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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리 on the p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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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아직은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상 그러나 결코 적응하기엔 만만치 않은 세상을 평범하지 않은 학생의 시각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평범한 학생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겐 평범한 일이 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꿈이 희망이 되어, 레드사인을 받으며 가고자 한다. 거침없고 속사포 같은 언어에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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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아직은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상 그러나 결코 적응하기엔 만만치 않은 세상을 평범하지 않은 학생의 시각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평범한 학생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겐 평범한 일이 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꿈이 희망이 되어, 레드사인을 받으며 가고자 한다. 거침없고 속사포 같은 언어에 놀라기도 했지만, 진정 우리의 일상이 그러지 않나 생각해본다. 항상 순결하고 순진하고 착하게만 보이는 학생들의 삶이 사회의 부정도 부도덕에 얼마나 노출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웃음을 깔깔깔 웃는 아이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토록 내 던졌는지, 우리는 그러는 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단지 이런 아이들에게 “불성실하다. 싸가지 없다.” 라고 말하며 한 인간을 인격체를 단순히 날라리로 명하고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몰아버린다. 책속의 아이들은 두 가지로 분류가 된다. 진흙탕 속에서 마른땅으로 나가고자 하는 아이들, 진흙탕이지만 마른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이들, 공통점이라면 시작부터 아이들의 삶은 불행하고, 빈곤하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돌보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 쉽게 의지할 수 없는 아이들, 모든 일은 혼자 해결하고 혼자 결정해야 한다. 책임만 지워지는 이 아이들은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답답하기만 하고 세상을 향해 도전 해 보려고 하면 반항심이나 세상에 대한 적개심 정도로 치부되어 버린다. 학생들이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의도가 잘 펼쳐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책을 읽으며 학생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그냥 하는 일 없이 아무 고민 없이 학교만 다니는 아이들로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일탈은 정말 순간이다. 우리의 미래가 청소년에게 걸린 만큼 우리는 청소년을 보호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일부 불순한 어른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다.


책의 마지막에 폭주족과 함께 떠나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님과 사회 학교로부터 아이들이 떠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사회에 적을 갖더라고 자신의 신념과 진실함 순수함은 버리지 않기 바랄뿐이다.

i********4 2008.0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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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on the pink> : 발전하는 사회 속의 흔들리는 아이들
"<날라리 on the pink> : 발전하는 사회 속의 흔들리는 아이들" 내용보기
실은 나, 훗날 노인이 되어 ‘결국 지고 만 걸까?’, 회한에 찬 눈으로 밤이 너무 길어져버린 하루를 견디는 내 또래의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소리칠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청춘소설>을 꼭 한 권 갖고 싶었다. <날라리 on the pink>의 작가 이명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청춘소설, 그렇다 <날라리 on the pink>는 청춘소설이다.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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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 훗날 노인이 되어 ‘결국 지고 만 걸까?’, 회한에 찬 눈으로 밤이 너무 길어져버린 하루를 견디는 내 또래의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소리칠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청춘소설>을 꼭 한 권 갖고 싶었다.
 
