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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임박했는가 몇 년 전 정부의 '통일 대박' 기조 때문에 언론에서 '통일을 준비하자' 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내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는 과열되어 곧 통일이 임박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남북통일에 대한 기사나 연구에는 늘 독일 통일의 예가 따라옵니다. 베를린 장벽은 어떻게 붕괴된 것인지, 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루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독일처럼 언젠가 통일이 될 수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베를린장벽의 서사>의 저자 김영희 님은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입니다. 저자의 이력 뿐 아니라 표지, 서체, 종이의 재질에서도 책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일반인이 읽기에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이 아닐까 했지만, 냉전 시대 지도자들이 긴박한 외교로 이루어 낸 독일 통일은 소설같은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널리스트의 저작이 갖는 명료함과 논리적인 전개 덕분에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 통일은 행운이었다 통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독일 통일의 과정을 살펴 볼수록 안타깝게도 통일은 생각보다 더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남북한의 상황은 당시 독일의 상황과 많이 달랐습니다. 독일 통일의 과정을 서독은 분단 상황에서도 민간교류를 하고 있었고, 경제교류도 남북한과 비교할 수 없이 활발했습니다. 1975년 이후에는 동독 여행제한이 완화되었고, 동독에서 서독이나 영국 방송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은 타이밍이 아주 좋았습니다. 동독은 소련의 영토나 다름 없었습니다. 냉전시대 소련은 동유럽을 자기 영역으로 지키느라 고심했습니다. 196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프라하의 봄 )만 해도 소련은 군사력을 동원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전후로 동유럽에 부는 시민혁명 바람은 소련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늙고 보수적인 소련 지도자들의 시대가 끝나면서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여 개혁개방을 주장합니다. 그의 개혁개방은 큰 호응을 얻었고 비핵화, 화해정책은 세계평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이 성공하지 못했고, 보수파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은 결국 붕괴됩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그리고 소련 붕괴가 독일에는 신의 한 수로 작용했습니다. 소련이 없는 동독은 자연스럽게 서독에 흡수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즉 독일 통일은 동독의 뒤를 봐주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 통일은 행운이었다' 고 말했다 합니다.
무엇보다도 독일 통일의 과정을 이룬 것은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 로 이어지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아데나워는 전범국가와 패전국이 되어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은 독일을 서방 세계와 화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서방정책). 빌리 브란트는 동유럽 국가들과 적대 관계를 피하고 우호적으로 지내야 독일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고(동방정책), 독일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 중의 하나인 폴란드와의 화해를 위해 새로운 국경선을 승인했으며, 폴란드 유태인 위령탑에서 무릎꿇고 사죄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이 갖고 있는 독일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립니다.
특히 헬무트 콜은 독일통일의 주역이었습니다. 동독 주민들이 혁명 바람에 흔들릴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브란트의 동방 정책 비판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기회가 오자 필요에 따라 동방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콜은 독일 통일에 영향력을 가지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국가 원수들과 긴밀히 만나 독일 통일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는 물밑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통일 후 독일이 예전처럼 힘을 얻는 것을 경계하는 국가들에게 독일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 콜과 고르바초프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현재 남북한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당시 서독은 소련과 얘기가 잘 되면 통일이 가능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남한이 북한의 큰 형 격인 중국과 관계가 좋아진다 해도 남북통일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한중 관계는 지금 사드 문제를 두고 매우 불편한 상황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확실한 우리의 편이 되어야 하는데,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중국과 일본이 끼어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 자위대와 망언 문제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데 남북한의 편이 되어 통일을 도와줄 리 없습니다. 즉 남북통일에는 당시의 소련처럼 결정적인 열쇠를 쥔 국가도 없고, 중국, 일본, 남한 모두 서먹한 관계인 것이 문제입니다. 저자는 동북아 평화가 밑바탕에 있어야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동북아 다자기구 설립을 제안합니다.
독일 통일에는 교회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동독이나 폴란드 체코 모두 교회의 세력이 강한 유럽 국가들이라, 무신론을 기본으로 하는 공산주의 정부라도 교회까지 탄압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동서독은 교회간의 교류도 있었고 정치범 교환도 있었습니다. 폴란드 민주화의 배경에는 요한바오로 2세가 큰 힘이 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은 성직자들의 미사로 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종교 탄압이 심하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되기는 어렵겠습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저자는 남북한 긴장완화, 협력의 틀 만들기, 민간 분야 교류의 확대, 활성화를 제안합니다.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너무 성급했으며, 북-러든 중-러든 북한 사회와 교류를 늘려야 하며, 통일은 떠들수록 멀어질 것이며, 민간 차원의 교류부터 늘려 나가야 동서독의 경우처럼 자연스럽게 통일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통일에 대비해 북한 엘리트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연구해야 하는데, 통일 독일은 동독의 엘리트(공산주의자) 처리를 엄격히 하지 않았고, 다만 일부 정부 기관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정도로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북한 엘리트들이 통일에 저항하지 않도록 통일 이후에도 그들의 지위를 어느 정도는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분단, 동유럽의 민주화, 냉전 시대의 종식,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다룹니다. 각 나라 리더들의 외교 장면도 현장감 있게 펼쳐집니다. 통일, 외교, 협상을 공부하시는 분들 뿐 만 아니라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더 넓은 시야를 선사할 깊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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