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써울에서 살아! 써울사람이야. 서울을 극하게 강조하다 보니 써울이 되었다. 웃자고 만든 코미디에 나는 왜 그리 공감을 하며 웃어대고 따라하는지, 아마도 그런 비슷한 소시민적 경험이 있다보니 쥐어짜는 웃음이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웃음이 지어지는 것일게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지방에서 다닌 나에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한마디로 미지의 공간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도 못되었던 나는 졸업때까지 시골뜨기였고 아주 한참이 지난 뒤에라야 서울이란 거대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던 나날들, 탁한 도시의 공기에 숨이 차오르고 발뒷꿈치의 군살이 서너번 박혔다사라졌다를 거듭할 즈음 어느 덧 그토록 적응안되던 서울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외국어발음에도 여지없이 적용되는 토종 사투리 억양에 수치심마저 차츰 사라져갔다. 시골뜨기 상경기의 애환은 각종 회의와 개인간 대화에서도 발휘되었고 뚜렷한 지방색 지우려고 안간힘 쓰던 나의 모습이 장난스러운 코미디안에 듬뿍 들어있어서 안웃고는 못베기겠더라.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이 책은 서울사람, 시골뜨기 구별없이 읽고 생각해야 할 서울 곳곳의 장소에 얽힌 고단하고 기막힌 역사적 유래가 담긴 고민스러운 교양서이다. 젊고 혈기 왕성한 지은이의 다이나믹한 사고의 틀이 현실에 급급하고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며 곧잘 잊어버리고 곧잘 말문이 막혀사는 대한민국인에게 고증을 통한 역사적 증거들을 들이대며 사실적으로 설명하려는 학자 정신과 발로 뛰며 진실과 거짓을 증거하는 기자 정신이 보인다. 극단적인 표현보다는 단방에 결정짓는 한줄 문장으로 자기 표현을 극대화하는 지은이의 작가적 마인드가 읽는 동안 싫지 않았고 그런 글들이 더욱 고민스러운 숙제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도 치유 못하는 역사적 방관이야말로 가까운 미래의 급물살에 표류하고 마는 조각배안의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리란 경고를 보낸다. 우리는 왜 우리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하는지 정말 난감하다. 사회적 분위기가 표피적인 쾌락과 예능에 치우치다 보니 우리의 본모습을 깊이있게 보기 싫어한다. 알면 다친다는 표현에 익숙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적당주의, 정치적인 내면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는 권력형 인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지나치게 방관하는 낙관주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얍샆하고 한심한 개념들에 눈과 귀를 열고 사는 일상은 절대 우리에게 행복한 미래를 열어주지 못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가진 가치에 무지했다. 복잡하고 사람많고 비인간적인 도시라고만 생각했다. 알면 다친다는 개념에 익숙해서 일게다. 정말로 알아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고 고치고 반성해야만 용서와 화해가 뒤따르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들과 그 장소들을 찾아가며 진실과 허위가 어느 선에서 만나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 스스로 뽑은 권력집단의 본질이 어느 유전자소속인지 알게 한다. 서울을 재발견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면 좋을 책이다. 거닐다라는 표현은 무척 여유롭고 문학적이지만 촌티를 벗은 지금에도 나는 간혹 서울을 다닐때면 거닐기 힘든 도심의 길사정과 그로 인해 신체가 겪는 번거로움으로 벅차기만 하다. 과거 이성적인 도시기획에 관심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여지껏 우왕좌왕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라고 본다. 큰 그림을 못그리는 이유는 옆에 뭐가 있는지 관심밖인데가 상호간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밀하게 시스템을 작동하기엔 아직 길이 멀어보이는 우리의 도시가 긍정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
|
1월 말에 yes24에서 구입한 책으로 여느 때처럼 주문 후 그 다음날에 받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네 역사와 문화, 문화재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류의 책들에 손길과 눈길이 가기 마련인데, 그런 과정 속에서 만난 책이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이기도 하다. 조선왕조가 개창한 곳이자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로 자리매김한 곳이 서울이다. 