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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근자에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했던 책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었다. 필자는 그 책을 통하여 이덕무의 책에 관한 사랑에 큰 감흥을 받았었고 그간 국사 교과서 속 '청장관전서' 이덕무 여덟글자로만암기했던 그 분은 시대를 뛰어넘어 내 마음속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런 청장관의 시와 문장을 만난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나를 설레이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P. 95)
(P. 101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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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덕무가 쓴 시와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문들은 여행기, 비평 등을 포함한다. 이덕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고 연암 박지원과 친했다고 한다. 이덕무는 서얼출신으로 뜻은 컸으나 펼칠 수 있는 길이 제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덕무가 조선 후기의 어떤 사람인지는 별 관심이 없다. 서얼출신의 어떤 선비정도로만 알아도 이 책을 읽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한문으로 된 글을 어떻게 한글로 옮겼을까? 혹시 한문이 난무하는 난해한 글들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책의 처음에 있는 간행사에서 돌베개 분들은 나같은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편히 읽을 수 있도록 고전을 쉬운 말로 해석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문을 잘 몰라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첫 주제를 시작한다. 이덕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은 옛 선비의 모습이라고 한다. 자신은 재주는 없으나 뜻을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서얼출신이어서 재주가 있어도 신분 상승이나 관직에 나가는 것이 제한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런 제한때문에 그는 책만 보는 바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책만 보는 바보였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다른 이들이 그를 책만 보는 바보라도 놀려도 그는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평생 가난했고 병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그것을 싫어하지 않은 것 같다. 옛 책에서 글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과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과 어울리는 것 또한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시와 글을 읽고 있으면 따뜻함과 편안함 그리고 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이러하구나 생각하면서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책읽는 즐거움이다. 그는 자신을 게으르다고 했지만 그는 나무와 동물 그리고 구름과 바람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시와 글들이 아주 편안하다. 자장가로 들려줘도 될만큼.
특히, 그는 인정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린 누이가 병으로 먼저 저 세상을 갈 때 지은 글을 보면 정말 애틋하고 슬픔의 감정이 솟아오른다. 그의 글에는 어떤 의도적인 꾸밈이 없고 솔직담백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고 청아한 새벽공기처럼. 하지만 가을 들판을 묘사하거나 아이들을 묘사한 글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알 수 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친한 형에게 선물했지만 나 역시 간직하고 싶어서 하나 더 샀다. 나중에 두고두고 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근심이 있더라도 편안해지고 마음의 파도가 거세더라도 잠잠해질 것 같다. 그도 슬플 때는 책으로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난은 그리 큰 슬픔이 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맹자'를 팔았다며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라는 대목에서 정말 서글펐다. 그가 목숨같이 귀하게 여기던 책까지 팔 정도로 배고픔이 심했던 것이다.
그는 잘난 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난 체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단점을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글로 표현했다. 그는 욕심이 없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이란 글을 읽고 아주 진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이 책에서 하나만 뽑으라면 이 글을 뽑을 것이다. 이 글에서 그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나타나 있다.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덕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글들중에 일부만 이 책에 담았다고 하니 다른 글들도 책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이 책을 두고두고 시간날 때마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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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란 분은 학창시절에는 크게 기억이 남지 않았던 인물이었는데 최근에 출간된 고전 역서들을 통해 간간히 짧은 글을 접했던 저자였다. 돌베개에서 나온 이덕무선집은 우선 그 청아한 제목과 멋드러진 한국화 채색그림이 어우러져 고풍스런 동시에 현대적 감각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었다. 책 서두에 고전선집의 시리즈기획에 대한 자세한 의도와 계획이 설명되었듯이 이 돌베개의 한국 고전저자들을 탐구하는 선집시리즈는 고전에 문외한인 현대 독자들에게는 쉽게 읽힐 수 있는 좋은 기획이 아닐 수 없다.
편역자 강국주씨의 노고도 엿보이고 책 말미에는 연보와 찾아보기까지 첨부되어서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해주었다. 책 끝장을넘기고 난 뒤 그의 연보를 자세히 훑고 찾아보기에서 가장 횟수가 많이 언급된 단어를 찾아 보았다. 이덕무란 그의 이름도 있었지만, 가난, 벗, 책, 진실, 병, 선비, 남산, 기러기, 구름, 국화등이 나왔다. 이 단어들이 바로 이덕무라는 한 사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들이 아닌가.
