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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상상력, 그리고 세련된 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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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96년에 읽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가물가물할 지 모른다. 줄거리와 문체. 하지만, 한가지 정확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업다이크다. 그는 '토끼' 시리즈의 작가다. 나는 누구에게도 업다이크를 권유받지 않았다. 내가 업다이크를 만난 건 그의 매력적인 글솜씨 뿐이었다. 그의 상상력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외국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화려한 상상력에 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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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96년에 읽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가물가물할 지 모른다. 줄거리와 문체. 하지만, 한가지 정확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업다이크다. 그는 '토끼' 시리즈의 작가다. 나는 누구에게도 업다이크를 권유받지 않았다. 내가 업다이크를 만난 건 그의 매력적인 글솜씨 뿐이었다. 그의 상상력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외국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화려한 상상력에 극히 감탄을 받았다. 그의 세련된 입담은, 가히 가공할만하다. 이 소설은 다른 것을 볼 필요가 없다. 그저, 업다이크의 상상력.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인류의 색을 바꾸다니, 그리고 그곳에 섹스가 있다니? 아주 경쾌한 소설이다.
h******n 2000.03.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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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사랑의 치열한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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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간되자,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인종과 계층에 대한 인류의 고질적이고 케케묵은 병적 편견을 격정적인 사랑의 이야기에 담아낸 걸작중 걸작이다.업다이크의 작품을 펼치면 그의 겸허한 작가의 말을 접하게 되는데 이 작품 또한 예외 없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작들과 작가들에 대한 존경을 보여준다.작가는 죠제프 베디에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e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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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간되자,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인종과 계층에 대한 인류의 고질적이고 케케묵은 병적 편견을 격정적인 사랑의 이야기에 담아낸 걸작중 걸작이다.
업다이크의 작품을 펼치면 그의 겸허한 작가의 말을 접하게 되는데 이 작품 또한 예외 없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작들과 작가들에 대한 존경을 보여준다.

작가는 죠제프 베디에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eult)』에서 분위기와 기본골격을 가져왔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트리스탕’과 이사벨’로 그 차용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다만, 죠제프가 쓴 켈트족으로부터 구전되어온 사랑의 전설인 트리스탕과 이즈(Iseut)나 로미오와 줄리엣식 낭만적 비극류와는 주제의식을 비롯해 전편(全篇)을 통해 흐르는 인간본성으로서의 성애(性愛)에 대한 그 격렬함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사랑의 형식을 보게 된다.

윤기 흐르는 검정색피부의 부랑아인 흑인소년 트리스탕과 고위외교관의 외동딸인 금발의 백인 소녀 이사벨이란 흑백의 대비되는 인종의 설정에서부터 백인남성과 흑인여성이라는 서구 백인중심사회의 일반적 권위에 의한 남녀관계를 뒤엎는 성적임무의 부여와 같이 그 관능성의 자극 수위를 극단적으로 치달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또한, 주인공의 사회계층적 계급의 부여 역시 흑인 창녀의 아비를 모르는 거리의 최하층자로서 흑인을,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공식으로서 백인을 표현한 것은 다분히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상정하고 있다할 수 있다.

백색의 피부에 부여되는 권력의 사회적 무언의 합의와 같은 오랜 왜곡된 의식이 섹스에 있어 남성의 욕구를 존중하려는 여성의 열등적 행위로 가장되지만 그 실제에 있어서는 이사벨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잠재적 권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도피행각에서 호텔 벨 보이와의 3인의 변태적 성행위는 트리스탕의 흑인으로서의 약자이자 권위의 수용자로서의 불가피함을 암시한다.

성애의 묘사에 있어서 그 디테일을 통해 인간 본성에 감추어진 은밀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허위와 가식으로부터 탈피하여 육체와 정신의 일원성이란 본능의 현재화(顯在化)를 보여준다. 리우데자네이로의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해안에서 시작되어 상파울로의 산업 현장으로, 다시금 브라질리아, 그리고 고이아스, 브라질의 서쪽, 마투그로수 정글지대로 이어지는 사랑의 도피에서 보여주는 이 연인의 사랑은 음울할 정도로 깊어 외면키 어려운 야릇한 우울함에 빠지게 한다.

고이아스 금광촌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아내를 안을 겨를 없이 지쳐 잠드는 트리스탕,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이사벨, 사방 1.5M를 파내려가는 자신만의 금광 안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얌을 흔들어대는 트리스탕에서, 발견된 금덩어리, 그리고 살인으로 인해 다시금 정글로의 탈출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환에서 흑인으로서의 피해의식과 보호자로서의 사회 기능적 보편성에 문제를 던진다.