서울은 유구한 세월을 이어온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암사동의 선사시대 유적부터 왕궁터로 추정되는 몽촌, 풍납토성 그리고 근초고왕을 비롯한 백제 왕실묘로 추정되는 백제 적석 고분군 등의 백제유적을 비롯해서 고구려, 신라 등의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에서 서울의 이런 모습만을 담아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주로 역사가 서려있는 서울의 근대 건축물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하나 둘 파헤쳐 나가면서 그간 우리들이 외면하고 지나쳤었던 불편한 진실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두희의 총탄에 김구가 쓰러졌던 곳이자 상해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기도 했던 경교장이 오늘날 병원의 정문으로 전락해 버린 이야기에선 안타까움마저 묻어나게 된다. 또 아무런 이유없이 독재정권의 논리나 노림수에 의해서 희생양으로 쓰일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여 한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그 마지막 하나까지도 깡그리 없애버린 고문의 현장이었던 남산의 옛 안기부 건물은 민주주의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은 무시한채 오늘날 서울 유스호스텔로 새롭게 단장해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독립문의 남과 북에 한글과 한자 씌여져 있는 편액이 친일에 가장 앞장섰던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독립문의 '독립'이라는 의미가 과연 어떤 의미일지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본 대목이었다. 그리고 거창한 계획으로 세워졌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흉물로 전락한 세운상가와 친일인사 중 하나인 육당 최남선 고택이 철거된 모습이라든지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개발경제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가장 대표적인 부실시공의 예라고 할 수 있는 와우아파트의 붕괴 과정 등등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 밀레니엄의 첫 10년째에 다다른 2010년. 급격한 경제성장과정을 거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대열에 들어서기 위한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깔끔히 털고가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친일인사에 대한 청산과정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을 한 이들이나 그 가족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 주는 일일 것이다. 아울러서 우리의 슬픈 과거와 역사적 상처가 깃들어져 있는 건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때려 부수고 볼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의 탈바꿈은 어떨까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뭐든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하에서 우리의 내실을 키워나가면서 좀 더 자신을 되돌아 보는 독서로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그런 점에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
|
서울을 거닐며 일제와 독재의 잔재를 만나다!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은 이게 정답이다. 서울의 문화유적에 대한 소소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일찌감치 책을 놓으시라. 이 책은 지난 한세기동안 이 땅의 수도 서울 곳곳에 생체기를 남기고, 이 땅에 민중들을 할퀴고 지나간 비극과 애환에 대한 사명감 깊은 기록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위정자들이 외쳐대는 글로벌하고 다이나믹한 도시이기 전에 파괴와 수탈의 역사, 시민의 피로 얼룩진 슬픔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다.
저자는 어쩔 수 없이 맞딱드리는 일제와 독재의 잔재를 하나하나 해부하듯 파헤친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그 잔재들의 물리적인 청산이 아니다. 오히려 잔재들의 완전한 정신적 청산을 위해 건물과 기념물을 보존하고 그 위에 진실을 기록하자고 제안한다. 건물의 용도를 바꾼다고 해서 후세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건물에서 자행된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그대로 보여주고, 기억시키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가벼운 책을 골랐는데 본의 아니게 고민스런 책을 읽게 돼버렸다. 하지만 이런 책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저자가 안타깝게 기록을 찾아 헤매다 반가운 기록을 찾는 것 만큼이나...
|
|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서울이라는곳에서 역사의 현장을 되세겨보면서 장소들을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것이다. 특히나 지방에 있는 이들은 더욱 그럴것이고.....
서울이라는곳에서 직장생활을 3년동안 했지만 기본적인 생활에서 필요한것들외에는 거의 접하지 않은 서울 이제는 그 서울이라는곳을 역사와 함께 만나본다.
