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6%
  • 리뷰 총점8 14%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9.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전설은 진화하여 대중화제국의 신화로 거듭나다.
"전설은 진화하여 대중화제국의 신화로 거듭나다." 내용보기
총 8권으로 구성된 [중국의 형상]은 중국 하문대학 교수인 쩌우닝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방의 눈에 비친 중국의 형상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서양이 본 중국의 모습은 거짓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그들의 눈에 비친 중국의 형상이 어떻게 생성되고 진화되었으며 또한 그런 형상이 가진 의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서방에서 중국에 관한 전설은 옛날 고대 그리
"전설은 진화하여 대중화제국의 신화로 거듭나다." 내용보기

8권으로 구성된 [중국의 형상]은 중국 하문대학 교수인 쩌우닝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방의 눈에 비친 중국의 형상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서양이 본 중국의 모습은 거짓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그들의 눈에 비친 중국의 형상이 어떻게 생성되고 진화되었으며 또한 그런 형상이 가진 의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서방에서 중국에 관한 전설은 옛날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비단의 나라라는 세레스의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전설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었다.

 

13세기 몽고는 구대륙을 정복했다. 몽고의 정복으로 찾아온 세계평화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두 문명이 하나가 되는 길을 열었다. [마르코폴로의 여행기]가 출간되자 많은 유럽인들이 모험을 찾아, 영혼을 찾아 그리고 부를 찾아 대 칸의 나라를 향해 떠났다. 이러한 여행은 유럽인들의 세계관념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한쪽 구석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세레스의 전설은 키타이의 전설로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흔히 지구적 문명의 기점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은 서기 1500년이라고 한다. [중국의 형상] 1권이 키타이의 전설을 다루었다면, 2권은 이러한 지리대발견시대 즉,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인들이 품었던 중국의 형상을 다루고 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의 지원으로 키타이의 전설을 찾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인도에 도착하면 대 칸의 수도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구대륙 인도를 찾으려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발견한 곳이 신대륙이란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바스코 다 가마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았다. 인도 구대륙으로 가는 해로를 개척한 것이다. 이렇듯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당시 유럽인들의 항해의 최종목적지는 중국이었다고 한다. 무역과 해적질을 겸하면서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장악한 이베리아 인들은 그러나 중국해안에 이르러서는 똑같이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중심으로 그리고 반세기 늦게 중국과 접촉한 스페인은 필리핀을 점령하고 중국과의 교역을 시작하고자 했으나 중국해안에서 패퇴 당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570년 도미니크회 선교사 크루스가 펴낸 [중국지]는 유럽에서 출판된 첫번째 중국관련 전문저작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이 중국에 도착했을 때 현실의 중국은 유럽인의 관념 속에 중국과는 달랐다. [중국지]는 키타이 전설 이후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중국형상, 다시 말해 곧이어 등장하게 될 대중화제국 형상의 기본적인 위치를 결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로소 중국형상의 역사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어 교황의 명령에 따라 1585년 집필된 멘도사의 [대중화제국지]는 완벽하고 우월한 중화제국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멘도사는 [대중화제국지]에서 지고지선의 중국형상을 제시하였으며 이런 현상과 배치되는 자료는 회피하거나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갔으며, 자료가 부족한 경우에는 기꺼이 상상으로 보충했다고 한다. 결국 [대중화제국지]는 이후 2세기 동안 유럽의 중국숭배 사조에 지식과 가치를 제공하는 시발점이 되었고, 16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서방은 세레스 신화로부터 키타이 신화로, 다시 중화제국 신화에 이르기까지 중국형상의 연속적인 전환을 완성했다고 한다.

