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만화를 그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습니다. 만화책 표지 두 장을 보여주면서 어떤 게 선명하게 다가오는지 의견을 말해달라고 하더군요. 내용과 제목은 같지만 표지 구성은 약간 차이가 나는 것들이었지요. 저는 잠시 두 표지를 비교해보다가 제목을 드러내는 글자가 뚜렷해 보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활자 세대와 영상 세대의 차이라니까!" 그가 말하길, 우리 같은 이른바 '활자 세대'는 만화책을 보면서도 글자에만 신경을 쓴다더군요. 반면에 아이들은 그림을 본답니다.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는 아주 사소한 배경 하나, 소품 하나도 아이들에게는 특별하게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흠...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은근히 부아도 치밀었습니다. 어느새 무슨 무슨 '세대'로 낙인찍히고, 틀에 갇혀버린 고리타분한 인간이 되어버렸단 말인가. 지극히 자조적인 부아였겠지요. 그림책으로 거듭난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꼼꼼히 살핀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그래, 나도 그림으로 한 번 읽어보자,는 오기가 하나였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육신이 죽어서 땅에 묻힌지 너무도 오래인, 당연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저보다는 훨, 훨씬 고리타분한 구세대여야 마땅할 세익스피어 영감(?)이 아직까지 생생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고픈 속셈이었습니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의 내용이야 저한테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원수 집안의 남녀가 만나서 짧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몹시도 극적인 드라마... 아무튼, 최대한 제 눈을 아이의 높이에 맞춰서 그림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탄탄한 내용 덕분일까, 아니면 화가의 빼어난 솜씨 때문일까. 그림으로만 읽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새삼스런 깨달음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죠. 서로 첫 눈에 반한 이래 두 연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더군요. 마주 보고 있을 때는 서로의 눈을 간절히 들여다 보고, 나란히 있을 때는 그 곳이 어디든, 어떤 사람이든 단 하나의 초점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운명의 장난을 한탄하고, 안타까워하는 순간에 슬프게 내려 뜬 눈길도 쌍동이처럼 닮았구요. 심지어 싸늘하게 죽어 함께 누운 자리에서도 두 연인의 감은 눈은 어딘가 하나의 깊은 영혼을 향한 듯 같은 내면을 응시하고 있었지요. 그랬습니다. 어쩌면 글자 같은 건 하나도 읽지 않아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림만 읽어도, 아이들은 보편적인 진리 하나는 꿰뚫겠더군요. 사랑이란 그런 것, 상대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마음에 깊이 새기는 눈길로 바라봐 주는 것, 상대가 보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함께 보아 주는 것... 나머지 하나의 의문이야 자연히 풀릴 수밖에요. 세익스피어가 아직도 '신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를 보편적으로'공감'시키는 탁월한 능력 때문일 터이니. 그림책으로 묘사한 로미오와 줄리엣... 저처럼 어설픈 활자 세대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절묘한 찰떡 궁합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텍스트보다 그림 보는 눈이 탁월한 세대이니, 그림을 통해 글자로 묘사한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줄 아는 세대이니 당연히 그림책이 효과적일 테죠. 거기다 수 세기를 지나도 바래지 않고 어김없이 공감하게 해 주는 세익스피어의 천재성이 만났으니 찰떡궁합일 수밖에요. 그리고 그런 바탕 위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은 꽃피는 게 아닐까요? 21세기가 창의력이 중요시되는 시대라는 말은 이제 낡은 수식어가 된지 오래입니다. 너무 중요한 덕목이라 아예 낡아버리기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창의력의 가장 큰 원동력은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감히 그렇게 선언합니다. '공감하는 자'가 가지는 무한한 잠재력은 가히 폭발적이기 때문이죠. 20세기를 이끌어 온 주역들이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한 방향을 향해 분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21세기에는 세상과 나, 자아와 타자 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탄탄한 고전을 통해 배우는 공감 능력은 그 활동 영역이 미래의 벤처 사업가든, 영화 감독이든, 위대한 철학자든,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축구 선수든,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그 자체로 고유하게 아름답고 화려한 꽃송이로 화할 것입니다. 그림책으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저는 바로 그 꽃 그림자를 보는 듯 합니다. 시대에 따라 세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희곡으로, 드라마로, 소설로, 만화로...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 옷을 갈아 입으며 '공감'의 바탕을 제공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공감을 발판 삼아 세대와 세대는 각기 다른 상상력과 감성의 꽃을 피워왔지요. 이제 섬세하고 따뜻한 그림책의 모습으로 우리의 '영상 세대'에게 공감과 교류의 손을 내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떤 색깔, 어떤 모양의 꽃을 피워낼지 저는 그것이 사뭇 궁금합니다. |