영정조때 서얼출신으로 늦게서야 관직의 길로 들어서 규장각 검서관을 한 이덕무는 가난한 선비였지만 책사랑하나는 그 누구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이백 사오십년전에 살았던 그인데도 그의 생각과 청렴한(아니 오활한) 삶의 방식이 이다지도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책에는 그의 시와 산문이 수록되었는데 자연과 벗과 자신의 욕심없는 삶을 노래한 시들도 멋지고, 솔직담박한 문체의 지조가 보이는 내용의 산문들도 감동을 자아낸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형식의 시들은 변역문 아래에 한문 원문이 함께 실려서 실제 시감을 맛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자의 음들도 같이 붙여놓았다면 더욱 알차지 않았을까 한다. 다소 상용한자의 수준을 벗어나는지라 절구로 음을 소리내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꾹 눌러 참고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던 것이다. 시중에서 개인적으로 호감이 갔던 시들은 호남에 놀러가는 벗에게와 가을 누각에서였다. "...단풍나무숲을 헤쳐 필마로 떠나가네, 가을 빛 모으니 한짐이거늘...." 단풍나무숲을 헤치고 간다는 말은 어디선가 익숙하고 그 이미지는 너무나 강렬했다. 가을빛을 모아 한짐이란 표현도 정말 신선하다. 가을누각에서는 "저녁되자 이웃집기와 점점 어두워지네......오죽으로 만든 퉁소 뚫어진구멍을 가을 소리울려 보고자 짚어 보누나" 부분이 멋진 표현이었다.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란 시의 봄부분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꽃에 물주고 와 홀로 턱을 괴고선 앉아서도 당시보고 누워서도 당시보네" 두보사랑 이덕무의 깜찍한 한 모습이 아닌가.
산문 중에는 오늘에 되새겨야 할 주옥같은 글들이 실려 있다. 짧은 교훈적 글도 공감가득이지만 산문중에서는특히 비루하지도 오만하지도 않게와 누이를 여의고 쓴 제문형식의 글이 가슴을 치는 글들이었다. 박제가에게 보낸 한편의 편지인 '비루하지도...'는 중용의도리가 무엇인지잘 가르쳐주고 있다. 눈물의 홍수에 잠기게 만든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은 그의 삶의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글이었다. 그의 세세한 자상함, 부모애, 형제애가 실로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그도 닭띠였다. 4남매가 저마다 한가지씩 어머니를 닮아 서로를 쳐다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 있는 듯해서 슬픔을 달랠 수 있었다는 말, 지금 어느 누구를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들을 수 있을까. 형제가 몇이냐고 물어보면 이제넷이라고 답할 수 없음이 서럽기만 하다. 서정적이고 살가운 오라버니의 이 제문을 읽고 있으면 이 사람이 도저히 2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믿기 어렵다.
이렇게 잘 짜여진 글들은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서 청소년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하면 좋을 것같다. 내 대학시절에 있었던 그 돌베개라면 이책 역시 흔하디 흔한 책 한권은 아닐지 싶다. 자꾸 표지의 그림을 확대해서 집에 걸어두고잡은 마음이 굴뚝이다. 아니 비슷하게 그려볼까, 귤향기가 흠씬 나왔다. 책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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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매미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생각해 보다가 문득 이슬 속에는 생각지도 않은 영양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양의 자외선을 받고 식물의 잎에 앉은 이슬은 우주의 정기를 품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매미가 먹는 것은 식물이나 우주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담고 있는 것임을 식물의 연구라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책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그래서 이덕무가 책 읽는 바보가 된 것이고, 나도 책을 읽고 소설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오활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찾아 보았다. 迂闊 굽을 오, 넓을 활. 사리에 어둡고 세상에 물정을 모르는 내가 아닌가. 동지를 만난 듯 기쁘면서도 마음이 아픔을 어찌할 수 없다. 좋은 뜻으로 쓰이기는 했지만, 아프게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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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 한 평생 <먹을 게 없어 책을 팔았구려> 이덕무(1741~1793) 『내 집에 있는 좋은 물건이라고 해 봐야 ‘맹자’라는 책 하나가 고작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백 푼에 팔고 말았소이다. 그 돈으로 배부르게 밥을 지어 먹고는 희희낙락하며 영재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자랑했더랬지요. 영재 역시 오래도록 굶주림에 시달린 터라, 내 말을 듣고는 그 즉시 ‘춘추좌씨전’을 팔아 버리고선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 와 내게 대접하더이다. 