 

16세기가 이베리아인의 세기였다면 17세기는 네덜란드인의 세기라 말한다.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동방무역을 장악하였고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중국과의 교역을 했지만, 그들 또한 중국의 무역상집단에 패배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서방인의 중국과의 접촉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선교사 들이었다. 서방인들의 원양항해는 중국과의 교역도 중요했지만 기독교를 위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는 역법을 비롯한 과학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었고, 이러한 한계는 그들이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베리아 인들과 네덜란드 인들이 주도하던 유럽의 확장과정에서 종교적 열정은 세속적 열정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의 깊고 두터운 문화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와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유럽인들의 중국형상은 전설과 역사가 뒤섞여 있었다고 한다. 키타이와 현실 속의 중국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이상화된 대중화제국의 형상이 등장했다. 중국의 형상은 하나의 전설에서 또 다른 전설로 나아갔다. 세레스 신화가 키타이 신화를 거쳐 중화제국의 신화로 이어지며 역사정신과 도덕적 색채가 스며들자, 부와 왕권으로 물질화 되었던 키타이 형상이 정신적 지혜와 도덕적 질서라는 중화제국 형상으로 진화된 것이다. 17세기 들면서 공자의 중국형상이 유럽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화문명은 전설이 아니라 문예부흥시대의 유럽에 자기초월적인 모범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중국형상이 이제 철학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이어질 계몽의 시대, 과연 중국의 형상은 또 어떻게 진화해갈지 궁금해진다.

 

[중국의 형상]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바라보는 중국의 형상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시대별로 분명 달랐을 형상이 지금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한중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서방이나 타자의 눈에 비친 우리의 형상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진다.

k*****1 2016.07.04. 신고 공감 8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쩌우닝(저) | 박종일(옮김), <<중국의 형상 1·2>>(인간사랑, 2016)
"쩌우닝(저) | 박종일(옮김), &lt;&lt;중국의 형상 1·2&gt;&gt;(인간사랑, 2016)" 내용보기
쩌우닝(저) | 박종일(옮김), <<중국의 형상 1·2>>(인간사랑, 2016)         <<마르코폴로 여행기>>(1298년 경)가 세상에 나온 후로 7세기 동안 서방의 여러 문한이 만들어 낸 중국 형상은 하나의 관념적 전통을 형성하였다. 그 속에는 연속과 계승도 있고 변이와 단절도 있다. 서방의 중국 형상이 전통이 생성되고 진화하는 과정과 그것이 갖는 여러 가지 의의를 살펴
"쩌우닝(저) | 박종일(옮김), &lt;&lt;중국의 형상 1·2&gt;&gt;(인간사랑, 2016)" 내용보기

 

쩌우닝(저) | 박종일(옮김), <<중국의 형상 1·2>>(인간사랑, 2016)

 

 

 

 

<<마르코폴로 여행기>>(1298년 경)가 세상에 나온 후로 7세기 동안 서방의 여러 문한이 만들어 낸 중국 형상은 하나의 관념적 전통을 형성하였다. 그 속에는 연속과 계승도 있고 변이와 단절도 있다. 서방의 중국 형상이 전통이 생성되고 진화하는 과정과 그것이 갖는 여러 가지 의의를 살펴보는 것이 본 총서 <<중국의 형상: 서양의 학설과 전설>>의 목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 문화는 현대와 과정에서 서방 중심의 정치 경제적 질서 속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서방 중심주의라고 하는 문화 관념적 세계질서 속에 진입했다.” (본문 p. 9)

 

 

 

 

 

 

“한 시대의 빛나는 업적이란 실제로는 잊혔던 이전 시대의 성취가 제한되었을 뿐인 경우가 있다. 북쪽 육로(초원길), 남쪽 육로(실크로드), 남쪽 해로(해상 실크로드)는 모두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공간을 건넜을 때 시간도 건넜다.” (본문 p.201)

 

 

세계사에 꽤 관심이 있었던 학창시절을 잠깐 떠올려봤지만 기억이 전무하다. 아마도 오래 전에 지워진 것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나는 ‘초원길’과 ‘실크로드’란 단어 자체를 무척 좋아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새롭고 아름다운 문장 한 줄을 플러스하고 싶다. “여행자들은 공간을 건넜을 때 시간도 건넜다”는 저자의 잠언 같은 문장을 말이다. 나는 그것을 내 기억의 칩에 서둘러 저장하였다. 이 책은 자꾸만 밑줄을 긋게 만들고 기억의 칩을 수시로 열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너무나 취약해서 진실을 믿지도 않고 환상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못한다. 오도릭을 성자로 생각한 사람들은 그가 동방에서 본 ‘기적’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중략) 이때 명의 홍무 황제는 “나무 조각 하나라도 바다에 띄우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돌궐의 왕공과 이집트의 술탄이 지중해 해상무역을 독점했다.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후추 가격은 짧은 시간 안에 몇 배로 뛰었고 유럽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본문 pp.286~287)"

