. 또 건축물,예술을 이루는 수단, 건축가,예술가들은 상징과 기호로서 테크놀로지에서 개념을 빌려 미학적으로 사용했다. 20세기 초에는 미국보다 독일의 그들을 매혹시켰다.하지만 정보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의 그들이 열렬히 반응했다. 테크놀로지의 개념을 알자.사상가들의 생각,문학,예술,건축을 통해 알아보고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면서 생태계에 맞게 어떻게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킬지 생각하자. 인간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활용한 것이 테크놀로지이고 생산,시스템, 통제,정보의 원천으로 여겼다. 또 건축물,예술을 이루는 수단, 건축가,예술가들은 상징과 기호로서 테크놀로지에서 개념을 빌려 미학적으로 사용했다. 20세기 초에는 미국보다 독일의 그들을 매혹시켰다.하지만 정보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의 그들이 열렬히 반응했다. 청교도주의의 칼뱅은 프로테스탄트 직업 윤리,가치세계를 확산, 칼뱅은 상업 제조업, 광산업에서 세속적 성공은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선택된 사람으로 보았다. 칼뱅주의자들과 비슷한 종교계 사람들은 기계학, 노동, 자연철학,자연과학이 수단, 영국의 정치가 베이컨은 과학 지식,기술의 발전을 새예루살렘의 도래로 보고 청교도들도 이리 생각했다. 책 소개가 잘나와있지만 좋은 느낌 까지 나오지는 않는다.주로 미국 역사에서 기술사이다. 19세기 미국인들은 테크놀로지를 사물에 대한 정신의 발현으로 받아들이고 시시하고 실리없는 사색을 거부, 실용주의 시대를 축하했다. 테크놀로지를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지속할 수 있는 생산을 위한 선한 기계로 만드는게 세상을 위한 길이다. 책은 테크놀로지와 테크놀로지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창조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과 유럽의 예술, 건축, 문화, 사상을 아우르며 박식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필체로 깊이 있는 지성을 보여준다. 대단한 역작이다. - 다니엘 J. 케블스 (예일대 교수)
산업 디자이너 피터 베렌스의 터빈 공장,1910년 건축 기념비적 산업 건축물20시기 초반에 테크놀로지 문화를 규정한 것은 유럽의 건축가들이었다.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테크놀로지 국가 미국 건축가들은 기계시대 가치를 구체화하는 스타일을 발전시키는데 실패, 루이스 설리번은 유기체에 대한 애착,자연에서 빌려온 상징들로 유기체적인 은유를 표현, 세인트루이스 웨인라이트 빌딩을 자연의 상징들로 장식.
가장 진보한 테크놀로지 국가의 반기계적 건축양식에서, 루이스 설리번은 다윈주의에 영향을 받았고 건물을 주변 정황과 有機體 관계 맺도록 설계 주장
인공물의 진수가 되어야한다고 믿는 몇몇 요소을 더 강조,기계와 산업 구조를 재조직했다. ![]() 기계는 악마인가.1925 ![]() carl grossberg_신즉물주의, 기계를 중요한 주제로 정립
다다이즘 DaDa-1920년대 유럽에서 성행한 예술운동,사회적,예술적 전통을 부정하고 반이성,반도덕,반예술을 표방(뒤샹) 찰스 디무스, 찰스 실러, 모턴 쉠버그등은 미국 예술가들로 기계문명과 다다 예술에 관심 공유,프란시스 피카비아 실러-기계에 매혹된 예술가. 이들은 기계예술,입체파 현실주의로 불리는 미국식 회화 양식 발생에 공헌, 기술적 인공물,도시적,산업적 광경, 초고층 빌딩,제강공장의 피츠버그, 자동자 공장 디트로이트등 버크화이트,레이몬드 로위의 스튜드베이커 아반티 포드,인설등 미국의 여타 사업가들은 욕망을 민주화했다. Urban sprawl, minimalism-2차대전을 전후출현, 단순함,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문화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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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을 만들었을때 미완성 작품을 만들었다고 후회를 하였을찌 아니면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찬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예상하는데 지금쯤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땅을 치고서 계절마다 많은 비를 내리고 있는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렇게 창조를 하고서 우리는 기계를 이용해서 또하나의 창조를 이룩해나가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어서 이제는 신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여서 또하나의 복제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고 있으나 그것이 진정한 신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러 장기를 만들어 가면서 그와 근접에 가고 있는것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신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신이라고 왜칠만큼 큰 혁명적인 과학을 이루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수 는 없다.