처음 만나보는 이 책의 작은 글씨체에 일순간 멈추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곳의 한장소씩 만나보는 이야기들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너무도 모르고 있었던 우리의 근현대사 이야기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면서 모르던 우리의 역사를 하나씩 알아가는 신기함에 한때 역사학도가 되겠다고 꿈궈보기도 했던 나이지만 너무도 모르고 있었던것 같다.
서울의 궁과 그리고 우리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렸을때에 관여했던 인물들을 장소에 의해 만나보는 재미는 서울이라는곳에 대하여 잘 모르는 나에게 서울의 끝없는 탐험의 세계로 인도하는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민족의 안타까웠던 시절의 이야기들까지 갑자기 한강의 기적을 일으킬수 밖에 없었던 군부독재 옛서울시장의 불도저같은 행정들 보안법이라는 명맥아래 행해졌던 갖가지 험악한 일들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했던 과거 건물과 친일 새력들의 화려한 재개(?) 등 서울을 거닐면서 사라져간 우리의 역사를 저자는 하나씩 꼽으면서 너무나 잘 알려주고 있다. 그동안 3일운동의 주체를 33인에 한정되어 생각해왔던 나 하지만 진정한 우리국민이 이뤄낸 그야말로 우리의 자긍심이 느껴지게 만든 독립운동이 아니었나 싶다,
읽고 읽고 , 되풀이해서 읽어보면서 근현대사를 한자리에서 다 만날수 있는 이책 역사의 한장면을 생각한다면 꼭 권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근현대사를 서울이라는 장소로 되짚어본다. |
|
며칠전 서울의 역사를 대표하며 함께해 온 남대문의 화재로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국민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임엔 틀림없다. 국보 1호 남대문을 잃으며 우리의 자존심마저 잃어감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 보는 이 책은 더욱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서울을 상징하는 수 많은 역사와 문화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지 올해로 60주년이 되며 한강의 기적과 함께 청계천 복원까지...서울은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니며 서울의 변화하는 모습속에 살아왔지만 서울 촌놈이라는 말이 있듯 정말 가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한 많은 서울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보면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것만 내세우고 싶어하고 가지고 싶어한다. 부끄러운 기억이나 상처에 대해서는 들쳐내고 싶어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린다. 서울에는 많은 곳에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거나 왜곡된 흔적이 보인다.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견디어 버텨온 서울... 그러나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서울은 그런 아픈 일들은 이제 다 잊었다는 듯 화려하기만 하다. 화려하고 멋진 모습이 모두에게 자랑스러울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세계의 어느 도시 못지않은 수준의 서울로서 발돋움하기를 또한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낡은 것은 헐고 없애서는 안될 것이다. 부끄러운 역사는 부끄러운 대로 교훈으로 삼고 반성하며, 자랑스러운 역사는 자손 대대로 잘 물려주기 위해 보존할 건 보존하며 내일을 준비해야함을 잊지말자.
