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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베토벤 7번 연주가 또 있었나?
"이렇게 아름다운 베토벤 7번 연주가 또 있었나?" 내용보기
2005년 가을인가? 이반 피셔가 이끄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이하 BFO) 가 최초의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이반 피셔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의 모국인 헝가리에서 BFO 를 이끌며 치밀하고도 온정어린 연주들로 그라모폰상, 황금 디아파종상, 에라스무스상 등 유럽의 주요 음반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지휘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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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가을인가? 이반 피셔가 이끄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이하 BFO) 가 최초의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이반 피셔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의 모국인 헝가리에서 BFO 를 이끌며 치밀하고도 온정어린 연주들로 그라모폰상, 황금 디아파종상, 에라스무스상 등 유럽의 주요 음반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지휘자가 아닌가?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어 고가의 연주회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가운데 4번째줄에서 이반피셔의 땀방울까지 보아가며 밀려오는 감동에 집사람과 함께 몸을 맡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연주되었던 곡들은 브람스 ‘헝가리 무곡 14번’, 베토벤 ‘교향곡 7번’, 그리고, 백건우와 협연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이었다. 인터미션의 간극이 있었지만,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듯이 연주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지나갔다. 이제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차례. 이미 연주된 브람스의 두곡에서도 거장 피셔의 완벽함 (거의 조그마한 음의 파열도 없는 상태에서 쉽사리 건조함을 허락하지 않은, 엄청난 명연주를 이끌어 내는 거장 지휘자이다) 에 감격하고 있었는데, 그가 BFO 와 함께 만들어 내는 베토벤 7번은 2년반이 지난 지금에도 쉽사리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찌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명연주가 머리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 기억을 완전히 새롭게 해 버린 연주이고 그는 이 음반에서 그 연주를 완벽하게 복각하였다. 

 

       유명한 베토벤 5, 6, 9번 교향곡에 약간은 가려져 있는 듯 하지만, 7번 교향곡의 2악장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1악장에서 귀에 익은 연주들이 안심을 시키더니, 잔잔하게 파고 드는 첼로의 모습으로 무장한 2악장. 2년반 전에 내 눈앞에서 2악장을 피셔의 손동작과 함께 연주해 내었던 가운데의 첼리스트 3명의 모습들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음악에 빠져 미소를 머금고 2악장을 이끌어 가던 그 분들의 미소마저도 이 음반에 담겨 있는 듯하다. 3, 4악장에서 2악장의 잔잔함이 마치 꿈이었다는 듯이 이어지는 절정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피셔의 베토벤 7번은 우리 시대 또 하나의 명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장이라고 불리는 지휘자들, 카르로스 클라이버, 부르너 발터, 오토 클렘페러, 카라얀, 번스타인, 아바도, 아르농쿠르. 난 당당힌 그 계보의 마지막에 이반 피셔를 놓고 싶다.

 

        

j*****k 2008.03.28.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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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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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클렘페러가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거장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1989년 카라얀이 사망했을 때에도, 1990년 번스타인이 사망했을 때에도 그런 말이 나왔고, 2004년에 클라이버, 2005년에 줄리니가 사망한 최근에도 똑같은 말이 나왔다. 아마 아바도나 바렌보임이 장차 사망하면 또 언론은 "마지막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운운 할 것이다.   거장은 계속해서 나온다. 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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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클렘페러가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거장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1989년 카라얀이 사망했을 때에도, 1990년 번스타인이 사망했을 때에도 그런 말이 나왔고, 2004년에 클라이버, 2005년에 줄리니가 사망한 최근에도 똑같은 말이 나왔다. 아마 아바도나 바렌보임이 장차 사망하면 또 언론은 "마지막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운운 할 것이다.

