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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과 노닐다.
성리학의 대가로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퇴계 이황선생의 일상의 즐거움을 한편의 시로 써 느낌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복사꽃 아래서, 대나무 숲에서, 달밤의 매화를 접하며 손님이 찾아오는 소소한 기쁨을, 초야에 묻혀 마음의 평안을 다스리는 퇴계의 숲으로 나는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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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자의 '친숙성의 함정' (p181,해설) 이란 표현이 퇴계 이황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의 정확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너무나도 친숙하고 익숙해서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살아가면서 꽤 있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 퇴계 이황은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지금 지갑에 넣고 다니는 지폐에서도 그랬듯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당연스럽게 가졌던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외에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교과서나 위인전 등을 통한 단편적인 몇가지 뿐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꼿꼿한 학자이면서 평생을 후학을 양성하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퇴계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에서 이 책은 다소 의외로 다가왔다.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학자에 대한 그의 풍모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좀 더 퇴계의 배움과 삶에 대한 자세에 있어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전반부에 퇴계의 시를 읽으면서 꼿꼿한 선비의 의미지에서 인간적인 내면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새로웠고, 막연하게나마 학자에 대한 꼿꼿한 이미지가 뒤편 '참된 나에게로 이르는 길' 을 읽으면서는 좀 더 학자로서 퇴계가 가진 고민과 자세를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퇴계는 평생을 자신의 삶을 갈고 닦는 데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제자들에 대한 퇴계의 애정 또한 깊음을 읽을 수 있었다. 배움에 있어 자칫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치우침에 대해 늘 경계를 해야 한다는 퇴계의 가르침과 배움에 임해야 하는 자세를 읽었을 때는 새삼 내 태도에 반성이 되고, 배움엔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그 무엇임도 알았다.
어줍짢게 독서를 한다고 하는 내게 이 책은 그야말로 부끄러움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좀 더 폭넓고 편협되지 않는 독서와 올바른 자세가 필요함도 일깨우는 데 충분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지적 오류를 범하고, 알고 있다는고 생각하는 것들에 침소봉대 했는지를 깨닫고, 배움에 있어 공평한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함도 함께 알았다.
장회 여울
힘을 써야 겨우 조금 앞으로 가고 손 놓으면 대번에 떠내려가지. 자네 만약 뜻이 있거든 잘 봐 두게 여울물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p88)
*장회는 단양군 장외리 아랫마을 북쪽에 있는 여울 이름 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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