책에서 저자는 모두 네개의 코드를 통해 역사적사실 뒤에 숨겨진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1. 일상의 재발견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게된 배경과 사라진 청계고가 이야기 그리고 남산 공원에 세워진 김구와 안중근 동상이 친일 미술가에 의해 빚어진 사실들을 만날 수 있다. 2. 문화의 재발견 -영화의 산 증인 단성사와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세운상가 유람기, 옛 대법원 자리에 세워진 서울 시립 미술관, 원래 보신각 자리는 탑골 공원 옆이었다는 사실등을 알게되는 장이다. 3. 의미의 재발견 -서대문 형무소의 80년 역사중 절반의 기록만을 내세우고 있는 궁금증을 풀어주고, 일제로의 종속을 의미하는 독립문의 상징, 산자를 위한 공간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립서울현충원 등 의미를 바로 되새겨 볼 수 있다. 4. 장소의 재발견 -와우아파트를 비롯해 옛 안기부, 태화관 터, 노기신사터, 박문사터등 일제는 조선 왕실과 관련되 시설을 동물원이나 놀이공원등으로 만들며 희화화 했다.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잡고 있었던 박문사 본전의 문은 경희궁의 정문 홍화문을 떼어다 정문으로 삼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문화공연장으로 일제의 정치 집회의 장소였던 부민관이 현재 서울시의회 청사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장소는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은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저자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
|
학교 다닐때 제일 싫어하는 과목중에 국사와 세계사가 있었다. 어쩜 그리 외울 것도 많고 고리타분하고 지겨운지.. 흥미가 없으니 수업 시간엔 졸립고, 시험 기간엔 정말 공부하기 싫어 울며 겨자먹기로 책을 들여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내가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비로소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엔 조선시대 야사부터 시작했는데 점점 분야를 넓혀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 보니 왜 이렇게 재밌는 것을 배울 때는 몰랐을까란 생각이 들어 약간 원통하기까지 했다. 특히 국사 부분에서 내게 쥐약이었던 일제시대와 한국 근현대사,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이 책은 시골 촌구석에 살던 한 청년이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새로이 접한 신천지에 마냥 들떠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직접 서울을 발로 탐사하고 조사한 기록이다. 처음엔 그저 단순히 서울 기행문인줄로만 알았는데 읽다 보니 이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왜곡 비판서에 가까웠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접하고 있는 건물들속에 숨겨진 역사적 이야기와 사라져가는 유물들,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고 생각없는 개발로 본래 의미를 잃어가는 건물들.. 책을 읽으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내 나라의 역사에 대해 이토록 무지했던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내가 몰랐던 사실도 꽤 되었는데 역사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본인의 잘못도 인정하지만, 그보다 이런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한 우리나라 윗분들이 원망스러웠다. 매년 새해를 맞는 의식중의 하나인 제야의 종 타종식은 실제로는 일제시대때 시작된 것이고, 종을 치는 횟수인 33회는 민족대표 33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신각의 타종 횟수라고 한다. 아침에 33회, 저녁때 28회를 쳤는데 이 숫자는 불교의 우주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민족의 전통과는 별 상관이 없는, 아니 어찌보면 일제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인데 그 기원을 모르는 우리들은 매년 새해 첫날을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맞이하곤 한다.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취했던 행보에 관한 대목이었다. 3월 1일 거사를 앞두고 탑골공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이제나 저제나 민족대표가 나타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길 기다렸으나 결국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자 한 학생이 대신 낭독을 하고 만세 시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날, 그 시각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이란 곳에서 만세 삼창을 한 후에 독립선언서 낭독도 생략한채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다. 시위를 한 이름없는 국민들은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요 부상자가 속출했고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은 십수년이 넘는 형량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자수한 민족대표들은 2,3년 정도의 형량만 받고 풀려났으며 그 중에서 상당수가 친일로 전향을 했다. 저자는 누가 그들에게 '민족대표'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주었는지, 이제 그 타이틀을 거둬들여 이름없이 스러져간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영광을 돌려주어야 되지 않을런지를 묻고 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세대인 내가 읽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인데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어떠셨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친일파를 제대로 처단하기는 커녕 미군정, 독재 체재를 거치면서 오히려 친일파를 등용하고, 통일보다는 반공을 우선시하여 평화적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친일 반공 세력이 처단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일제의 수탈 시대는 치욕적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 역사를 무조건 덮고 뒤돌아 보지 않는 것도 안타까웠다. 