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이 책을 읽고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면, 단 한번이라도 한숨을 내쉬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자본주의 논리에 빠진 기업인이거나,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백인남성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할 것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때는 그저 잘못된 역사나 상식을 바로 잡는 인문서적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일반상식으로 읽기에 꽤 부담스러운 주제를 가진 책이었어요. 책 제목만을 본 실수이지요. (바로 그 옆에 '계급, 인종, 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라는 제목이 있었는데 말이지요.'하지만 부담스러운 주제의 이야기일지라도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정말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47'(흑인노예문제), '에스페란사의 골짜기'(이주노동자들의 고통), '비키니섬'(원자폭탄의 피해), '비버족의 표식'(인디언 문제)등을 읽었고,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소설이라는 점이 제게는 필터 역활을 해주어 그다지 충격이 덜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로 읽었던 문제점을 그대로 여과없이 드러냄으로써 무척 충격으로 다가온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의 제일 첫번째 만나게 된 사건을 신랑에게 읽어주었는데, 신랑 또한 그저 소설의 한 이야기로 생각하며 진실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진실이 주는 추악한 실태는 솔직히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것 같아요. 그만큼 문제를 마주하기 보다는 달아나기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드르이 선택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같은 백인으로 자신이 속한 인종과 성별의 증오를 연구하며 그 증오를 종결코자 합니다. 물론 뚜렷한 해결방책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숨겨진 진실을 아는 순간 세상을 바로 보게 되는 안목을 열어주고, 변화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편하게 생각했던 문화, 경제등이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불평등한 유산이라는 것이라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문명의 이기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제 이기심에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것 같습니다. 아직도 진실을 마주하기에 두려움이 더 크지만 그 진실을 마주함으로 인해 세상을 좀더 바로 보는 시각을 배우게 된것만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제 마음이 더 자란 느낌이었습니다. * 사실 이 책을 읽을때 두꺼운 분량에 여행전에 다 읽을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읽으면서 점점 책속으로 몰두하는 바람에 여행전에 다 읽을수 있게 되었어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꼭 알아야하는 진실이기도 합니다. |
|
가끔씩, 속이 끓어오를 것을 알면서도 읽기로 결심하는 책이 있다. 분노하고, 화를 내고, 종국에는 울화병 걸릴 것같은 기분을 맛보면서 읽는 책이 있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나 기사 등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잔인한 범죄 이야기는 사람을 공포스럽게 만든다. 애절한 이야기는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반면 이런 이야기들은 사람을 그야말로 우울하게 만든다.
정말로, 정말로 그냥 외면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그 이야기들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려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증오의 문화'라는 부제가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무언가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일은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경원시하거나 낯설거나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증오가 결집되는 대상이다.
하지만 증오가 고착화될수록, 막상 무엇 때문에 그토록 증오하는지는 어느새 희미해져버린다. 말 그대로 증오의 감정만이 남는 것이다.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집단 대 개인, 혹은 집단 대 집단으로 증오하는 감정이 생길 때 이런 경향이 특히 심화된다.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종국에는 사람이라는 인식 자체를 지워버린다. 윗사람에서 아랫사람에게 내려오고,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고,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파된다.
특히 나치의 대학살처럼 대규모로 진행될 때에는 증오의 대상이 된 사람을 숫제 인체 구조를 갖춘 단백질 덩어리 쯤으로 취급한다. 때로는 이런 표현마저 유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차없이 '처단'하는데, 차라리 단백질 덩어리쯤으로 여긴다면 사물만큼의 대접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이런 증오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일차 단계는,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일체 접촉하지 않고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미지만을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재활용하고 재생산하면서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증오를 현실로 만들어낸다.
