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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기억되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20세기 베르메르의 환생이라 불리던 가브리엘 이벤스
가끔 미술관을 찾아 그림을 보는것을 즐기기는 하지만 나는 예술은 잘 모른다 그저 보면서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낀다고 할까.... 예술에는 문외한인 나에게도 베르메르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화가이다 아마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덕분이 아닐까 영화로 개봉되면서 더 관심을 가졌던 지극히 사실적인 그림속의 소녀 그 투명한 피부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사실적인 풍속화로 유명한 화가였고 실질적인 주인공 가브리엘 이벤스는 베르메르보다 더 베르메르다운 위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가브리엘 이벤스는 실제 베르메르의 위작으로 악명높은 실존인물 ’반 메헤렌’을 모델로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다
우리역사가 아닌 색다른 소재의 팩션으로 읽는동안 이국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분이었다
세계곳곳으로 흩어져 있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특별기획전을 준비하던 큐레이터 ’나’에게 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베르메르의 미공개작 한 점을 세상에 공개하고 싶다는...
네덜란드로 간 ’나’는 베르메르의 위작으로 악명높은 가브리엘 이벤스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속에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천재화가의 삶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과거를 복사하는 장인으로 매도당하고 만 가브리엘 추상적이고 파격적인 표현이 찾조적이라 인정받는 시대는 고전적인 예술을 중시하는 그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인정받지 못한 좌절감으로 젊은 예술가는 세상모든것에 도전한다 베르메르보다 더 베르메르다운 위작으로 그들이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예술을 말하는지 조롱한다....
시대를 잘못만난 탓일까 세상에 순응하지 못한 탓일까 아마도 평생을 고통스런 죄의식속에 살았을 가브리엘이 안타까웠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못했던 예술가는 베르메르의 이름뒤에서 세상을 농락하는 방법밖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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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신만의 그림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이젤에서 정물화를 그리기도 하고 풍경화를 만나러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숲속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림은 항상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시간에 대한 여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림이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선 색채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 대가로 우린 경쟁과 비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은 그런 그림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네델란드의 가난한 화가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꿈은 고전주의에 바탕을 둔 데셍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가브리엘을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받아들여주었지만 가브리엘은 언제나 자신이 혼자라고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대학생 화가 가브리엘의 열정은 언제 폭발적인 데셍 실력을 자랑하지만 20세기 초 전운이 감도는 유럽미술시장에서 고전주의는 이미 퇴색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시대적인 상황을 대변하려는 실용주의적인 미술품들이 고객의 시선을 이끌었고 화상들은 고전에서 작품들을 추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도 합니다. 사이먼은 그런 화상들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지독히 세심하고 고전적인 가브리엘의 데셍을 통해 위작의 가능성을 엿보게 됩니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지만 그가 만난 파리는 절망과 죽음뿐이었습니다. 사랑하던 요한나마저 팽개치고 자신을 벗어던지는 가브리엘의 절망적인 상황은 그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반전을 예시합니다. 그는 한때 모작을 했던 웨인하르텐을 만나 베르메르의 미술품을 위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세상은 이미 자신을 포기했고 자신이 가진 재능으론 더 이상 진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최후의 결심은 결국 전혀 예상치 못한 세계를 만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난 후 그가 그린 베르메르의 위작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이 진품으로 둔갑되어 괴링의 창고에서 발견됩니다. 네델란드 박물관장은 당시에 거래를 했던 가브리엘을 고소하고 가브리엘은 매국노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작품을 자신이 위조를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 뿐입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다시금 재판장에서 위작을 재현하게 됩니다. 하지만.....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는 30여작에 불과한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작한 가브리엘을 주인공으로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가난한 예술가로서 느꼈던 절망적인 상황을 리얼하게 표출해낸 작품입니다. 가브리엘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통해 자신이 현실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현실에 적응하는 방법만이 살 길인가요? 아닙니다. 자신을 버린 가브리엘에게 주어진 것은 비참한 결과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 놀라운 자신만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베르메르는 서양 미술가들 중에서 빛을 가장 잘 이해한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200년 동안 묻혀 있어서 신비감을 더해주지만 그의 그림은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인물들의 초상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더불어 그는 그림으로서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신비롭고 섬세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조금만 이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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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철저히 농락한 위작 화가’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라고 책소개가 되어 있지만 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세상의 돈과 타협하여 팔아버린 잃어버린 영혼, 불쌍한 베르베르라고 말하고 싶다. “가브리엘이 재능있는 화가로는 성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잘 팔리는 화가는 결코 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는 분명 범인과 다른 재능을 갖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유연하지 못해. 