난 거대한 규모의 조선 신궁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사진으로 보니 어마어마했던거 같은데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정말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난 일들을 겪고 성장한 우리나라,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그에 걸맞은 역사 의식은 전혀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 이래서는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들의 잘못된 역사를 왜곡시키지 않고 반성하는 독일을 보라. 일제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문제삼지 말고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민주 독립 투사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그 시절의 잘못된 역사부터 제대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
|
2011년 제1회 서울순성놀이를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빠지지 않고 그 험준한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서서히 한양 도성이었던 서울의 옛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돈의문, 숙정문, 창의문, 흥인지문, 숭례문을 지나오면서 걷다가 만나는 근대문화역사 유적지를 볼 때면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존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지 알게 된다. 일제에서 해방된 후 역사보존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때라 처참하게 허물어지고 망가진 사례들이 무수하다. 부끄럽고 치욕적인 역사라 할지라도 완전히 없애버리면 누가 그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근데 걷다가 마주하게 된 복원현장을 보면 정말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구색 맞추기 위해서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형편없고 경제개발과 눈 앞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과거 문화재 따위는 어떻게되든 상관없는 것일까? 점점 방치한 채 망가져가는 문화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유럽이나 동남아, 남미에 가도 아직까지 잘 보존된 역사유적지를 보면서 감탄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에 대해선 무관심을 넘어 아무런 생각없이 훼손을 할까? 우리가 관심을 두고 지키지 못하면 후대에 남는 건 오로지 사진과 영상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과 모르고 있던 부분도 많았다. 서울에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묻혀있거나 어딘가에 방치된 채 놓여있는 문화재들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현존하는 건물들도 새롭게 보인다. 역사를 깊게 알면 알수록 진실에 더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지금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만든다고 정부에서 발벗고 나서는데 왜곡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를 기술했으면 한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지 말았으면 한다. 권기봉 씨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에 더욱 강하게 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내용이 전부도 아니거니와 실제와는 다르게 알았던 내용들이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광스런 역사만을 기억하고 배울 것이 아니라 <징비록>처럼 뼈아픈 역사까지도 우린 자세히 배우고 알아야만 한다. 과오를 분명하게 인식을 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과거. 기득권층을 위한 역사를 통해 무얼 배울 수 있을까? 근현대사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의 행적과 격동하는 시대에 대한 이해. 신분제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한 생각의 변화. 노론, 소론, 남인, 서인에 이어 보수와 진보로 나뉜 첨예한 이데올로기 공방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여전히 혼돈이 가득하다. 불과 몇십년 전에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몰랐다. 왜 귀중한 지.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당장의 생계를 위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의 통제. 병영식 교육문화. 국가와 민족 앞에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민초들은 자신을 희생하며 내일은 나아지겠지. 위에서 어련히 하겠냐고 믿었지만 배신을 때리는 권력자들이 무수히 많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국가로부터 그 억울함을 풀지 못했다. 독립문의 진실과 서울시의회의 역사, 세종로와 이순신 장군 동상에 얽힌 이야기. 조선총독부와 경성총독부, 조선신궁에 대한 것까지 때로는 비판적이고 떄로는 해박한 역사인식으로 간만에 몰입하면서 봤다. 인구 천만명이 사는 서울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아이러니하고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 사는 것만 같다. 몇 십년, 몇 백년 후에도 그 자리 그대로 문화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
서울을 거닐면서 언제나 이곳은 과거에 어떤 곳이였다고 말해주는 표지석을 볼때마다 아 이곳 서울에 역사의 층층이 겹겹히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역사의 남은 끝자락의 유적은 유흥과 흥미에 휩쓸려 돌아보지 않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기도 했다. 평소에 서울에 있으면서 역사적 유적을 한번 정리된 책들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권기봉의 이책을 발견하였다.
