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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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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혹은 누군가가 막스라고 하면 칼 마르크스인지 막스 베버인지 헷갈릴때가 있었다. 여전히 두 사상가를 잘 모르지만 막스 베버는 더욱 모르는데다가 어디선가 그의 사상에 비판하는 글을 스칫듯 읽었던 탓에 칼 맑스에 반하는 관념적이고 비실천적인 사상가라는 이미지로 나에게 남아있었다. 언젠가는 막스 베버에 대해 알아보려 했던 차에 최근 출판된 이책을 접하면서 막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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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혹은 누군가가 막스라고 하면 칼 마르크스인지 막스 베버인지 헷갈릴때가 있었다.

여전히 두 사상가를 잘 모르지만 막스 베버는 더욱 모르는데다가 어디선가 그의 사상에

비판하는 글을 스칫듯 읽었던 탓에 칼 맑스에 반하는 관념적이고 비실천적인 사상가라는

이미지로 나에게 남아있었다.


언젠가는 막스 베버에 대해 알아보려 했던 차에 최근 출판된 이책을 접하면서 막스베버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는데, 막스베버의 사상에 대해 서술한 책이 아니라 그가 태어나서 '

죽을때까지 지식인으로서, 그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사유했고

행동하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베버를 통해 한국대학과 지식인의 모습을 비추어 보려고

노력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은 한국대학과 지식인의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을 담고 있다고 하였다.

막스베버라는 타자를 통해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 사회를 되돌아 보려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베버가 살았던 독일의 경우, 자신의 입학 대학에서만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전공 등에 상관없이 훌륭한 교수에게서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었다. 베버는 집안 환경 등 여러 요인으로 어릴때부터 그가 어떻게 공부를 해왔으며,

대학에서 법학, 경제학, 역사학, 철학, 문화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였고, 친구들, 교수들, 여러 인문학자들과 어떠한 비판과 토론을 통하여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쌓아 갔는지를 알 수 있다.

 

베버가 대학을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으로 보았고 대학은 다양한 자유정신들이

모여 서로 투쟁하는 곳으로 이들 정신은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부분을 학문하는 사람, 지식인의 자세로 본 것같다.

대학은 개인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이 어떠하든 얼마만큼 전문적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는냐는 것이다. 훗날 베버는 자신과 정치적 사상을 달리하고 주장하는 바가 다른 학자들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학교의 반대에도 끊임없이 후원하고 추천하였다. 베버는 후원과 비판을

엄격히 구분하였는데, 학자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하여 그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대학계과

지성계에 후원하는 것과 학자의 학문세계가 지닌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인을 비판할때 그의 인격이 아니라 그의 논리에 지향되는 것인데, 인격과 논리의

구분을 못하여 한국사회에서는 합리적인 비판문화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십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 대학의 수업방식이 어떻게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교육 문제는 늘 대두되는 문제이다. 수업방식, 교육 시스템, 교수와 학생의 태도,

취업 준비 학원과도 같은 대학....이러저런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 교육 체제를 긍정하는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스템하에서도 우리에게도

좋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있고 베버처럼 역사에 남을 학자도 있을 것이다. 베버가 있던

시대에도 베버와 같지 않은 그저그런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대학이 지식 전수 및 인격도야, 가치관 정립, 국가와 사회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문화적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야하고 교수를 포함한 지식인은 기업가처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우리의

대학 모습이라고 말한다.

 

베버에 따르면 대학은 전문적 연구와 교육을 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문화적 공간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라는 것이고, 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베버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 즉, 강단에서 정치적,

종교적 등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학생들에게 선동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면서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며, 나에게 좋은것이 너에게는 나쁜것이

될 수 있는데, "학문적 영역에서는 오로지 순수하게 객관적 사실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인격'을

소유한다."고 한 강연에서 말하면서, '직업'으로서의 자기성찰과 사실적 연관관계의 인식에

기여하는 것이지, 예언자가 희사하는 구원도 아니고 현자와 철학자가 세계의 의미에서 대해

명상하는 부분도 아니라는 것이 직업으로 학문하는 자, 즉 학자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은 책임윤리를 가지고 정치를 통해 살아가고, 정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경제인도 학자나 정치가와 마찬가지로 객관적 사실 즉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 헌신해야

하는데, 이것이 경제인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또한 베버가 당대의 지식인들과 어떻게 친교를 맺고 서로에게 학문적으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지를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지식인의 친교는 패거리를

