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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욕심쟁이 우후훗
다산 정약용 선생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사실은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서의 모습일 것이다. 아래 보기에서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책이 아닌것을 고르라는 사지선다형 문제에는 항상 다산의 형인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함정으로 종종 등장하던 기억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을 통하여 그런 다산의 시 세계를 아마도 처음으로 제대로 접해본것 같다. 그래서 유독 마음에 와닿고 그 시들을 통하여 다산의 인간적인 따뜻한 면모를 만나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듯 하다.
총 여섯장의 분류로 나뉘어진 이 시집의 구성은 각 장 마다 다산 시 세계의 각각의 개성이 묻어 나온다.
다산은 7세때 이미 '시'란 것을 지어 불렀다고 전해진다. 10세 이전의 오언시를 모은 '삼미자집'이란 책도 썼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당연히 학문또한 일찍 깨우쳤으나 과거에는 번번히 낙방하여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 후 관직에 나아가 여러 요직을 거치고 특히 정조의 아낌없는 신임을 받아 암행어사로 활동을 하게되는데.. 삼정이 문란하여 계속되는 수탈과 핍박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을 스스로 거세한 사내, 소나무를 없애는 승려, 모를 뽑는 아내등의 시로서 노래하는데 모습에서는 진정 백성들과 함께 마음 아파하고 백성들을 위하는 위정자의 모습이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런 다산의 나라 걱정하는 마음이 훗날 '목민심서'를 저술한 계기나 되었나 보다.
1801년 신유박해로 다산의 18년간의 유배생활이 시작된다.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다더니 이 유배기간 동안 다산의 업적이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유배 기간중에서도 다산은 꾸준히 시작을 하곤 했었는데 당시의 시들은 나라를 걱정하고 군주와 가족을 그리며 자연을 예찬하고 스스로 고독을 이겨내는 모습들로 그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에 지은 시들인 '유배지의 여덟 취미'나 '다산의 여덟 풍경' 같은 4구 스무자 형식의 연작시가 인상깊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후 다산은 결혼 60주년을 맞는 회혼일에 친지와 제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거중기나 도르래 등의 발명품을 보면 과학자로서의 면모가.. 암행어사 시절에는 마치 정의로운 검사의 면모가.. 대과에 급제하여 대학을 강의할때는 교육자로서 마과회통을 저술한걸 보면 의학자로서 아방강역고에선 지리학자로.. 논어고금주를 편찬할때엔 철학자로서 목민심서에서는 위정자의 모습이 흠흠신서에서는 법관의 면모가.. 경세유표에선 합리적인 행정관의 모습으로.. 이렇게 다방면에 정통했던 다산이 시까지도 저렇게 잘 지었다니 그야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이 말밖엔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산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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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조선 정조시대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자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실학을 집대성하여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학, 철학,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남다른 노력으로 그것들에게서 빛을 발하게 하는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면서 정조가 서거하면서 천주교도 박해사건에 휘말려 최대의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을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으로 승화시키어 그의 방대한 저술들은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시(詩) 선집이다. 고전읽기에서 다산이 빠진 적은 보지 못했을만큼 그는 '조선의 르네상스인'이다. '다산의 풍경'은 표현에 있어 다양함을 드러내고 있는 탓에 중의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얄팍한 한 권에서 그의 생애와 학문을 바탕으로 한 시만을 엄선하여 다시 우리 앞에 고개를 든 이유가 아닌가 싶다.그래서 더 반갑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 시 선집에서는 풍경이 그려지는데 그 한 가지는 다산 정약용에 있어 인간에 고유한 자유로운 '자아'의 독립성을 담은 내면의 풍경과 또 한 가지는 민생의 풍경인 것이다. 읽어내려가면서 조선후기의 민생고와 함께 사회에 대한 곱지않은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것을 짤막한 글귀 속에서 이내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부분을 연이어 읊다보면 그 당시의 사회적 모순들이 낱낱이 그의 글로서 파헤쳐지고 있는 것을 게다가 그런 것들로 인해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가를 지레짐작 할 수 있었다. 또 하나 2장 오징어와 해오라비에서는 우화적인 어법으로 세태풍자를 하면서 삶의 근본이 되는 이치를 읊고 있기도 하다. 내가 다산 정약용을 존경하는 이유는 특별하다. 우리나라에 있어 자연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론에 그치지 아니하고 실험을 통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술에 있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에 오늘 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한 밑거름의 초석을 잡아 준 이가 아닌가 한다. 