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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에 깊은 감동을 선사해준 사람들, 그리고 의식의 저 뒤편에 자리하고 항상 동경을 자아냈던 자연의 풍광을 찾아 나서는 설레임과 즐거움을 무엇이라 표현 할까?
김병종의 라틴 기행은 울긋불긋한 황홀한 색채의 열정에서 자욱한 해무(海霧)의 공허함까지 우리 사람들이 쫒는 그 이상의 세계를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지나가듯이 읊조린다. 그가 지나가는 자연과 사연들, 그리고 도시와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너와나 그리고 그 대상이 서로 다르지 않은 일체감을 갖게 한다. 다름 아닌 감정이입의 시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그의 글속에서 평온하게 교차하는 라틴의 정열과 슬픔을 같이하게 된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재즈선율과 빗물에 튀기는 기타소리가 태양과 열기의 도시 아바나와 교묘히 어울리며 잊혀진 추억으로 빨려들게 한다. 20세기 불세출의 작가‘헤밍웨이’의 파편이 묻어있는 암보스문도스 호텔, 카페 프로리디타를 따라 걷는 느낌이 여행자에게서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져온다. 쿠바인에게는 사랑과 공기와 같은 존재,‘체 게바라’를 통한 억압과 차별의 역사, 아니 현실의 쿠바와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짙은 공감을 형성하게 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작가의 발길이 머무는 멕시코에서 우리는‘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푸른집을 마주하게 된다.“우울이 출렁이는 푸른색 깊은 곳”이라는 김병종의 표현처럼 고통의 격렬함 속에 그려진 그녀의 역동적 작품들이 그저 바로 옆에서 보여 지고 느껴지는 듯만 하다. 남미의 파리라 했던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 관능적이고 격정적인 탱고의 선율을 선사한다. 그리곤 20세기 라틴문학의 스승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구와 마주하며, 문학적 내음과 열정의 기묘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음악과 현란한 화폭, 지성과 삶의 숨결이 느껴지는 문학, 그리고 그 주체자인 추억의 인물들을 따라가는 발걸음으로 독서가 내내 즐겁다. 작가의 다듬어진 문장과 진솔한 내면의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라틴 예술에 대한 뛰어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브라질의 삼바드로모,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코르코바도 예수상, 마라카낭 축구경기장, 이구아수폭포 등 역사와 사회 이면의 외면된 고통을 어루만지고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아픔을 공유하기도 한다. 안데스의 영봉아래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사실주의 현대문학의 거장인‘이사벨 아옌데’와 그녀의 작품 “영혼의 집”을 반추하며,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하는 네루다의 시(詩)에 잠시 빠져들어 잊었던 사랑을 괜시리 기억에서 꺼집어 내는 자신을 발견케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세계의 끝을 찾아오는 건, 다시 돌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짙은 안개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리마, 로맹가리(에밀 아자르)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반추하며, 인생의 석양을 보는 듯, 화첩을 덮는다. 아름답다. 과장하지 아니하는 진정함과 예향이 솔솔 묻어난다. 면면이 놓여있는 작가의 그림들도 독서를 흥겹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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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답게 화려한 색채의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지 디자인을 비롯한 책의 전체적 구성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와 기쁨이 두 배가 된 책! 세계사 교육은 강대국 위주의 교육, 현재도 마찬가지란 생각. 강대국에 의한 세계화. 당연 세계의 중심은 그들. 아시아나 남미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영향일 거라 생각한다. 해외여행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가장 먼저 그렸을 것이다. 나 또한 20, 30대에 여행을 꿈꿀 때 우선 순위였으니까.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시아나 남미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의 문화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을 보자마자 살 수밖에 없었다. 약소국의 슬픔으로 피어난 ‘정열’이란 단어를 빠뜨릴 수 없는 라틴 문화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은 예술 종합선물세트이며 추억을 들춰보는 재미를 준다. 시, 그림, 음악, 문학이 잘 어우러져 다양한 선물을 한꺼번에 받은 느낌 때문에 입이 귀에 걸리고 만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으론 즐거움을, 마음으론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몸은 어느새 낯선 땅에 있게 된다. 또한 세계적 예술가를 만날 때마다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고 시, 그림, 음악과 관련된 추억을 꺼내보게 된다. 화가의 손끝에서 살아난 풍경과 인물들을 보며 더 많은 목마름을 느낄 때는 과감하게 책을 덮고 손을 바쁘게 움직인다. 책에 등장한 인물들의 책을 꺼내보기도 하고, 네이버 검색을 하여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검색하여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저자와 함께 그곳에 있는 착각을 하게 된다. 