 

 

 

 

 

 

"중국제국은 방대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흡인력이 있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였고 천자는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통치하고 있었다." (본문 p.152)

 

 

서방 문화 가운데서 중국은 단순히 동방의 현실이 아니라 엄숙한 상징이었고 앨리트 문화 내부에서는 일종의 사회적 이상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서방은 종교분쟁, 경제적 빈곤, 전란과 황폐, 폭군의 정신병적인 파괴 때문에 지쳐 있었다. 행복, 질서, 공정 등이 현실 세계에서 존재한다면 세계의 변두리인 머나먼 어떤 나라에나 있는 게 분명했다. ‘인도의 안개’가 걷힌 뒤에 남은 것은 향로와 코끼리뿐이었다. 이 무렵 유럽인들은 인도를 도덕과 덕행이 음식물과 마찬가지로 쉽게 부패하는, 질병과 악행이 휩쓰는 열대의 나라로 인식했다. 중국은 달랐다. 피상적인 지식에 기댄 그들은 평화롭고 공정하며, 풍족하고 행복한 사회를 중국에서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중국은 결코 지나간 시대의 전설이 아니라 역사의 현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총서는 중국 형상을 서방문화가 ‘타자’를 표현하는 담론으로서 파악하고 마르코 폴로 시대 이후 7세기 동안 서방의 중국 형상이 생성되고 진화한 과정을 탐구한다. 즉 ‘문화적 타자’와 관련된 담론으로서 서방의 시야에 등장한 중국 형상이 언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어떠한 언어 환경 속에서 발생·진화·단절 혹은 연속 계승되었는지 관찰하고 보여준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식과 상상으로서의 중국 형상이 어떻게 서방 문화 안에서 규범화되고, 체계화되었는지, 어떻게 권력에 침투하고 권력을 발휘했는지, 어떻게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와 전 지구의 이념의 필수요소가 되었는지 세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책은 제목과 달리 술술 읽혔다. 가독성이 정말 좋았다. 마치 대하소설을 읽고 난 후의 기분과 흡사하였다. 방대하면서도 함축미가 있고, 학술적이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무척 신선한 구성이었다. 중국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풍덩풍덩 빠져들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말이 나도 몰래 입술을 밀고 나왔다. 그때였다. 내 호기심을 한껏 고조시켰던 이야기들이 앞다투어 우르르 쏟아졌다. -by, Ⓒ 심은유

  

m****0 2016.06.23.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의 형상 2, 대중화제국 - 쩌우닝
"중국의 형상 2, 대중화제국 - 쩌우닝" 내용보기
앞서 <키타이의 전설>이라는 부제의 1권에서 중국에 대한 형상을 전설과 동경의 대상으로 서술하였다면, <중국의 형상2 - 대중화제국>은 지리적인 발견에 따른 실제 중국과의 접촉을 통하여 서양의 중국에 대한 형상이 점점 구체화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16세기에서 17세기는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로 표현을 한다. 유럽의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설명되는 이 시기와
"중국의 형상 2, 대중화제국 - 쩌우닝" 내용보기


 앞서 <키타이의 전설>이라는 부제의 1권에서 중국에 대한 형상을 전설과 동경의 대상으로 서술하였다면, <중국의 형상2 - 대중화제국>은 지리적인 발견에 따른 실제 중국과의 접촉을 통하여 서양의 중국에 대한 형상이 점점 구체화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16세기에서 17세기는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로 표현을 한다. 유럽의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설명되는 이 시기와 중국의 형상은 어떠한 관계로 다루어지고 있을까? 