작품의 기저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종적 편견의 불식이라는 주제와 병행하여 남녀의 사랑과 섹스의 상호 불가분성에 대한 일관된 주장이 인간 본연성(本然性)의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트리스탕의 창녀와의 섹스에서, 이사벨의 뭇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삼촌과 그의 가정부였던 두 번째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보여주는 그 모호한 이중성과 트리스탕과 이사벨에서의 불가분성이 사랑의 본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리고 작가가 도입한 환상적 주술의 설정은 연인의 피부색을 바꿔 놓고 그 흑백의 교묘한 관계를 추적해간다. 그럼에도 육체적, 특히 외형적 변화와는 달리 영혼의 본질적 변화로까지 이행하지는 않는다. 독특한 사랑의 방식과 인종과 계층에 대한 전복적인 이 시선은 결국 우리들의 일그러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리라. 백인 트리스탕의 주검에 오열하는 흑색의 진주 이사벨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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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의 손을 붙들고 어디까지 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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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늘이 정해 준 변태였을까? 첫눈에 서로를 운명이 정해준 짝으로 알아보았다는 둥의 거창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남녀는 19세와 18세라는 어린 나이로 평생을 함께 살아가도록 굳게 손을 붙들게 된다- 사실, 그들의 사이에 존재하던 것은 아주아주 강한 성적 이끌림이었지만-- 거기엔 좀 유난스러운 점이 있다. 배경은 브라질이고, 이자벨은 부유층 백인의 딸이며
"그들은 서로의 손을 붙들고 어디까지 갔던가" 내용보기
그들은 하늘이 정해 준 변태였을까? 첫눈에 서로를 운명이 정해준 짝으로 알아보았다는 둥의 거창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남녀는 19세와 18세라는 어린 나이로 평생을 함께 살아가도록 굳게 손을 붙들게 된다- 사실, 그들의 사이에 존재하던 것은 아주아주 강한 성적 이끌림이었지만-- 거기엔 좀 유난스러운 점이 있다. 배경은 브라질이고, 이자벨은 부유층 백인의 딸이며 트리스탕은 가난과 찌든 삶에 속한 순전한 아프리카계 흑인- 구도가 보이지 않는가? 이 책은 굉장히 야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과 교수님도 전에 그렇게 이야기하셨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그들이 끌리는 이유는 섹스였고, 그들의 사랑이 지속되어 나가는 가장 큰 이유도 섹스이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섹스이지만, 결코 그것이 읽는 이의 음란한 상상을 위해 봉사하지는 않는다. 냉혹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묘사하며, 쓸데없는 군더더기 잡설은 지워버렸으므로, 섹스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쓰여지지만 생명은 담기지 않은 무대도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이 책에서도, 답답한 현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가장 쉬운 방책으로 간혹 접하게 되는 '마법'으로 그들의 피부색이 바뀌게 되는데 그것이 무슨 결정적인 구원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묘하게 둘러치는 주위상황의 변화-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것들은 전부사라져 버리고 이자벨과 트리스탕은 세 아이와 함께 탄탄한 도시생활과 성공가도를 달리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들의 타고난 외모는 바뀌었으며 그에 따라, 그 특정한 외모의 사람들이 타고난 기질, 두고두고 핏줄로 흘러 내려가는 성향이 덧입혀져 있다고 하지만- 바뀌기 이전의 생활과의 틈이 결코 작지는 않았다. 이색적인 것은 항상 가십거리밖에는 되지 않는 것일까? 사회적 계급을 보는 편견은 단단히 눈에 박힌 바위같은 것이라서 빠지지 않는 것일까? 남녀간의 사랑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왜 거기에 사회적인 계급의 시점이 개입되고 그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는가? 아직 희고 어리던 때의 이자벨은 관계에서 트리스탕에게 더 큰 만족을 주기 위해, 벨보이를 매수해 2남 1녀의 관계를 벌인다. 하지만 트리스탕은 불쾌해 하면서,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실수를 했다는 이자벨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이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남자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모든 싸움에서 방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그건 곧 이기적이지 않다는 뜻이지. 하지만 여자가 사랑을 한다는 건 이기적이야. 사랑하는 건 여자의 본성이구. 그리고 여자에게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이 모두 하나지. 정사를 나눌 때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남자에게는 하나듯이. 여자에게는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고, 남자에게는 증오하는 것이 필요하지.' 우리나라처럼 性의 개방에 관대하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브라질의 풍습이 지나치게 이국적이다. 이자벨의 아버지는 사람을 고용하여 둘을 떼어놓는데 그것도 그들이 어린 나이에 섹스를 했다는 이유라기보다는 이자벨이 좀더 사회적 지위를 갖춘 사람과 만나기를 바란 탓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사고방식에는 역시 공통점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가능했다. 다른 이에게도 그러하리라. 내가 <브라질>을 읽고 받은 영향이란, 안그래도 나른하게 늘어지려는 나의 성향에 심지를 꽂고 불을 켤 기름이 부어진 것이랄까, 알 수 없이 묘하고 불쾌한 뒷맛이 남지만 그건 나의 개인적인 문제
i****i 1999.08.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