짓는것이 아니라 다양한 세계관과 정신 및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자유로운 의사 소통을

추구 하는 장이라한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아 자신의 지적

세계를 넓고 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말미에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 책의 베버에게 배울 것은

"대학과 학문 그리고 지식인의 근대성을 확보하라!"라는 말로 요약 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책이 위인전 혹은 영웅전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에게 부재한

진정한 지식인상을 찾아보려는 작은 시도라고 말한다. 막스 베버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를 통해 그가 보여준 지식인의 사유와 행위가 이 책이 밝히고자 하는 바라고 강조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자신의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왜 이책을 썼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것이 이해가 될때도 안됄때도 있고, 때로는 저자가 이러저러한 의도로 책을 썼다고

말하는 지점이 나에게 전혀 받아들여지는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는 저자의 바램과는 달리 베버의 위인전으로 읽히는 것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베버의 긍정적인 면을 주로 보여주며, 베버의 사유와 행동을 통해

우리를 고찰해 보기 위한 지점을 조금더 신경써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잘 찾아 보지 못했거나, 밥숟갈을 입에 넣어줄 수는 없잖냐는

것이라면 나의 미숙함 탓이겠지.

"대학과 학문 그리고 지식인의 근대성을 확보"라는 저자의 바램만큼 한국 대학과 지식인의

문제점에 대하여 누구나가 인식하고 있는," 대학은 대학이라는 기치 아래 누구든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자유롭게 대학을 옮겨다닐 수 있으며, 대학의 서열관계를 없애야하며

대학입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 외에, 베버의 지적 탐구의 길과 인생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무엇을 더 얻을 수 있기에는 저자의 의도만큼은

독자인 나에게 전달이 안된 것 같다.

s****i 2008.03.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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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를 통해 눈높이가 높아졌으나 현실에서는 어떠해야 할지...
"막스 베버를 통해 눈높이가 높아졌으나 현실에서는 어떠해야 할지..." 내용보기
내 삶 속에서 언젠가는 막스베버의 유명한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겠다고 마음먹은지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그러던 차에 막스베버를 검색하던 중 아주 우연히도 김덕영이란 학자에 대해서 알게 되어 이 책을 읽었는데참으로 많은 깨달음과 우리의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위에 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다음 기회에~2
"막스 베버를 통해 눈높이가 높아졌으나 현실에서는 어떠해야 할지..." 내용보기
내 삶 속에서 언젠가는 막스베버의 유명한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겠다고 마음먹은지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차에 막스베버를 검색하던 중 아주 우연히도 김덕영이란 학자에 대해서 알게 되어 이 책을 읽었는데
참으로 많은 깨달음과 우리의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위에 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다음 기회에~
2008년 문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될 정도로 나 이전에 익히 이 책의 탁월성과 적절성을 많은 이들이 알아본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나를 성장케하는 책을 읽으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책을 통해 느끼는 것은 막스 베버는 참 행운아란 사실.
정신적 동역자인 아내와 그리고 주변의 다양하고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유...
한국적인 상황이라면 '아버지살해'란 학문행위를 한다면 당장 밥줄끊기는 신세에 처할 텐데 아니 아예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학문적 거인으로 보이는 교수나 학문적 난쟁이 교수들이 동일하게 자신의 후배 혹은 제자들을 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자신의 자리를
설정하고 곤고히 하는 현실 앞에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다.
그래서 막스베버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한계를 느낀 자들의 부적절한 행태들을 김덕영은 여실히 머리말에서 일갈하고 있다.
난 여기다 한가지 보태고 싶은데 학교내의 보직에 눈 멀어 연구는 게을리 한채
학교발전이라는 그 거대한(?) 명분아래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행위들이 만연된 모습도 보인다.
신망받고 존경받는 교수들이 보직을 하는 게 아닌 감투에 눈먼자, 자리를 밝히는 자 등이 여러루트를 통해 행정의 달인(?)으로 대학사회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도 있다.