쿠바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혁명과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 헤밍웨이(핑카 비히아), 호세 마르티. 멕시코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카를로스 푸엔테스. 아르헨티나와 탱고와 피아 졸라(반도네온), 보르헤스(토르토니), 에바 페론(레콜레타 묘원), 유팡키(팜파스). 브라질과 삼바, 니마니어. 칠레와 안데스, 이사벨 아옌데, 빅토르 하라, 파블로 네루다. 페루와 잉카제국(마추픽추, 쿠스코), 로맹가리(리마). 그 외에 수많은 영화와 음악... 지구 반대편의 삶과 예술이 곧 우리의 삶과 예술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 호흡한 시간에 고마울 뿐이다. 저자의 재능-그림·글·뛰어난 심안-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은 불공평하다는 말을 되뇌며 일주일간의 행복한 책읽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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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일보에 연재되던 "라틴화첩기행"시리즈를 볼때마다(사실 그림만 봤다.) 그 원색의 그림을 꼭 한점 갖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3월말 갤러리현대에서 라틴화첩기행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을 때 (멀어서 직접 가지는 못하고) 화랑에 전화를 걸어 작품가격을 물어보았다. 전시회 담당자는 쉽게 가격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렇쿵 저렇쿵 이유를 둘러대고 겨우 얻어낸 가격정보는 10호 기준 1천만원 수준. 언감생심...나같은 한달 벌어 먹고사는 샐러리맨에게 가당키나 한 돈인가! 이런 류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면 비현실적인 가격으로 작품이 거래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그래서 김병종화백의 이전 작품들을 검색해보았다. 최근 옥션이나 기타 화랑에서 거래된 가격대와 비교해도 라틴화첩의 거래호가는 너무 과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림들이 정말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이전 그림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원색의 담백한 그림들이 나의 물욕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그리고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 곳곳에 그려진 예쁜 그림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해박한 역사, 예술, 인물 지식이 전문작가 뺨치는 글솜씨로 쉽고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그가 문필가인지, 화가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젊었을 적 펜을 잡은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의 필력은 결코 뜨거운 햇살이 가득한 화폭의 화려함에 뒤지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늘상 서민들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화폭의 소재, 글의 소재가 모두 사람들의 몸과 삶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소재의 그림이 호당 100만원을 넘나든다.) 서민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은 동족에 대한 그것 못지 않게 따뜻하다. 식민지지배와 군부독재, 혁명의 역사에 대한 동질감 때문일까? 그는 민중의 편에 서서 쓰고, 그리고, 노래한, 나아가 총을 들고 혁명의 선두에 선 선지자들에게서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그림 대신 책을 샀지만 얻는게 참 많은 책이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화려한 그림과 라틴문화에 대한 지식과 사람에 대한 애정까지...누구에게나 강추하고싶은 책이다. 물론 그림에 대한 소유욕은 여전히 사그러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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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이정도로 글을 잘쓰면 작가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산문집을 썩좋아하지 않는 내가 작가가 아닌 화가의 산문집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본다. 아마 선물받지 않았다면 인연이 없었을 책이다. 그리고 후회없이 읽었다. 쉽게 읽히는데다 다소 오바하는 듯한 표현인데도 와닿는다. 이는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흠뻑 젖더라도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인지 더위와 허기를 노래해도 젖어있다. 신문연재를 볼땐 그냥 넘겨버렸지만, 확실히 책으로 볼때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도판을 담기 위해, 사진을 담기 위해 그런건지, 고급스러워 보이기 위해 그랬는지는 몰라도 종이가 고급스러워 약간 부담스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고급스런 종이에 비해 이책 가격이 마음에 든다. 주말에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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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행 속에는 그의 눈으로 바라본 한 시대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책 속에 녹아있다. 