다산 정약용의 시는 애통하고 슬프게 들린다,허나 그것을 극복하여 문학이 여러가지 갈래에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완성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섯 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긴하되 그 뿌리는 하나의 애국심과 민족애로 소담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우리를 그의 자연 속으로 혹은 민생의 아픔 속으로 스멀스멀 하게 작은 울림을 등에 업고 눈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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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정약용 시 선집 우리고전 100선 10 최지녀 편역 돌베개
이미 지난 8월에 2학기 개학을 하자마나, 1,2학년 중에서 국어국문학, 국어교육학, 문예창작학 등 국어국문학 관련 학과 진학을 희망하거나, 문학에 관심이 많고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제4회 문학캠프를 공지하였고, 이번에는 다산 정약용의 시문학을 집중 탐구하게 되었다. 학부모 독서모임의 일원으로 남양주의 다산 유적지를 다녀오는 이번 캠프를 참가하게 되었고, 아침에 남양주로 출발하는 버스에 합류하였다. 다산 유적지는 다산문학관, 다산기념관,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과 다산 정약용과 그의 부인인 풍산 홍 씨의 묘, 그리고 제일 나중에 문을 연 실학박물관까지 한 번에 관람할 수 있고, 두 분의 해설사를 통해서 역사 공부까지 병행해서 이어졌다.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의 열번째 책인 <다산의 풍경>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시(詩) 선집으로, 시인으로서의 다산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산의 생애와 학문을 바탕으로 그의 시만을 오롯이 부각시켜 '시인 정약용'을 부각시켰으며, 그의 시 세계를 여섯 개의 큰 주제로 나누어 다산 정약용의 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① 세상을 향한 뜻 ② 오징어와 해오라비 ③ 백성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 ④ 하늘 끝에 홀로 앉아 ⑤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네 ⑥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며 이렇게 여섯 장으로 구분하여 시를 소개하고 있고, 그 중에서 다섯 번째 장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가을밤이라는 시가 눈길을 끌었고, 여기 소개해 보려한다.
가을밤
마음은 산수를 사랑하건만 내 집은 거마 다니는 도회에 있어라. 대 난간을 부지런히 엮어 주어도 꽃나무는 자꾸 시들기만 해. 찬 이슬은 가지마다 영롱하고 가을벌레는 제각기 울고 있네. 혼자 걷다 돌아와 혼자 앉으니 달빛이 그윽한 마음을 비추네.
권위주의적이고 고지식한 고전의 이미지를 탈피해 부담감 없이 쉽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된 이 책, 『우리고전 100선』제10권 "다산의 풍경"편을 미리 읽고 캠프에 참가했다. 이 책은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고전을 학계 전문가의 정확하면서도 깊이 있는 번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우리말로 표현된[우리고전 100선]시리즈는 우리 고전의 문장의 멋을 고스란히 녹여내면서도 품격과 아름다움, 깊이를 고루 갖춘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여기 실린 정약용의 시는 모두 한시로, 우리말로 편역한 다음, 한시를 같이 첨부하여 싣고 있는데, 이를 보다보니 현재 한창 유행하는 힙합의 랩이 떠올랐다. 2016.9.10.(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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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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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전 중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데도 대중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고전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외면한다면 잿더미 속으로 사라진 숭례문처럼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 외면하는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어떻게 고전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더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이 총서는 그러한 면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을 현대화하여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다산 번역된 시를 음미하다 보면 이 시가 200여 년 전에 쓰여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공감이 느껴진다. 4 부귀는 참으로 한낱 꿈이요 불행 또한 한낱 꿈이니 꿈 깨면 그 뿐이지 온 우주가 한갓 농담인 것을. 富 貴 固 一 夢 , 窮 阨 亦 一 夢 , 夢 覺 斯 己 矣 , 六 合 都 一 弄 . 5 세상 걱정 하나하나 따져 보면 처자식 걱정이 그 중 제일. 누가 알겠나 집 나온 사람이 이렇게 호탕하게 놀고 있는 걸. 10 아기가 까닭 없이 울기도 하고 까닭 없이 방긋 웃기도 하듯이 기쁨과 슬픔은 본래 까닭 없는 것 나이가 많을 뿐 어른도 마찬가지. 11 뜻을 펴지 못하면 애석해들 하지만 등용된 후에는 험담만 무성하지. 그래서 소부(巢父) 허유(許由) 무리는 고개 내젓고 한가히 지냈다네. 12 백성들이 굶어도 날 원망 않을테고 백성들이 아둔해도 난 모를레라. 훗날 나를 두고 말하겠지 뜻을 이뤘으면 큰일을 했을 거라고.
