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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독특한 방식 한창기, 이 사람이 그 사람인줄 몰랐다. 내가 청춘이던 1984년 '샘이깊은물'이라는 잡지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 잡지의 발행인으로 그를 늦게나마 새로이 만난다. 한창기(1936~1997)는 잡지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였으며,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창립자이자 경영인으로 우리 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다. 이 책 '특집! 한창기'는 그의 삶과 행적을 돌아본 추모글 모음집이다. 한창기를 기억하는 59명의 기억을 담았다. "한창기" 몇 세대 앞선 선진적 업적을 남긴 언론·출판인, 문화재 수집가, 재야 국어학자, 직판 세일즈맨 제 1세대를 조직하고 훈육한 사람으로 우리 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그를 관련 사진과 그림을 충분하게 실어 한권의 책에 담았다. 그가 떠난 지 11년째가 되는 2008년 1월에 발간된 책이다. 사진가 강운구, 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 윤구병과 김형윤, 전 <샘이깊은물> 편집장 설호정, 디자이너 이상철 등 뿌리깊은나무 사람들이 엮은 이 책에는 그 두 잡지사의 기자, 편집위원, 그리고 필자로 참여했던 많은 이들, 이 땅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창기와 통했던 이들, 또 이런저런 사연으로 그와 우정을 나누었던 59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한창기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자신이 겪은 바를 바탕으로 하기에 제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바가 있다. 한국어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애착을 보여줬다는 점과 전통 생활문화를 새롭게 되살리는 일에 열정을 바쳤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각 지방의 토박이 언어를 민중의 삶과 함께 책으로 남겼고, 판소리와 민요를 음반과 책으로 집대성했다. 설호정은 이렇게 당부한다. “한창기의 사진이 아니라 한창기의 그림을 본다고 생각하기 바란다. 그러나 어쩌면 이 그림은 사진보다 더 강력하게 한창기의 체취를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다. 아까운 사람이 제 사명을 다하기도 전에 목숨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 안타까움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을 모아 큰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노력이 있어 잊혀져가는 사람을 되살려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먼저 간 사람 곁으로 불러 모으는 일이다. 못 다한 일에 대한 새로운 시작이며 그로인해 더욱 빛날 사회적 가치가 될 것이다. 모두 먼저 가신 한창기의 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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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잘 만들어진, 아니 정성을 다해 만든 책을 보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책을 읽으려고 꺼내들 때마다 기분이 좋은 그런 책!!
내용도 아주 좋았다. 밖도 그렇지만 안에도 신경쓴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아! 한창기'
이렇게 멋지게 한 세상을 살아낸 사람도 있었구나...내 동시대인 가운데... 기쁨과 자괴감!!
아쉬운 것은 '한창기'를 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적지 않은 필자들 가운데 왜 '제2, 제3의 한창기'가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문화계라고 하든 언론계라고 하든, 아니면 그 모든 것이든) '한창기 이후'가 없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한창기가 이 책을 봤더라면 '칭찬'이 아니라...
"아직도 이런 식으로 잡지를 만들고 있단 말인가? 이건 한창기가 아니야, 한창기는 늘 시대의 맨 앞에 있거든"
이라고 하지 않을까?
*** 그래도 요즘 본 책중에는 가장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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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책을 말하다 – 특집! 한창기 강운구와 쉰여덟 사람 창작과비평사
패널1: 한미화 – 출판 평론가 패널2: 김갑수 – 문화 평론가 패널3: 홍윤기 – 동국대 교수
<KBS 소개글>
한국 잡지사를 새로이 썼다고 평가받는<뿌리깊은나무>와<샘이깊은물>. 두 잡지의 발행인 故한창기 선생에 대한 추모글 모음인<특집! 한창기>. 책은 한국에 현대적 세일즈 기법을 처음 도입한 이지만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새롭게 조명하여 독보적, 독창적 잡지를 만들어 낸 한창기의 삶을 담고 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본 쉰아홉 사람의 같지만 서로 다른 기억이 모여 그야말로 특별한 잡지<한창기>의 특집호가 만들어졌다.