<날라리 on the pink>의 작가 이명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청춘소설, 그렇다 <날라리 on the pink>는 청춘소설이다. 소녀들의 십대, 소년들의 십대, 우리들의 십대를 그리고 있다. 그 속에는 우리가 겪었던 이야기, 우리의 딸이 겪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현재의 사회, 우리가 살아 가는 사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해 왔다. 그것은 마치 괴물처럼,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실지로 그것은 우리 개개인이 뭉쳐 거대한 하나가 되어 현재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신 세대, 386 세대, 현재의 세대까지, 쭈욱 이어져 오면서, 현재의 십대들을 양산해 냈다. 우리는 이 책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혀를 끌끌 차며 그들을 “쓰레기”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만든 것이다. 불안정한 십대들, 흔들리는 십대들이 사는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 낸 세계다. 점점 발전해 가는 사회 이꼴 점점 더 심각하게 불안정한 십대들이다.
말하자면 나는 아직 현재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십대가 지난 지 5년이지만, 그 정도면 아직 현재의 불안정한 세계를 벗어난 지 얼마 안됐으니, 현재의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난 <날라리 on the pink>에서 나의 십대를 봤다. 그 속에는 현실과 사회와 아이들이 있었다. 현재의 모든 아이들. 그들은 불안정한 사회를 조금은 과격하지만 자신들의 방식으로 헤쳐 나가려 한다. 그 속에는 절망과 아픔과 상처가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내가 그러했듯이, 다른 모든 십대들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바라건대, 나의 아이들은 좀 덜 아프고 덜 상처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현재의 세대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w****a 2008.02.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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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날라리들의 빡센 질풍노도 지나기
"열일곱 날라리들의 빡센 질풍노도 지나기" 내용보기
예전에 자기 성적으로는 도저히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없는 막말로 꼴통들만 모아놓았다는 학교에 잠시 임시직으로 있었던 친구는 "수업하는 것보다 등교 안 한 애들 잡으러 다니는 게 주요 업무야"라며 넌덜머리를 냈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저렇게 사는 애들도 있구나'라며 무심코 넘기고 말았다. 어차피 나와는 상과없는 삶이고, 당최 관심조차 가지 않는 삶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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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자기 성적으로는 도저히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없는 막말로 꼴통들만 모아놓았다는 학교에 잠시 임시직으로 있었던 친구는 "수업하는 것보다 등교 안 한 애들 잡으러 다니는 게 주요 업무야"라며 넌덜머리를 냈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저렇게 사는 애들도 있구나'라며 무심코 넘기고 말았다. 어차피 나와는 상과없는 삶이고, 당최 관심조차 가지 않는 삶이었으므로, 한풀이하듯 자신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늘어놓는 한 친구의 푸념이겠거니 했으니 말이다.

그저 간접체험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영화 <나쁜 영화>나 <노랑머리>, 임정연 소설집 <스끼다시 내 인생> 통해 매우 우울하고, 처절하고, 비참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얼마 전 읽었던 <스끼다시 내 인생> 속의 각 단편들마다의 청소년들은 따뜻한 가정에서 애정을 받으며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이 아니고, 메인디시와는 거리가 먼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밑반찬 같은 인생들이 매우 잘 녹아져 있었다. 그런데 어제오늘 읽었던 <날라리 온 더 핑크>는 <스끼다시 내 인생> 속에서처럼 대학진학이니 미래니 하는 것들은 머릿속에 아예 없는 듯한 스끼다시 인생이면서, 속칭 날라리라 불리는 소녀들의 이야기면서도, 진중함이나 무거움, 인생의 열패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기 보다는, 재미있다, 귀엽다,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코믹하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는 데 나름 동조할 수 있었고, 고작 그만큼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그만큼밖에 행동할 수밖에 없는 17살의 아이들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동정심이 조금 들었다고나 할까.

17살의 정아는 어느 날 우연히 친구들과 등교길 버스 안에서 음담패설을 나누다, 학교 일진인 "대가리"에게 제대로 걸린다. "니년들이 그러게 잘나가?"라는 대가리(키는 작고 머리만 크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라지... 아무리 그래도 여자 별명이 대가리는 좀 글타. 얘도 18살의 나름 꿈있는 소녀일 텐데. 어쨌든!)의 말속에 "니년"들로 뭉치게 된, 아니 뭉칠 수밖에 없었던 다섯 소녀들의 질풍노도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아이들이 하루에 하나씩 불려나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 맞게 되고, 단지 맞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 칼을 준비했던 정아는 화장실로 끌려가 어설프게 칼을 내밀며 미친 듯이 소리만 질렀을 뿐인데, 진실은 소문을 타고 하염없이 왜곡된다. 그리고 소심하기 짝이 없고 친구 하나 없었던 정아는 드디어 학교 "짱"으로 등극한다.

그다음부터 시작되는 "짱"으로서의 후까시 세우기와, 머리 쓰는 일 따위는 관심없는 소녀들의 이성(사랑이라기보다는 섹스 쪽에 무게가 실렸다고 봐야겠지...)에 대한 호기심과 나름의 반항 어린 행동들로, 학창 시절 껌 좀 씹고 다리 좀 떨어본 날라리들이라면 당연히 해봤어야 할 "저지름"들을 단계단계, 차곡차곡 저질러 나간다.