이 시는 1801년 ‘책롱(冊籠) 사건’이 발단이 되어 장기로 유배된 후 1804년에 쓴 것이라 한다. 시제는 [노래로 근심을 푸노라]로 절망과 비탄 속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다산의 모습이 열두 편으로 된 짧은 시에 담겨 있다. 그는 18년간의 유배 생활로 처자식과 생이별을 했다고 하니 인간적으로 불행한 삶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시를 읽다 보면 삶을 즐기는 여유가 느껴졌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어려움을 겪다보면 좌절할 때가 많다. 삶의 어둔 면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삶의 기쁨, 행복은 멀리 달아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자신과 주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 다산의 시는 세상을 노래하는 심정으로 살아?? 보며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꼈다. 힘들고 괴롭워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다산은 큰 뜻을 세상에 펼칠 수는 없었지만 오랜 유배 생활에 절망하지 않고 위대한 저작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들을 통해 다산의 생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먼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대를 사는 이웃의 목소리를 들은 듯 친밀하게 느껴졌다. 한시를 번역하고 간단한 해설을 담은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회고와 함께 아름다운 우리 문학을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게 해주었다. 또한 한시의 매력을 발견했다. 한 줄의 한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 말로 펼쳐놓은 것과는 다른 응축된 느낌을 받았다. 짧지만 깊은 한시를 음미하는 것도 시 선집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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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최지녀 편역/돌베개
얼마전 이덕일씨가 쓴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읽었다. 학교때 두리뭉실하게 배웠던 당쟁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는 욕심에 책을 펼져들었지만 쉽게 그들의 상황에 몰입할 수는 없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책에 몰두하려고 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 조선 사대부들의 성리학 논리를 이해하는데 역부족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당리당론의 당파싸움에서 영조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화해무드가 조성이 되어지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에오른 정조, 당쟁의 이분법적인 정치구도에 개혁을 칼을 높이 치듯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옳지 않으면 곧 반역이요, 죽음을 뜻하는 것이되는 정치인것이다. 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어린 눈으로 목격했던 정조는 그 누구보다도 당쟁의 희생자인것이다. 그런 정조였기에 새로운 정치를 꿈꾼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정조의 새로운 개혁을 함께 옆에서 도와주었던 인물중에 한 사람이 이번에 접한 시의 저자인 정약용이다. 정조의 업적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수원화성이고, 수원화성에서 채제공을 위시한 정약용의 활약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채제공이 수원화성의 설계를 담당했다면 정약용은 실질적인 건설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인 그는 과학이라는 실질학문의 필요성과 실효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바를 실천에 옮긴 학자이기도 하다. 흔히 정약용을 중농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학자들을 크게 중농학파와 중상학파로 나누어서 이익(성호사설)을 중심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토지제도의 개혁을 꿈꾸었던 그들이 바로 중농학파이다. 정약용의 토지개혁의 의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좌절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그런 절망감이 이번 다산의 풍경에서 잘드러나고 있다. 굶주리는 백성에서 땅을 일구는 농부가 땅을 떠나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굶주리는 백성 -중략- 관아 마구간의 살찐 애마(愛馬)는 실은 우리의 살이라네.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린 농민들의 서글품이 잘 묻어나 어디로 가야지 한 목숨 부지하면 살 수 있을지 뀅한 눈을 뜨고 오늘도 걸음을 옮기는 농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과 그들의 옆에서 잇속을 챙긴 양반들의 수탈에 백성들의 삶은 점차 횡폐해지고 그런것을 직접 눈으로본 다산은 경제가 해결책임을 힘주어 이야기 한다. 바로 다음구절이다. -중략- 엄숙한 조정의 훌륭한 분들아 나라의 안위는 경제에 달렸다오 고통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그대들 아니면 누가 건지리.