세계경제를 잡고 있는 미국의 국민들의 소비형태는 가히 세계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에 반해 세계 2위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의 국민 소비수준은 가히 세계 최저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같은 대국이지만 그 만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 독일의 경우도 테크놀리지적 기술의 최고로 자분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거의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싶다. 만드는데 재주는 있지만 그것의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시스템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성장통을 아직까지 격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그 문제점을 서서히 해결하고 있다가 지금은 인플레이션 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서서히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발전하게 되는것이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긴한데 그것때문에 전쟁을 좋아하는 미국을 잘 설명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만큼 전쟁을 많이 겪었고 잘 치우었고 많이 승리하여 쟁취의 기쁨에 대해 누구보다 잘안다 그래서 전 쟁에 호전적인 나라라고 말하고 아직도 말보다는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세상이 조금씩 미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가 되어가서 지금은 다소 약해진다 . 그 미국의 견재 세력이 어쩌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미디어 재벌과 지금부터 시작할 개인 ucc라는 세력에 의해 점점 속일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간다.
거짓말 하지말라 언젠가는 밝혀질테니까 뭐 이런유의 속담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눈 앞의 이득이 더 크기 때문에 남에게 더 말을 잘하게 되는것인 지모른다. 그렇지만 편안하게 살기는 더 힘들어지겠지 요즘 유행하는것이 몰라다고 말하는것과 관행적으로 행하여 졌다는 말이 유행처럼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독화살처럼 자신을 목죄어 오고 있다 개구리와 올챙이의 차이가 서서이 보여지고 있으니..
대운하 건설이 좋은지 모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찬반만 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넘어가야 하는것은 그것이 잘 못되었을때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것이다. 언제 완성되고 누구의 반대에 의해서 또 돈으로 환산해서 가치를 매겨 이득을 따질찌 몰라도 그것이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적 실수를 하였을때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연대보증이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되고 있었다.. 이번에 찬성입장들과 반대 입장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연대보증을 세워서라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졌으면 한다.
잘될것이고 아무런 문제가없다면 당연히 그럴수 있으리라고 본다 죽을때 까지 책임을 지는건 연대보증 많큰 큰것은 없을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바에는 다같이 책임지려면 오랜 시간을 이야기 해야할것이다. 욕심때문에 인류문명을 파괴하는 또 전쟁의이익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부시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욕망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어 다시 역사는 반복되어지나보다.. 과거는 과거일뿐 ...이라는 말이 언제까지 머리속을 맴돌진 장담할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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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거나 또는 성취하는 방법을 기술 [技術, technique] 이라고 말한다.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는 퓰리처상 최종후보에까지 올랐던 토머스 휴즈 교수가 오른 개척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당대인들이 가진 테크놀로지에 대한 열정, 불안, 소망을 찾아내고 그것을 풍성하게 해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체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창조적인 활동’, ‘창조적인 삶을 위한 도구’ 혹은 ‘창조적인 존재 방식 그 자체’로 바라본다. 천재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가 갖가지 기술 도면으로 가득했다는 점, 베네딕트나 시토회 수도사들이 더 고결한 영성을 얻는 데 노동과 기술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다는 점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옛 사람들의 통합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미국에서 테크놀로지란 애초부터 강한 종교적 맥락 속에서 규정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이주자들은 그곳을 ‘신세계(New World)’라고 불렀고 신의 뜻으로서의 자연 지배와 에덴의 회복이라는 열망을 불태웠으며 산업혁명 시기부터 2차대전 무렵까지 테크놀로지는 ‘기계’ 그 자체로 간주되었다. 시간이 흘러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 공장은 테크놀로지가 곧 ‘시스템’이자 ‘통제’임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편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정보이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정보가 곧 테크놀로지임을 알아차린 애플, IBM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정보로서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찬반논쟁도 여전히 뜨겁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가상공간으로 대표되는 신세계를 축하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의 인간을 단순화하고 길들이는 ‘닫힌 세상’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저자가 심도 있게 전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이 책이 단순히 테크놀로지에 대한 딱딱한 사상사로 머물지 않는 것은 저자가 가진 문화(문학, 건축, 미술,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해박함 때문이다. 저자는 개척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화 속에서 당대인들이 가진 테크놀로지에 대한 열정, 불안, 소망을 찾아내고 그것을 풍성하게 해석했다.