그는 쿠바의 거리를 걸으며 체 게바라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가슴으로 품고, 멕시코에선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고통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한 편의 영화처럼 기린다. 그외에도 무수히 많은 예술가, 혁명가들의 숨이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 녹아있다. 그는 라틴에 녹아든 원색의 예술가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그들이 남긴 역사의 뒤안길을 밟는다. 독자는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 뿐이다. 김병종의 책을 읽고 있으면 텍스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마술이란 생각이 든다. 몇 페이지를 들춰 읽었을 뿐인데도 어느새 활자는 라틴재즈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눈 앞에는 문장과 문장이 남긴 장면들이 한 편의 로드무비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이쯤 하면 김병종이란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대학시절 이미 두 군데의 신춘문예에 등단했을 정도로 문학적 기질 또한 타고났던 그. 그가 그려낸 화려한 원색의 그림들과 감성적인 글들은 하나의 둥그런 원이 되어 매혹의 활개짓을 하는 라틴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그것이야 말로 김병종의 예술이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라틴은 우리처럼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공간이라기보단 차라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 같다. 책을 읽다가도 중간중간 주먹을 움켜쥐고 언젠가는 꼭 이 곳에 가고 말리라 다짐을 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 쿠바에 가서 아바나클럽을 마시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래된 고서를 읽다 보면 라틴의 예술가들, 혁명가들이 그러했듯이 생의 참됨을 깨닫게 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이따금 나는 이 넓은 지구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아도 주위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자. 그러면 곧 이 땅보다 더 넓은 대지의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모여 만든 나라들이 지구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생은 인간과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소통 없인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그 속에서 모두가 똑같이 사랑을 하고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목전에 두며 그러다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렬의 과정을 밟는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에도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의 생을 살고 있다. 내게는 의미 없이 흐르는 1초에도 세상은 급박하게 변한다. 내가 버린 1초에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가 죽으며 누군가가 아파하고 누군가가 행복에 겨워 눈물 짓는다. 그게 바로 삶이다. 육십억 인구가 함께 살아가는 삶. 이 책을 읽고 있자면 별안간 라틴의 햇살을 머금은 중남미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진다.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칠 때 이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 한 잔을 마시며 생의 아픔을 순간의 즐거움을 바꿀 줄 안다. 가진 게 없어도 밝게 웃을 수 있는 건 전부 그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물 마시듯 마시는 음료 한 잔을 돈이 없어서 마시지 못해도, 당장 무너져 내려도 어색할 게 없는 집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도, 더 거슬러 올라가 이민자들의 가혹한 수탈과 강요 속에서 평생을 시달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유로이 웃을 수 있는 건, 전부 춤과 음악, 라틴만의 어떤 강렬한 빛에 녹아든 예술의 즐거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행복하다. 삶은 힘들지언정 마음만은 풍요로 가득 찬 사람들. 그들이 바로 라틴의 사람들이다.
중남미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 자기 생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삶이 무료한 사람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강렬한 색(色)과 에너지에 취하고픈 사람들은 한번쯤 이 책을 읽어도 좋을 듯 싶다. 작가는 우리를 원색의 아름다운 지구 반대편 세계로 인도한다. 사진 설명이 없어도 라틴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매력에 푹 빠져 한 몇 달 살아보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책.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들의 눈물을, 혁명으로 쓰여진 역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책. 언젠가는 나 또한 삶과 예술이 어우러진 그들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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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우리가 흔히 중남미라 부르는 그 땅에는 지금도 식민의 상처와 이민의 애환이 짙게 묻어난다. 근대의 디아스포라들이 정처 없는 마음을 가눌 데 없어 슬피 우는 땅, 아픈 역사의 증거가 혼혈의 핏줄로 이어져 내려오는 터전, 이식된 근대화의 채찍에 살을 찢기며 살았던 민중의 한이 혁명으로 불타오르는 뜨거운 고장, 라틴 아메리카.