그러니 맹자가 친히 밥을 지어 내게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날 영재와 나는 “우리가 이 책을 팔지 않고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나 ”라고 하면서, 맹씨와 좌씨를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술책일 뿐이요,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 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 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족하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요? 』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우리고전 100선) 156쪽 가장 큰 즐거움 <한사의 겨울나기> 『몇 해 전 겨울, 띠풀로 엮은 조그마한 집이 너무 추운 나머지 입김이 서려 성에가 되어 이불깃에서는 와삭와삭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내 비록 게으른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고서는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아 보려 하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필시 진사도처럼 얼어 죽는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어젯밤에는 집 뒤편으로 다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논어’한권을 뽑아 바람막이로 삼고선 변통하는 수단이 남달랐다고 나 혼자 뇌까려 보았다. 옛사람 중에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든 이가 있었다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며, 금과 은으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짐승을 조각해 병풍을 만든 이도 있었다지만 이 또한 너무 사치스러워 본받을 건 못 된다. 이 모두 내가 ‘한서’로 이불을 만들고 ‘논어’로 바람막이 병풍을 삼은 것만 못한 것이리라. 나의 일이 어찌 한나라 왕장이 소가죽을 덮은 곳과 두보가 말 안장을 덮은 것보다 못하다 하겠느냐? 을유년(1765) 겨울 11월 28일에 기록한다. 』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우리고전 100선) 170쪽 [돌베개/이덕무 지음/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서얼출신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 아정(雅亭), 청장관(靑莊館), 영처(嬰處), 동방일사(東方一士)이며 정종의 15남인 무림군의 후손으로 강계부사 이필익의 서자인 통덕랑 이성호의 자이다. 관직으로는 규장각검서관, 사근도찰방, 적성현감을 역임하였다. 아정은 지독한 간서치로 오로지 책만 읽는 선비라 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고 아낀 그는 책을 통하여 가난과 서얼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서얼출신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연암의 북학파 일원이 되고 그들과 함께 시문을 짓고 논하고 동거 동락하게 된다. 규장각의 개설요원으로 부름을 받아 공직에 임하여 본격적인 지적 탐구의 생활로 빠져 들어간다. 아정은 배고픈 생활에 이력이 나 굶주림보다는 책을 팔아 배부름이 낳을 것이라고 자조 섞인 투로 영재 유득공에게 이야기하고, 영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아 역시 책을 팔아 막걸리를 대접한다. 책을 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지식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서얼출신이지만 선비의 자세를 꿋꿋하게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빈한한 초가에서 살고 있는 아정은 한 겨울을 지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배고픔뿐 만 아니라 유난히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다. 지금처럼 난방이 잘되어 있지 않은 그 시절의 겨울은 더욱 극성스러운 것이다. 동장군 속의 세찬 바람을 막아보려는 그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책인 ‘한서’와 ‘논어’로 이불과 병풍 삼아 기나긴 겨울을 지내려 하니 더욱 가슴이 저리다. 벗과 함께 불암산 서편에 놀이 지는데 술잔 속에 푸른 산이 거꾸로 떴네. 오늘밤 벗들이 드문 모임 가졌으니 날 새기 전 돌아갈 일 섭섭도 해라. 노랫소리 퉁소 소리 한데 섞여 운치 있고 못 속에 잠긴 달빛 밝디밝은 광채로다. 이웃집 부엌에서 산야채를 빌려다가 나물과 밤을 담아 사립문에 들여놓네. 자신의 자호인 ‘선귤당’처럼 깨끗한 매미나 향기로운 귤처럼 고고한 선비의 자세와 항상 초심의 자세를 갖고자 하는 흩트려지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생각한 처녀처럼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다듬어 깨끗한 글들을 모아 ‘청장관전서’란 책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리고 자기와 마음이 맞는 북학파 동인들과 함께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한 ‘벗과 함께’란 시처럼 느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니겠는가? 비록 가난한 선비지만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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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선집 형식의 옛 시와 문장을 모은 편집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여러종이지만 늘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으니 박지원이나 정약용 같은 누구나 아는 이름외에도 잘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시나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으니 이덕무도 그런 사람중의 한분으로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어느덧 신선한 충격으로 인식되었던 글이었던지라 이덕무의 선집을 받아보니 글만큼이나 표지도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이덕무의 글을 온전히 보려면 그의 문집인 국역 청장관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니 소장해 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읽는 것에도 게으른 사람에겐 좋은 글만을 선별해 놓은 이런 책도 좋다. 