개인적으로, 미성년들의 퇴폐적(?)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중도보수파(?)인 나로선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곱게 보일 리 없지만, 그래도 꽤 귀엽게 느껴져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많이 웃었다. 반성문을 쓰는 게 계단을 청소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어떤 체벌이 더 무거운 것인지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다, 반성문을 쓰게 된 친구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안쓰러워하기까지 한다. 복잡하고 머리 쓰는 게 싫어서, 독사라는 선생을 음해할 각종 방법을 모색하고도, 머리 쓰는 게 싫어서 몸으로 때울 수 있는 방법으로 대처하기로 각자 합의를 보기도 하고 말이다.

읽어야 할 텍스트의 분량이 그리 많은 장편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날라리 온 더 핑크>는 꽤나 쉽고 재미있게, 금방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날라리의 삶에 대해 꽤나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듯하면서도, 열일곱이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날라리"들에 대한 작가적 애정과 안타까움이 녹아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유쾌하게 읽었으면서도 여운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고나 할까. 뭐 그랬다.

f*******a 2008.0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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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의 삶 + 전체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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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대다수의 고등학생들이 이럴까? 그들의 고민을 이런식으로 풀어낼까? 내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을 몰라서 그러는 걸까?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고등학생들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들어있다고 해서 선택한 이 책. 인터넷 소설을 이것저것 따온 듯한 내용. 정말 실망스러웠다. 한때 정말 미친듯이 읽었던 팬픽에서 너무나도 자주 봤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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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대다수의 고등학생들이 이럴까? 그들의 고민을 이런식으로 풀어낼까?

내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을 몰라서 그러는 걸까?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고등학생들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들어있다고 해서 선택한 이 책.

인터넷 소설을 이것저것 따온 듯한 내용. 정말 실망스러웠다.

한때 정말 미친듯이 읽었던 팬픽에서 너무나도 자주 봤던 이야기들, 그리고 장면들이 반복 또 반복되었다.

책을 읽던 중 만난 친구에게 중간 중간 보여주자 마찬가지으 반응이었다.

아마도 인터넷소설이나 팬픽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상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의 삶이 이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내가 모르는 그들의 세계가 정말 이럴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물론 같은 생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소수의 십대가 하는 고민 아닐까?

 

극단적인 예를 들어 그들의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시도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십대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라면 그 누구라도 해볼 만한 이런 고민을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로 대신하는 것이 작가는 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실업계 출신의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우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 깨는 과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날라리)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저 머리 빈 정신없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그리고 그들과 같은 고민을 해오던 친구들의 모습도 불현듯 떠올랐다. 어쩌면 이 책에서 얻은 편견을 깬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부의 생활을 전체의 고민과 함께 버무려버린 부분이 너무나도 아쉬운 소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게다가 인터넷 소설, 만화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유치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것만큼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다.

c******4 2008.02.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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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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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명백한 폭력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설마 이 상태로 끝내진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작가는 말한다. 불온한 10대에게도 꿈이 있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고. 상처받은 10대들의 이유있는 항변? 이라고? 작가는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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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명백한 폭력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설마 이 상태로 끝내진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작가는 말한다. 불온한 10대에게도 꿈이 있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고.


상처받은 10대들의 이유있는 항변? 이라고?


작가는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삶을 자세하게 취재하여 그려냈다. 자, 이건 르포다. 르포였다면, 난 잘했다고 "짝짝짝" 박수를 쳐주었을 거다. 하지만 이건 르포가 아니다. 소설이다.


날라리들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그들을 이해하는 척 하면서, 자기가 문제제기한, "어른들 잣대로 재단하는 사회모순"의 우를 자기가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정아"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다른 날라리 아이들 연지, 은정, 서빈, 효은을 바라본다. 작가는 최대한 날라리들과 가까이 가려는 마음에서 "정아"를 자신의 분신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아는 날라리인척 하지만, 순결하고 고귀한 학생이다. 연지, 은정, 서빈, 효은의 행각을 르포취재하듯 이야기하며, 자신은 슬쩍 빠져나간다. 정아는 그들과 달리 최악으로 달리지 않는다. 항상 선을 지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과연 정아의 생각인지, 작가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소설 중간중간에 정아의 입을 빌려 날라리 아이들을 "꿈이 없는" "생각도 없는" "내일이 없는" 아이라고 스스로 되뇌이게 만들며,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날라리들의 일탈행위를 주욱 보여준 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작가는 정아의 입을 빌려 말한다.