이방인이 오히려 낯설지 않은 그 이방인의 땅에 한 사내가 여행을 한다. 아니 그들의 삶 속을 비집고 들어선다. 같이 겪은 이산의 고통을 핑계 삼아, 함께 간직한 피식민의 역사를 둘러대며, 많이 닮은 선조들의 문화와 피부색을 구실삼아 화가이자 작가인 김병종은 그렇게 라틴 아메리카와 그 안의 사람들을 만난다. 닮았으나 또한 다른 한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표정과 그 삶의 속살들을 화가는 붓으로 펜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울대 미대교수이기도 한 김병종은 <라틴화첩기행>(램덤하우스.2008)에서 자신이 걸었던 라틴아메리카의 땅을 추억하고 그 땅에서 살았던 많은 위대한 인생들을 이야기 한다. 또한 그 슬픈 식민지의 삶 속에서 오히려 찬란하게 피어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음악과 예술을 소개한다. 역사는 우울했을지언정 삶은 결단코 우울하지 않은 위대한 라틴의 품성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흑인영가처럼 나직하면서도 쿠반 재즈의 북소리처럼 흥이 난다. 탱고의 격렬한 몸짓처럼 살아 펄떡인다.
카리브해의 흑진주, 쿠바! 하고도 아바나. 치명적 중독성을 가진 도시, 불온한 여인처럼 마초 이미지의 사내들을 향해 손짓하는 곳. 살사 리듬과 혁명의 구호가 타악기와 랩처럼 공존하는 땅. 가난하지만 결코 남루하지 않은 나라, 삶은 우울할지언정 표정은 결코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 평했던 인간해방의 풍운아 체 게바라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혁명의 땅. 그 쿠바의 호세마르티 공항에 내리면서 김병종의 라틴 여행은 시작된다.
아! 카리브. 아하! 음악! 이것이 쿠바의 맨얼굴, 민낯이다. 이제는 세계적인 쿠반 재즈의 대명사가 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단박에 동양의 이방인을 사로잡는다. 황홀경에 취하게 한다. 카리브의 청옥빛 바다만큼이나 청량하게, 불어오는 해풍만큼이나 끈적끈적하게, 우울과 활력이 공존하는 그들 도시의 아이러니를 타악기 리듬에 맞춘다. 그들의 허기진 영혼과 삶의 애환은 달콤한 선율로 흐르고 춤을 추는 댄서의 몸짓은 관능적이되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 리듬이다. 광장이나 골목할 것 없이 환청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곤 하는 저 타악기 마라카스의 리듬. 귀와 피부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어와 핏줄을 타고 흐르면서 단숨에 아드레날린이라도 주사한 듯 심장박동을 팽팽하게 당겨 일으키는 저 북소리. 아련하면서도 저릿한 그 자장 속으로 들어서면 그 누구라도 ''''''''현실의 작은 결핍쯤이야, 존재란 이토록 눈부시고 아름답고 달콤한 것이거늘''''''''이라며 가슴속에서 간지럼처럼 퍼져오는 행복감과 충만감에 푹 잠겨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쿠바에서 혁명이란 자본주의에서의 사랑 같은 것이다. ‘혁명’과 쿠바인의 ‘일상’은 각자를 상관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돌아간다. 쿠바에서의 삶은 소설보다 훨씬 소설적이다. 때문에 미국인이면서도 가장 쿠바적이었던 헤밍웨이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서 필생의 역작들을 쓸 수 있었으리라.
‘카페 프로디타’에서 차를 마시며 그는 영락없는 쿠바인으로 살았고 코히마르 바닷가에서 필생의 지기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노인과 바다’의 실제 주인공)와 어울렸다. 그토록 쿠바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까.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간 헤밍웨이는 그 이듬해(1961.7.2)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마초 흉내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한다.
쿠바하면 떠오르는 또 한명의 위대한 패배자 체 게바라. 의대 졸업반이었던 이 열혈의 청년은 모터사이클에 몸을 실고, 조국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를 지나고 안데스를 넘어 잉카제국의 전설과 만난다. 볼리비아의 밀림과 아마존의 정글에서는 선조들이 흘린 핏자국을 보고 제국주의자들의 침탈에 신음하고 죽어가는 민중들의 처절한 통곡소리를 듣는다. 그가 본 라틴의 참상, 그는 이제 청진기 대신 총을 들어야 했고 환자의 심장소리 대신 땅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하얀 가운을 벗어던지고 푸른 군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다.
