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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 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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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의 은유이다. 또한 수신자의 해석이 필요한 텍스트이다.(모든 텍스트, 즉 전부의 질서와 같이 불규칙한 굴절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다) :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내가 읽어 나가고자 하는(정확히 말하면 왜곡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책의 제목임과 동시에 '생소한' 기호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하는 본원적 물음이다. 이런 식으로 짧
"기호학 훔치기" 내용보기
이 글은 기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의 은유이다. 또한 수신자의 해석이 필요한 텍스트이다.(모든 텍스트, 즉 전부의 질서와 같이 불규칙한 굴절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다) :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내가 읽어 나가고자 하는(정확히 말하면 왜곡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책의 제목임과 동시에 '생소한' 기호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하는 본원적 물음이다. 이런 식으로 짧은 명제인 책의 제목의 내포의 영역을 밝혀 나가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이 미지의, 정박 불능한 기호의 세계를 탐구하고 우리(cage)를 설치/해체하는 모호함을 축소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학문이 바로 기호학이다. 여전히 생소한가? 자 이제 이 기호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나 검토해볼 차례이다.

 

내 주변의 기호학적 풍경

 나는 인간이다. '인간의 몸은 약 10의 14제곱(10/14)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라는 기호로 환원될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나무 책상, 80% 정도 작성된 노트, 음악이 흘러 나오는 스피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연필, 스피커 위에 올라가 있는 휴지 등 이 모든 것, 심지어 나의 웃음소리와 한숨도 기호다. 나는 기호 소리를 내며 기호를 내쉬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의식에 포획 당한 모든 것이 '기호'라고 서술될 수 있다.

 

기호학, 왜 필요한가?

우리나라에는 기호학이라는 학문이 잠시간 유행했기에, 주류 학문이라고 평가 받진 못하기에, 그만큼 대중적 접근성이 낮고 제한적이기에 '기호학'이라는 기표는 '생소함'이라는 기의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기호학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에 기호학에 익숙한 학자들은 세계 그 자체를 기호학적 관점으로 면밀히 검토한다. 에코와 보드리야르는 '기호학 = 모든 것'이라고 하였다. 이 현자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기호의 울타리를 결코 넘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호학을 전혀 접해보지도 들어보지도, 아니면 의도적으로 거부한 자들에게 기호의 세계에 입주하라고 강요할 수가 있을까? 기호학 입장 티켓, 그것은 무료 쿠폰만큼의 즐거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일단 티켓을 받아 보기로 하였다. 이 선택이 유익한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기호학을 배우는 이유는 조건반사를 의심하기 위함이다. 이때 신호반응은 상징반응으로 대체 된다.'며 입문자들을 유혹한다. 기호학자들의 기호학적 글쓰기는 기호학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들은 기호학적으로 패배하지 않기 위한 글쓰기 방식을 구사한다. 기호학자들은 '윤리'를 지향한다. 그 윤리란 기호의 본질적 모호함을 최소화 시키고자 하는 지향을 갖는 것이다. 기호의 모호함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 빨간색은 그들의 이념이 승화된 존귀의 색깔이고 붉은 깃발 아래 뭉치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달려가야 하는 흡인력을 가진 색이기도 하다; 붉은 악마? 아니다. 저자는 우리 나라에서의 빨갱이의 부정적 이미지에 반하여 공산주의에서의 빨강은 위와 같은 의미작용을 이룬다는 설명이었다. 이러한 혼동은 잦은 것이며, 이때의 기호학자들의 임무는 붉은 악마가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빨간색'은 상징색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의 처리 방법은 예술가와는 정반대(목적지는 같을지라도)임을 짚어두기로 하자. 조습 작가는 2002년에 '붉은 악마'라는 대국민적 상황의 기호학적 모호함에 '의도적 혼동'(작업 그 자체의 내포)을 일으키는 반응을 했었다.