이런 일은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는 그냥 속 편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엄연히 실재하며, 지금도 조금씩 모습이 바뀐 채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은 섣부르게 정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설교와는 거리가 먼 책의 논조 때문일까? 다만 현실을 직시하면서, 보기가 괴로워질정도로 속속들이 분석하고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그 일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인지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첫 단계를 수행하는 데 더없이 확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 차례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문화 행위의 본질은,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사용 가능한 화력을 모두 사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까지 그들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학살에서, 존재하지 않는 핵무기를 찾는다는 명분하에 이라크에 수 많은 폭탄을 퍼부었던 최근의 일까지 살펴보면, 저자의 주장이 전혀 틀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능한 화력을 모두 사용해서 상대를 절멸시킨다!! 그리고, 순간 섬뜩한 두려움이 온 몸을 감싸 돕니다. 지금은 우방이라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지만, 어느 한 순간 그 관계가 틀어지고 저들과 적이 되면 우리 또한 원주민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사실, 그리고 이미 북한에 대해 저들이 벌이고 있는 행위들의 근간에 저러한 본질이 숨어 있다면 이 땅을 다시 한 번 불바다로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혹은 유색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와 함께 백인이지만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폭력이나 성폭행의 위협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문명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백인남성의 사회! 그 주류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존재가 어느 한 순간 존재를 부정당하고 폭력의 위협 혹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사회! 겉으로는 문명을 말하지만 그 뒤에서는 수 없이 많은 야만이 행해지는 그런 나라를 동경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동경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동경해 마지 않는 그 사회로부터 우리 역시 다른 존재들에 대한 부정과 폭력을 내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 "우리가 단 하나의 진정한 길이라고 선언한 것이 사실은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기 때문에 그들을 증오한다. 자본주의 없이 사는 것은 가능하다. 엄청난 빈부격차 없이 사는 것, 소수의 안락을 위해 다수가 땀 흘리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 과학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다.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 교도소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다. 노예제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다. 강간없는 삶이 가능하다 아동학대 없는 삶이 가능하다. 이런 것이 없는 문화가 존재해왔다." |
|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타인에 대한 착취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내가 지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도덕적 온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가?
내가 피 묻은 옷 한벌을 덜 입는다는 지구가 앓고 있는 병폐를 없앨 수 없다는건 자명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나의 양심을 조금 덜 아프게 할 뿐, 실제로, 구조 전체에서 나의 역할은
착취자의 것일 것이란 것 또한 자명하지만,
이러한 물결에 굳이 빠져나오고자 몸부림 칠 이유정도는 되지 않을까?
굳이 그 피를 내 손에까지 묻히지 않고자, '주장할', 그리고 '퍼뜨릴' 이유는 되는게 아닐까?
데릭 잰슨은, '거짓된 진실'에서, 말한다.
인간이 인간을 구별짓는 행위에 대해서.
범죄자는 당연히 교도소에서, 하늘과 땅과 평안을 빼앗긴 채 폭력에 노출되어도 된다.
가난한 자는 당연히 도시 빈민으로, 복지와 안락한 삶을 잃은채 살아도 되고,
비정규직은 원래, 직업 자체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회사에 굴종을 강요 당해도 되는것이다.
빈국의 국민들은 원래, 자신의 육체에 대한 모든 종류의 (성적인, 노동력, 행복등) 것들을
빼앗기고, 힘들어 해도 되는 것이다.
데닛은 경고한다.
그가, 범죄자가 아니라, 가난한자, 비정규직, 빈국의 국민이 아니었다면,
그가 '그'였다면,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여자를 '여자'가 아니라 그녀로 보았다면,
한명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아니라 '그사람'으로 보았다면,
우리는, 타인들을 대상화하고,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을 잃게 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만 쉬면서 읽은책.
하지만 이 책을 무기로 삼으라는 저자의 말을 되뇌이게 되는 책.
|
|
사랑을 하는 사람이 위험에 직면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190) 이 책을 읽는 내내 편하지 않았음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거짓된 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도 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적나라한 모습을 봐야했으니까.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인식에 관한 것이다. 또는 인식의 결핍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직해져보자. 우리의 경제, 사회체제는 지구를 죽이고 있다. 다른 생물은 차치하고 인간만 보더라도 우리의 활동은 전례없는 궁핍을 만들어내고 있다. ... 우리는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명백한 부정의에 대해 누군가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지적을 하면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끝까지 공격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공동의 미래를 파괴한다. 정복에 저항한 원주민 부족들을 사람들은 얼마나 열광적으로 억압해왔는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강하게 저항하는 이들에게 똑같은 결말을 안겨주기 위해 사람들은 얼마나 그들을 열성적으로 공격하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게 되었는가'(8-9, 서문)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끔찍한 세상의 적나라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때로는 증오하라고 부추기는 듯, 데릭 젠슨은 도전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그런 인식조차 없이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이런 끔찍한 세상의 적나라함을 보여주고, 이제 그 피비린내나는 역사가 바로 잡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어쩌면 더욱더 끔찍하고 증오로 가득차서 교묘한 피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 책은 하나의 무기다. 잔학 행위에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손에 쥐어진 총이고, 그 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메뉴얼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식을 묶어두고 지금 같은 세상에 우리를 묶어두는 밧줄을 자르는 칼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성냥이다.'