그는 뛰어난 공산주의 이론가였으며 자애로운 선생님이었다. 놀라울 만큼의 직관력을 가진 화가였고 종이와 펜을 놓지 않는 훌륭한 문필가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에게 만큼은 누구보다 냉혹한 전사였으며 결코 타협하지 않는 냉정한 승부사였다. 그럼에도 그가 우리에게 풍기는 인상은 절대 비정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그가 평생을 잃지 않고 간직했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 때문이다. 인간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조 때문이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음영 짙은 서늘한 눈매에 시가를 꼬나문 모습은 낭만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가 입은 군복과 부여잡은 총마저 한사코 그 낭만을 부추기는 소도구로만 보일 뿐이니 어찌할꼬.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게 만드는 것은……. 약한 곳, 눌린 자를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선 때문이다.”
이 우수에 찬 쿠바의 연인, 아니 세기의 연인은 볼리비아의 산악에서 스러졌다. 여전히 못 다 이룬 인간해방의 그 길이 안타까워, 지금도 억압받고 차별 당하는 라틴의 동포들이 불쌍하여 눈도 감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꿈꾸었던 착취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 평등에 대한 불타는 염원, 기만적 폭력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기개는 지금도 살아 있다. 혁명이란 이름으로, 혁명에 대한 강고한 신념으로.
아바나를 더욱 아바나답게 하는 밤의 트로피카나쇼와 석양의 말레콘은 아바나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이다. 그 곳을 지나면 저자의 발길은 멕시코에 닿는다. 벽은 단절이며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금이라는 고정관념을 일거에 허물어버린 색채의 마술사 디에고 리베라의 조국. 벽으로 하여금 살아 꿈틀거리며 생을 긍정하게 만든 남자, 디에고 리베라. 그의 이름처럼 너무나 자유분방하여 프리다 칼로의 평생의 고통이었던 이 위대한 예술가. 막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로 살지 못하고, 자기애 강하고 자유분방하며 타고난 유혹자인, 그리고 그 성격 때문에 결국 파괴되고 마는 카르멘이라는 운명의 패를 집어 들어야 했던 고통의 메신저 프리다 칼로의 푸른색이 강렬한 햇빛에 부서져 먼지처럼 사라지는 땅, 멕시코 그리고 멕시코시티. 화가는 칼로의 푸른색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블루, 우리는 막연히 푸른색에서 희망의 기미를 읽어내지만 본디 푸른색 깊숙한 곳에는 우울이 출렁이고 있다.”
광기와 고통으로 얼룩진 여사제의 제단을 지나면 바로 앞에는 부정과 혼혈의 씨앗으로 잉태된 메스티조의 슬픈 운명이 마주한다. 코르테스에 의해 저질러진 짐승의 나날들과 자기분열의 역사는 챙 넓은 모자 솜브레로로도 가려질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그 고통의 땅에서 혁명의 빛과 그림자를, 아니 빛보다는 그 그림자를 정확하게 집어내 햇빛 아래 드러낸 지식인이 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그에 의해 혁명은 다시 혁명해야할 중요한 시대의 소명이 된다.
화가는 지치고 몸은 피로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끝없는 열망은 잠시도 화가를 쉬게 하지 않는다. 그의 발걸음은 아르헨티나로 향하고 에비타의 폭죽 같은 삶은 그를 전설의 시공간으로 이끈다. ‘울지마오, 아르헨티나여’ 마돈나의 노랫소리보다 오히려 그녀의 관능적인 몸짓으로 살아나는 에비타의 아르헨티나여! 물과 공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20세기 환상문학의 거장 보르헤스의 시를 통해 살아 있는 듯이 꿈틀댄다.
왕가위의 화면(해피투게더) 속에서는 몽환적인 그리움의 장소로, 탱고의 신이라 불러도 족한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선율 속에서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추는 자들의 도시, 그래서 보르헤스의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곳, 부에노스아이레스. 이태리 이민자의 그리움과 정처 없는 이산자의 아픔이 관능의 몸짓과 열정의 땀방울로 배어나는 나라 아르헨티나는 죽어갈지언정 결코 잠들지 못한다.
“실수로 스텝이 엉기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실수로 넘어지면, 그게 삶이라오.(영화 ‘여인의 향기’ 중에서)
“탱고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시작한다. 눈빛 안에 유혹과 관능, 격정과 한숨, 슬픔과 원망,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뜨겁게 얽혀들었다가 싸늘하게 흩어지는 그 눈빛 속에 인생이 녹아들어 있다. 눈물과 이별, 고통과 슬픔마저도 향연이 된다.”
