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판하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의 본질을 잘못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변증할 수있다. 가장 큰 기독교 비판자들의 잘못은 복음과, 교회를 혼동하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이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부조화이다. 그런데, 저자같은 사람들은 유독, 이 이상과 현실사이의 갭을 기독교에서만 일치시키라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갭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다. 오직 하나님밖에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말씀들이 있다. 그것은 '나 외에는 구원 얻을 만한 이름을 준 적이 없다' 는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는 것이다. 왜, 왜 이것을 외면하는가?? 왜 오늘날의 문제있는 교회와 예수를 동일시 하는가? 왜 잘못된 기독교의 역사와 복음을 동일시 하는가?? 왜, 기독교가 공헌한 부분들을 외면하는가? 왜. 인간의 죄성을 무시하는가? 왜. 자신이 죄인임을 간과하는가?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야기 할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물론,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잘읽어보라. 막무가내로 기독교를 비판하지 말고 정말 성경을 잘 읽어보라.. 복음서라도 잘읽어보라.. 내가 볼때. 저자는 복음서도 잘읽지 않았고, 복음서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인류의 죄사함'이다. 병자를 고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랬다면,. 예수는 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힘없이, 십자가를 지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에 바로 복음의 핵심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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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를 통해 이미 커다란 지적 충격을 받은 나로서는 오강남 님의 [예수가 외면한 그 한 가지 질문]을 큰 기대감 속에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빌라도가 예수에게 한 질문, "진리가 무엇이냐"는 말로 시작된다. "진리" - 사실 이 주제는 너무도 무겁다. 이 책의 예화에 나오는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깨달아 나가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일 수 있는 어려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강남 님의 산뜻하면서도 명쾌한 설명 앞에 그 베일을 벗는다. 다양하고도 적절한 예화들, 일상적인 쉬운 용어의 사용,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며 폭 넓게 인용되고 있는 선각자들의 잠언들. 그 딱딱한 주제가 오강남 님의 설명 앞에서 정말 부드럽게 껍질을 벗고, 신선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진리가 절대적 유일성(이 용어가 오강남 님의 뜻을 제대로 전한 것일까)을 갖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한 의식 구조에서 해방되어 실상의 세계, 실재 세계의 다른 차원들을 끊임없이 'real'한 것으로 발견하고 깨쳐가는 'realization'의 과정임을 설파한 것에 동감한다. 그래서 진리를 '닫힌' 개념으로, 또는 종교를 '닫힌' 교리 속에서만 인식하지 말도록 우리를 깨우쳐 준다. 한국의 개신교의 여러 종교 형태들을 돌아볼 때, 극단적 도그마의 딱닥한 껍질 속에 갇혀 있음을 보게 된다. 기복신앙에 바탕을 두고 끝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헌금의 명목들,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지극히 선별적이고 편파적으로 이해되고 강해되는 성경말씀, 교단과 교단 사이나 각 교단 내부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끊임없는 다툼들-그 다툼을 정당화하기 위해 펼쳐지는 아전인수식 논리들. 한국 개신교는 진정 루터나 캘빈이 시도했던 종교개혁이 어느 나라의 기독교보다도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교리가 아니라 순수하게 예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그 당시 무엇을 설파했고,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를 살펴야겠다. 진정 예수가 보여주려 했던 '진리'의 모습은 무엇이었는가를 알아야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내 신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편집 상태도 약간 큰 활자가 시원한 글의 흐름만큼이나 시원하고 산뜻하게 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이 책은 모든 종교인들뿐 아니라 세상을 '눈 뜨고'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이런 좋은 책을 지은 오강남 님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인상깊은구절] '의식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 곧 우리가 지금까지 지니고 살아온 불완전한 의식 구조에서 해방되어 제약받거나 비뚤어지지 않은 실재 그 자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의 세계, 실재 세계의 다른 차원들을 계속 'real'한 것으로 발견하고 깨쳐가는 'realization(실재화, 현실화, 의식화, 자각, 깨달음)'의 과정, 이것이 곧 구도의 길, 진리의 길이라고 믿고 싶다. |
| 몇 권째 오강남 박사의 책을 읽고 있다. 먼저 딱딱하기 쉬운 주제를 예를 들며 쉽고 풀어쓰고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진리에 대하여 나름대로 신학관을 가지고 논지를 펼치고 있는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종교관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하나님(하느님)을 실존적 존재가 아니라 어떤 원리 내지는 현상으로 보는 것 같다.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도 사실성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상징성에 너무 지나친 비중을 두는 감이 없지 않다. 종교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만일,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면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할 때 하나님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해를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누리는 은총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메타노이아로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교권주의를 비롯하여 모든 ...주의를 배격하는 학자적 태도에 대하여서도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제목을 잘못 선택했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빌라도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답변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빌라도가 그 답변을 들을 준비 내지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빌라도에게 한 말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분명히 밝히셨다는 점을 염두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근간 본질보다는 비본질적 사건에 매달리는 사회적 모순을 나름대로 치밀하게 탐구하는 학자적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
| ;종교'는 인류역사상 가장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다.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수백만년 동안 어떤 형태로든지 인간의 곁에서 끈질기게 붙어다니던 주제이다. '종교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과 다투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결론이 안 난다는 뜻이었다. 그 만큼 어려운 주제들이다. 이데올로기는 논쟁이 끝났다.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미 승부가 판가름 났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 자체가 멸망하기 전에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만큼 인간에게 어려운 주제이다. 문제는 세월이 흐를수록 종교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화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어려운 주제를 오강남 교수는 책 한 권에 담아 냈다. 종교의 본질, 문제와 현실, 비판과 나가야할 방향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제시하였다.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쉽게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이 주제에 대하여 얼마나 전문가인지, 교육자로서 대중 또는 독자들을 일깨우고 이해시키고자 하는 (종교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그의 신념과 진지한 자세를 얼마나 견지하고 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너무 쉽게 서술되어 있어서 때론 오히려 너무 비유적이고 다소 우화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것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종교는 나에게도 중요하고 오랫동안 풀지 못하는 숙제였다. 사람들에게 왜 종교가 필요한지, 또는 나는 왜 교회나 절에 가지 못하는지, 또한 왜 '무신론자'의 딱지를 다는 무리 속에 속해야 하는지, 무신론자는 어떤 세계관과 우주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종교 너머의 진리는 없는 것인지, 지금 종교는 왜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가는지,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인지, 이러한 고뇌의 종착은 과연 무엇인지 등, 본질과 실존에 관한 문제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독자에게 이 책은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확하게 정의조차 내리기 어려운 문제들의 실체와 현상을 파악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오랜 고뇌 끝에 얻은 결론은 '종교도 실존'이고 '교회도 실존'이다. 이 뜻은 종교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또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나름대로 하느님을 믿는 방법을 만들어 '손님'(?) 끌어, 먹고사는 교회도 생기는 것이다. 종교와 교회가 아무리 하느님을 외친다 하더라도, 인간의 실존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종교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일차적 관념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는 종교너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어려운 종교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체가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나름대로 하나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관념의 모험'이라는 망망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의 일부임에 불과하다. 마치 끝이 없는 우주공간을 향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려고 지구 끝에서 출발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그런 여행을 준비하는데 '빛과 소금'과 같은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