 

<조습의 작품>

 

기호학-관계를 탐구하는 학문

기호학의 또 한가지 특징을 들자면, 인간 발생적인 관계를 탐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인식'이 기호학적 주체라고 말해질 수 있는데 저자는 '자연기호가 의미를 띠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주어진 기표에 인간적인 기의를 가져다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언급했다. 이때부터 '질서'와 '관계'라는 것이 발생하며, '무질서' 또한 발생한다. 이러한 발생의 연속, 교통정리가 시급하다. '실재'의 시대가 무너져 내릴 때 기호학은 활성화 된다. 그리고 관계를 실용적 목적에 따라 추상화 시킨다. 기호학적 관점에서는 '수사학'이 그저 사기술로 보일 것이 자명하다.(동시에 기호학자들은 전문 수사가이다.) 수사는 '덧붙임'이라는 기호학적 목적과는 반대의 지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소술'은 언어적 궁핍, 극단적 프레그마티즘이라는 병리현상에 다름 아니다. 기호학적 '혼란'이라는 상태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관계의 명료함을 추구하는 모습은 윤택하고 풍부한 기호 생활에 엔트로피 상태를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우려에 에코가 답한다: '기호학은 원칙상 거짓을 말하기 위해 쓰이는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만약 어떤 것이 거짓을 말하는 데 쓰일 수 없다면,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데에도 쓰일 수가 없으며 '말'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실 반, 거짓 반의 이러한 언급(열쇠)은 기호학의 역할증명과 함께 유희적 가능성을 밝혀 준다.

 

코드의 유용함

이제 더욱 부분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들여다 볼 코드는 '코드(code)'이다. 상투어이자 기호학적 핵심 용어인 코드는 기호학의 요주 탐구 대상이다. 코드와 기호의 관계는 마치 열쇠와 자물통의 관계와 같다. 또한 코드는 정보량(세계를 텍스트로, 분절에 의해 무한 증식 가능한 개별 텍스트로 보기에 정보 자체가 인간 두뇌가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을 사람들의 정보 관리능력의 범위 이내로 축소시켜 준다. 하지만 같은 코드-표를 지니지 않은 개인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과 함께 소통 불가능함이라는 코드의 부재의 상황이 발생한다. 코드는 약속이다. 코드의 불일치,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극단적으로 완전한 약속을 계획해야 하는가? 하지만 현실에서의 약속에 대한 욕구는 충만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점에서 기호학자의 한 가지 임무가 더 드러난다. 즉 코드화의 메커니즘과 개별 코드들을 파악하는 것인데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코드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코드의 파악 없이 소원화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기호학자 김경용은 기호학에 입문하라고 유혹한다.)

 

범주화의 폭력적 측면

아직은 코드의 소원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지 않았다. 코드라는 것의 주요 생산품은 '범주'라는 기호학이 관심을 갖는 또 한가지 개념인데, 코드가 완숙해진 상태의 범주화는 상당히 유용한 면이 있지만 그만큼 폭력적이기도 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범주화의 의례, 이것은 코드의 그물망으로 상대를 포획하는 일인데 이러한 유형화는 실용적으로 불필요한 잔여에 대해 '포기'를 할 수 있도록 무게를 실어 준다. 대표적인 예로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 파악하기. 이는 모든 성격차이가 혈액형이라는 주술적 체계로 환원될 수 있는데, 매우 비정상적인 습관임은 물론이다. 개체와 집체의 차이 비교로 검증할 수 있는 대표적 유형이기도 한데, 무작위적으로 뽑은 A형 남자 한 명과 무작위적으로 뽑은 B형 남자 한 명의 성격 차이보다 무작위로 뽑은 A형 남자 두 명의 성격 차이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은 폭력성이 실감되지 않는가? 나치 밑에서는 범주화(유태인이라는 숙명적 '낙인')가 사람의 생사를 결정했다. 동족간의 상처, 남북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입장에서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빨갱이냐 아니냐'. 저자는 "범주들은 저 밖의 현실들 속에서 발견된다기보다는 범주화하는 주체가 발명해 낸 산물이라고 봄이 옳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은 인식 개조의 가능성도 내포한다. 우리는 편의점 NPC(Non Player Character)라 할 수 있는 알바생을 범주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면 '편의점 알바생'이라는 나의 목적성에만 부합하도록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끔 그/그녀가 나에게 반해서 데이트를 요청할 수도 있다. NPC스러운 그들의 이러한 돌발행동은 피로한 동시에 신선하다. 이러한 사건이 더 많아야 범주화 시키는 눈이 자만할 수가 없다.