|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꼭 한번은 읽고 넘어가는 고전 중 하나일 것이다. 비극이어서 더 아름다운.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을 가지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부터 시작하여 연극, 영화 심지어는 뮤지컬 등의 다양한 장르로 수백 아니 수천번도 더 만들어진 이 작품은 명작이어서 일까? 접할 때마다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장 좋았던 점은 특별한 군더덕이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점과 다양하고 깔끔한 색감의 그림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었던 점이다. 그래서인지 아는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참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 외 드리는 말씀! 예전에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을 사 본 적이 있는데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다음에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적덩히 쉽고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서 부담없는 그림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책들을 소재로한 그림책들이 미래 M&B에서 자주 출간되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함을 함께 전하고 싶다. 앞으로 좋은 책 더 많이 부탁드립니다. 늘 그랬듯이..전 아직 아이는 없지만 아이를 나으면 꼭 한번 읽게 하고픈 작품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조금더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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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영원한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와 뮤지컬 그리고 연극... 무척 많은 사람들에 의해 또 다시 되풀이 되는 정말 영원한 명작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위한 책을 고르자면 만화나 혹은 조잡한 그림의 동화가 고작이었다. 처음 이책을 보고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 있다면 만화가 아니라는것! 많은 부모들이 공감하시리라. (물론 나도 만화라면 너무 좋아한다. 오죽하면 수준이 초등학생과 똑같다는 말을 들으랴 ) 정말 페이지마다 가득히 채우는 고전에 어울리는 삽화에 요즘 아이들이 읽기에 싫증이 나지 않도록 삽화와 동화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앞으로 세익스피어의 명작 희극과 비극 모두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될수 있다면 또다른 아름다운 명작도 나왔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로미오는 로렌스 신부가 있는 곳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왕자가 내린 판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방이라니요?" 그는 울부짖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차라리 죽음을 내리시지. 추방은 더 끔찍한 벌이에요." "무례하군, 감사할 줄을 모르다니!" 신부가 꾸짖었습니다. "법대로 하면 자넨 사형이야. 추방에 그친 건 대단한 자비를 베푼 거네." "그건 자비가 아니라 고문입니다. 천국은 여기, 줄리엣이 사는 바로 이 곳이라고요. 나에게 베로나의 성벽 밖은 이 세상이 아니에요. 고통뿐이 지옥 그 자체라고요." 로미오는 바다을 뒹굴며 괴로워했습니다. |
| 사랑은 일종의 흑사병입니다. 14세기 흑사병은 사라졌고, 20세기의 흑사병이라 불리우는 에이즈도 그 치료약이 개발되고 있지만, 사랑은 백신없은 영원한 흑사병입니다.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 병의 보균자며 발병자며 발병을 넘어 중독을 꿈꿉니다. 그런데 나는 이 흑사병에 걸린 연인들이 그 치료약을 금방 찾아 버리는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사랑은 한 스푼했는데 눈물은 반 스푼 흘려버리는, 이 측량 가능한 사랑이 못마땅한 겁니다. 정말이지 사랑이 이렇게 경박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연인들 모두가 사랑이라는 마약에 흠뻑 중독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독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파시즘을 낳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중독된 사랑의 전형입니다.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두 연인의 사랑의 용기. 나는 이런 죽음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랑을 가벼운 기침을 동반한 감기 쯤으로 여기는 요즘의 세태에 진지함을 일깨워주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압니다. 사랑이 위대하다고 말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는 사실을. 여우보다 더 영악해져 버린 우리들은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그저 책 속에서 가능한 비극일 뿐이라는 사실을. 속된 말로 사랑이 밥먹여 주지 않는다는 이 씁쓸한 현실을. 하지만 말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사랑이 세상에 없었다면, 그런 진지한 사랑이 없었다면, 사랑의 역사는 이미 종말을 고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반 스푼의 눈물만으로, 동네 약국의 아스피린 한 알만으로, 운동장 몇 바퀴를 숨차지 않을 정도로 뛰는 것만으로 사랑을 잊어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백신을 너무 쉽게 찾아버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동물들의 짝짓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했던 죽음까지 불사한 사랑은 '백신없는 사랑'이며, 경박함으로 마지막을 고할지도 모를 '사랑의 종말'을 치료하는 역설적인 백신일지도 모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보통의 연인들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숭고한 사랑을 설파하는 '위대한 환상'입니다. 미셀 푸코였던가요. 그가 '사랑은 없다!'고 말했지만 '위대한 환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역사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아이들도 커서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되겠지요. 나는 이 아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측량가능한 사랑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비극적인 사랑, 혹은 죽음을 미화하는 파시즘적 사랑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했던 진지한 태도를 배우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사랑의 백신을 발견하더라도 아리디 아린 마음과 피로한 다리가 되어서야 치료제를 구했으면 합니다. 사랑은 환상일지언정 타인에 대한 진지한 태도이며 생을 지탱하고 세상을 떠받드는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