탱고의 격정적인 숨결이 식기도 전에 저자는 어느새 브라질의 삼바드로모 거리에 있다. 죽기를 각오한 광란의 카니발로 일 년 중 딱 사흘 동안만 필요한 미친자들의 거리. 현실의 비루한 삶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딱 사흘 동안 꾸는 황홀한 꿈이며 환상인 리오 카니발. 카니발 기간 동안 그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논다, 그 광란의 축제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남루한 일상을 버티며 산다. 그날의 환희와 열정을 반추하며…….
1월의 강 리우데자네이루와 그 물굽이를 지켜보며 서있는 산정의 코르코바도 예수상, ‘악마의 목구멍’이란 섬뜩한 이름을 가진 이구아수의 그 거대한 물기둥, 안데스의 만년설이 사시사철 하얀 하늘을 보여주는 칠레의 산티아고, 그리고 ‘위대’를 넘어선 불과 얼음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요요마의 현소리가 지금도 생생한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와 그 돌담의 불가사의,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이 감추어진 산정의 분지에 세워진 천국으로 가는 입구 마추피추……. 이 지면은 라틴의 사람과 역사, 그 고장의 맨살을 다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좁다.
다행인 것은 화가의 붓질로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인상을 살펴 볼 수 있고 그들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다. 원색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갈색의 고통은 선인장의 가시처럼 내 눈을 찌르고 내 가슴에 박힌다. 그러나 아마존의 거대한 밀림을 흐르는 강물처럼, 드넓은 팜파스의 싱그러운 초원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도도한 역사는 오늘도 이어진다. 그 안의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은 또한 계속된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들려준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패배하지 않는다.”(‘노인과 바다’ 중에서) [임흥재 시민기자 epogue21@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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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이쪽에 있는 나라들은 생각하면 괜히 어깨가 덩실거린다. 왜 그럴까?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데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이 곳 나라들의 축제가 우리에게 먼저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김병종씨의 그림과 글로 빼곡하게 채워진 이 책... 사실 많이 알려진 분이라는데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신문을 안 봐서 그런가 ㅡ.ㅡ
기행문에 사진을 싣고 글을 실을 건 많이 봤지만 직접 자신의 경험에 있던 한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해 싣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단순하면서도 이야기 하고자하는 건 다 표현한 그의 그림을 보노라니 그 나라의 정열이, 기온이, 사람들의 인간성이 보이는 듯도 하다.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의 묵직한 인간의 삶의 대변하는 어부의 생을 만나고, 아르헨티나에서 피아졸라를 만났다.
몇 년 전 우연히 들은 피아졸라의 탱고... 지금도 종종 즐겨 듣지만 도무지 기분이 우울한 새가 없다. 기분 좋을 때 들으면 더 좋아지고 나쁠 때 들으면 그냥 기분 좋게 하는 음악이다. 멕시코에서는 프라다 칼로를 만나 그녀의 삶에 함께 눈물 흘리고 같은 여자로써 그 삶이 어쩌면 그리도 모진지 모르겠다. 축제의 나라, 열정의 나라 남미를 맘속으로 떠났다가 화가와 작가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 혹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나 화가의 발자취를 뒤늦게나봐 더듬어 볼 수 있는 책이다.
