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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이 책에 관해서는, 은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이 속담을 사용할 수 있겠다. 표지가 내 취향이 아니기는 하지만, 예쁘다, 안예쁘다를 떠나, 컨텐츠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딱 좋은 표지라는 이유에서 바로 그러하다.
긴 말할 필요 없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재미있다."는 점일 것이다. 2권이라는 분량이 무색할 만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이 흡인력은 실화에 바탕한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또 일정 부분은 개성 있는 문체에서 기인한다. 사실, 지나치게 '재미있다'는 점이 '컨텐츠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주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오해'란 쉽게 말하자면 '애들 소설'이라는 것인데, 이 오해에는 솔직히 소재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소위 말하는 '애들 음악'인 힙합을 다루었다는 점에서)가 확대해석된 결과가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혐의를 지우기 힘들다. 재미있는 점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층보다 오히려 힙합 음악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일반 문학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나 역시 후자 쪽이지만) 특히 이 책이 표방하고 있는 쪽은 음악 소설이라기보다는 성장 소설에 가까운데, 훌륭한 성장 소설이 그러하듯, 이 책은 지나간 청춘 시절의 꿈과 좌절에 관한 아련한 추억을 일깨워주고 책장을 덮고 난 다음에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힙합이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학생 운동이나 사회 운동과 결합합해서 발전해온 '락'과 같이 내세울 만한 거창한 '배경'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지, 이 책에서는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나인에서 당시 유행하던 음악 혹은 영화들이 우스꽝스러운 과거의 유물처럼 다루어지듯 힙합 음악이 그런 식의 소품으로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과거 국내에서 막 움트기 시작했던 힙합 음악에 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역할을 하고 있다.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이 책의 그런 측면에 좀 더 집중을 할 듯하다. 상당 부분 허구적 설정이 부여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실화에 근거하고 있는 이 소설은, 순식간에 모두 상업문화로 소비되어버리고 이제는 어느새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일종의 코드로 정착된 힙합 음악이 처음으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기 바로 직전의 시기를 현장에서 목격한 언더그라운드 그룹의 시선에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상업적인 소재를 과감히 채택했기 때문에 오히려 실험 아닌 실험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사실은 보편적으로 공감과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고전적인 이야기의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 소설에서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이것은 혹평이 아니다. 반대로 그만큼 처녀작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이야기 구조, 독자의 심리를 통제하고 사로잡을 줄 아는 능력이 놀랍다는 감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잘 짜여진 웰-메이드 각본이 한편으로 통속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면, 이 책은 작가의 독특한 문체를 통해 그러한 취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그의 문체를 특징지을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는 '냉소'와 '위트'이다. 성공에 대한 야심과 동시에 아직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화자의 시각에서 일관성 있게 진행되는 이 소설은 끊임없이 농담을 늘어놓는다. 농담의 절반은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고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에 대한 조소이다. 기법의 측면에서는 절반은 과장, 절반은 기가 막히는 은유이며, 통틀어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빈정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빈정댐의 대가이다. 냉소의 대가들이라 할 수 있는 영미권 작가들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빈둥대기와 꼼지락거리기>의 작가 가이 브라우닝과(글은 좋은데, 제목 센스 정말 안습; 원제가 훨씬 더 좋다.) 한국에서는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자정의 픽션>의 작가 박형서와 조금 비슷한 느낌, 이라고 설명하고 싶지만 이 두 명 다 모두 유명하지 않아서 제대로 설명하기는 힘들 듯하다.;
(따라서, 앞서 말한 표지에 대한 아쉬움은, 소설의 이러한 독특한 점들에 매료될 만한 독자층을 제대로 타겟팅하지 못하는 난삽함이다.)
요컨대 추천의 변은 이렇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글을 읽고 싶다, 너절한 나르시시즘적 문체는 지긋지긋하다, 식스티나인과 같은 유쾌하고 여운이 남는 (소년)성장물을 읽고 싶다, 하는 분들, 혹은 조금이라도 힙합 음악, 음악판 뒷얘기에 관심이 있다, 하는 분들에게도 추천.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라는 멋드러진 제목과 아이큐 테스트 만점의 멘사 회원, 기호학, 논리학을 섭렵했다는 작가 약력에 이끌려 뭔가 대단히 심오하고 고차원적이며 난해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비추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이 부분이 아니지만,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까 해서 옮겨온다. 말 그대로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는 감동으로서, 이 소설의 재미가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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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테스트 만점으로 멘사회원가입, 서울대 미학과 졸업, 우리나라에서 랩을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사람……. 이 책 앞표지, 뒷표지 심지어 속지에도 무차별적으로 나열되어있는 저자 손아람을 수식하는 문장이다. 2008년 1월부터 각종 신문이란 신문은 Book코너를 이용해 나에게 이 책을 반복학습 시켰고, 각종 주간지들은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이라는 문구를 달며 나에게 읽어보길 권했다. 나는 눈이 풀린 채로 인터넷서점에서 구매 결정을 눌러버렸다. ‘읽어볼 만한’ 이라는 문구에서 진작 알아봤어야만 했다. 아 주 오래 전(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라는 그룹은 내 기억 어딘가에도 없으니까),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 라는 그룹이 밑바닥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올라가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설은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소설은 힙합그룹 진말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사실에 기초한 픽션이란 말에 ‘이거 정말이야?’ 를 연발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뿐, 진말페의 명성은 그 어딘가에도 없었다. 심지어 책에서도. < 진말페>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다름 아닌 힙합음악을 다룸으로써 새로운 세계로 날 초대한 것이라는 것. 힙합은 나의 관심사도 아닐 뿐더러, 한국 음악시장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므로 이 책은 특별했다면 특별하다고 말해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약간의 고발성멘트들이 종종 등장하는 이 힙합음악소설은 영 기대 이하다. 우선 화려하게 치장된 문구들이 문제였다. 그 문구들은 ‘아이큐테스트 만점 받은 사람이 쓴 소설은 어떨까?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사람의 문장은 화려할까? 아냐, 절제미가 돋보일지도 몰라.’ 라는 허황된 메세지로 나에게 낙인되었고, 그 수식어들은 책을 읽는 내내 날 괴롭히고야 말았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이 책 위에 새로운 문구를 심어주고 싶어졌다. ‘기대 이하’. 차라리 그 수식어들이 없었다면 중간 이상은 갔으리라. 나 는 MP3가 없다.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CD소장은 내 취미이자 자랑거리다. <진말페> 1권에 껴져있던 진말페데모CD는 뜻밖의 수확! 그거라도 없었으면 난 책을 산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며 이 책을 어떻게 처분해야하나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나는 힙합그룹 진말페를 모른다. 하지만 책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이미 진실이 말소되어 말라 비틀어질 지경까지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