다산의 풍경에서는 그의 정치적인 이념뿐 아니라 그의 가족사랑과 인간으로서의 고뇌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개혁의 동반자였던 정조의 죽음과 동시에 그는 나락의 길로 떨어져버렸다. 신유박해와 황사영백서 사건등으로 인해 유배지 여러곳을 전전하면서 여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랜세월의 유배생활로 인해 자신을 찾아온 아들이 자신의 아들인지 의심하는 싯구는 절절함이 묻어난다.
8년 만에 아들을 만나 -중략- 집에서 보낸 편지를 갖고 오긴 했지만 틀림없는 진짜인진 의심스러워.
유년기에서 과거공부시절, 과거에 합격을 한 이후 정치생활, 그리고 유배생활로 이어지는 그의 삶을 그의 시를 만나면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유배생활의 적적함이 유배지의 여덟 취미, 다산의 여덟 풍경등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운 순리를 자신의 내면으로 투영시키면서 자족하는 선비의 모습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실용학파의 정약용의 모습뿐이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느꼈던 번민과 슬픔도 또한 만날 수 있어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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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하면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기술들과 일반 백성을 위해 수많은 책을 저술한 조선시대 대학자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까지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당시 서로 파벌을 이루어 정권을 다투던 붕당정치로인해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였고 천주교 유입으로 대표되는 서양문물이 들어오며 사회적으로도 어지러웠떤 시대에 맞서 기개높은 선비상을 보여주었던 그였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그가 태어난 남양주에서는 실학축전이라는 행사가 진행되 그가 이루고자 했던 실학사상에 기초를 둔 정신을 마주하고 거중기라는 위대한 발명품으로 건축예술의 완성도를 높여준 수원 화성을 마주하면서는 당시 천대받던 과학기술업적으로 시대를 앞서간 장인정신을 느낄수도 있다.
정조와 함께하며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시간에는 올곧은 선비의 모습으로 성군을 보필했고 정조 사후 천주교 신자라는 굴레에 묶여 18년간의 유배생활 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느끼고 보아왔던 생각들을 500여편의 저서에 담아 부패한 관료들에게는 경종의 시간을 가지게 하고 백성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듯 수많은 그의 정신이 담겨진 저서중 그의 마음을 담아내었던 시를 마주하면서 처음 세상에 마주하며 느끼게된 설레임부터 대학자의 기개 백성의 삶을 들여다본 안타까운 마음까지 만나는 시간이 되어주고 있었다.
14세때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돌아온 부친의 이야기를 듣고 썻다는 금강산으로 시작된 그의 시세계는 6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그의 삶 전체를 담아내고 있었다. 20대의 삶에 대한열정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현실세계에 대한 실망이 교차하고 있던 내마음을 읊노라,정조와의 첫대면후 그 설레임을 표현한 임금을 뵙고서등은 기개에 찬 젊은이의 기상이 느껴진다. 그에게 있어 정조와 함께 뜻을 펼쳤던 시대가 인생의 반이라면 정조 사후 장기와 다산초당으로 대표되는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또다른 그의 인생 반이었다. 그 시간속에서 쓰여진 그의 대다수의 작품속에는 부패한 관료들과 가난의 굴레로 고단한 삶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백성들을 마주하게 된다.
" 냇가 부서진 집 바리때같이 북풍이 띠지붕 걷어가 서까래만 앙상 " 으로 시작하는 시골집이라는 시속에서는 변변한 모습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백성들의 집을 만났으며 " 개돼지도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것을 사람이 엿처럼 달게 먹는구나 " 라는 문장이 담겨있던 굶주리는 백성에서는 먹을게 너무 없어 사람다운 삶조차 포기한 민초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또한 긴 유배생활로 가족과 함께 할수 없었던 뼈에 사무친 외로움도 느낄수 있었다.