이 책은 테크놀로지가 인간적 가치의 표현이라는 사상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지침서이자 현대 테크놀로지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정의한 첫 장에서 에세이 형식의 놀라운 서지정보를 담은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우리 시대의 핵심문제인 ‘과학과 문명과 문화의 상호관계’에 대한 진지하고도 충실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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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의 위험, 인간이 만든 세계의 퇴락, 통제를 벗어난 테크놀로지의 위협”이라는 오늘의 인류가 직면한 인공세계에 대한 순진한 오만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 저술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발점으로 21세기 정보통신 혁명의 시기인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테크놀로지의 역사에 대한 조명이자 자연의 창조자적 지위에 이른 인간의 역할에 대한 도덕적 관심의 결핍에 대한 사상적 성찰이라 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정의에 있어 저자는 정치만큼이나 어렵다고 실토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독창성 및 발명 능력과 관련된 창조적 과정”이라는 함의(含意)적 정의와 함께 각종 도구(기계,지식등)로 세상을 재창조하고, 인간이 만든 세계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창조와 통제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테크놀로지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제2의 창조”라는 19세기 미국의 개척자를 중심으로 하는 가공할 만한 인공세계의 구축에서 창조의 개념이 명확해진다. 이 저술의 내용은 서문을 비롯하여 테크놀로지의 진전 즉, 시계열적 순에 의한 5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대마다에 따른 테크놀로지의 열정적 지지와 회의, 비평론을 교차하며 오늘의 우리들이 가져야 할 만한 인식의 척도를 제공하고 있다. 각 장마다 시대를 구분하는 특징적인 테크놀로지와 실로 방대한 사상적 인용을 통해 인간의 신(神)적 오만에 찬 기술결정론적 태도의 가치관 변화 촉구와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만들어낸 문제의 이해에 대한 망라적인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만족을 모르는 파우스트적 창조욕(創造慾)”이라는 기막힌 저자의 표현과 같이 19세기 초반의 증기기관, 증기선, 운하, 철도의 출현 등이 가져온 인간의 능동적인 자연의 변형 능력은 신대륙 황무지의 미국을 문명세계로 바꾸었다는 인간의 한없는 오만을 부추겼으며, 당시의 종교적인 유럽인과 미국인등 서구인들은“골짜기는 돋우고 산은 낮춤으로써 주(God)를 위한 길을 만들라”고 지시한 이사야서의 구절들을 인용해가며 자연의 지배를 찬양하는 당시대를 묘사하기도 한다. 다분히 종교적인 서술이긴 하나 테크놀로지의 힘을 섬세하게 통찰했다는 괴테의“파우스트”를 ‘제2의 창조’로서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인간의 창조의지, 즉 신의 전능함에 도전하는 대대적인 토지개간사업의 행위를 설명하는 부분은 문학비평론에 버금가는 공감을 주기도 한다. 2차 산업혁명기인 19세기 전후시대의 기계에 대한 신앙적이기 까지 한 당시대의 묘사로서 “중세의 성당처럼 공장단지가 시대의 본질적 정신을 표현”했으며, 미국 역사가 헨리 애덤스의 1900년 거대한 발전기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정도의 열광의 분위기가 전해진다. 이에 더하여 독일의 역사가이자 사상가인 슈팽글러의“서구의 몰락”, 멈포드의 “기술과 문명”,솜바르트의 “현대자본주의”, 라테나우의 “세계의 기계화”비어드의 “미국 문명의 발생”에 이르는 기계주의와 기계화에 따른 도덕적 회의와 찬양의 빛나는 논의들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어 2차대전 이후 20세기 정보혁명의 기반역할을 한 시스템의 시대는 그 혁혁한 성공적 데뷔에도 불구하고 작은 실수의 상상을 뛰어넘는 폐해와 이에 따른 통제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사회학자 찰스 펠로우의 “정상사고:고위험 기술들과 함께 살아가기”,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혹은 동물과 기계에서의 통제와 통신”등 소통과 통제의 시대에 대한 단언적 설명이 뒤따른다. 한편, 역사가 폴 에드워즈의 “닫힌 세상”을 통해 컴퓨터로 인한 가상의 공간을 닫힌 공간으로 표현하며 인공적 공간이 야기하는 현실세계에서의 불안과 단순화의 폐해를 지적하며, 녹색 세상에 대한 인간의 도피 염원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준다. 4장의 건축, 회화를 비롯한 테크놀로지의 문화적 접근에 대한 피력은 건축사와 20세기 미술사를 아우르는 대단한 분석적 통찰력을 자랑한다. 