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대학교때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읽었다. 여류 작가인 공지영씨의 글씨체도 알아보고 싶고 그래서 2권을 그냥 사서 쭉 읽었다. 제가 남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착한여자가 아니다. 그렇게 남편한테 맞고 남편의 박대와 학대가 있어도 꼭 한남자만을 사랑한다는 것이 현실에 와서 이건 바보같은 여자이지 도저히 착한여자라고 할수 없었다. 또 작금의 현실에 이런 여자들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많은 여성들이 이 소설을 읽고 제발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너무 보수적이다. 항상 순종하는 현모양처의 부인을 우리는 언제까지 기대할까요? 언제 남성우월주의가 종식할까? 암튼 전 아무리 소설이라도 이렇게 까지 구지 할 필요가 있는가? 왜 공지영이라는 여류 소설가가 이런 소설을 썼는가를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여자라면 이것을 읽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대한민국에도 아니 세계 모든 국가에 정말 여성들이 부르짖는 양성평등의 사회가 도래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
| 난 어릴 때부터 서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나이가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거라는 어리석은 기대가 한몫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읽은 소설속의 대부분의 30대 여성들은 세상을 참 힘겹게도 살아간다. 부모로부터,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자식들로부터 받게 되는 상처속에서 30대의 여자들은 잘도 견뎌낸다. 그들의 지리하기부터 한 삶들을 지켜보면서 난 왜 서른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그들의 서른은 전혀 아름답지 못한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공지영님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짊어져야 할 짐들을 힘겨워하면서도 끝까지 짊어지고 다닌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많이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착한여자>는 착한 여자인 오정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부모의 불화와 형제들의 방황, 어머니의 자살에서부터 얼룩지기 시작한 어린시절, 사랑, 열등감...이 책은 착한 여자 오정인의 삶에의 의지를 아주 맘 아프게 그리고 있다.우리의 사회는 이혼녀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이 그들을 얼마나 힘겹게 할지 생각을 하지 하지 않는다. 사실 이혼이 만연해지면서 발생한 나쁜점도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지 않을까? 옛날 무조건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였던 시대는 지났다. 이혼을 통해서 인간다움을 제공받을 수 있다면 이혼은 어쩌면 꼭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속에서 인내를 가지고 가정을 지켜나가는 오정인은 착한여자다. 남편의 멸시어린 시선과 구타 속에서도 꿋꿋이 참고 견디는 그녀는 착한여자임에 틀림없다. 정인의 어린시절, 밖으로만 도는 아버지의 폭력앞에서도 어머니는 가정을 지켰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선택은 자살이었다. 정인 역시 어머니처럼 참고 견디다 이혼을 결심한다. 난 이세상의 '착한여자'로 불리워지는 여성들이 좀더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부부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면서, 가정을 지키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망가져 더이상 발전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실적인 눈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여자라는 굴레가 씌워놓은 운명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착한여자>무소의> |
|
착한 여자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 내내 슬펐다. 이런 슬픔을 공감하면서 일종의 자기 정화를 느꼈다.
서장의 내용이 끝일까, 혹은 뒷 부분이 더 있을까 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읽었다. 어찌보면 70년대의 신파일 수 있는 <별들의 고향>의 여자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또 <인형의 집>처럼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궁금했다. 결론은 어느 정도 급하게 끝난 부분은 있지만, 예상대로 였던 것 같다.
아직도 매 맞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겠지만, 나의 부모세대에서는 지금보다는 훨씬 흔한 일이었던 것 같다. 특히 가장으로 불려지는 아버지 세대들은 그들의 열등감을 가장에서의 폭력으로 소위 스트레스를 푼 것으로 보인다. 매번 그런 폭력에 시달리는 자식 세대로서는 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머니 세대에게 두고 두고 미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대물림 되지 않기를 간곡하게 원한다.
지금도 이혼녀에 대한 시선은 이혼남에 대한 시선보다 곱지 않고, 며느리와 사위를 비교해도 며느리가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작가가 작품이 아닌 사생활로 공격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서 중간 문단의 제목이 너무 멋있다. 제목만으로 명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예로 슬플 때 짜장면을 먹어 본 사람은 안다.
내용중 세련된 현준이 정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주인공을 슬프게 하기 위해서 그가 노름에 빠진 다는 것은 정말 작위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인물 설정이 구체적이였으면 좋겠다. 그의 아버지처럼 그런 녀석과 결혼하고 슬픔을 겪는 것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먹물인 남호영도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 먹물답게 가식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동정이 간다. 명수는 첫사랑을 못잊는 천사표인가? 정인이가 좀 더 대등한 입장에서 그를 상대해야 할텐데.