한권의 시선집에 담겨진 그의 인생이 녹아있던 시상속 모습을 대하며 당시 생활상과함께 절개를 지키며 무언가 더나은 세상을 향한 소통에 몸부림쳤던 기개있는 선비의 정신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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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전 100선-10 다산의 풍경 : 정약용 시 선집 정약용 저/최지녀 편역 | 돌베개 백성을 사랑했고 백성의 가난을 아파했던 정약용의 시 선집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백성들의 배고픔을 시로 표현했었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다.. 백성의 아픔을 이렇게 시로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고 있다. 이 책은 정약용의 일대기를 잘 정리를 해놓았는데 읽으면서도 너무 편안하고 쉽게 읽을 수가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약용은 정권이 바뀌면서 남인들이 설 자리가 흔들리고 그로 인해 귀양을 18년 동안이나 유배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정약용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애절하게 시로 많이 남겼다고 한다.. 이 책에서 시를 읽다 보면 그는 정말 시로 모든 것들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해 그는 유배 생활에서 조금의 외로움을 달래며 지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굶주리는 백성]이라는 시에서는 개 돼지도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것을 사람이 엿처럼 달게 먹는구나 라는 말이 있는데 그 시대에 얼마나 먹을 것이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약용은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관리가 되기 전에 너무도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자 종이 옆집의 호박을 훔치는 일이 있었는데 정약용의 아내가 종에게 호박을 훔쳐왔다고 혼을 냈다 그러나 정약용은 자기가 돈을 벌지 못해 집안에 먹을게 없는 것이 자기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고 종을 혼내지 말라고 했는데 정약용의 비통함이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양반은 먹을 것이 없어도 책을 밥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어찌 표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의 속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약용은 정직한 인물이며 임금에게 충성하는 신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백성을 아픔을 마음으로 아파했던 양반 중에 양반일 거라는 생각을 갔게 한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18년이라는 유배 생활의 아픔을 참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는 시로 많은 집필을 했다. 정약용은 시는 읽기도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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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런말을 하기 무척 민망하지만 중,고등학교에 다닐때엔 나도 작가가 되고싶었다. 책을 즐기고 간간히 백일장과 같은 대회에 나가면서 수업을 빠지는 것을 즐거워하던 발칙한(?) 학생이었다. 그런 내게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중학교에 다닐때 내 글을 지도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내게 '넌 산문타입이니까 시는 쓰지마' 라고 하셨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것이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걸 아직 모르던 때였다. 그래서 괜한 욕심에 충격(?)을 받아 남의 시를 두 눈 부릅뜨고 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생님 말씀이 심하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으로 글짓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느낀것도, 처음으로 좀 더 세세히 교육을 받은것도 모두 산문에 속하는 글이었다. 나는 시를 제대로 느끼기도 바쁜 처지이니 시까지 잘쓰고 싶은 마음은 크나큰 욕심이었다. 담아내지도 못하는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나선 시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척 오랜만에 시집을 손에 쥐었다. 다산 정약용의 시집.
책을 훑어보고 조금 막막했다. 시는 무척 많은데 그 시에 대한 해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읽어도 멍하게 넘어가야 할 판이다. 글을 너무 수학문제 풀듯 해설에 치우치는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시대에 다른 성별에 다른 생각을 갖고있던 사람이 표현한 그 마음을 내 잣대로 헤아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없는걸 어쩌나. 외국방송을 틀어놓고 들리면 들리는대로 안들리면 안들리는대로 넘어가던 마음을 빌려올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주제에 따라 분류된 시를 읽으면서 한사람의 마음뿐이 아닌, 당시의 나라사정이 훤히 보였다. 뜻이 컸던 사람인만큼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라사정이 답답했을 것이다. 백성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가 느꼈을 마음을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다산의 일생마저 담긴 이 시집에서 내게 많은 공감을 끌어낸건 역시 가족을 생각하며 쓴 시가 있는 부분이다. 가족에 대한 마음이라면 짐승에 대한 것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법이다. 유배생활을 했던 그에게 가족에 대한 마음은 잘 알겠다. 가장 애틋하고 따뜻했던 부분이었다.
시가 끝나고 실려있는 해설을 통해 좀 더 정약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이라는 사람을 더욱 잘 알게 된듯한 친근함이 가장 큰 득이 된것이라 생각한다. 줄줄 흘러내려온 문장 못지않게 많은것을 담긴 시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 마음도 담담하고 차분해지면 시 한줄 쓸 수 있으려나.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도 새로운 기분이 들것같은 시집이었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짧은 시 한편 소개하겠다.
8년만에 아들을 만나
생김새는 내 자식 같은데 수염이 나서 딴사람 같애. 집에서 보낸 편지를 갖고 오긴 했지만 틀림없는 진짜인진 의심스러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