김덕영같은 학자들이 한국에 터 잡고 분위기를 쇄신해야하는데 저 멀리 독일땅에 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한번 높아진 눈 수준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이는 히딩크로 대변되는 2002년 월드컵 팀의 매직성적과도 연결된다.
그 이후로 축구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은 형편없는 실력에 한숨만 쉬었던 적이 있다.
난 이 책으로 갑자기 높아진 눈높이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정녕 감이 안 잡힌다.
교수같지 않은 교수들이 각종 매체에 쏟아내는 글들. 그리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모르는지 각종매체는 교수라면 그냥 권위가 있고 대표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사고에 젖어 시청자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오염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토론프로 보는 것이 하나의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밥그릇 싸움에 학제간 벽을 막아놓은 현실에서 학제간 벽이 학제간 문으로 바뀌는 날 우리 지성사회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뭔가 기대할 만한 장족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 대한 조금의 비판을 가하자면 전반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 소개하는 정도의 모습만이 보인다.
마지막에 책을 덮으면서 많은 유익이 있었지만 너무나 예찬조의 내용만 서술된 것이 아닌가란 약간의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김덕영이란 작가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는 익숙하고 유익을 주는 작가로 알고 있었겠지만 처음으로 알게 된 나에게 앞으로 관심있게 바라볼 작가를 알게 된 즐거움이 크기에 위에 말한 정도의 아쉬움은 또다른 희망으로 다가옴을 느끼기에
매우 좋은 책으로 기억하고 싶다.


m*****e 2010.1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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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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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를 고를 때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가장 먼저 선택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비록 오늘날에는 실패작으로 평가되고도 있으나, 그의 이론은 당연하게 여겨지던 계급과 그에 따른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의 물꼬를 틀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마르크스의 연구를 일컬어 이데올로기적(정치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즉, 사회체제에 내재된 모순을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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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를 고를 때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가장 먼저 선택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비록 오늘날에는 실패작으로 평가되고도 있으나, 그의 이론은 당연하게 여겨지던 계급과 그에 따른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의 물꼬를 틀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마르크스의 연구를 일컬어 이데올로기적(정치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즉, 사회체제에 내재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요인으로서의 운동을 중시했던 마르크스의 목소리에는 학문다운 객관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막스 베버(Max Weber)에 대해서는 학문의 객관성을 중시한 나머지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평이 도출되곤 한다. 그렇지만 사회학의 발전과정을 탐구하는 사회학 연구 과목에서 베버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학자도 없는 게 사실이다.

저자의 이 책은 막스 베버의 삶, 학문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베버의 연구가 방대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 책 한 권을 통해 막스 베버라는 대학자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책이 ‘베버라는 사람이 이러이러한 것을 추구했구나’라는 감을 익힐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인 것만은 사실이다.

 

유럽 사회에서 후진국에 속하던 독일은 당시 부강한 국가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었다. 이에 따라 모든 학문의 중심에는 ‘국가’가 놓였다. 즉, 국가의 영광을 위한 것이 진보로서 각광 받았다. 베버는 이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국가 아닌 개인을 학문의 전면에 내세우고 가치중립적인 사회과학을 추구했음은 이를 증명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베버의 시도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불과 30세의 나이에 19세기 독일 상법을 이끈 거두인 레빈 골트슈미트의 뒤를 이어 정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그의 사회학적 방법론 덕분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독특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베버의 명성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베버에게는 방법론 이상의 무기(!)가 있었다. 첫째, 부정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변증법적 발전을 꼽을 수 있다. 베버는 기존의 지배적인 가치 체제라 할지라도 무조건 옹호하지 아니하였다. 철저한 사고 과정을 거쳐 긍정적인 부분은 자신의 학문적 토대로 삼되 아니다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저자는 이를 ‘아버지 살해’라는 프로이트적인 언어로 표현했는데, 토마스 쿤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연구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학자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아집(我執)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둘째, 차이에 대한 존중이다. 베버의 연구와 게오르그 짐멜의 연구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실제로 베버는 짐멜의 연구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과 학문적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 그에겐 증오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베버는 자신과 아무리 다른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일지라도 학자로서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짐멜에 대해서도 그러하였으며, 오토 그로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입장은 달라도 그 순수성만은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친, 오토 노이라트와 에른스트 톨러를 향한 베버의 변론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베버가 이처럼 열린 사고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문에 대해 소신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그는 사회학뿐만 아니라 철학, 법학, 경제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능통했으며, 다방면의 학자들과 소통을 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과 학문의 세계에서는 가능한한 다양한 방향의 학자들이 공존하면서 연구 활동을 해야 한다(p 199)고 믿었다. 또한 그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는 것을 근대성의 원리로서 이해했다. 그랬기에 베버는 급진적인 시디칼리스트이자 아나키스트라 할 수 있는 미헬스도 끌어안을 수 있었다.