“70, 80년대가 운동만으로 돌아가는 세상인 줄 알았죠. 그런데 한 쪽에서 한창기 같은 문화인은 조용하고 섬세한 결로 그 이상의 변화를 가져왔죠. 이 사람의 살결을 속속들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독특한 인물평전입니다.”-김갑수
“한창기. 유능한 세일즈맨인 동이에 탁월한 심미안의 소유자이기도 한 이 사람의 다면적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 잡지라는 형식을 빌린 것 같아요. 편집진들이 애틋한 수고가 엿보입니다.”-한미화
“남들이 안 하는 행동을 전부 역류해 거꾸로 간 바로 그것이 가장 앞서간 길이었죠.” –홍윤기
59명의 사람들이 말하는 59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그의 이야기
한창기, 그는 누구인가 - 1936-1997, 간암으로 사망 - 괴상한 지식인 - 1973년, 잡지 ”뿌리깊은나무”는 잡지계에 큰 변화가 되었다. - 미의식이 강함. 한국 문화의 심미적 천재라고도 불림 - 합리주의적 시각을 지녔고, 전통의 정당성을 부여 - 뛰어난 세일즈맨, 미국의 브리티니 백과사전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한국에 들여와서 기록적인 판매 - 당대에 일반인들이 가는 길을 역행하여 본인의 길을 만듦.
시대를 견인하는 매체들 사상계(1953년) -> 학원(1952-78년) -> 창비 & 문지
잡지, “뿌리깊은나무”를 두고 그는 어찌하였는가 “이렇게 하면 망한다!” 리스트 16 종류를 시도하여 성공. - 예) 가로 쓰기, 한글 쓰기, 잡지 제목 길게 하기, 필자들에게 다시 쓰라고 원고 보냄. etc - 한 사람의 철학으로 모든 관행을 바꾸었다.
‘한창기’에 대한 추가 설명… 대학 시절 전국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영어를 잘하고, 외국에서 들어온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있었다. 그 당시 한국에선 세일즈라 하면 월부책자 들고 다니며 친척들에게 강매하는 이미지였는데, 그는 당대 최고의 학벌로 불릴 수 있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뛰어난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길을 걸었다. (충분히 괴짜라 불릴만하다. 성공하기까지의 괴짜성 + 추진력을 존경) 한국적인 것들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있었다. (일제 시대의 여파이겠지. 한국 전통을 무시하는 마음. 그것을 뒤엎고 아름다운 전통이 숨쉬는 것들을 찍은 흑백 사진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가 색안경을 끼며 놓치는 그 미(美)를 찾아내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형식 – 잡지의 형식을 빌림. 지은이가 59명이나 된다. 한창기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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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부독재가 대한민국 모든 영역에서 음혹함이 극에 달했던 1976년 잡지 하나가 창간되었다. <뿌리깊은 나무>. 당시 <신동아>가 2만 부 정도 발행되던 시절에 6만에서 많게는 8만 부까지 발행했던 대한민국 잡지사에 길이 남을 잡지였다.
우리 잡지들이 국한문혼용과 세로 쓰기가 정석이던 시절에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전용'과 '가로쓰기'였다. 잡지사의 혁명이라 할까? 이 잡지를 펴낸이가 '한창기'였다.
잡지 형식에만 혁명성을 담은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나무>는 민중까지 담았다. 박정희 군복독재의 엄혹함 속에서도 민중과 민족을 담아 글로 표현했다. 민족과 민중을 문화로 담은 잡지를 신군부는 1980년 8월 폐간조치하였다.
한창기는 굴하지 않고 1984년 <샘이깊은 물>을 펴냈다. 일반 여성잡지와 차원을 달리하는 잡지였다. 군부독재정권이 민중과 민족 문화를 압살하여 <뿌리깊은 나무>를 폐간조치하였지만 한창기는 <샘이깊은 물>을 통하여 부활했다. 쉰아홉명이 모여 한 사람을 기리다
그가 간 지 11년째다. 그를 아는 이들 쉰아홉명이 모여 <특집, 한창기>를 냈다.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렇다.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 물> 두 잡지의 탄생에서부터 절명까지를 되짚어 본 유재천. "한국 잡지사는<뿌리깊은 나무>이전과 <뿌리깊은 나무> 이후로 구분된다"고까지 한 강준만 교수, 두 잡지 편집장을 지냈던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까지. 특히 이들이 시대별로 쓴 '나의 편집장 시절'은 <뿌리깊은 나무>의 족적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뿌리깊은 나무>기자 출신었던 전 문화부장관 배우 김명곤, 그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편집자'라 평한 <오마이뉴스 >정치부장 김당 등 그 두 잡지 기자 출신들, 박원순 변호사, "동무들이 리영희를 읽을 때 나도 리영희를 읽었지만 동무들이 <사상계>를 읽을 적에 나는 <뿌리깊은 나무>를 읽었다"는 칼럼니스트 김규항을 통하여 우리는 '한창기'를 만날 수 있다.