대중의 취향을 맞추지 못하는 화가의 작품은 결코 팔리지 않지.” “아니, 그에게서 재능을 발견했던 것은 사실이야. 사물의 형태를 원형 그대로 재현해 내는 천재.” 그에 대한 화상의 평가는 불행하게도 그러했다. 만약 베르메르가 가브리엘 이벤스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베르메르보다 더 베르메르답다는 베르메르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감쪽 같은 위작을 대면했을 때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대면하게 될까? 불쾌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통렬히 비난하고 죄질을 묻고 처벌로 생각을 마감할까? 아니면 대중 앞에선 그럴지라도 자신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아니면 자신의 작품이 위작될 정도로 자신의 인기가 자랑스러울까? 또 가브리엘 이벤스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작하고 있을 때 그의 진정한 속내는 어떤 것이었을까? 어쩌면 순수 창작은 아니지만 그 위작품이 또 다른 창작이라고 합리화시키며 그렸을까? 아니면 단지 당대의 명성 없는 화가가 그리는 풍속화 등 사실적인 구상화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자연의 복사 화가라는 철저한 무시됨에 분노하여 베르메르를 훌쩍 뛰어넘는 작품으로 세상의 편견과 아집에 조롱하고 세상에 분노하고 성공하기만 간절히 갈망하는 그림을 그렸을까?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 순수한 열망 하나만으로 인한 간절한 몸부림이었을까? 그는 진정한 화가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영혼을 작품에 쏟아부어 세상과 소통하려는 순수한 화가가 아닌 세상에 인정받고 싶어 세상과의 타협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렸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비록 작업에 대한 열망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돈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비열함을 세상은 용서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달란트를 그는 세상과 타협했다. 그는 단지 화상의 농간에 의한 작가의 명성, 그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변덕스런 단세포 같은 존재(?)인 대중의 수족이요 꼭두각시가 된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인간 가브리엘 이벤스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의 행위가 안타까울 뿐이다. 연민이 생길 정도로 안타까운 그의 삶이 현대도 별다를바없어 창작의 의미에 물음표를 달 뿐이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 사건! 그분들의 순수한 영혼의 산물인 작품들이 세인들에 의해 평가되고 위작품을 진정성을 가지고 바라보기 보다 단지 세상의 이슈로만 전달되어지는 듯한 모습에 과연 순수 창작의 진정한 기준점이 무엇인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사건과 성격은 다르지만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은 있었지만, 자신만의 작품세계가 없어 비참한 인생을 살다간 가브리엘 이벤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라” 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그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대답해 버린 그는 예술의 빛과 그림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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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기의 위작사건이라는 말에 관심이 갔다. 솔직히 미술에 관해 문외한인 나에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읽는 내내 가브리엘의 삶에 푹 빠져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거장 베르메르. 그의 그림을 위작한 가브리엘. 이야기는 한 여인의 편지로 시작되고, 그 편지를 받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기의 위작사건으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이벤스. 그렇게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브리엘은 반역죄로 감옥에 갇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 처음부터 가브리엘이 위작을 했던 것은 아니였다. 그의 삶에도 순수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신만의 그림. 자신이 하고싶은 그림을 그리며, 그 그림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송받기를 원하는 그 마음. 하지만 모두에게 주여지는 영광은 아니였다. 가브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재능도, 열정도 있었지만 그는 그 영광과 명성을 얻지 못했다. 영광과 명성을 얻지 못했다고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믿어주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재능을 명성이라는 허울에 빼앗기면서 사랑하는 여자 요한나는 그를 위해 모든것을 희생해야 했다. 요한나는 가브리엘이 구해준 그 지옥을 가브리엘을 위해 다시 그 지옥으로 자신을 던졌다. 그렇게 요한나는 스스로 망가져갔고, 가브리엘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킨 후 자살한다. 요한나의 죽음에 가브리엘은 스스로 위작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는 괴링에게 베르메르의 작품을 넘겼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몰린다. 죽음이 위기에서 그는 자신이 위작을 그려 넘겼다고 주장하고, 그의 주장은 그가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위작임을 인정받게 된다.
그건 자신이 원하는 부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이용한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배신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그는 많은 사람들을 속인 나쁜 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쩌면 너무나 불안정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하고 있어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 분명하다.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걸 느꼈고, 마음이 아파옴을 느꼈다. 가브리엘의 삶이, 그리고 가브리엘 뿐만 아니라 그 먼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있을 가브리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온다. 하지만 가브리엘과 달리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의 문화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세상은 천재로만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그 천재도 노력을 하고, 꿈을 꾼다. 우리들처럼.