시집처럼 얇지만 한손에 잡히는 그의 글솜씨가 교묘히 드러난 시와 문장을 뽑아 놓은 이 선집은 어디서나 뽑아 들 수 있어서 좋다. 그의 글에서 드러난 감수성은 친근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데 18세기 영정조시대 문화적 부흥기의 다양하고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유독 고루한 선비적 이상에 매몰되지 않고 솔직한 자기고백적인 태도와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체 때문에 보다 인간적인 감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이는 그의 출생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 서얼출신으로 재능을 펼칠수도 꿈꿀수도 없었던 환경에서 오는 그러한 슬픔을 속으로 감춘채 높은 뜻을 드러내지 않고 가난이 주는 현실에 힘들어 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벗과 책에 의지해 세상을 초월하고자 했던 거침없는 의지가 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았는데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정취는 전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던 중국의 시인 도연명을 연상케 한다. 깊이 감추어둔 높은 의지와 은둔의 삶, 가난에 대한 현실인식과 긍정적 태도, 그리고 일상과 자연에 대한 예리하고 명민한 관찰력,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과 고백, 벗과 책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한없이 표출된다. 그는 자신의 글을 천진난만해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는 어린아이와 부끄러움을 타 숨어버리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간직한 처녀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데 사대부들의 허위적인 기상과는 멀리 떨어진 겸손하며 고백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을 표현한 문장을 보면
포부는 몹시 어리석다네 - <나를 조롱하다 >중
그래도 자랑할 건 형형한 두 눈빛 책 읽을 땐 환히 빛이 나누나 - <앓은 뒤의 내 모습>중
내 마음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 같으니 나머지 번다한 일 나는 이미 잊었노라 - <술에취해 1>중
기상이 높으니 연잎으로 옷을 짓고 뱃속이 깨끗하니 국화꽃도 먹음직해 - <여름날 병중에>중
벌레인가 기와인가 나란 존재는 기술이나 재주라곤 도무지 없네 - <벌레인가 기와인가 나는> 중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있지만 한편 마음에 숨겨둔 뜻 만큼은 결코 세상에 더렵혀질 수 없는 높은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가난과 병약함이란 현실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듯 아예 그의 일상이자 모든 글에 구구절절이 스며들어 있는 듯 하다. 또한 그의 글에는 '벗'과 '책'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듯 하다. 책만 읽는 바보이길 자처했고 영혼이 담긴 우정의 교유를 소중히 했던 그의 태도는 박제가와의 교류가 담긴 글등에서 듬뿍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그리움은 책이 담고 있는 먼 옛날을 향하고 고적한 정신세계가 닿아있는 높은 우정에 닿아있는지 모르겠다.
저물녘 빈집에서 우연히 만났더니 외로운 등불만이 마음 서로 비춰 주네 - <이웃 사람에게> 중에서
그에게 이웃사람은 그냥 이웃사람이 아니라 옛사람이고 영혼이 통하는 그런 지우가 아닐까? 아득함, 멀어져 가는 것들,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한동안 멍해지는 것 같다. 불현듯 전원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보잘 것 없는 현실에 치여 정신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이 불쌍하게도 여겨진다. 그의 글에 오래 머물순 없지만 한때나마 잠시 이런 고적함에 빠져 회상에 빠져드는 것도 봄날에 한 추억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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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 看書痴)’로 더 알려진 이덕무의 시와 산문을 만나다. 그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그의 글이 읽고 싶었다. 평생 책을 사랑하며 살았던 진정한 독서인이기에 글의 깊이가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역시 그의 글은 책 제목처럼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담백하고 여운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재능과 포부는 컸으나 서얼 출신이었기에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는 책을 읽는 과정으로 승화시겼다. #1. 세월을 뛰어넘는 공감. 글이 담백하고 산뜻한 느낌이다. 이 글이 정말 조선 시대에 쓰여진 것인가 싶을 정도로 편안한 공감을 끌어낸다. 물론 편역하신 분의 노고가 있겠지만 글이 지닌 진솔한 표현력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번잡한 마음을 추스르는 일은 시를 쓰는 마음과 같은 것 같다.