"우리 무시하지 마세요. 우리가 아무 것도 될 수 없다고 하지 마세요. 우리도 꿈이 있어요." 라는 식으로.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고, 신나게 아이들을 밟아놓고, 무시해놓고,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마무리를 지으면 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말을 하려고 소설을 썼겠지만, 그건 조금도 잘 표현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는 밝히지 않고, 한없이 아이들이 일탈하는 장면만 보여주었으므로.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도중에 몇번 그만두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랬으면 참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 뿐이다.


바른 성장소설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들을 위해주는 척 하면서 그들을 까대는 대목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위선자. 나는 작가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생생한 <청춘소설> 한권을 갖고 싶었다고?


차라리 당신이 과거의 날라리였다거나, 그걸 경험으로 썼다면 "그래. 당신이 직접 경험한 거니 진짜 그랬겠지." 라고 넘겨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왜 하필 날라리들의 이야기인가? 왜 그들이 벌여놓은 일탈의 행동만을 보려고 하는가?


소설은 르포가 아니다. 생생한 취재는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걸 빌미로 날라리들에 대해 다 말했다는 작가는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소설 인물에 대한 애정 없이, 단순히 "쯧쯧쯧. 너희를 못 도와줘서 어쩌니? 미안해"라는 심정으로 글을 썼겠지? 하지만, 당신의 그런 시각 자체가 폭력이다.


 

m*******e 2008.07.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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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on the p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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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랑 소설은 참 질펀하다. 몹시 젊은 나이에 등단한 소설가가 어쩜 이렇게 젠체하지 않은 농익은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시장통에서 자랐다는 이 작가의 이력 때문에 난 처음부터 이 사람이 좋았다. 나랑 나이차이도 한살 밖에 나지 않는다. 나도 어릴 때 시장에서 자랐다.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한테 사흘걸러 한 번씩 매를 맞으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 그 집 아들이 친구들과 패싸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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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랑 소설은 참 질펀하다. 몹시 젊은 나이에 등단한 소설가가 어쩜 이렇게 젠체하지 않은 농익은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시장통에서 자랐다는 이 작가의 이력 때문에 난 처음부터 이 사람이 좋았다. 나랑 나이차이도 한살 밖에 나지 않는다. 나도 어릴 때 시장에서 자랐다.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한테 사흘걸러 한 번씩 매를 맞으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 그 집 아들이 친구들과 패싸움을 하는 모습을  실시간 중계로 보며 자랐다. 겨우 네살에서 일곱살까지 3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그 때 내가 본 장면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그 때 내가 본 것들을 꼭 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명랑의 글을 보면 참 반가웠다. 마치 내가 본 사람들을 대신 써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앞부분 서두를 보며 또 그렇고 그런 청소년 소설 중 하나인 줄 알았다. 온갖 아픔을 갖고 있는 깊이있는 날라리 청소년. 그들의 슬픔을 몰라주는 세상. 비정한 세상 속에 몸부림치는 가엾은 아이들. 뭐 그런 얘기들이 하품나게 등장하는 그런 소설 말이다. 난 그런 소설을 보면 작가들에게 그 아이들을 한 번 만나보고 썼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고통도 깊이도 없는 아이들, 잔인한 아이들, 알고나면 허무할 만큼 겁쟁이고 속이 없는 아이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선 무릎을 꿇었다. 이건 진짜구나. 진짜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이구나. 궁금했다. 어떻게 했을까? 길거리에 지나가는 그 아이들을 무작정 따라갔을까? 쪽방촌에서 살아봤을까? 모여서 폭주를 뛰는 아이들 오토바이 뒤에라도 타보고 썼을까?