죽은 사람이 무섭다거나 죽는 것이 두렵다면, 그건 화가가 아니란다."(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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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때는 외국 작가의 소설인 줄 알았다. 네덜란드 정부가 렘브란트의 작품 보다도 더 아낀다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소재로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이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생각하며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역시 외국 소설이겠구나 했다. 국내 작가임을 확인하고 슬며시 놀랐다. 오래전 도서관 책꽂이에서 꺼내보았던 적이 있는 소설집 '유쾌한 바나나 씨의 하루'의 저자 우광훈의 장편소설인 것에 말이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술 기법이라든지 용어를 알지 못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에 실린 여섯 작품 역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난다. 책을 접하고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게 '왜 제목에 베르메르가 두 번 들어갈까' 였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다. 베르메르의 이야기라기 보다 위작 화가이며 화상(畵商)인 가브리엘의 이야기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제1부 각 장의 마지막 부분이 의미심장했다. '가브리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이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과오에 대해 과연 나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제2부, 4부에서는 가브리엘의 옛 시절부터 연도 순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3부에서는 1부에 이어 '최후의 심판' 전의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부가 바뀔 때마다 앞 이야기에 이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속도를 늦추지 않고 눈을 굴렸다.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드는 내 모습이 오랜만이었다.
책을 덮으면서도 이 이야기가 실재인지 허구인지 분간이 안 갔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명화 위조범 '반 메헤렌'을 모델로 하여 책의 주인공 '가브리엘 이벤스'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반 메헤렌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에 사실을 토대로 한 팩션이라는 점에 놀랐고, '진주 귀고리 소녀'나 '다 빈치 코드'에 맞설 우리 작가의 작품성에 또 한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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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처럼 재밌게 읽히면서도,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문장 또한 아름답고 유려하다. 그런데 이처럼 치밀하고 섬세한 작품에도 옥에 티는 있다. 45년도에 서른 중반이던 올가의 나이가 63년 후인 2008년도에 90이 안된 나이로 서술된 점이라든가...)
20세기 중반의 이국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팩션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의 속성, 예술가의 운명이란 대체로 이러하지 않겠는가 싶다. (예술작품은 소비자와 직접 만나지 못한다. 후견인,비평가,판매상 등 중개인이 끼어드는데, 이 과정에서 종종 예술이 종속되거나 훼손되기도 한다.) 특히나 미술작품은 투기의 대상이기에, 다른 예술작품보다 더 심하게 자본의 횡포에 휘둘리고 왜곡될 수 밖에 없으리라.
이 작품은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 헌신성을 두루 갖추었으되, 시대의 흐름과 어긋난 탓에 명성을 얻는 데 실패하고, 끝내 위작화가라는 오명을 남길 수 밖에 없었던 불우한 예술가에게 바치는 헌사인 동시에 예술작품의 가치를 재는 공정한 척도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화두. 예술의 세계에서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가 과연 확연히 구분될 수 있는가?
빛나는 이름을 미술사에 올린 화가들 중 당대에 부와 명예를 누린 자 과연 몇인가. 피카소를 위시한 소수만이 해당할 따름이다. 이 소설에서, 화가들을 이용하여 영향력과 부를 움켜쥐는 화상이라는 존재가 화가지망생 출신이거나 실패한 화가인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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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를 보고 알게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그는 빛의 마술사라고 불릴정도로 빛을 활용하는데 있어 뛰어난 화가이다. 그에대해 아는것도 알려진것도 별로 없었기에 <베르메르vs베르메르>라는 특이한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받은뒤에 알수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vs20세기 베르메르의 귀한 가브리엘 이벤스" 과연 얼마나 비슷했기에 귀한이라고 했을까..
작품에 나온 가브리엘 이벤스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인물이다. 그에게서 진정한 미(美)란 사실적이고 고전적인것들이다. 어느것하나 부정없이 그대로.. 하지만 그가 활동해야하는 무대는 20세기다. 그가 추구하는 미와 달리 색다른 미들이 유행하는 시기. 그렇기에 그는 재능은 있지만 가난할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는 칭찬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싸늘한 시선을 받을뿐이다. 그가 잠시 대중적인 것들에 눈을 돌렸을때 그는 후원자도잃고 자신의 첫사랑까지 잃고 만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그는 요하네스 베르메르그림에 눈을 뜨게 되고, 엄청난 세월이 필요한 그의 위작을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탄생시켰다. 위작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나치를 조롱했기에 국민들에게 영웅이 된다.
가브리엘 이벤스의 실제 인물은 찾아본 결과 '한스 반 메레헨'이라는 사람으로 이 위작사건으로 전 미술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사람이다. 시대를 잘못태어났기에 무시를 받은화가. 그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더라면,, 우리는 거대한 복수극을 꾸민 사람이 아니라 미술계의 또다른 거장을 만났을 수도 있었다.