헤밍웨이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 속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그의 흔적을 찾으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 한 동네를 기웃거린다. 멋진 춤 탱고에 빠졌다 허겁지겁 나와보면 다시 인간의 내면까지 요동치게 하는 파블로네루다를 만나는 자신을 발견한다. 베스트셀러였던 김용택 시의 [시가 내게로 왔다]가 소제목으로 붙어 있어서 앞에 발문으로 써주신 것으로도 충분히 두 분의 사이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우애를 과시하시네..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 "시가 나를 찾아왔어"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내가 찾아갔는지, 시가 나를 택했는지... 삶은 참 오묘하다. 살아가다 보면 꼭 스스로 의도하지 않아도 만나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의도해서 만나고자 할 때는 잘 만나지지 않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에서도 작가가 남미를 찾았는지..남미가 작가를 불러 들였는지... 쿠스코의 장엄한 음악을 들으며 남미 여행을 꿈꾸고 또 남미를 다시 보게 한 라틴화첩기행을 쓰다듬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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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짜여진듯한 현실의 일상은 언제나 현대인들을 지치게끔 한다. 그래서 가끔은 모두들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생활의 법칙은 그것조차도 쉽게 허락하질 않는 것 같다. 아마도 그 대안중의 하나가 다른이 들이 몸소 체험하고 걸었던 자취를 따라가보는 것이 아닐까. 현대문명의 이기인 TV에서는 언제나 낯선 곳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한다. 스쳐 지나가듯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지만 이국적인 풍경들은 이내 기억저편으로 묻혀버리곤 한다. 책이라는 전달방식은 그래서 그 여운이 좀더 진한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이국적인 문화를 자신이 체험하는듯한 상상에 빠지기도 하니까. 그러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이미 <김병종의 화첩기행>시리즈로 유명해진 김병종 화백의 글과 그림은 그러한 혼자만의 여행을 더욱 더 감미롭고 실감나게 즐길 수 있는 멋이 있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그림들은 낯선 이국의 풍경을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활짝 펼쳐준다. 이 책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은 저자가 직접 남미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한 감성들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살아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여행의 중간중간에서 저자는 다양하고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글에 담아내고 예술적인 상상력이 더해진 그림을 그려내 이 여행기를 생동감나는 색깔을 입혀준다.
국내부터 시작된 저자의 이번 여행지는 남미다. 남미라는 곳은 어쩌면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은 비켜나 있는듯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옛날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그들의 아름다웠던 전통문화는 그렇게 외세의 총칼앞에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아픔만을 남겨 놓고 그들이 떠난후 맨땅위에 그들은 특유의 정열과 리듬을 타고 삶의 새로운 방식을 기억해낸다. 저자가 처음 도착한 쿠바에서도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리듬이다. 광장이나 골목 어디에서나 경쾌한 타악기 마라카스의 북소리와 룸바, 손, 과히라로 대표되는 쿠반재즈는 낯선 이방인에게 라틴 아메리카의 정열을 전한다. 저자는 닿는 곳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나 유명지를 통해 이국의 풍경을 보다 친근하게 그려내려 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기간을 쿠바에서 보내며 자신의 인생중 가장 빛나는 한때를 보낸 대문호 헤밍웨이의 숨결이 남아있는 암보스 문도스에서 저자는 그의 정신적 고뇌를 상상해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이미 제임스 딘 처럼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 그를 빼놓곤 쿠바를 이야기 할수 없을 듯하다. 음영짙은 서늘한 눈매에 시가를 꼬나문 그에게서 우리들은 낭만적 상상을 떠올린다. 혁명, 자유라는 입간판이 가득한 이념의 거리에 쿠바의 연인으로 기억되는 체 게바라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쿠바인들에게 언제나 늙지 않는 영혼 불멸의 연인이기도 하다. 저자가 길에서 만난 한 중년사내는 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현란한 춤사위에 녹아들어 있는 억압과 흑인노예의 절규를 느끼며 저자는 멕시코로 향한다. 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멕시코혁명, 그리고 그 주검위에 서있는 멕시코혁명 기념탑 앞에서 저자는 웬지모를 외로움만을 느낀다. 그 기록을 벽화로 남긴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고통스런 사랑을 기억하면서...
아르헨티나에서 저자를 안내하던 어느 교민은 이 도시의 공기가 자신을 붙잡았다고 한다. 알 수 없는 문화적 마력이 그를 주저 앉히게 한 것이다. 환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시로 매혹적인 아르헨티나를 노래했던 보르헤스의 숨결은 아직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에 남아 있으며 그 밤의 거리에서 저자는 그의 소설속에 있는 것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불멸의 연인 에비타가 잠들어 있는 묘역 레콜레타에서 그녀를 기억하고픈 수많은 민중들의 열광과 아우성과 손짓을 느끼며 그녀의 극적인 삶을 떠올려 본다.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개개인이 안고 있는 상처와 격정과 사랑, 상실과 후회를 보여준다면 브라질의 탱고는 무지개와 같은 극한의 화려함뒤에 숨어있는 고통과 슬픔, 한과 저항의 몸짓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노예선을 타고 온 이역만리에서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배고픔과 피로를 이겨내고 낯선 대륙에서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마지막 힘이 되어준 춤과 음악 그것이 삼바이며 그들의 카니발이다. 가난한 일상에서 그들은 그 한판 축제를 위해 일년을 기다린다. 나흘간 혼신을 다해 놀고나면 덧없이 사라지지만 그들은 그렇게 삶의 고통과 슬픔을 비워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나 보다.