이러한 베버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학제간의 연계 도모 움직임이 가열차게 진행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우리는 무능한 전문가로서의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만일 우리 사회가 다양함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더라면 그리고 자신의 업무에만 정통하는 것을 뛰어넘어 개별적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상위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을 중시했더라면 지난 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적 문제제기가 처참하게(?) 봉쇄되진 않았을 것이다. 최선의 윤리를 판단함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과 결단을 중시하는 베버의 방식을 따랐더라면 국익에 반하는 매국노적 행위라는 비난 역시 그토록 자유자재로 일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버를 향한 오해를 풀기 위해 책의 일부분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순 없겠으나 그의 학문이 결코 반동적이지만은 않았음을 이 구절이 조금은 설명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론과 실천 또는 학문과 정치는 기계적으로 분리되거나 결합되지 않는다. 양자는 일단 분리된 후 결합된다. 이론이 가장 좋은 실천이 되려면 일단 가장 좋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연구를 위해 헌신하는 학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추구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p 211)

 

베버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가치판단이냐 가치중립이냐를 이분법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범주 사이에 지적 노동분업과 지적 공동작업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p 230)
q*****2 2008.07.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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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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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어떤 곳일까? 전문성이 바탕이 된 지적 논쟁과 토론이 있고,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상대가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이 탁월하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일까? 아니 함께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에서 자신과는 다른 학문세계를 열어가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덕영은 대한민국 대학을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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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어떤 곳일까? 전문성이 바탕이 된 지적 논쟁과 토론이 있고,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상대가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이 탁월하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일까? 아니 함께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에서 자신과는 다른 학문세계를 열어가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덕영은 대한민국 대학을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에서 “조폭과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패거리 문화, 근친상간과 동종교배가 횡행하는 대학, 사학비리,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비정규직 노동력의 착취, 학력위주와 학위조작, 기초학문의 위기, 기업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대학, 시민강좌 수준으로 전락한 대학 교양 교육, 영어 공용화를 외치는 지식인들이 …”가득 찬 곳이라고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상아탑’은 학연, 지연, 연줄, 자본에 이미 무너졌다. 한 마디로 ‘거대한 혼돈’ 이배하는 대학이다. 김덕영은 거대한 혼돈에 허우적거리는 대한민국 대학 현실을 향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그 대안을 ‘막스 베버’(1864~1920)가 살았던 삶과 학문적 성과를 통하여 찾고자 한다.

 

막스 베버는 니에스, 지멜 등과 더불어 현대 독일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지은이로 익히 알고 있다. 항상 우리는 이렇다. 누가 어떤 책을 썼다는 정도로 그를 안다 말한다. <자본>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칼 막스를 안다면서 통렬히 비판하는 것처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지도 않고 막스 베버를 논한다.

 

막스 베버는 사회학자로서 독일 지성계와 대학세계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전공인 법학 외에도 경제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고전학 따위를 연구하면서 “문화과학의 영역에서 훌륭한 교수가 강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었다.” 

 

베버가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대학학제가 여러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었고, 대학 서열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버가 훗날 현대사회학의 거목으로 독일 대학계를 넘어 세계 지성계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독일의 지적 풍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현실에서는 도저히 접할 수 있는 독일 대학사회의 지적 풍토는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를 읽어가면서 부러움과 함께 그 길을 결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일류대학 열병과 학문보다는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우리 대학 현실에서는 세계 지성계를 뒤흔들 대학자가 탄생할 수 없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하지만 베버가 살았던 독일사회는 현재 우리 사회보다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았다. 시민계층은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성숙하지 못했다.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독일 통일과 함께 정치와 정신을 지배했던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가 다스렸던 시대와 같다.

 

비스마르크를 정점으로 한 독일은 군국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관료주의가 독일의 학문, 대학, 정신까지 지배하였다. 독일경제학은 경제 행위의 주체로 여겨졌던 '국가' 대신 시민사회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주창하였고, 독일제국 아들인 독일시민 계층 역시 자기 자신을 '아버지'인 귀족계급과 동일시하였다.

 

“독일 시민계층의 정치적 미성숙은 독일 국민 국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문제,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 역사의 종말를 고할지 모를 정도로 국민국가에 위협적인 것이라고 베버는 확신했다. 이처럼 독일의 시민계층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이유는 아직도 귀족계급이 군주주의적며 관료주의적인 국가체계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으려면 국민국가를 창건한 귀족계급, 즉 ‘아버지’를 살해하고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시민계층, 즉 아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는 것밖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132쪽)

 

베버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아버지 살해란 독일정신-시민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정신-에 대한 거부였다. 시민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국가야 말로 진정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믿었다.