 '대항해시대'는 유럽의 적극적인 항로 개척으로 표현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들이 이러한 항로 개척에 열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으로 본다면 키타이의 전설이 마르코 폴로의 여행으로 조금씩 형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슬람 세력에 의하여 육로로 직접 접촉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 칸의 제국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동방과 서방이 직접 연결된 시점에서 원의 멸망과 이슬람 세력의 발호로 인하여 서양은 지중해를 통한 간접적인 접촉에만 만족을 해야 했다. 경제적인 부분도 역시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독점하고 있는 지중해 무역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항로 개척을 통하여 중국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것은 바로 서방이 중국의 형상을 물질과 부에 대한 동경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촉발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결국 '키타이의 전설'이 그들의 신항로 개척에 동인(動因)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결국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이 먼저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로 향하는 향로 무역로를 개척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획득하게 된다. 이어 스페인과 17세기의 네덜란드가 차례로 향로 무역의 주도권을 획득하면서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중국과의 조우가 일어나게 된다. 이 시점은 그동안 중국에 대한 형상을 전설로만 알고 있던 서양이 지리라는 구체화로 중국에 대한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게 됨을 의미하게 된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부에 대한 열망은 유럽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무역으로 풀어내려고 하지만, 그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이 강제로 점령을 하여 무역을 한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 바로 중국이었던 것이다. 


 당시 스페인의 필리핀 총독이 필립 2세(펠리페 2세)에게 중국에 대한 원정을 주장하는 의견은 바로 중국의 형상에 대한 서양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동안 <키타이의 전설>로 대변되는 중국은 결국 서양에게 있어서는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이외에는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필립 2세가 그러한 제안을 일축했던 것이 다행스러울정도로 서방은 중국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한 서양의 한계는 선교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형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전의 마르코 폴로와 같이 극소수의 인물을 통하여 중국을 접하면서 전설로서 중국을 인식하였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새로운 무역 항로를 통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의 접촉을 구체화하면서 전설이 아닌 역사로서 중국의 형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형상의 역사 시대가 시작되었으나 전설 시대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단기간 중국에 돌아간 선구자들은 자신이 듣고 본 바를 유럽에 알렸다. 크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략) 그가 쓴 <중국지>는 15년 뒤에 나오는 <대중화제국지>의 기초자료가 되었고 <대중화제국지>는 그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p. 133 -

 이 시기에 쓰여진 이러한 서적들은 과거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과 비교하여 좀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중국을 유럽인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바로 중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선교사에 의하여 더욱 그러한 중국의 형상이 구체화된다. 이들은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이 중국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중국에서 포교 활동을 하기 위한 발판을 다지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의 시기까지 선교사들은 애초 그들의 목적인 포교는 쉽게 이루지 못한다. 중국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함께 들여온 서양의 과학이라든지 실용 학문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선교사는 애초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서양과 중국의 과학과 문학, 사상의 접점을 제공하게 된 셈이다. 또한 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본 내용이 바로 당시 중국의 형상에 대한 서양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러시아와의 네르친스크 조약에 기여할 정도로 청나라의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게 된 그들의 시선이야말로 당대 서양인 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중국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모습은 멀리 떨어진 서양의 교황이 중국의 신자들에게 제사를 금하면서 그동안 선교사들이 중국에 닦아놓은 기반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것으로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국의 형상 2 - 대중화제국>은 그동안 전설로만 인식되던 중국의 형상이 지리적인 항로의 발견으로 인한 조우와 무역과 포교를 통한 문화, 사상의 교류를 통하여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서양의 중국의 형상에 대한 관점을 다루고 있다. 시기적으로 14세기에서 17세기의 형성된 이러한 서양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아마도 서양의 르네상스와 계몽운동과 연관지어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중국의 형상에 대한 서양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이전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앞서 1권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과연 쩌우닝 교수는 그러한 유럽의 거대한 역사의 모습을 중국의 형상이 어떠한 동인 또는 타자의 모습으로 서양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게 될지 무척 기대가 된다.

g*******7 2016.07.04.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물질세계에서 철학세계로 ㅡ대중화제국 ㅡ중국의 형상 2
"물질세계에서 철학세계로 ㅡ대중화제국 ㅡ중국의 형상 2" 내용보기
중국의 형상 2 : 대중화제국 ㅡ쩌우닝 지음 , 박종일 옮김사실 두 권을 읽으며 좀처럼 이야기의 핵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였었다 . 왜일까 ... 너무 궁금한 나머지 신청한 책인데 도무지 내 것처럼 와닿지 않는 남의 이야기 인 건 확실히 ,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중국과 저 유럽 열강의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한 점의 축으 로도 거론되거나 밝혀지지 않을 고려의 모습을
"물질세계에서 철학세계로 ㅡ대중화제국 ㅡ중국의 형상 2" 내용보기
중국의 형상 2 : 대중화제국 ㅡ쩌우닝 지음 , 박종일 옮김