 이 책에는 우리가 아는 밑바닥 청소년의 문제가 날 것 그대로 다 나온다. 인터넷을 통한 원조교제, 집단 폭행, 폭주족, 가출, 음주, 가족강간을 당하는 아이.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야 넘쳐나는 인터넷 쓰레기 뉴스만 클릭해봐도 10분이면 다 볼 수 있는 것들이니까. 놀라운 것은 이런 이야기들을 이 작가가 이름처럼 시종일관 명랑하게 썼다는 것이다. 왜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웃고 있는건가. 책을  다 읽고 돌아보니 그 이유는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 명랑(!) 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부에 가서 머리를 쳐박고 있어도 눈만 뜨면 벌 받느라 쓰레기 줍고 껌떼고 있어도 그들은 명랑하다. 알 수 없는 희망의 기운이 서려있다.

 엉망진창 개판으로 열일곱 청춘을 얼룩지게 만들어버린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했다.

 " 그래도 괜찮아. 앞으로 갈 수 있어."

 겁주는 것 말고, 협박하는 것 말고, 그렇게 하면 니 인생도 끝이라는 선고 말고, 어른들이 해야 할 것은 진짜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다.

f*****5 2012.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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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놀리지 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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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놀리지 마라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그래, 이 노래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승철의 '소녀시대'야. 최근엔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지. 근데 이 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 있니? 요즘 어린아이들이 과연 가사 속 주인공처럼 저렇게 순수하고 순진할까? 내 대답은 절대 아니올시다야.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건 겪어보지 않아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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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다고 놀리지 마라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그래, 이 노래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승철의 '소녀시대'야. 최근엔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지. 근데 이 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 있니? 요즘 어린아이들이 과연 가사 속 주인공처럼 저렇게 순수하고 순진할까? 내 대답은 절대 아니올시다야.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건 겪어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지. 고딩보다는 중딩이 무섭고 중딩보다 초딩이 더 무개념인 이 세상 속에서 어쩌면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애초부터 힘든 일인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그 나이일 때를 생각해봐. 우리 그땐 어른들이 너무도 우리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투정을 늘어놓고 나는 이미 다 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니?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는 너무나 아까운 추억을 놓아버린 걸 거야. 난 우연히 우리 시절에도 있었던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던 아이들을 만났어. 바로 [날라리 on the Pink]라는 책을 통한 만남이었지.

 

 갓 고등학교에 올라온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이야기, 조금은 비뚤어지고 그릇된 방향이지만 나름대로의 소신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의 속사정을 들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상업 고등학교의 학생이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문제아가 되기까지 그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 한 1년 정도? 근데 생각해보니 애초부터 그 아이들을 문제아의 틀에 가둔 건 다름 아닌 우리들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거야. 15,16의 나이에 입시를 치르게 하고 인문계와 실업계라는 두 갈래 길을 선택하라니. 조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고 싶은 학교를 못 간다니 조금 황당하잖아. 무슨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부터 말이야. 그런 사회적 틀 속에서 한 번 분류된 아이들이 탈선의 길로 쉽사리 빠지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이들은 처음엔 자기 학교 옆의 여대에서 담배를 빨거나 몰려다니며 소주나 홀짝이는 정도의 탈선을 일삼았어. 그 정도는 솔직히 그리 심각하다고 보이지가 않았지. 너도 나도 학교 다닐 때 다 한 번쯤 해본 일이잖아. 그치? 하지만 아이들의 수위가 점점 심해지는 거야. 다 같이 가출을 해서 거리로 나가고 남자아이들의 방에 얹혀 지내며 몸을 주고 마음엔 상처를 입고 결국은 학교로 다시 끌려와 문제가 시작되었던 그 곳에 다시 앉아 있더라고.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이야기 속 아이들이 골이 비었다느니 미친x라느니 욕하는 사람들 분명 있었을 텐데. 나는 정말이지 마음이 아프더라고. 누구는 이 소설을 읽고 유쾌하고 재미나 다더라. 근데 나는 있지. 이 소설 재미있지가 않았어. 나는 나름 심각했다는 말이지.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와 그들도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단지 좀 지나친 방황을 했을 뿐)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걸 우리가 좀 알아주었으면 했어.