 

베버는 비스마르크가 남긴 "눈곱만큼도 정치적 교육도 받지 않은 국민"이 "정치적 사고의 자유성과 정치적 자유를 교육시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신적 자유를 최고 선으로 여겼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고, 국가를 시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그 행위를 억압하는 것을 거부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했던 일이다. 경제와 안보를 위하여 시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였고,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했다.

 

지금 그 망령이 되살아나려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진정 강한 나라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시민이 얼마나 많은가에 있지 않고,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할 때 가능함을 우리는 베버를 통하야 배워야 한다.

 

베버는 말한다. 대학은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이다. 베버는 대학을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으로 보았다. 대학이란 다양한 자유로운 정신들이 모여 서로 투쟁하는 곳이다. 사회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하며 무정부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한다.

 

베버는 자기와 학문세계가 달라도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가 위대하다면 존중하였고,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기를 원했다.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 출신의 이탈리아 사회학자로서 신디칼리즘(급진적 노동조합주의)과 아나키즘이 결합된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로버트 미헬스를 부르주아 사회과학자들의 독무대인 학술지와 학회 및 사회과학 총서 발행인으로 끌여들었다고" 김덕영은 말한다.

 

학술지가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베버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사회주의가 아니면서도 급진적 사회주의자 미헬스를 보수사회학회지 논문에 게재토록 했다. 이유를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가치와 관계된 모든 학문 분야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철학 역사학 국가과학읩 분야에서는 기능한 다양한 방향의 대표자가 공존하면서 활동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바의 대학은 교회나 종파 또는 국가를 유지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191쪽)

 

“대학이란 한마디로 전문적 연구와 전문적 교육을 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문화적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수의 인격은 바로 이 전문성에서 나온다.”(213쪽)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지난 봄 서울대학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가 정년퇴임을 했다. 김수행 교수는 대표적인 마르크스경제학자였다. 경제학부교수가 30명이 넘는데 김수행 교수 퇴임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자는 사라졌다. 대한민국 일등 대학, 세계 일류대학을 지향한 대학이 학문의 다양성을 거부한 것이다. 치열한 논쟁은 간데 없고, 획일화된 사상만 지배하는 대학은 죽은 사회이다.

 

김덕영은 말한다. 대학과 학자는 전문성을 설파고, 다른 이의 학문을 학문으로 비판해야 한다. 분석과 비판, 논쟁과 아버지 살해가 존재하는 대학만이 살아있는 대학이라고. 학연, 지연, 혈연으로까지 엮여있는 대학민국 대학과 지식을 향하여 "대학과 학문 그리고 지식인의 근대성을 확보하라!"

 

k****e 2008.11.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대학내의 학문간교류가 활발했던 시대의 베버
"대학내의 학문간교류가 활발했던 시대의 베버" 내용보기
저자는 나를 실망시키지않는 몇명의 저자중 한사람이다. 막스베버가 살던시대를 리뷰해가면서 베버를 영웅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되레 베버자신이 하이델베르그에서-나는 하이델베르그를 간적도 있건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알지못했다. 알았으면 가보았을것을- 자신의 법학과 종교사회학을 통한 연구를 펼쳤던 시대를 오늘날의 우리대학의 현주소와 비교하고 있다. 특히나 최근 각학문간을
"대학내의 학문간교류가 활발했던 시대의 베버" 내용보기
저자는 나를 실망시키지않는 몇명의 저자중 한사람이다. 막스베버가 살던시대를 리뷰해가면서 베버를 영웅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되레 베버자신이 하이델베르그에서-나는 하이델베르그를 간적도 있건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알지못했다. 알았으면 가보았을것을- 자신의 법학과 종교사회학을 통한 연구를 펼쳤던 시대를 오늘날의 우리대학의 현주소와 비교하고 있다. 특히나 최근 각학문간을 넘어선 -법학과 사회학- 소통, 인문학과 자연과학간 교류등이 절실한 우리나라에서 경쟁적, 자기아성쌓기에 바쁜,미래를 보지못하는 것들을 볼수있는 책이었다.  나는 그러면서 베버의 유명한 저서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있는중이다.  그리고 이 책속에 나온 프로테스탄트중 하나인 루터에대한 책들도 읽어보려고 하고 있는중이다.    
j******f 2008.03.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