사실 두 권을 읽으며 좀처럼 이야기의 핵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였었다 . 왜일까 ... 너무 궁금한 나머지 신청한 책인데 도무지 내 것처럼 와닿지 않는 남의 이야기 인 건 확실히 ,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중국과 저 유럽 열강의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한 점의 축으 로도 거론되거나 밝혀지지 않을 고려의 모습을 생각하니 남의 가려운 등 긁어주며 시원타 하는기분이랄까? 흐흣 ~ 그랬는데 읽다보니 중국과 거란 , 그러니까 이 책에서 처음 회자되는 최초의 키타이는지금 의통합 된 중국으로의 모습이 아닌 우리 입장에선 원나라로 망할 조공, 역조공의 현상을 만들어 낸 비단이 더럭 생각나고 울컥증을 일으키면 서 차라리 다행이네~ 하는 나를 보자니 나역시 선택적 망각을 하려고 하는 인식의 우를 범하고 있더라는 ...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자 하는 것이 역사나 나라 는 아닐게다 . 있는 그대로를 한번 쯤 짚어내 주는 것 도 중요한 일이기에 그 환기를 위한 노력 으로 알고자 하는 것이고 배 우고자 하는 것일터 . 좁은 내 인식에서 벗어나 세계의 태동을 그 약동 하던 때를 들여다 보기로 한다 .
이미 계속 서방국의 이야기들이 바란점을 통해 그들의 욕망을 읽었듯 이 중국은 계속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겠다 . 자의로 든 타의로든 ,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의미에서든 , 아직 먼 르네상스시 대 대신 만들어 낸 한 모델로의 이상 국가로 대중화제국이었던 중국을 다른 의미의 전설에서 전설로 ㅡ항해사는 이제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연다 . 여전히 키타이의 전설을 따르고 있는 그들이지만 예상 못한 수확과 예상범주의 수확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들은 당시 그 사실은 알수 없었다는 것이고 이 밖에서 독자로 읽는 나로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 는 속담을 기막히게 이해하고 있는 중였다 . 처음이
란 그런 거였고 말이나 글이 상상력이 만들어 낸 어떤 곳에 대한 막연한 지식은 계속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이기도 했나보다 . 전혀 엉뚱한 신대륙 (아메리카 대륙)을 중국이라 우기는 콜럼버 스의 간절함 . 함부로 비웃을 수도 없는 거였고 , 그 대단한 발견이 그땐 그로서는 수치였단 것도 비웃을 수 없었다 . 당시에 바스코의 업적 이 가시성으로 더 있어 보였을 거라는 입장을 밝히고 이후 마젤란이 동서로 각기 항해한 둘의 길을 잇겠다는 꿈을 가진다 . 그 세기 동안 동방안 중국과 서방은 계속 안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 여전한 건 향료 가 비싼 수입의 원천이라는 것이고 유럽은 중국에 대한 원정을 꿈꾸었다는 것 . 그러나 그 광활한 땅에 많고 많은 부족이 갈리고 전투적인 민족들이 살아온 만큼 호락호락 할 리가 없었고 , 그건 아무리 사납다는 스페인 , 포르투갈도 중원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 그런 그들이 계속해서 포기 못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선교사업으로 중국인을 교화하려는 시도였다 . 그러다 결국은 중국에선 중국인의 입장으로 먼저 변하고 그다음 포교를 해야한다고 바꾸기 시작 한다 . 하지만 그 전 에 거류하는 것부터가 항상 문제였나보다 . 하긴 우리나라 고려인이 외국인을 본다면 ㅡ그들이 다짜고짜 신을 믿으세요? 하면 지금의 도를 아십니까 ? 와 뭐가 다를까 ...ㅎㅎㅎ 마태오 리치의 무던한 노력이 애잔하게도 보였던 부분이다 . 각 국은 중국과의 교류문제를 놓고 전투적 위치로 대할지 우호적 위치로 중국을 대할지를 놓고 신하 ( 멘도사)된 자와 (필립2세)왕이 이견을 나눴다 .