이 책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행서적으로 봐서는 곤란할 듯하다. 저자의 발길이 닿는 6개국 쿠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에는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이 처연하게 아로새겨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여정을 통해 리오데자네이로의 거대한 예수상이 두팔 벌려 바라보고 있는 부촌에 가리워진 뒷편의 달동네의 가난한 영혼을 느껴보기도 했고, 노래와 눈물 그리고 살육당한자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아직도 남아있는 마추픽추의 망연자실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가 세계의 끝이라고 표현했던 자살바위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는 남자를 바라보며 느꼈던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삶과 예술 그리고 열정과 리듬이 있는 곳, 그곳 남미대륙의 곳곳에서 우리는 저자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자신의 삶을 즐겨나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나 과거에 집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고통과 슬픔을 딛고 그것마저도 열정이란 이름의 에너지로 발산해버리는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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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가 세 단으로 접힌 그림으로 되어있다. 저자 소개가 있는 페이지를 잡아 펼치면 멕시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 펼쳐진다. 일상의 고통을 춤과 노래 속에 녹여내는 멕시코 인의 낙천성을 보여주는 춤추는 선인장과 노래하는 마리아치. 그리고 아르헨티나 남녀 한 쌍이 그림 한켠에서 정열적으로 탱고를 추고 있다. 독특하고 인상적인 표지에 우선 매료당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김병종 화백을 따라 라틴 기행에 나섰다.
풍경들은 하얗게 바스러져가는 시간 속으로 멀어진다. 불타는 석양의 가을강과 선홍빛 와인 잔 너머로 날리는 눈발, 애잔한 색소폰 소리, 보랏빛으로 이동하는 이역의 구름, 햇빛에 반짝이는 카리브, 끝 간 데 없는 연둣빛 풀밭, 조용히 흔들리는 숲, 오래된 바닷가의 오래된 찻집...(‘작가의 말’ 중에서)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낯선 풍경들에 유혹 당한 김병종 화백이 붓 한 자루 손에 들고 라틴에 다녀왔다. 그리고 나는 그의 책을 손에 들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라틴에 다녀왔다. 그와 함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노래를 듣고,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를 만났으며,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을 방문했고, 에비타의 묘 앞에서 묵념했다.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에는 다른 여행에세이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림과 인물...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 뿐, 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여행지에서 많은 사진을 담아오고, 또 그런 사진들이 담긴 여행서를 보며 이국의 정취를 느끼고 문화를 맛본다. 사진이 없는 여행서는 생각도 못 해봤는데, 이 책에서 사진을 대신한 그림을 만났다. 그리고 사진보다 더 진솔하고 강하게 라틴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들을 보며 라틴의 매력을 맘껏 맛보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많은 인물을 만날 수가 있다.
미국의 대문호(하지만 쿠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헤밍웨이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아픔이자 빛이었던 디에고 리베라가 있다. 쿠바인에게 ‘사랑의 공기’같은 존재인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의 국모 에바타, 환상문학의 대가 보르헤스, 혁명광장의 국부 호세 마르티, 등등... 어지간해서는 한 곳에 모아놓고 보기 힘든 인물들이 이 책 속에 모여 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그림과 여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고, 영화가 있고, 춤이 있고, 혁명이 있다. 라틴의 매력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를 대접받은 기분이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도시, 오직 세속적 성공과 실패로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도시에서 온 중년의 사내를 이 도시는 이상한 마력으로 유혹한다. 온몸을 짓누르는 피곤과 스트레스 속에 하루를 마감하지 않으면 어쩐지 불성실하게 하루를 보낸 듯한 죄책감마저 느끼며 귀가하던 일상.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날들이 아득해진다. 여행이 끝나면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겠지만 넘어진 척하며 이곳에 머무는 사람도 있다.(p.169, 170)
나도 그 도시들의 마력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넘어진 척하며 그곳에 머물 수 있지도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