경갑에 쓰다 물결 없는 가을 강처럼 맑기도 하지. 경갑(鏡匣)안엔 별천지가 감춰져 있네. 허허롭고 깨끗함 완상하고 말 뿐이랴. 내 마음도 이를 닮아 흐려지지 않았으면. 가난한 서얼 출신의 선비에게 세상은 모질고 차가운 바람 같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 맑은 강물 같은 거울을 보며 다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이 닮고 싶어졌다. 문득 시인이 된 듯 거울을 들여다 보니 그 안에 내가 있다. 웃으면 웃는 얼굴로,찡그리면 찡그린 얼굴로 마주하고 있다. 거울이 비춘 것은 나인데 그 안에 세상이 보이는 듯 하다. 나는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원망해본들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답답한 현실이라고 하여 절망했다면 그는 한낱 취객이 되어 역사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삶을 노래할 줄 알았다. 힘들고 슬프고 괴로워도 그에게는 책이 있고 시가 있었다. 자신을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표현했지만 책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일만큼 지혜로운 일이 또 있을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삶이 어떠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삶이든 마음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자연과 벗, 그리고 책과 더불어 시를 읊는 선비의 모습 속에 삶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세상을 시인의 마음으로, 책을 읽는 선비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국화 향 바위에 기대어 핀 국화 드리운 가지 시내에 노랗게 비치네. 한 움큼 물 떠서 마시니 손에도 국화 향 입에도 국화 향 국화를 그저 흔한 꽃으로 지나쳤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위 옆에 핀 국화가 비친 시냇물을 마시면서 향기도 함께 마실 줄 아는 이는 이미 그 마음까지 향기로울 것이다. # 2. 책이 주는 즐거움을 배우다. 세상은 더 살기 편해졌는데 우리의 삶은 왜이리 바쁘기만 한 걸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도 여러 가지겠지만 대부분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책이 주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덕무가 말하는 책을 읽어 좋은 점 네 가지는 무엇일까 여기서는 지식이나 재주를 키우기 위한 목적은 제외된다. 그에게 책을 읽어 좋은 점은 배고픔도 추위도, 근심과 번뇌도 책을 읽는 동안은 사라진다는 점이다. 하물며 기침앓이를 할 때도 책을 읽으면 기침이 멎는다고 했다. 그에게 책 읽는 일은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지는 일인 것이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르자면 대단한 독서인이어야 가능할 것이다. 독서 초보자인 내게 책이 주는 즐거움은 여유로운 마음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의 시간을 갖다 보면 조금은 느긋한 기분이 든다. 이덕무 선집을 읽으면서 여유로움을 느끼고 세상 사는 법을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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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뛰어난 문인이며 지식인이었던 이덕무 백성을 위한 정치와 수많은 업적을 남긴 정조시대를 대표하기도 하는 그는 스스로 자신을 책만보는 바보라고 칭하며 한편생을 책과 함께 했던 실학자였습니다.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백동수등 소위 백탑파로 불리며 서얼출신의 서러움을 함께 나누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그는 책에 관해서는 유독 독보적인 존재였던듯 싶습니다. 이러했던 그의 주옥같은 시와 산문들을 우리고전 100선에서 만나는것은 아주 당연하게 다가왔습니다.
지난주 찾아갔던 탑골공원에서 원각사지 10층석탑을 바라보며 아 이것이 바로 이덕무의 글속에서 만났었던 바로 그 백탑이구나 싶어지는게 괜히 의미깊게 다가오기도 하고 요즘 유일하게 찾아서 보게되는 드라마 이산에서 이덕무의 등장은 극의 새로운 재밌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답니다.
