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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한마디 문장을 읽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지... 이 말을 망설임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는 평생을 목표로 삼은 절실한 꿈, 바로 흑인과 백인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을 보는 것이 그 꿈이겠지만 나에게는, 또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통의 일반 사람들에게는 어떤 꿈이 있을까? 나도 자랑스럽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 평생을 하나의 목표를 위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 바로 흑인의 인권과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름은 너무 많이 들어 귀에 익숙하지만 우리 나라 위인의 이야기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기에 자세히 알려고 하지는 않았었는데 그냥 흑인의 평화만을 위해 싸우다 암살당한 목사가 아닌, 인도의 간디처럼 비폭력 저항 운동을 벌이고 미국에 몽고메리 운동을 시작하게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서 바로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고 평등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남북 전쟁 자체도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링컨 대통령이 당선되자 남부의 11개 주가 미국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 이후로도 남부에서는 여전히 흑백분리법을 만들어 흑인이 심한 차별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뒤에 구석진 자리에만 흑인이 타도록 했으며 그 마저도 백인이 타면 양보해야했고 백화점이나 식당등에도 갈수 없거나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했다. 투표권도 없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수 없던 그 시대에 남부의 애틀랜타 시의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난 마틴 루터 킹은 점점 자라날 수록 자신이 심한 차별을 받고 있으며 흑인은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점점 자라난 마틴은 자신이 흑인들을 위해 할 일은 목사가 되어서 연설하는 것임을 깨닫고 목회의 일을 하면서 연설을 하며 흑인들의 의식을 깨우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비폭력 저항 운동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기로 한 몽고메리 운동을 하게 되고 그것을 시기로 점차 흑인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항상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가족들도 위협을 당하는 삶을 살지만 흑인들의 인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평등한 미국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게 끈임없이 흑인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결국 흑백분리법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을 얻어내고 흑인들의 시민권을 찾기 위해 애쓰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 역시 암살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비폭력 민권운동은 미국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고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어 지금처럼 미국엔 흑인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에 이르른다.
나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억압된 사회에 폭력을 없앤 저항 운동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해도 화나는 일이 있으면 주먹을 쥐고 한대 때리려고 하거나 큰 고리를 치거나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어디에라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인데 그 모든 것을 참고 오로지 기도로만 저항을 하려고 하는 그 정신에 숭고함이 느껴졌고 그렇기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운동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일이 참 힘든 일인데 조용한 말들로 사람들 감동시키고 백인들도 먼저 마음을 열수 있게 하는 그 조용한 시위가 미국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록 이른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었지만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우리도 피부색이나 신분, 장애, 성별등에 의해 차별하지 않고 차별 받지도 않는 세상을 꿈꾸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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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서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지수 글, 김주경 그림 보물창고
흑인 인권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분. '나에게는 꿈이있습니다'라는 명 연설을 남긴 분. 미국 남부에 사시는 목사님. 마틴 루터 킹.
그런데 매번 헛갈렸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누구고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누구고 노벨상을 받은 마틴 루터 킹은 누구인지? 결론은... 모두 같은 사람이란 것이다^^
미국 남부, 링컨 대통령 시절에 이미 흑인 노예 해방이 이뤄졌지만, 100여년이 지나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을 다스릴 때에도 여전히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 차별법이 존재했었다.
아버지가 목사님인 가정에서 태어나 종교개혁을 일으킨 독일의 '마틴 루터'와 같은 이가 되라고 지어주신이름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이름처럼 된다는 말이 맞는것일까. 백인과 버스를 탈 때에도 백인 지정석에는 앉을 수 없고 공원과 도서관조차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던 당시 흑인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편견을 깨기위해 잘 다려진 옷을 입고, 공부에서 뒤지지 않기위해 두번이나 월반한다.
법을 공부해 새로운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될까 고민도 했지만, 그는 신학을 공부한다. 미국 북부에서 공부하면서 흑인도 존중해주는 그 분위기에 머물까 생각도 했지만, 그는 흑인의 권리를 찾기위해서 공부하고 꿈꿔왔던 그것을 실현시키기위해 갓 결혼한 신부와 함께 남부로 내려온다.
그렇게 앨러배마 주 몽고메리에 있는 한 교회에 목사로 부임한것이 그가 26세 되던 해.
가난한 자를 돕고, 흑인들을 돕던 그는 이듬해 로자 파크스 부인이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것으로 인해 흑인 분리법 위반죄로 체포되자 버스 안타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소로의 책에 나온 철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운 불복종 운동을 보며 흑인 인권운동의 방향이 어떠해야한다는것을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의 동등함을 믿으며 말이다.
버스 타지 않기 운동이 1년여동안 지속되고, 드디어 남부에서도 흑인 차별법이 개정된다.
워싱턴 평화행진에서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하며 흑인의 권리가 흑인만이 주장하는 것이 아닌 백인들도 같이 응원하는 것임을 보게된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것이 그가 36세때의 일. 당시로서는 가장 젊은 노벨상 수상자였다.
흑인의 인권이 인정될 수록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테러와 폭력도 심해졌다. 그러다, 1968년 39세의 나이로 암살을 당하며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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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생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갔다는것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생애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39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결코 작은 무게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안락한 삶 이상으로 이웃과 다음세대의 삶을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알리고 주장했던 삶.
지금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그의 삶처럼 나와 아이들의 삶도 그런 울림을 주는 삶이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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