16세기가 이베리아 인의 세기였다면 17세기는 네덜란드인의 세기로 동방 무역체계에 온 변화로 중국해안은 또 한번 변화의 파도를 맞는다 . 바로 교과서 속 활자로 누워있다가 홍차와 커피의 세계로 입체적 모 습을 가지게 되는 그 동인도 회사 . 처음 부터 차가 주 수출입 품인건 아녔지만 , 이들은 확실한 두뇌 플레이로 네덜란드 사절단이 되서 중 국 황제를 알현하고 이후에는 상품의 구성도 다양화해서 아시아와 유럽무역의 선두에 섰다 . 반세기 뒤에야 영국이 동방 확장에 들어선다 . 중국의 입장에서 서방은 귀찮고 성가신 나라들이다가 가끔씩 필요했는데 그것들은 주로 과학 이나 의학 기술적 부분에 관한 것들이라 할
만했다 . 의식이 다른 생활양식에서 온 차이로 침대와 온돌 처럼 다르 다면 달랐던 양방과 한방이니 이 쪽에서 얼마나 틀린가를 검증하려면 배워보는 수 밖에 없으니 , 강희 황제는 선교사로 부터 과학을 배운이 유를 놓고 오히려 서양에선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였다 . 누가 고루하 고 고지식한건지 ...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 키타이 전설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중화제국으로 절반은 허구였던 중국을 현실로 중국 형상은 겨우 물질적 면으로만 확정이된 정도 였다 . 한세기 전 멘도사신부가 대중화제국 형상의 기초를 놓고 이후 여러 사람들이 발자국을 내서 지리적 역사적 형상을 확정했으나 아직 정신의 면 , 중국의 철학이라
할 만한 부분엔 닿지 못하고 있었다 . 17세기 마지막 25년에 그것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 바로 " 공자의 중국 " 으로 중국의 형상이 철학의 시대로 들어서며 그것은 앞으로 혁명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하니 그건 더 들어 보면 될 듯 .( 3 권 이후 계속? ㅎㅎ;) 라이프니츠가 격앙되어 읊는 말을 보라 ~ " 운명은 절묘하게도 인류 최고수준의 문화와 기술 문명을 우리 대륙 양쪽 끝에 배치해 놓았다 " 라니... ㅎㅎㅎ 중간은 샌드위치 속 재료? ( 농 담 ) 이렇게 2권까지 드라마틱한 중국과 서양의 찔러보기 역사를 순식간에 읽었다 . 나머지 역사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
다만 1권의 마르코 폴로와 라반 사우마 등 의 이야기가 다소 등장 체계가 동분서주해서 ~^^ 그게 조금 아쉬운 점 이었다고..
2권부터는 엄청 가독성 있게 읽히고 재미 또한 상당하다는 것 ~^^
드라마틱한 대륙간의 과거가 이렇게나 흥미진진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 다음권 읽어야 겠네요!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갈수는 없으
니까 .. 말예요!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7 2016.06.30.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의 형상 2
"중국의 형상 2" 내용보기
예전에 EBS 에서 동과 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두고서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등을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확연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신기했었네요. 서양은 그리스, 로마라는 큰 축이 있고, 아시아에는 중국, 인도 등 또다른 축이 있는데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시간만큼 격차도 큰 것 같아요. 그나
"중국의 형상 2" 내용보기