 

기호라는 위장술 - 자의성의 늪

 기호는 대상체를 시야 밖으로 사라지게 하지만 기의의 미끄러움은 항시 존재한다. 기호계의 혼동스러운 성격에 대한 외면은 착각을 동반한다. 이는 '확고한 체계'로서의 기호학(모든 기호학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한데, 우리는 기호학에 의도적으로 혼동을 줄 못된 장난을 계획해 볼 수 있다.;

 

①누더기(걸인의 지표)를 걸친 <거지 왕자>가 있는가 하면 무일푼인 주제에 빌려 입은 옷, 빌려 탄 차로 재벌 아들을 흉내내는 자가 있다.

②어떤 가난한 다단계 판매 사원은 동창회에 나가서 잘나가는 세일즈맨 역할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할 수 있다.

 

언제나 거짓 기호가 더 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 지구 상에서의 거대한 기호적 역설 : 전 세계 1만 6,500기(2005년 초 통계)의 핵 탄두, 즉 '핵 폭탄'이라는 기호는 역설적으로 '반전'을 함축한다.(핵전쟁은 곧 종말이기에) 기호를 통한 위장술은 유용하지만 유독한 측면이 있다. 우리의 미끄러짐이 뇌진탕으로 직결될 수 있는 것처럼.

 

코드의 한계 - 객관 세계의 불가능성

개별 주체의 의식 상에서 발생하는 개별 기호의 의미 작용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는 객관을 우선시하려고 하지만 합의된 객관 세계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객관이라는 관념의 구조는 개개인마다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이질감을 일으키고, 이질감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초래한다. 대표적인 기호학적 착각을 떠올려 보자. 첫인상이라는 이미지. 이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장 많은 착각을 일으키는 대면의 순간인데, 이러한 사람들 많지 않았는가?: '깡패 같은 순둥이'; 운반체(기표)와 본의미(기의)의 일치 불가능성, 이는 새로운 다원화 사회에 우선적으로 후세에게 가르쳐야 할 코드의 한계에 대한 '코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차이를 다루는 방법의 혁신, 백화점 명품관을 거닐며 타인(중산층 이하)과의 구별짓기의 욕망을 넘어서기. 이는 차이 만들기의 적당한 방법이 아니다. 이러한 명품관 걷기의 선택은, 자발적으로 명품관에 접근하지 않고자 하는 이들에게 급속도로 범주화 되고 있다.; 된장녀, 허세남 등의 용어는 그들을 범주화 시켜 '구별짓기의 욕망'의 가치를 훼손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명품관을 걷는 이들은 자신들이 차이를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화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의식한 그 행위가 효과 없는 시간 낭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드의 객관적 활용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적 현상 - 인공 기호의 세계

기호의 위장술(순화해서 말하면 '자의성')에 대한 불안, 이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주요 명제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보의 조작성/진리의 허구성/권력의 임의성 정도로 말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호 부재의 사회에서는 기표에 대한 충동 연쇄/염원이 일어난다. 이제부터는 이미지(특히 시뮬라크르의 문제) 게임(조작)이 관건이다. 이미지라는 용어는 모든 자연적 심상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는 인공적 이미지라는 이미지의 일부 또는 돌연변이가 이미지의 영역 전체를 침식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 수사의 시대에서 주체적 지위를 갖지 못한 자들은 모호한 수사 아래에서 주술적 신화의 나래를 펼치며 삶의 방식을 정립하려는 잠재적 피해자일 뿐이다.