(11)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씌여졌길래 그리 끔찍하다는 이야기를 자꾸하는지 궁금해지려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감상적인 리뷰를 읽기보다 직접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계급, 인종, 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가 이 책의 부제이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씌여졌지만 - 간혹 너무 광범위하고 세세한 자료 조사로 인해 내 이해의 수준을 넘어버려 이해하기가 어려울때도 있긴 했지만 - 소화해낼 수 없는 범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가끔 - 아니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아주 자주 '그래, 잔인하고 폭력적인 약탈과 침략으로 일으켜 세운 피의 아메리카 얘기일뿐이야'라고 내뱉었었다.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죽이고 있는 것이 피의 아메리카뿐은 아닐진대 나는 역시 그렇게라도 생각하면서 또 진실을 슬그머니 빗겨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괴물들이 있기는 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위험한 것은 평범한 인간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프리모 레비)
|
|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차라리 드러난 거짓은 누구라도 확연히 인식하기에 대처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거짓은 늘 진실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기에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인식 주체의 내면에 진실로 가장된 채 둥지를 틀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로 고정된다. 그런 ‘허위의식’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진실로 위장된 거짓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인정된 관습이요, 용인된 문화로 자리 잡는다. 그런 기성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 제도화된 거짓된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내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허위의식을 밖으로 끌어내 검증받아야 한다. 그것이 ‘거짓된 진실’이 아닌지 세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지금까지 용인해왔던 숨겨진 진실을 캐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매우 긴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마음 속 깊숙이, 혹은 관습화된 우리 문화의 중심부에 튼튼한 뿌리를 꽂고 있어 의도적으로 보려하지 않는 한 ‘인식되지 않은 위협’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자의 의도가 바로 그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여우의 탈을 쓴 사악한 문명에 이미 기만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눈으론 절대 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치부를 하나하나 발가벗기는 고된 작업을 그는 하려 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일이기에 문명의 달콤한 꿀맛에 젖어 있는 인간으로선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이미 내가 향유하고 있는 지구 차원의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기에 애써 외면하려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자는 그것이 설사 메아리 없는 외로운 선각자의 절규에 그칠지라도 그리 하지 않는다면 전 지구의 절멸을 걱정해야 하기에 애써 그 길을 가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데릭 젠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제도화된 증오와 착취를 살핀다. 인류의 오랜 역사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요해왔던 계급 착취의 현장, 세계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인종적 차별, 가부장적 제도가 남성의 의식에 심어준 성(姓)적 편견 등 온갖 거짓된 진실이 인간 의식을 왜곡하고 있는 현장을 누비며, 그 속에 내재된 진실을 가장한 허위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는 인류 문명이 그 이면에 약자들을 착취하는 피의 역사를 감추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우리 시대 약자들의 외마디 비명을 강자들의 잔인한 폭력과 대비해서 드러낸다. 따라서 그는 범죄자들이 수감된 교도소, 인디언들의 학살현장, 아프리카의 노예시장, 농약과다 사용으로 파괴된 환경 등 인류 문명이 저지른 잔악한 현장을 누비고 있다. 내가 권력의 핵심에 있지 않은 일반 독자라 해서 그의 외침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미 증오와 착취가 제도화된 상태에서는 일반인들마저도 거짓된 진실에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제도적 문화가 외적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달콤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가 과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구입한 다이아몬드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이미 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나 또한 착취의 역사에 동조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 데릭 젠슨의 세밀한 분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이토록 우리 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허위를 속속들이 밝혀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앞가림에만 급급했던 나의 이기적 행동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작가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구의 소수인들에게 이런 수치스런 감정을 심어주려고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맹자가 말했듯이 그런 수치감이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기를 기대해본다. |
|
이와 같이 드러난 진실을 맞대는 순간... 추악한 인간과 집단, 가치관의 한 면모를 보며 경악하기 보다는 .... 내 내면에 나 자신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가치관과 사고,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 혹은 약자에게 폭력적이지 않았는가를 되짚어 보게 된다.
증오 속에 폭력을 휘둘렀던 자들. 혹은 집단은 그것이 당연한 사명이며 그릇된 행동이라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집단' 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집단과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필. 요즘처럼 정치적인 사안들이 민감하게 떠오르는 시점에 더욱이 이 책이 던져주는 물음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한 번 더 고민하게 한다.
책에서 밝히는 진실과 이면에 드러난 거짓과 증오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다른 시각으로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알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매일을 고달프게 살아가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바득바득 나만, 내 가족만 바라보게 되는 이 나이에.
나와 남, 이 사회와 내 후대가 살아가게 될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한다. 하여 이 책은 감히... 정말로. 꼭 되짚어봐야 할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