결론적으로 봉건시대의 가정 폭력과 그것에 힘없이 희생되는 여자이야기이다. 많은 부분이 공감을 주고, 그래서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동화되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 좋은 책이다. |
| 나는 착한 여자인가? 나쁜 여자일까? 착하다하면 바로 나쁜이라는 단어가 따라오는 이유는 뭘까? 이 책에서의 착한 여자는 누구일까?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잣대들로 평가되는 여자들...스스로를 가늠해 본다면 어떻게 나올까? 이 책은 상처 받은 정인이 이야기다. 상처 받지 않기 아니 상처만 받는 여자 정인이... |
| 착한 여자란 뭘까? 남자에게 순종하게 사랑이 아니라도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자기위안을 삼으며 집착하는 게 과연 착한 여자의 사랑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아렸다. 우리가 흔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 믿으면서 발버둥치는 당사자는 정말 그런 것이 아니라도 좋으니 옆에 두길 바란다. 아마 이 책을 그걸 바란 건 아닐까? 타인의 입장에서 사랑을 바라보는 것과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 이중성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게 이중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독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것에 우리는 관대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름하에 퇴색해진 걸 느끼는 순간 추악해짐을 느낀다. 산다는 것 또한 그렇겠지?? |
| 오정인이었던가...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녀는 착하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줄 곧 들었던 생각이다. 그녀는 착한게 아니라 바보같은거다. 책 제목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순해빠진 바보같은여자나, 착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여자.라고 말이다. 나는 바보같은 여자들이 싫다. 내가 잘났기 때문에? 아니다. 나는 여성 인권운동가가 아니고, 페미니스트도 아닐뿐더러 내가 사는 삶은 이 오정인이라는 여자와 반드시 다르다는 보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운명은 항상 자기가 가고싶은 길로만 다니니까. 매우 상상하기도 싫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내가 이 오정인이란 여자처럼 살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화가 난다. 바닷물이 말라서 마른땅에 씨앗을 심는 확률일 지라도 내가 그 착한여자처럼 살게 될까봐 그 여자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상황과 여건이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오정인은 착하게 살아서는 안된다. 순하고 착한것은 그런 것을 원하는 남자들에게나 좋은것일지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정인을 봐도 그렇다. 그녀의 착함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남자들은 그녀가 착하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받아야 할 양심의 가책이나 정신적 고통을 덜 당하고 있다. 정인의 착함은 고로, 자기 자신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정인은 위기가 몰려올 수록 자기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는 법을 배웠어야 한다. 욕심을 내는 법을 배웠어야 한다. 착하기만 한 여자 정인은 이제 더이상 없어야 한다. |
| 한 친구가 착한 여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착한 여자란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 때문에 그런 소릴 듣는 것이라고 착한 여자는 바보이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그말에 이책이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책(?)이 아니고서는 장편을 읽지 않는 내가 2권짜리 책을 읽을 정도라면 어지간히 신경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난 책 말미에 가서 책을 집어던질 수 밖에 없었다.. 책 저자가 유명한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임에도 그렇게 밖에 표현되지 않은 것에 심히 짜쯩이 났다. 책속의 여자는 친구의 말처럼 바보같은 여자였다. 모든 걸 참고있는 그녀에 대해서 난 너무나도 분하고 신경질이 났다. 1권을 다 읽고서 분에 차 있었음에도 2권을 읽어나간건 순전히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말에 다다라서도 여전히 참고 있는 책속의 여자를 보았을 때, 당하고만 사는 여자가 착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저자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난 착한 여자가 아닌 여자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었다. |
| 고통의 바닥까지 치고 내려다본 여자가 결국 용서와 끌어안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뻔한 이야기이다.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삶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가의 솜씨. 하권의 마지막에 작가가 하고픈 말이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것. 동정과 연민도 실상 나자신을 위한 것이며 타인에게 입히는 상처는 그대로 나 자신의 것으로. 상처입히지 말고, 상처 입히더라도 받아들이고 용서하라는. |
| 착한 여자라면 흔히 좋은 평인 줄 착각한다. 천만의 말슴 지금이 무슨 조선시댄가? 결혼은 특히 본인들이 좋아야한다.페미니즘계의 소설로 꼽히는 착한 여자를 읽으면서 연신 한숨이 나왔다. 정말 소설 속의 주인공 ''정인''이 착한 여자일까? 남편에게 구타 당하고, 같이 일하던 남자에게 이용 당하고도 그 사람들을 용서하는 그런 여자를 착하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상, 하권 이렇게 두 권인데 좀 지루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작가가 여자란 자고로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정인이라는 여자를 등장시킨 줄 알았는데 여주인공의 삶의 방식에 화가 난다. 이젠 나쁜 여자가 되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