서얼 출신으론 입신의 기회가 없었던 조선시대 그의 글속에는 신분의 벽앞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한 길을 찾고 있었으며 평생의 동지였던 가난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즐기고도 있었습니다.또한 여린 감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연의 모습.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이웃들과 함께 교감을 나누는 살갑고도 따뜻한 이야기도 함께 만날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조우하며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던 가난과 벗들 그 중심에 놓여있었던것은 당연히 책이었습니다. 때론 지식을 찾을수도 있고 때론 자신의 마음을 달래주고도 있으며, 배고플때는 식량도 되었다, 풍류를 즐기고 싶으면 술도 되어주던 존재, 한파로 고생하는 추운겨울이면 이불도 되고 가리개도 되어줍니다. 정조의 개혁정치에 힙입어 40세의 나이에 늦은 정계 진출을 할때까지 그는 책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규장각의 초대 검서관으로 일하기시작한 관직생활속에서도 그의 책사랑은 여전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약은 벗들에게 구걸을 하고 죽은 아내가 끊여 주누나. 이러고도 책 읽기만 좋아하나니 습관을 버리기 쉽지 않아라 [여름날 병중에] 중에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 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 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가장 큰 즐거움 ] 중에
그의 시 속에서는 맑고 순수한 영혼을 만나게되고 산문에서는 생활과 우정과 주변의 이야기를 접하며 병약한 몸과 찌든 가난속에서도 그만의 삶속에 깃들여 있던 위트와 즐거움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이덕무 그가 들려주고있던 진솔한 이야기가 향기로운 귤처럼 나의 온 마음에 퍼져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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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라는 글자에 절로 눈이 따라간다. 이덕무의 선집이라니! 눈동자가 금새 커진다. 조선후기의 서얼 출신 실학자이자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릴 정도의 독서광으로 유명한 청정관 이덕무의 시와 산문을 일부 선별해 번역한 선집이 나왔다. 돌베게의 '우리고전 100선의 9번째인 <이덕무 선집 -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이 바로 그것. 그리하여 이덕무의 글처럼 깔끔하고 단아한 책이 내 손에 살며시 놓였다.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를 처음 알게 된 건 보림출판사에서 나온 안소영 님의 <책만 보는 바보>를 통해서였다. 인터넷을 떠돌다 추천글을 봤는데 며칠후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책을 만났다. 운명같은 만남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빌려읽은 책속에서 펼쳐지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이야기에 홀딱 반해 바로 책을 샀고,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책목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소중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책을 읽게 된 이유가 된 책이기도 하다. 내 마음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 같으니 뛰어난 학자임에도 서얼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입신의 길이 막혔던 젊은 날, 그리고 뒤늦게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이덕무는 늘 가난과 함께 했다. 책꽂이에서 꺼낸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덮거나 『논어』를 바람막이 삼음으로써 겨울의 혹한 추위를 견뎌내기도 했다. (170~1쪽, 한사(寒士)로 겨울나기) 그런 빈궁함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가난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가난을 통해 얻는 깨달음을 사랑했고, 가난하기에 자연과 더욱 가까워짐을 즐겼고, 가난함으로 인해 서로에 대해 더욱 돈독해지는 사람들간의 정을 노래했다. 그에게 이어 가난은 구차하고 비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불편한 것이었다. 깨끗하고 향기로운 그의 글속에서 죽는 날까지 청빈했던 이덕무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이덕무하면 일명 연암파, 또는 백탑파로 불리는 벗(실학자)들과의 우정 또한 유명한데 이책에서도 그런 우정의 면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연암 선생이나 박제가, 백동수, 이서구 등 그가 사랑했던 여러 벗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득공과의 일화가 가장 인상깊었다. 오랜 굶주림에 견디지 못해 결국 『맹자』를 팔아 끼니를 이었다는 이덕무의 말에 즉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춘추좌씨전』을 팔아 술을 대접했다는 유득공.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고 책욕심이 강했던 이덕무가 배고픔 때문에 책까지 팔아야 했을 때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친구의 그런 마음을 헤아린 유득공은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책을 팔아 그를 위로했고, 그런 그들의 우정은 내 마음을 짠하게 했다. (156-7쪽, 먹을 게 없어 책을 팔았구려) 더불어 아홉 살의 나이를 뛰어넘어 깊은 교류를 이어갔던 박제가에 대한 글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여종은 양식 없다 종알대건만 고요한 방에 앉아 글 읽는 일 쉬지 않누나. 온몸에 술을 저장할 수 있어도 어찌 차마 잠시라도 책을 안 볼 수 있나. (32쪽, 『가난과 독서』 中)