 

 싸움의 기술을 알려주는 동아리에서 교복을 입고 기술을 익히며 학교 선생님이 자신들을 보러 와주길 바랬던 그 아이들처럼 어쩌면 지금도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우리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길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서슬 시퍼런 눈과 걸레를 문 듯 걸게 내뱉는 말을 자신의 방어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아이들을 돌아왔지만 마음의 상처와 처녀성을 잃었다는 무거운 생각은 쉽사리 사리질 것 같지가 않았어. 그런데도 심각하기보다는 가볍고 유쾌해 보이는 그 아이들이 나는 정말이지 신기해서 100% 이해하기는 힘들더라.

 

 친구야, 우리가 보냈던 질풍노도의 역동적이었던 어린 시절은 기억하니?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게 위협하듯 말을 내뱉고 삥을 뜯지는 않았어도 선생을 욕해보거나 한 번쯤 가출을 꿈꾼 적은 있었잖아. (뭐 가출까지 해보았다면 나보다 한 수 위겠지만.^^) 이 이야기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야. 부디 꼼꼼하게 읽고 우리의 그 시절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더불어 요즘같이 심각한 청소년 문제의 사회에 대한 적절한 비판도 잊지 말고 말이야. 겪어봤기에 더욱 이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십대시절, 방황하며 거리로 나갔던 우리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 아이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 궁금해지는 밤이다. 그 아이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지네.

s******g 2008.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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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온더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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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에 띄었다. 날라리가 들어가는 제목이라니 왠지 발랄한데 거기에다 핑크란다. 뭔가 유쾌하고 신나는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제목이다. 작가의 이름도 책제목과 잘어울리는 이명랑. 일단 읽고난 느낌을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내가 생각했던 유쾌함은 아니었다. 음, 현재 우리시대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는듯한데 솔직히 공감이 잘 안갔다. '정말 요즘애들 이정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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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에 띄었다. 날라리가 들어가는 제목이라니 왠지 발랄한데 거기에다 핑크란다. 뭔가 유쾌하고 신나는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제목이다. 작가의 이름도 책제목과 잘어울리는 이명랑.


일단 읽고난 느낌을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내가 생각했던 유쾌함은 아니었다. 음, 현재 우리시대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는듯한데 솔직히 공감이 잘 안갔다. '정말 요즘애들 이정도인거야?'라는 놀라움만 있었을 뿐이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요즘애들 정말 무섭다. 물론 이런 애들도 있고 저런 애들도 있고 기댈곳도 없어서 방황할 수 있다는거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그런면이 강조되어서일까. 발칙하다는 식의 평들이 있던데 정말 그랬다. 내가 너무 꽉 막힌건지.. 초반엔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간혹 재미있기도 했으나 읽을수록 공감이 안되다보니 남들보다 재미가 덜했겠지. 그렇다고해서 재미없었단건 아니고 그냥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고나할까. 아마도 공감하는 요즘 세대라면 조금 틀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모두 다른 표현을 한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도 있고 알고보면 모두 외로운 아이들이다.  난 그럴 용기가 없어서 그렇지못했을테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알고보면 내가 적응하지못한 것도 너무 솔직하게 표현되어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시기를 배경으로 그린 책들을 보면 아무래도 조금 감상적이고 순수함을 함께 보여주는게 대부분이었으니까. 가끔 나의 학창시절 생각도 해보고 시대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구나, 싶었다.


조금은 나와 맞지않는 이야기였지만 나름 매력을 갖고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웃음지을 수 있었으니까.