쉰아홉 사람이 글로 한사람을 기린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11년된 육신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정신이 남아 있기에 육신 장막이 아직도 세상에 머문 이들이 그를 기리기 위하여 글을 모았고, 그가 갔던 길을 반추했으리라.
"동양 사람 중에 이보다 더 영어 잘하는 사람 못 봤다"
서울 법대를 나와 법조인으로 탄탄대로가 열렸지만 그는 세일즈맨의 삶을 택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지사 창립자가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직판 세일즈맨 1세대였다. 어쩌면 탁월한 영어 실력이 그로 하여금 법조인이 아니라 세일즈맨, 나중에는 잡지를 통한 문화운동의 길에 들어서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영어 천재였다. 브리태니커 부사장이 한창기 영어를 듣고 “동양 사람 중에서 한창기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찬탄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영어 실력인가?
하지만 그는 '우리말'을 팽개치지 않았다. 영어를 잘한다고 우리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우리말을 사랑했다. 우리말을 사랑한 것뿐만 아니라 잘했다. 국어학자가 그에게 와서 울고 갔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하니 언어에 조예가 깊었다.
영어와 일본어로 죽어가는 우리말을 되살리려 그는 노력했다. 당시 이미 우리말은 영어투 일본어투로 본래 우리말 형식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를 민중말과 본디 우리말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노력했다.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 물> 잡지이름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영어에 목숨거는 이들, 한창기를 아는가?
박정희식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 그는 조용한 방법으로 저항했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방편이었고, 그는 그렇게 살았다. 영어 천재였지만 그는 우리말 살리기에 일생을 보냈다. '한창기'를 떠올리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 우리가 '영어몰입교육'에 목숨을 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만이 살 길이라고,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는 길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우리 교육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말을 잘하는 것이 다른 나라말도 잘하는 일임을 그들은 왜 모를까? 우리말은 왠지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존재까지 되어버린 우리 시대를 보면 '한창기'는 뭐라 할까?
그는 영어천재였지만 영어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말로도 삶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살았다. 우리말을 망각하고서는 결코 우리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없음을 또한 보여주었다.
영어몰입교육에 대한민국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한창기'를 아시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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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창기>는 쉰 아홉 사람들이 풀어놓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한창기가 했던 일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브리테니커>를 국내시장에 소개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판매율을 기록. 차기 브리테니커 대표감이라는 평가를 받음. 2. <뿌리깊은나무>라는 문화교양지를 만듬. 그 잡지는 외형적인 면(즉 편집디자인)이나 내용적인 면(기사의 종류와 질, 문장 등)에 있어 당시로서는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함. 물론, 판매성적도 월등했음. 3. 회사를 바탕으로 판소리 공연 및 음반제작, 전통문화를 복원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펼침.
능력있는 사업가라기보다 탁월한 문화기획자가 더욱 어울리는 한창기는 개인적으로도 자신만의 분명한 미적 취향을 갖춘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에 대한 쉰 아홉의 기억은 그 사실을 세세하게 들려준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는 개성 넘치고 누구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애정을 자신의 능력이 닿는 대로 실천한 사람이다. 판소리 공연이라든가, 음반제작, 전통문화사업부 등 탁월한 사업가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들을 그는 신념에 따라 하나씩 추진했다. 그 추진방식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매우 꼼꼼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잡지, 책, 문화상품 등은 그 하나하나가 시대를 뛰어넘는다. 그는 탁월한 세일즈맨이었지만 탁월한 경영인은 아니었다. 최고의 상품을 만들거나 판매할 수는 있었지만, 그 상품은 시장이 원하는 상품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 앞서간 것이다.
조각을 맞추듯 쉰아홉명의 기억을 통해 한 사람을 재구성하는 일 자체가 재미있다. 그가 이루어놓은 실제 성과가 있기에 공통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또한 그 개성적인 면모 덕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몇 가지 생각. 새삼 잡지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사람과 생활에 대한 괜찮은 잡지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한창기. 사람이 모두 자기 맘 같지 않다. 분명 그는 직원도 식구라고 생각했을테지만 직원은 직원이다. 결코 식구가 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그는 순진하다. 그러고 보면 쉰아홉 이외의 필자 하나를 늘려 노조를 추진했던 사람의 기억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상수, 조갑제 등의 <마당>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아는 분께서 마당에서 일하셨던 터라. 일에서 꼼꼼하고 치밀한 면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