| 초등학교 4학년 늦둥이 사촌동생의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녀석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난히 책을 좋아한다는 소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필요한 책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줄 것은 많고 주머니 사정은 어려운지라 그냥 직접 무얼 갖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리스 로마 신화>와 <로미오와 쥴리엣>을 읽고 싶다고 한다. 책이 도착했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지척에 사는 사촌동생을 한참동안 못 만나는 통에 한동안 책을 보관하고 있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두꺼운 두 권짜리 만화책이어서 읽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얇고 그림과 글이 반반인 <로미오와 쥴리엣>을 읽었는데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우습게도 결혼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의 아이에게 이 동화책을 실제 로미오와 쥴리엣이 된 것처럼 읽어줄 수 있다면.. 시적인 대사는 한껏 과장을 해서 읽어주면 아이는 그 환한 웃음을 웃어줄것이다. 목숨을 걸어야하는 사랑이 세상에 있음을 아이는 모를테지. 사실 나도 너무나 오래 그런 사랑을 잊고 살았다. 따뜻한 그림 속에 서로를 바라보는 로미오와 쥴리엣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아이였을 적에 꿈꾼던 사랑을 본다. 로미오와 쥴리엣이 목숨을 걸었던 사랑처럼 나는 지금 무엇에 내 목숨을 걸 수 있을 것인가. 이런날 너무도 사랑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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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 피어의 명작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우리 아이들 대다수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중에 세익스 피어의 원작 소설을 읽어 본 아이가 얼마나 될까?
주변 어른들 가운데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다. 어른들이야 그럴리 없겠지만 아마 요즘 아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소설이 아닌 잘생긴 헐리웃 배우가 출연한 영화로 기억 하는 아이도 있을 법하다.
처음 동화책을 보았을때 그 긴소설을 소량으로 압축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그저 줄거리만 유치하게 나열 했거니 하고 책을 펴 봤을땐 감짝 놀라고야 말았다. 어떻게 그 긴 소설을 이렇게 짧으면서도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렸는지 이정도면 우리 아이들이 보기에 전혀 손색이 없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동화책의 일러스트는 동화책의 일러스트 라기 보단 한편의 미술 작품의 느낌 까지 주었다. 어려운 세익스 피어의 소설을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수준까으로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인상깊은구절] "오! 로미오,로미오." 줄리엣이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당신의 이름이 곧 내 원수의 이름이라니. 하지만 그까짓 이름이 뭐람? 장미를 아무리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행기는 그대로 인걸. 로미오, 당신의 어느 한 부분도 되지 못하는 그 이름을 버리고, 대신 내 모든것을 가지세요." "그대 말대로 그대를 가지리라.나를 그냥 사랑이라 불러 주오. 이제부터 나는 로미오가 아니오." |
|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국인인데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살았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끊임없이 영화와 연극으로 재창조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은 대문호의 한 사람으로써 지금까지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사람은, 그 이름의 유명세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숫자일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일찍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부여된 위대함이, 일반독자들의 마음에 부담감을 키워놓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저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접한 것은 중등시절, 청소년용으로 개작되어 나온 소설을 읽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원작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방대한 양에 우선 압도당하게 되더군요. 요즘의 젊은 사람들에게, 두터운 책은 우선 그 형상만으로도 겁을 집어먹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니까요. 