 

기호학적 윤리

기호의 시대, 기호학의 임무가 막중한 시대가 바로 지금 내가 거주하는 세계이다. 바르트는 '독단적이고 과학적이고 호전적인 사람은 기호학을 악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매체를 살피고 주변을 걷다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본게임에 가담하는 자들. 그들은 기표라는 입장권을 가지고 대중들의 '두뇌'라는 주관적 세계를 악용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가한다. 여기에 전문가들은(더 이상 현자는 없다!) 제한적 코드를 원용하여 '소비자'들은 미숙아로 만들고 총체적인 처방 사회를 지향한다. 이제부터 진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기호학이 내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방향은 '기호학의 윤리'를 정립하는 것이다. 기호학자는 수사학적 사기술을 정교하게 가다듬는데만 자신의 '전문성'을 탕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그들이 시장과 결합하는 악몽에 종종 시달리곤 한다) 그들은 저주이자 축복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기호'의 윤리적 사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구성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포스트 모던 이후'를 구축하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난과 포기가 아니라 표상성 내지는 대표성이 결여하고 있는 것들을 담론에 의하여 채워 나가는 가운데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그 밖에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라고 김경용은 말했다.)

 

기호의 시대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가능성

 기호의 시대에 대한 기호학자적 진단은 기호학자들의 임무이다. 하지만 기호학자들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담론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저자 또한 힘을 실어 준다. 그가 지목한 기호학의 '저편'에 대한 상상은 지극히 자유롭지만 나는 그 영역에 예술가들에게 주어질 어떤 임무가 분명히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하고 싶었다.) 우리 현대인은 필연적으로 기호학을 전유하고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이 예술가라는 것은 직업으로서의 예술가가 아니다. 이는 개념에 대한 예술가적 활용 방식 그리고 예술적 태도(탈코드화의 화신)를 지칭하는 용어로서의 예술가이다. 특히 기표의 세계에서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다. 이미지란 대상체가 마음에 세기는 비슷한 자국(인상)이다. 숲 속에서 무엇인가 재빨리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멧돼지 모습같이 보였다. <멧돼지 같은것> - 그것이 이미지이다. 이 것으로 알 수 없는 변태에 탐닉하는 것을 예술적인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변용하기 위해선 코드라는 틀, 익숙한 족속들을 피안하기 위한 발거둥이 필요하다. 이 때 단일의미체라고 여겨지던 것은 다중의미체가 된다. 이것에 누구든 접속할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허가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공허한 기표를 극복하려는 아무런 의지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이 만든 예술의 효과는 오직 무한한 의미작용의 가능성,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기에 아무 의미 작용도 없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 될 뿐이다. 기호의 필연적 자의성을 졸렬한 기호 제작의 근거로 이용하지 말자! 이때 예술의 천적, '코드'가 스멀스멀 다가오게 된다. 우리 예술가는 기표를 유능하게 활용해야 한다. 코드를 벗어나기 위해선(탈코드화) 코드의 관계적/상황적 해석이 필수적이다. 저자는 탈코드화의 극단을 치닫는 예술이 '추상 미술'이라는 뻔(뻔)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추상 미술 또한 과잉 코딩 되었다. 그것이 캔버스 위에 재현된 코드가 빈약해 보이기에 '코드 해체'로 보일 수 있지만 '추상 미술'이라는 코드가 지금 이 시점에서는 대단히도 선명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론