다다이즘에서 설리번의‘형태에 대한 유기체적 기능 진화’건축론, 로이 라이트의 초원집과 같은 반기계적 초원양식, 칼 그로스버그, 뒤샹, 실러,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열정을 보낸 사진예술가 버크화이트, 디자인역사가 기디온의 “기계화가 지휘한다”, 빌렘 테쿠닝의 추상표현주의, 케이지와 비밥의 실험적 해프닝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에 부정과 반발의 문화예술을 소개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진정 알아야 하는 이유는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문명의 이기뿐 아니라 테크놀로지가 창조해내는 다양성이 가지는 그만큼의 다양한 문제, 우리의 책임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들의 선조는 자연재해에 대해 하느님을 원망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물질 환경의 악화와 인간 정신의 예속, 황폐화에 대해 우리자신 외에 누구를 탓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또한, 안타깝게도 강력한 기술적 역량을 갖추었다는 자만(自慢)은 이러한 문제를 또다시 ‘테크놀로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치우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복잡화에 따라 점점 일부 과학자와 엔지니어, 그리고 소수의 정책결정권자가 세계를 손에 쥐고 흔드는 결과나, 특권 엘리트들의 인공세계는 물론 인간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려는 상황에 이르는 것과 같이 대중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발생하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의 폐해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테크놀로지적으로 대중이 각성되어 테크놀로지가 사회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당위성은 문제의 악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비교적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평이한 문체와 흥미로운 인용과 해석, 테크놀로지의 풍부한 의미의 확장과 철학,문학,건축,미술,음악을 포괄하는 사상적, 문화적 접근은 지적 갈증에 목 말라하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여 줄 것 같다. 인간의 창조의지에 대한 숭배와 찬양에는 결단코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지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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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까지 수정했던 글이 다 날라가버렸다......ㅡㅡ;; 다시 쓸 마음이 싹 사라져버리게 만드는 이 참담함.... 사실 재미있게 보지 못한 책이라 더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정도로..... 마음이 쓰리다. 사실 책을 펼치며 든 생각은..... 테크놀로지라는 이질적인 외래어 표기가 마음에 참 안 들었다. 사실 기술이라고 번역하기에도 좋은 단어가 떡하니 있지 않은가... 번역가께서는 굳이 테크놀로지가 기술뿐이 아닌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하시는데....바꿔말하면 기술도 국어 사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쓰는 사람 나름인 것이 또 한글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책은 다른 책과 병행해서 본 터라 그 재미가 극단적으로 비교를 받게 된 책이기도 하다. 같이 본 책은 위화님의 '가랑비 속의 외침' 재미있었다.. 허나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내게 보여준 것이 없었다. 참 읽기도 힘들 정도로 집중도 안되었고 재미도 없었고...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창조와 욕망을 위해 기술을 발전시켰을 것이란 내 기대는 온데간데 사라져 버리고... 낯선 이름들과 업적들만 어렵게 나열된 글은 머리속만 어지렵혀 놨다. 이해도 잘 안되고 문맥도 안 맞고.... 겉보기에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선물처럼. 사실 과학분야라 전문용어가 많아 번역하기가 더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하긴 그렇다. 번역가들은 대부분 그 언어 전공이라 과학분야 번역은 좀 더 난해할지도....그래도 그래도 이책은 재미가 없다.비추....... 과학분야 대한 내 상식이 부족한 걸까라고 자문해봤지만.. 그래도 책에 나온 과학자 이름 중에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너무 없었다. 역사라는 이름만 붙인 전공서적같은 느낌이었다. 왜 교과서는 막연히 보기 싫은 것처럼.... 멋진 표지에 반했는데.... 아쉽다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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