예전에 EBS 에서 동과 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두고서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등을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확연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신기했었네요. 서양은 그리스, 로마라는 큰 축이 있고, 아시아에는 중국, 인도 등 또다른 축이 있는데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시간만큼 격차도 큰 것 같아요. 그나마 오늘날에는 비행기를 타면 왠만한 곳은 하루 안에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유럽에서 아시아 또는 아시아에서 유럽을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거니와 무작정 길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몇 개월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길을 목숨을 담보로 하여 떠났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와 모험심을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은 없나봐요. 근처 지역끼리 조금씩 교류가 이어지기 시작했고,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드디어 서양과 동양이 만나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형상 1 - 키타이의 전설이 전설 속의 중국에 대한 이야기라면 2 - 대중화제국은 현실에서 만난 중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지중해 시대가 저물고 대항해 시대로 나아가기 시작하는데 점점 항해할 수 있는 범위가 동쪽으로 넓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유럽인이 갈 수 있는 곳과 중국인이 갈 수 있는 교차점에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중국에 대한 내용들은 전설이 사실로 바뀌게 됩니다.


대항해시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앞정섰는데 점점 경쟁이 격화되자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 특정 경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갈이 차지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처음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갔고 거기서 무역 거점을 마련한 후 본국에서 살던 식으로 도시를 만들고 교회당도 세웠네요. 이후 드디어 중국 남부 해안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바로 본토에 상륙할 수 없어 마카오 섬을 점령해 중국과의 교역 기지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400여년의 시간동안 지배를 하고 있다가 1999년에 중국에 다시 반환하였는데, 오랫동안 빼앗긴 영토였던 만큼 중국인 입장에서는 감개무량 할 것 같아요.


상인들과 함께 기독교 신부들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을 기독교화 하기 위해서 순교의 위험도 불사하며 포교를 하였고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까지 올라가 황제를 알현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도 친숙한 마테오 리치 신부가 등장하네요.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교황청에서는 수천년을 이어온 중국의 전통 문화를 무시한채 공자에 대한 숭배나 부모에 대한 제사 등을 금지하도록 결정함으로써 결국은 기독교의 싹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짓밟히네요.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중국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빠르게 유럽으로 전파될 수 있었고, 네덜란드, 영국 등 새로운 나라들이 중국에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또 공자의 사상에 대한 책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었는데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 무척 컸다고, 이후 중국에 대한 열풍은 더 거세지게 됩니다.


아시아 지역은 거대한 중국에 가려져 있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약한것 같은데 유럽은 수많은 나라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면서 그만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도 컸던것 같아요. 3권부터는 유럽 각국이 본격적으로 아시아에 진출을 하면서 문화적인 교류도 활발해졌는데 어떤 중국의 모습을 보게되었을지 기대되네요.

p***s 2016.06.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리대발견 시대의 중국 형상, 대중화제국
"지리대발견 시대의 중국 형상, 대중화제국" 내용보기
이번 2권에서는 지리대발견 시대(대략 1450~1650년)에 서방이 본 중국 형상을 살펴본다. 이 시기는 스페인과 포루트갈 등 이베리아 확장의 시대이기도 했다.지리대발견의 시대는 1490년부터 서막을 열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았다. 중국은 지리대발견 시대 동서 항로의 종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 해안이었
"지리대발견 시대의 중국 형상, 대중화제국" 내용보기

이번 2권에서는 지리대발견 시대(대략 1450~1650년)에 서방이 본 중국 형상을 살펴본다. 이 시기는 스페인과 포루트갈 등 이베리아 확장의 시대이기도 했다.

지리대발견의 시대는 1490년부터 서막을 열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았다. 중국은 지리대발견 시대 동서 항로의 종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 해안이었으며 또한 유럽(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 확장의 끝이었다. 필리핀, 마카오 같은 식민지가 개척되고, 금과 은, 향료를 실어날랐고 기독교 전파를 위해 신부들이 중국에 건너왔다. 이 시기 이상화된 '대중화제국'의 형상이 등장했으니...


키타이 전설의 주역이 마르코 폴로였다면 이 때는 마테오 리치였다. 마테오 신부의 뒤를 따라 서양의 문물이 들어와 중국과 교류했다. 전설의 시대에서 역사의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키타이 전설 이후로 새로운 중국 형상이 점차로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크루스가 쓴 중국지였다. 중국지는 1570년에 간행된 유럽 최초의 중국 전문 저작이었다. 1585년 멘도사는 크루스의 책을 대폭 인용하면서 대중화제국지를 발간했다. 멘도사의 책은 체계적이고 풍부한 중국 지식을 제공했다.

 

멘도사의 책은 어떤 부문에서는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서방 문화의 시야 속에 전면적이고 권위 있는, 또는 표준적 가치를 갖는 중국 형상을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멘도사의 책은 키타이의 전설에서 '대중화제국'의 형상을 완성시키는 역작이었다. 이때부터 서방의 문헌과 문화 속에서 역사화되어 온전한 형상을 갖게 되었다.