분량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설이 아닌 희곡을 읽는다는 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고, 대사가 고전적인 말투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결국 저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게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시는, 셰익스피어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조카에게 줄 선물을 고르면서 만나게 된 이 책은 결과적으로 제게 더 큰 기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표지그림이 정성스럽고 예쁘다는 생각에 고른 그림책이었는데, 뜻밖에도 그림 뿐만 아니라 내용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40여페이지밖에 안되는 짧은 분량 안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정수만 가려뽑아 농축시켜 놓은 듯, 이야기는 간결하면서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시선을 낮추되, 수준은 낮추지 않은 그림책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이야기를 그대로 함축시키고 있는 서정적인 삽화들은 어른인 저의 마음까지도 뺏기게 했습니다. 조카와 그림책을 보다 보면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 성의없는 삽화에 답답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작가와 원화가가 마치 합일하여 작품을 써낸 듯, 이야기와 그림의 조화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조카 역시 저와 함께 책을 읽으며 매우 좋아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이야기에 푹 빠져들더군요. 인물들의 대사가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대사에서 느껴지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조카에게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눈치였습니다. 조카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 섭섭해했지만, 조카의 나이가 좀 더 들어서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사뭇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겠지요. 아직 이 시리즈-그림책으로 만나는 셰익스피어라는 부제가 달려 있군요-가 많이 나온 건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모두 조카에게 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조카에게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선물이 될테니까요. |
|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림책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림은 '데니스 놀란'이 그렸다는데 잘 알지는 못하지만 표지를 보니 그림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해 보인다. 그림 책을 볼 때면 가장 먼저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내 생각때문이다. 더구나 세익스피어 작품을 옮겨 놓은 것이니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첫 장, 커다란 두 건물이 웅장하게 서 있고 건물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아마 '몬테규 집안'과 '캐플릿 집안' 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겠지. 그 건물들 밑에 개미만한 사람들이 칼싸움을 하고 있다. 원수로 지낸 두 집안, 인물보다는 배경이 더 중요함을 그림은 나타낸다. 다음 장을 보면 두 집안의 인둘들이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두 페이지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한 쪽 그림에는 붉은 계열로 다른 쪽 그림에는 초록 계열로 서로 보색을 이루며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 낸다. 다음장, 줄리엣과 줄리엣 어머니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하지만 줄리엣과 어머니 사이에는 페이지의 공백만큼이나 커다란 벽이 있음을 나타낸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모든 배경이 흐려져 있고 서로 마주하며 서 있다. 하지만 줄리엣은 눈을 내리깔고 로미오의 눈은 가면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서로 강렬하게 끌리지만 주위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는 그들 마음이 담겨있는 듯 하다. 그리고 뜨거운 키스...사랑! 줄리엣이 로미오를 기다리는 테라스 그림은 줄리엣의 기다림에 하늘의 회색빛만큼이나 어두운 미래가 있을 거라는 암시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을 둘러싼 공간은 따뜻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터볼트와 로미오의 결투그림은 로미오의 눈빛처럼 어둡고 증오와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 바닥에서 부터 올라오는 어두운 그림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그림은 현실과 멀어진듯 뿌옇게 흐려지고 있음을 느낀다. 마지막 장. 주위는 모두 온화한 색으로 편안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으로 사랑을 이루지만 모든 것을 따뜻하게 하고 용서하게 만든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란히 누운 그림에 유일하게 채색된 창이 보인다. 아마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 창을 통해 멀리 하늘로 날아가리라는 생각의 여지도 있다. 그림책으로 만나는 세익스피어. 글을 다 읽지 않더라도 그림으로 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느낌. 다 보고 나서도 짙은 감흥이있는 그림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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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이야기를 해보았다. 어릴 적 읽었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였다. 오랜만에 읽는 책이기도 하였지만 아는 내용이라 가볍게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아이들과 읽고 이야기 해보면서 이 책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꼭 설득하여 양가를 화해시키고 결혼을 하겠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때묻지 않은 순수함도 느꼈고, 대부분 해피앤딩인 결말과 다르게 비극적 결말이 주는 여운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