m*****7 2008.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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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on the P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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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 장마철이었다.  나는 비를 피해 우리 집 맞은편 지붕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학생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을 학생으로 인식한 이유는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어느 중년 여성쯤으로 여겼으리라.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양새하며 능숙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그리고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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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 장마철이었다.  나는 비를 피해 우리 집 맞은편 지붕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학생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을 학생으로 인식한 이유는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어느 중년 여성쯤으로 여겼으리라.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양새하며 능숙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그리고 많이 고단해 보이는 얼굴 표정까지, 어느 한군데 학생으로 보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슬쩍 보고 지나쳤다면 피곤함에 지친 어느 아줌마가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여학생에게서 어떻게 저런 모습,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내가 이유 없는 선입관으로 색안경을 끼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그 중 하나는 담배를 피우고 가출을 하는 학생들, 소위 문제아에 대한 선입관이다.  나는 그 아이들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까지 스스로를 내몰아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오늘 우울한 이유가 있고, 오늘 힘든 이유가 있고, 오늘 즐거운 이유가 있듯이 그 아이들에게도 아이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간직하고 있음을 짐작하지 못했다.  선입관이 깨졌을 때,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우연히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한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가출 경험이 있는 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근거 없는 생각이 언제부터 머리에 뿌리내렸는지 지금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아이는 너무나 천진난만했다.  너무나 예뻤다.  정말 16살 소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10대 소녀들이다.  난생 처음 듣는 단어를 사용하는 그들, 학생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저러지 않았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꿈도 없는, 아무런 대책 없어 보이지만 그들 스스로 상처와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미처 배울 기회를 갖기도 전에 세상은 우리를 금 밖으로 내몰았지만 봐!  우린 이렇게 실수와 상처로 얼룩진 계단을 밝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  (...)  포기하지 않아! (p222-223)

 

이명랑 작가가 표현한 10대 소녀들의 모습은 현재 그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고통과 실패의 경험이 인간의 인격적 성장을 도와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감당할 만큼의 고통과 실패의 몫을 겪게 하여 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날라리'라고 칭하여 지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b******s 2008.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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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 노도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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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명랑 작가의‘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성장기 소녀의 눈에 비친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잘 그려내 읽으면서도 지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볼 수도 있었고 그 대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던 이명랑 작가의 책이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더라. 최근 국내 작가의 책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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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명랑 작가의‘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성장기 소녀의 눈에 비친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잘 그려내 읽으면서도 지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볼 수도 있었고 그 대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던 이명랑 작가의 책이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더라. 최근 국내 작가의 책을 본의 아니게 등한시 하였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 어른들은 모르는 10대들의 이야기.‘날나리 on the Pink' 라니, 참으로 거침없지 않은가. 


매일 7시면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부모님이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챙겨들고 늦을 세라 집을 나섰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어느새 십여 년 전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지나고 나야 그 때 그 시절이 눈물이 날만큼 그리워 질 것이라는 당시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고 만다. 그래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것이 없다고 하는 걸까. 정말 요즘 학생들 교복입고 다니는 모습만 봐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나도 가방 메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들처럼, 학교로 향하고 싶어지니까 말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듯, 과거 우리들의 모습과 지금의 10대들은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행동, 사고방식마저도 확연히 다르다. 어디를 가도 자기들이 원하는 건 고수해야 하고 저마다의 가치관대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어른들의 말에 앞서 그들 자신이 원하는 바는 꼭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현재 10대들의 모습은 그러하다. 작가는 현재 10대인 여고생들의 모습을 거침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내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과장된 듯 보이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실제의 모습과 다를지 않은 듯 그렇게.


공부가 삶의 전부라고 어른들은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십대들에게 매일 같은 주문을 한다. 물론 공부는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되고 기본적으로 배워야 이 사회에서도 인정해주는 시각이 존재한다. 허나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잘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라고 외치며 전용 도로가 아닌 갓길로 자신의 

꿈을 찾아 가려는 것이다. 그 길이 비록 순탄하지 않더라도 끝끝내 찾아갈 지혜로운 십대들, 내가 나아가야 할 길 앞에서 우리 중 누구 하나 고민하고 방황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내가 겪은 일을 후세대의 어린 친구들도 고스란히 그 전처를 밟는 것 뿐 이리라. 그래, 그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그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섯 소녀들의 모습이 현재 청소년기에 있는 십대의 모습이라고 전적으로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명랑 작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스한 관심과 보호의 손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각인시키려는 게 아니었을까. 저속한 단어와 무분별한 욕이 그들의 소통에 필요한 문화 코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십대의 시기를 이미 지나온 나와 고되지만 마음껏 자신의 꿈을 품은 채 살아갈 희망의 빛인 청소년들은 현실에서도 다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삶의 목적이 다르지만 적당히 보듬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서로에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성장기의 내 모습을 어떠했었는지 되돌아 추억할 수 있고 어린 소녀들의 면면을 통해 내 가족, 아들과 딸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터.  

b***a 2008.02.18.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