방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 방향을 바꾸며 하루종일 책읽기에 몰두할 정도로 잠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는 이덕무는 그가 섭렵한 수많은 책들 못지 않은 꽤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청정관전서>라는 책으로 묶여 지금 전해지고 있는데, 이책은 그 가운데 그의 삶과 문학을 잘 드러내는 시와 산문을 선별해서 엮은 것이라 한다. 이책에는 그의 전 작품 중 201 편 - 89 편의 시(詩)와 122 편의 산문(文)이 실려있다. 돌베게의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를 <이덕무 선집>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이제서야 만난 게 억울할 정도로 너무나 흡족한 책이었다. 고전, 특히 난해한 한자들로 이루어진 옛문학들은 딱딱하고 고루할 거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고전문학을 다룬 기존의 많은 책들이 그러하고, 유난히 한자에 약한(물론 영어에도 약하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이제껏 고전을 멀리해왔다. 그러나 우리고전이 부담없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번역되어 나온다면 지금보다 많은 이들이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문장을 접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바람으로 기획된 것이 바로 돌베게의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다. 이 총서는 기존의 고전책들이 가진 다소 권위적이고 고지식한 이미지를 탈피하여 일반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고전이 품은 원래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놓치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옮기려 애쓰고 있다. 실제로 <이덕무 선집>만 하더라도 고운 우리말로 정성스레 번역되어 있어 읽고 이해하는데, 또한 글을 감상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담박한 이덕무의 글을 단아하게 옮겨놓은 번역자의 정성이 책의 곳곳에 느껴진다. 또 작품 아래에는 간략한 해설을 달아놓아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도 주고 있다. 책의 편집과 디자인 또한 칭찬하고 싶다. 여백의 미가 물씬 풍기는 표지는 선집의 느낌을 잘 살렸고,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편집은 독자의 눈을 편안하게 한다. 차분하고 단아한 전체적 이미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책의 뒤에는 작품에 대한 전체적 해설은 물론 이덕무 연보, 작품의 원제, 찾아보기를 실어놓는 등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놓았다. 책을 읽는 동안 이책에 담긴 정성들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아 참 흐뭇했다. 만약 춥거나 덥지도 않고 배고프거나 배부르지도 않으며, 마음은 더없이 화평하고 몸은 더없이 편안한데다, 등불은 환하고 서책은 가지런하며 책상은 깨끗이 닦여 있다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하물며 고원한 뜻과 빼어난 재주를 겸비한 건장한 젊은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의 동지(同志)들이여, 분발하고 분발할 지어다! (179쪽, 『책을 읽어 좋은 점 네가지』 中)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이란 제목에 걸맞게 이책에 실린 이덕무의 글들은 그의 삶처럼 깨끗하고 단아하다. 세상의 부귀영화에 귀 기울이거나 한 눈 팔지 않고 올곧게 청빈한 선비의 지조를 지키며 살았던 이덕무. 자연을 향한 사랑, 벗들과의 우정, 가난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담아낸 담박한 그의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니 내 마음까지 함께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참 행복했다. 또한 이책으로 인해 우리고전을 정성스레 소개하는 멋진 총서를 알게 되어 즐거움이 배가 됐다. 이제껏 나온 총서의 목록을 쭈욱~ 보니 홍대용, 정약용, 김시습 등 읽어보고 싶은 선집들이 한가득이다. 조만간 또다른 만남을 기약해 본다. 더불어 이런 멋진 책들을 통해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우리고전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늠름한 외양의 한 장부(丈夫)가 나의 귀에다 대고 이르기를,
"세상을 한탄하는 마음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성내는 버릇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 중략 ...) 이윽고 그가, "서책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뚫어지게 그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도대체 글을 즐겨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좋아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 작정이십니까?" 이말에 그 장부는 껄껄 웃으며 내 등을 어루만지며, "너를 한 번 시험해 본 것일 뿐이다." 라고 하였다. (173-4쪽, 책만은 버릴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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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42쪽)
출판사 돌베개를 신뢰한다. 다산시선집을 읽고 입안 가득 꽃향기가 번지는 듯, 기분 좋았다. 이덕무 시선집은 그래서 읽기를 고대했다. 참으로 좋은 만남이다. 다산 시선집은 그 나름으로 향기가 있다면 이덕무 시선집 역시 그 나름으로 향기가 있다.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책 읽기를 즐기는 분, 바로앉아 차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원하는 분들께 이덕무 시선집을 권하고 싶다. 책 선물로 마땅한 책이 한 권 더 생겼다는 느낌, 나는 좋은 책 선물하는 것이 참 기분이 좋다. 좋은 책으로 이덕무 시선집을 추천, 선물로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1. 내 살에 닿는 글 이덕무 선집은 시편 이외에도 산문이 들어 있다. <청장관장서>에 선생의 글이 모두 수록, 그 가운데 읽는데 무리 없는 글편들을 따로 엮어 낸 책이 <이덕무 선집>이다. 적은 분량이다. 그렇지만 울림은 웅혼하다. 어느 책이든 '나'를 중심으로 읽게 마련이다. 그 많은 글편에서 유독 "어제와 오늘과 내일, 바로 이 3일!"이 나를 끄잡아당기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심이 유심이 되어버린 일상, 그 속에서 나는 시간개념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 어제인듯, 오늘인듯, 내일도 어제일 듯 기대도 없이 무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선생은 시간을 어떻게 여겨 단속을 해 왔을까. 그 글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 바로 이 3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습자지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스민다. 순식간이다. 이 글 역시 그렇게 순식간에 내 혀끝을 점령했다. <이덕무 선집>을 읽을 때 다른 책과 달리, 그러나 <다산 선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리내어 읽었다. 그래서 혀끝에 짜릿한 맛을 느끼지 않았을까. 탄산음료가 쏘아대는 그 자극과는 다르다. 물맛이라고 할까. 오염되지 않은 물맛이다. 상쾌하다.
