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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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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내용이 중요한거니 뭐 괜찮습니다. 알랭 바디우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 잘 몰라서 읽는 데 좀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사울에서 바울까지의 회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소개듣고 궁금해져서 바로 구입했어요. 잘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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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내용이 중요한거니 뭐 괜찮습니다. 알랭 바디우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 잘 몰라서 읽는 데 좀 어려울 것 같긴 합니다. 사울에서 바울까지의 회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소개듣고 궁금해져서 바로 구입했어요. 잘 읽어보겠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d*******7 2025.11.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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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보편화는 사건의 선언과 그 충실한 이행에서 반드시 비롯된다.
"진리의 보편화는 사건의 선언과 그 충실한 이행에서 반드시 비롯된다." 내용보기
알랭바디우의 주된 철학사상인 "주체의 충실함"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 그 진리의 보편화에 철저히 기능한 인물로 사도바울을 조명한다. 비신자로써 바디우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진리사건으로써 진위여부를 가리려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바울의 부활사건의 선언이 어떻게 세계사적으로 변화의 물결을 이룰 수 있었는지, 즉 사건의 보편성 정립에 기여했던 바울을 집중하고 있
"진리의 보편화는 사건의 선언과 그 충실한 이행에서 반드시 비롯된다." 내용보기
알랭바디우의 주된 철학사상인 "주체의 충실함"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 그 진리의 보편화에 철저히 기능한 인물로 사도바울을 조명한다. 비신자로써 바디우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진리사건으로써 진위여부를 가리려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바울의 부활사건의 선언이 어떻게 세계사적으로 변화의 물결을 이룰 수 있었는지, 즉 사건의 보편성 정립에 기여했던 바울을 집중하고 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도, 전통도, 기억도, 가르침도 아닌 바로 지금 일어난 "현재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진리 선언과 관철을 위해 제국의 권력-로마, 시대의 소피스트-그리스, 신앙 공동체주의자-유대인들과 투쟁적으로 맞선다. 이 부분에서 나는 예수께서 지금 현재, 이 시간에도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는 "현재적 사건"이 의미해주는 바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부활의 현재적 사건은 마치 우리가 뉴스속보를 재빨리 전하고 싶어하는 충동처럼, 사건을 접한 주체(당사자)가 부활소식을 투쟁적으로 "선언"하도록 바울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디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확신"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확신은 진리사건을 현재적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며, 확신의 말이 좀 더 투쟁적으로 주체를 나타내며 선언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쟁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바울이 진리를 전달함에 있어서 "충실"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디우는 바울을 투쟁에 충실한 "투사"로 표현하고 있다. 즉 "진리의 실재사건-실재사건의 선언-선언의 충실한 이행"이 바울이 사용한 진리전파의 방식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과 부활의 실재-현재적 사건은 선언을 통해 누구에게나 포착될 수 있어야 함으로 듣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롬 10:12). 구분짓지 않는 모두에게 바울로부터 이 진리사실을 듣게됨은 진리가 보편화에 이르게 되는 단초이자 전제로 기능한다.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진리가 전해지려면 (율)법과 어떤 조건과 장치, 즉 여러 (거추장스러운)단계들을 건너뛰어야만이 가능한 것이다. 즉 협의를 통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해서 진리가 퍼져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법은 필연적으로 예외를 두기때문에 바울은 진리가 결코 누구에게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포스트모던 신학이 지나치게 영역별로 세분화되는 경향에 대해서 되짚어보게 되었다. 생태신학, 여성신학, 퀴어신학, 등 이러한 해체, 해방주의에서 나타나는 언어적인 세밀함과 인간의 조건들을 투쟁적으로 부각시키는 논리는 바울이 투쟁하며 선언했던 진리의 실재사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다양성은 결국 구별됨을 의미하고 그  다양성에서 비롯된 상대주의적 특성들이 진리-본래 우리가 선언해야 하는-가 보편화 될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다시 진리를 장치 안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즉 차이를 폐지시킨 개별에게만 실재는 순수하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의 조건-유대인들은 표징을 찾고 기적을 요청하며, 그리스 인들은 지혜를 찾는-을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인 그리스도를 투쟁하듯 선언하는 것이라고(고전 1:22-23).
  이제 진리의 전파과정 중 마지막인 선언의 충실성이다. 진리사건의 선언이 보편화를 위해서라면 선언이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바디우는 충실함의 조건을 "사랑"에서 찾는다. 무엇이 충실하게 하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노력"이라는 메타언어의 표현으로 충실과 사랑을 이행하고자 한다. 우리의 구원을 확신(믿음)에 두고 이를 강조한 것 처럼 보이지만 사랑없는 믿음은 공허함이라고 바울은 주장한다(고전 13:1-3). 구원은 직관적이지만 즉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주체의 운동은 돌발적이긴 하나 반드시 노력을 통해 주어지게 된다. 성화(聖化)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렇게 구원의 조건을 사랑-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에 할당시키고 있는 것이다. 직관적 의미의 확신(믿음)을 내면에 두게 되면 신비주의라는 또 다른 울타리를 만들어 낼 뿐, '~주의'(ism)는 보편화 운동에 족쇄를 채운다. 확신의 선언, 그래서 전투적일 수밖에 없는 "노오력"이 진리를 구원의 길로 위치시킬 수 있다. 전투적이지 않은, 노력없는 운동은 진리를 보편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보편의 성장률을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지표는 전투적 차원인 사랑의 노동이다. 이렇게 보편성이 확장될 때, 우리에게 희망도 가시화된다.
  현현의 주체,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뚜렷하고 명백한 진리로써 자기 삶의 주체로 삼았고 그것을 사건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사건은 본질상 누군가의 선언에 의해 전파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 진리사건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 진리를 담아둔 그릇이 깨지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할 책임이 있기에 그 당시 시대적인 요구들-지혜, 권력, 유일신앙-에 의해 변질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변형되지 않은채로 고유적인 주체는 차이들을 가로질러 보편성에 다가간다. 대세의 담론과 철학에 타협하지 않는 사유가 시대 속에서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바울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주체가 현시대에서도 비타협적-예외성으로 존재하며 여전히 전파되려는 본성을 습득한다. 보배가 담긴 질그릇을 지키는 책임은 여전히 진리사건을 경험한 신자들의 몫이다. 


s****g 2018.0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