21세기와 20세기를 왔다갔다하는 입체적 구성방식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유년시절에 알려진것이 없다는 한스 반 메레헨을 가브리엘 이벤스란 인물로 대신하여 내게 즐거움을 선새하였다. 그의 사실적인 삶에서 나는 즐거움은 물론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재미있는, 흥미로운, 지적인 요소가 담긴 픽션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는게 기뻤고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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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베르메르라는 이름은 이젠 한국에서도 낯설지않게 된 것 같다. 아마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귀고리 소녀>가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역시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를 읽게 되었으니까.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나'는 베르메르 한국 특별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에게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라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공개하고 싶다는 편지를 네덜란드의 브렌다로 부터 받게 되고 그러면서 가브리엘 이벤스의 생애를 좇게 되는 내용이다.
이 내용만 들으면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최대 강점은, 독자들이 이 책에 엄청난 몰입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자기 전에 잠깐 읽으려고 폈다가, 다음 날 아침까지 읽게 되는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를만큼 재미있는 소설이다.
한국작가가 썼다는 점은 이 책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한다. 최근에 외국소설을 읽었는데 번역투의 문장 (가끔 외국소설을 읽으면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문어체적인 단어를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갑자기 몰입도가 확 다운된다는...) 때문에 되게 책 읽기가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 책은 이국적인 소재를 한국적으로 요리해서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가가 다음번에 내 놓는 책은 과연 어떤 책을 쓸까 기대된다. 꼭 댄 브라운의 작품이 출판되길 기다리듯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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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고리소녀'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미술사가를 그린 또 하나의 소설이 나왔구나정도였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점이 있었으니, 저자가 외국 사람이 아닌 한국작가라는 점. 그래서일까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걱정도 들었었다. 한국인이 그리는 외국 화가의 모습이란 아무래도 국외저자가 쓴 것보다 그 감동이나 깊이에서 덜하지 않을까하는. 그러나 기우였다, 나의 왜곡되고 편협한. 책을 들자마자 마지막 페이지가 끝날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거침없이 읽히는 재미도 있었거니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도 탁월했다.
작품 속 화자는 한국에서 베르메르전을 준비하던 차, 베르메르의 미공개작을 공개하겠다는 편지를 받고 네덜란드로 긴 발걸음을 하고, 그 곳에서 뜻하지 않게 길고도 긴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아름다웠으나 슬픈 영혼의 이야기를, 속되게 전락했으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파한 가브리엘 이벤스란 한 인간의 이야기를.
너무나 올곧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던 가브리엘. 결국 세속적인 인간이 되어비려 돈과 명예에 심취한 가브리엘. 어디 그만 그랬겠는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가브리엘 안에서 또 다른 우리를 발견하고 다시 한바탕 슬퍼질 수 있었다. 슬프되, 강력한 메세지로 다가온 가브리엘의 초상은 뛰어나고 싶지만 하늘로부터 그 재주를 부여받지 못한 많은 범인들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변해가는 그는 슬프고 애틋하고 그러나 미웠다.
이야기의 구성 또한 독특하다. 액자식 소설기법에 시간을 왔다갔다하는 기법까지 더해져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읽기 복잡하진 않다. 저자는 친절히 소제목에 날짜를 달았고, 각 날짜에 해당하는 사건이 크게 묶여있어 문제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건 바로 첫장과 마지막장, 현실 한국인인 화자가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길지 않은 도입부와 마무리부는 나를 이야기에 홀딱 빠지게 했고, 이야기가 마친 후에도 나를 책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이 또한 작가 특유의 매혹의 갈고리일테니, 작가의 역량을 의심했던 나는 괜시리 미안해진다.
한가지 더. 위작이란 소재는 미술사가를 다룬 소설 중에서도 색다르기에 더 흥미롭게 읽혔는데, 단순한 모작을 넘어서 전작가의 매력에 새로움까지 더할 수 있는 위작화가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수는 없었던 그 아이러니한 슬픔은 나를 가브리엘에 더 빠져들게 했었다. 범법자란 소재를 이리 안타깝게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낸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그림만 보면 바로 아 베르메르 작품이네라고 나올 정도로 비슷한 풍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 베르메르. 책을 덮고나니 그의 그림을 모아서 한참동안 그 그림에 빠져있고싶어진다. 책에서처럼 국제적인 거대한 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를 20세기로 귀환시켰다는 가브리엘의 그림들을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이려나. 이 책에 고무받아 미술계에서 힘 좀 써서 조만간 베르메르전을 개최하길 바라며 짧았던 한바탕 소동 속에서 빠져나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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