 

특히 저자 쩌우닝 교수는 '공자의 중국'이 등장하게 된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부흥으로 현대 문명의 첫발을 내디딘 유럽에게 필요했던 사회 개조의 동력원이 바로 중국 형상이었다. 또한 당시 중국 형상은 엘리트 문화에 어떤 사회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했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이 그런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6.08.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 서평] 중국의 형상2 '대중화제국' - 중국인이 쓴 서양의 중국사 비판
"인문 서평] 중국의 형상2 '대중화제국' - 중국인이 쓴 서양의 중국사 비판" 내용보기
[인문 서평] 중국의 형상2 "대중화제국" - 중국인이 쓴 서양의 중국사 비판세계 역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서양의 관점은 동양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편협하게 바꾸어놓았다. 비교 문화를 연구한 저자는 이러한 서양의 관점을 형상이라는 주제를 사용하여 비판한다. 중국을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의 안경으로 보고 있는 서양인들의 중국 역사 인식이 무엇이
"인문 서평] 중국의 형상2 '대중화제국' - 중국인이 쓴 서양의 중국사 비판" 내용보기

[인문 서평] 중국의 형상2 "대중화제국" - 중국인이 쓴 서양의 중국사 비판




세계 역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서양의 관점은 동양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편협하게 바꾸어놓았다. 비교 문화를 연구한 저자는 이러한 서양의 관점을 형상이라는 주제를 사용하여 비판한다. 중국을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의 안경으로 보고 있는 서양인들의 중국 역사 인식이 무엇이 문제인가를 말하고 있다. 중국의 형상은 2004년 중국에서 출간되었으며 총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1권과 2권을 소개함으로써 서양의 동양인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권에 이은 2권에서는 '대중화제국'이라는 제목으로 16세기와 17세기에 이르는 이베리아 확장시기에 서양이 이해하는 중국에 대한 개념을 말하고 있다. 

서양이 동방의 끝, 비단의 나라에 대한 환상이 시작된 이래 그곳을 정복해 부을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여정이 있었다. 그러나 번번히 그 앞길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면서 중국은 신비의 대륙으로만 존재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1500년대를 문명의 새로운 시점이라고 보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때문이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과 다시 돌아 온 후 희망봉을 넘어 인도에 이른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 원인은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전제로 중국을 남들보다 빨리 찾아가려는 콜롬버스의 생각때문이다. 사실 그의 생각이 틀렸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을 찾으려다 발견한 신대륙 아메리카는 세계사의 지형을 완전히 바뀌어 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중국을 찾게 된 서양의 노력은 그들의 세계관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생각이 여러 세계의 한 부분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세계를 정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던 서양의 노력이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 중국이다. 그들이 정복의 최종 목표였던 중국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벽에 부딪힌 그들이 중국에서 보게 된 것은 평화롭고 문명이 발달한 모습이다. 고상한 도덕과 유구한 문화를 가진 민족, 기묘하고도 오래된 문자를 가진 국가, 깊고 넓은 뜻이 있는 격언을 가진 사회인 중국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넘을 수 없는 두 사회를 잇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 선교사들이다. 기독교를 중국에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역에 뛰어들었던 그들은 선교보더 먼저 중국화를 시도하였다. 중국사람에게 선고사들은 기독교라는 생소한 종교를 전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서양의 신기한 산물을 가지고 온 이국사람으로 비쳐졌
다. 유명한 마테오리치신부도 신부로 인식되기보다는 서양에서 가지고 온 신기한 물건인 시계를 수리하는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서양에 전해준 이야기들은 서양이 가지고 있던 지리적 중국이라는 인식에서 문화적 중국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 왜곡된 시각으로 과장되게 이해되었던 중국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바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결국 19세기 제국주의의 시작과 함께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이 가진 세밀한 분석은 서양이 가진 중국의 인식을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결국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말한다라고 하는 원칙만이 진정한 역시민족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중국의 형상 시리즈를 읽으면서 "그럼 우리는"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 생각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g*****n 2016.06.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