하지만 생산자의 역할만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반쪽 짜리가 되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삶의 가치의 대부분을 소비에서 찾아야 할 운명에 놓인 우리 소비자(금전적 소비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를 위한 태도를 제안하며 이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먼저 우리는 기호를 재생산할 기회를 언제든 남용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주체 노릇을 하는 송신자는 자신의 이익을 기호가 훼손하지 말아 주길 염원하지만 송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하는 것은 전달된 기표뿐이고, 전달된 기표는 수신자에게 의미를 재생산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해석의 자유는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 아니다. 우리는 해석, 언제나 자동 기계적 해석을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존재이다. 전문가들의 '해석'이 두려운가? 그 이유는 해석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짐작 때문이다. '해석' 행위 자체에는 권위의 발생 요소가 부재하며, 지극히 일상적 행위이다. 권위의 위치는 의미 작용의 '질'에 있으며, 해석이 모든 의미작용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망각할 경우 우리는 '미국의' 어느 학자처럼(손택) 해석에 반대한다고 언술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의미 파악의 포기 선언이다.(노예 입문 과정) 그녀는 분명 이와는 정반대의 함축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모든 해석과 비판 과정이 모순을 포함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모든 것을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그렇기에 해석 중지 명령, 쉽지 않다. 그녀는 예술에게 부과되는 '올바른 해석'이라는 비평가적 의무를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해석이라는 용법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 작용의 필수성, 그리고 창조적 오독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것만 같다. 나는 해석 중지 명령이 아닌 해석 과잉의 상태가 더 건강한 기호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혼란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뿌리채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정체성 그것은 언제나 일종의 비유이다. '혼합 되고 모순 되서 일정한 모습을 띨 수 없음.'; 이것이야말로 기호학적 자아의 본질이며, 시작은 이 사실의 자각이다. 하지만 정체성의 판본이 될 기호를 제작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을 아니다.

 

나는 더욱 적극적인 은유 놀이에 가담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언표는 은유적이다. 과학적 철학적 담론 모두 마찬가지이다. 적절한 은유는 뛰어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나는 ㅇㅇ이다.': 은유는 자기 달성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은유로 '나'라는 모호한 것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의 판도는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기호학자 김경용과 함께 읽은 <기호학이란 무엇인가>의 '말=삶=앎'이라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결론이며, 이 글이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왜곡된 판본, 예상가능한 오독일지 모르지만 '나는 정직했다.'

 

 

q******0 2012.03.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 자신이 기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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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한 갈래인 기호학은 어렵게만 생각되는 학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잡한 기호와 상징체계들..이런 것들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그러나 기호는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손짓 하나하나, 내가 입는 옷 역시 기호이다. 나는 나타내 주고 나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 기호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 기호가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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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한 갈래인 기호학은 어렵게만 생각되는 학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잡한 기호와 상징체계들..이런 것들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그러나 기호는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손짓 하나하나, 내가 입는 옷 역시 기호이다. 나는 나타내 주고 나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 기호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 기호가 아닌 것은 없다. 모든 것들은 기호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호하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기호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기호'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와 같이 기호로 가득찬 세계에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기호학에 대해 쉬운 예들로 설명하고 있다. 성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예들이 조금 철지난 듯한 촌스런 감은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의 기호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기호학은 상징체의 창조와 의미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상징체가 어떤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며,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기호학이다. 기호들은 우리의 일상성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당연한 것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신기한 것이 숨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의 의미가 바뀌면, 우리의 인산성 자체가 바뀐다. 인간과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i*****e 2001.07.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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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재미있는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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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기호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다.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자주 만나게되는 것들을 가지고 기호학을 설명하고 있다. 기호학의 정의를 내려본다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밥을 먹는다. 밥도 기호이고, 먹는 동작도 기호이다. 그래서 기호란 모든 사상을 총칭하는 말이 된다.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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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기호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다.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자주 만나게되는 것들을 가지고 기호학을 설명하고 있다. 기호학의 정의를 내려본다면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밥을 먹는다. 밥도 기호이고, 먹는 동작도 기호이다. 그래서 기호란 모든 사상을 총칭하는 말이 된다. 세상은 모두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지금까지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의미없던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새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삶이 음미없다고 느껴지시는 분들... 꼭 이 책을 읽어 보세요. 적극 추천합니다. 자신의 주위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의미부여입니다.
s****e 2000.04.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