 

거장은 계속해서 나온다. 수십년 전에 탁월한 신인 지휘자 정도로 평판을 들었던 아바도는 지금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로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푸르트벵글러나 토스카니니, 클렘페러, 발터, 카라얀, 번스타인, 솔티 등이 지금 없음을, 또 미래에 아바도와 바렌보임과 아르농쿠르가 사라져도 거장이 없음을 한탄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어디엔가 젊은 거장이 앞으로의 위대한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 시대의 차세대 거장이 누굴까? 리카르도 샤이는 이미 거목이니 리스트에서 제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정명훈과 발레리 게르기예프, 이반 피셔가 들어가리라 생각한다. 정명훈과 게르기예프처럼 음반 활동이 아직 왕성하지는 않지만, 피셔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레코딩으로 남겼기 때문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항상 새로운 해석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피셔. 그의 말러와 라흐마니노프 등의 교향곡이 그랬듯이, 이 베토벤 교향곡 녹음에서도 우리는 피셔의 진지한 열정과 치밀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세상의 교향곡 중 가장 축제적인 베토벤의 제7번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채널 클래식스의 탁월한 음향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같이 수록된 로시니, 베버, 빌름스의 음악은 베토벤과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의 작품으로, 베토벤의 교향곡이 당대에 어떤 맥락을 지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피셔의 세심한 학구적인 면모를 유추할 수 있따.

 

이 교향곡은 명연주가 즐비하다. 푸르트벵글러와 클렘페러의 진중한 해석과 토스카니니가 촉발시킨 경쾌한 해석, 이 둘을 잘 융합한 카라얀, 거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번스타인, 그리고 뺴놓을 수 없는 리듬의 화신 클라이버까지. 클라이버의 연주가 나온 이래로 그 음반이 사실상의 결정반으로서 군림을 했지만, 점점 단점이 부각되면서 다른 녹음들 - 아바도의 베를린 필하모니와의 베토벤 전집 중의 녹음과 클라이버의 새로운 오르페오 연주 등 - 이 명반의 자리를 서서히 넘보고 있다. 피셔의 이 연주는 클라이버의 뒤를 잇는 새로운 명반으로서, 그리고 차세대 거장을 예견하는 증거로서 귀중한 녹음이다.

w********a 2008.02.18.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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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한계 극복 초월적 연주
"표현의 한계 극복 초월적 연주" 내용보기
지휘자 정명훈의 이야기대로 베토벤의 작품은 너무나도 위대하여 단지 악보 대로만 정확하게 연주하여도 그 감동은 남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7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작품이지만, 베토벤의 다른 작품에서보다 유난이 해석과 연주의 역량과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푸르트뱅글러와 클라이버의 천재성은 이 곡에서 유감없이 두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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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명훈의 이야기대로 베토벤의 작품은 너무나도 위대하여 단지 악보

대로만 정확하게 연주하여도 그 감동은 남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7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작품이지만, 베토벤의 다른 작품에서보다

유난이 해석과 연주의 역량과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푸르트뱅글러와 클라이버의 천재성은 이 곡에서 유감없이 두드러지고 있죠.

이반 피셔가 베토벤 치클루스의 시작을 7번으로 한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반 피셔는 곡 자체로 환희에 넘쳐나는 악상들에 기존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표정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덧붙여 놓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도 정교하여

과연 이 연주가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맞는 것일까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정교한 프레이징은 마치 솔로이스트가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연주를 하듯,

이반 피셔의 주관적 세밀함이 조금의 흔들림이 없이 명확하게 전달됩니다.

각 프레이징 내에서도 아주 미묘한 거의 128분음표에 가까운 듯한 아고긱의

변화도 여유있게 진행되면서도 오차없이 칼 같이 떨어지고 이러한 순간에

두드러지지 않는 미묘한 변화로 전율을 느낄 지경입니다.

 

클라이버가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수준의 정확하고 정교한 비팅과 리듬을

실현했다면 이반 피셔는 그 비팅을 더 정교한 수준에서 파괴해 버리고 탈출하는

것만 같습니다.

 

클라이버의 오르페오반과 비교해서 결코 빠르지 않고, 절대 오버하지도 않지만,

내적으로 만들어 내는 생동감은 정말 놀랍습니다. 스케르쪼에서는 그야말로

'팔딱팔딱' 심장이 뛰는 그 느낌이죠.

 

2악장에서는 장송행진곡의 본질은 칸타빌레였음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서 정서적 반응을 더욱 폭 넓게 이끌어 갑니다.

 

4악장에 와서는 역설적으로 가볍지만 그야말로 결코 가볍지 않은 기분을

지속하면서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클라이막스로 질주합니다. 질주하지만

그 정교함과 진지한 성찰은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말이죠.

 

푸르트뱅글러, 클라이버의 7번을 결코 놓칠 수 없듯이, 21세기에 대표적인

7번이 될 이반피셔의 7번 또한 놓칠 수 없습니다.

 

 

 

c****3 2008.05.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