하루이틀사흘나흘 할 때 그 '날'과 칼날의 '날'에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글 문맥과는 상관없이 '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문득 하게 되는 생각이다. 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그러한 공통점 때문일까. 내 살을 지난 날은 칼날이었을까, 일수를 말하는 며칠이었을까. 생각해볼일이다.
2. 이덕무 선생 시와 문(산문)으로 양분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뒤편에서는 이덕무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말하고 연보, 작품의 본디 제목 등, 그리고 색인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친절한 구성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덕무 선생은 잠시 접어두고, 다만 글로써 느껴지는 선생의 느낌은 결 고운 모시적삼이랄까. 곱지만 곱기 위해서는 많은 손을 필요로하는, 마치 그렇게 단련된 존재인 듯하다. 정련이라는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글 짧은 것을 탓해야지, 그리고 탓하며 앞으로 글 다듬기에 정성을 쏟아야겠다. 이덕무 선생을 내가 직접 선생의 글편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한 마디로 말하지 못하는 것에는 문제가 크다.
서얼 출신인 선생은 벼슬길이 막혀 있고, 그렇다고 몸이 좋아 막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잦은 병치레가 선생의 일평생을 벗으로 함께한 듯하다. 서얼의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느끼지는 못한다. 나는 그들의 계급에 대해서 들어 알고만 있을 뿐 공감하지 못 한다. 다만 막막하지 않았을까 지독한 가난과 아무리 영민해도 기개를 떨칠 수 없는 당대 현실 속에서 가망없는 내일을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곧 형벌이 아니었을까. 그것만 아슴푸레 짐작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선비'로서의 삶을 이덕무 선생은 지향하고 있다. 한치 흐트러짐 없이, 벗들과의 교우 역시 귀중히 여기며 학문에 깊이를 더하는 날로 삶을 채우고 있다. 존경스럽다. 막막한 현실, 가망 없는 내일에도 그러한 성실을 보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선생은 말한다. "책만 보는 바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책에서 배우고 익히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며 생각을 넓히는 선생의 모습에서 하나의 모범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책을 대하는 자세. 나는 책을 소모품이라 생각하지만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을 확인케 해주시는 선생의 글들.
3. 격리된 삶
<이덕무 선집>에서 보기 드문 구절이다. 선생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슬픈이 지극하여 울음이 터지게 되면 그 참된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 (참된 정과 거짓된 정/ 199쪽) 조용히 관찰해 보면 그 속에 지극한 이치가 있음을 (저마다 신묘한 이치가/ 200쪽) 교활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공경하기 때문 (교활한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 201쪽)
내가 사랑해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모든 것이 나의 좋은 친구인 것이다. (나의 친구/ 164쪽) 내 이처럼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친구 삼아/ 161쪽)
이덕무 선생의 글편에서 문득 자주 보이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 관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차분해진다. 원망이 사라지는 형상을 엿보게 된다. 다산 선생의 글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덕무 선생의 글은 그래서 다산 선생의 글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선집이 더 낫다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빛깔을 이렇게 영묘하게 간직한 글편들, 그것이 우리 선조의 멋이 아닐까. 다산 시선집을 다시 한 번 살펴 읽어야겠다.
일생 동안 마음에 꼭 맞도록 처신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복사나무 아래에서 한 생각/ 129쪽)
이 문장 다음은 내가 새로 써넣어야 할 것이다. 아직음 붓방아만 찧고 있지만, 곧 써넣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날 선 삶의 단면을 이덕무 선생처럼 오래 관찰하고 눈 감아 깊이 생각하는 자세가 아닐까. "힘들 것이다" 이 다음 문장을 쓰기 위해서 나 역시 선생이 삶을 대하던 그 자세를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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