흥미있는 책이다. |
| 현재를 말하는 책은 많다. 과거를 말하는 책 또한 많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현재의 곳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 그 시간을 보듬어안는 따뜻한 시선 속에서 안타까웠던 건 그 추억들이 가볍고 달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간 시간 속에는 현재를 만들기 위해 아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몸에 불을 사르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며 그들이 외친 구호는, 불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육체를 사그러뜨리며 그들은 우리에게 정신을 남기고 싶어했다. 후손들을 위해 싸우면서 지켰던 모든 것들이 아직도 서울 곳곳을 누비며 숨어 있는데 나의 짧기만 했던 시선은 그 곳까지 닿지 않았다. 이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걸 찾지 못했을 뿐더러, 보이더라도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
|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이 책의 선택에 있어 가벼운 서울이야기를 생각했었다. 서울에 산지 40년이 다 되어가고 나름대로 서울에 대해 많은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살아왔지만 내가 알고 있던 서울은 그저 눈에 보이는 모습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데는 책의 초반 몇장을 읽는 것으로 충분했다. 내게는 단순히 '생활의 터'였던 서울이 산골소년이었던 필자인 권기봉씨에겐 '원더랜드'였고 서울을 접근하는 기본적인 방식에서 차이로 인해 내가 보지못하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서울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을수 있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 내 어릴적 기억의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너무 다르고 몇 년전의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또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기억속 과거의 서울은 내게 희미한 무의식으로만 존재할뿐 '그땐 이랬어'라고 자연스럽게 보여줄 사료나 자료가 내게도 서울자체에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이 그져 안타까울뿐이다. 내가 곤충채집하러 다니던 노원 주변일대가 어느날 더이상 그런 곤충은 눈을 씻고 찾을수도 없는 아파트가 되었고 담넘어 다녔던 고택골 학교 뒷산 역시 아파트로 변했는데 지당한 다이나믹한 변화라고 여기며 그 이전의 서울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1. 잔상의 서울
서울의 근대화에 남아있는 일본식민시대의 잔재를 되짚어 보는 필자의 눈은 그 내면에 깔려있는 의식과 연결되어 잔설로 남아있는 그 흔적과 정리되지 않는 과거사에 대한 꾸준한 추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젊은시절 발이 닳도록 오르내리던 더하여 내가 아주 어렸을적부터 궁금해하던 질문이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던 질문인 "왜 일제는 독립문을 허물지 않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는 것으로도 나에게는 이 책은 축복과 같은 존재였다. 오랫동안 풀지못한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의 맛은 여전히 쓸수 밖에 없다. 독립운동가 후손 80%가 고졸이고 60%가 무직일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친일의 그들은 2010년 현재까지 변함없는 진화의 극을 보여주고 있고 나름 많이 배우고 출세했던 그들의 성공이 예견된 현실이 아닌가 싶다. 잊혀져 가는 과거와 함께 그에 비례해서 사라져가는 건물과 같은 일제의 잔재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유태인의 아유슈비츠처럼 보존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친일인사들이 그들의 과거행적이 잊혀지기위해 노력하듯 고의적으로든 무관심으로든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도 우리 서울의 현주소이다.
오랫동안 왜 독립문은 일제시대에 그대로 남아있을수 있었을까?란 해답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풀수 있었다.
2. 발전의 그늘
해방후 격변을 거치면서 그리고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수도 서울의 모습도 그만큼 달라질수밖에 없을것이다. 내가 어릴때 부터 보아오던 발전의 상징 우리집앞의 청계고가가 헐리던 날은 난 사실 많이 아쉬워했다. 종로까지 거침없이 한방에 갈수있었던 그 기억이 지금도 도심을 지날때면 그립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고가 밑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갈라진 벽체를 집요하게 땜방하던 삼일아파트와 침침하게 나열된 청계상가와 평화시장 및 헌책방의 기억들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 시절의 퀴퀴함이 전해 오고 있었다. 각하는 생명의 원천이고 우리의 아버지라고 여겼던 순진했던 전태일의 분신의 흔적으로 남아있던 동판은 청계천 복원과 함께 뜯겨져 나가고 새롭게 흐르는 청계천은 과거 청계고가의 시발점이었던 우리집 근처에 이르러서는 검은 물체가 둥둥 떠다니는 탁계천인건 여전하다. 급성 개발로 인한 와우아파트같은 붕괴사고는 뒤로 넘기더라도 개발로 인해 접어두어야 했던 인권에 대한 기록들도 필자는 옛 안기부 건물과 일제의 만행의 장으로만 축소되어버린 테마파크(?) 서대문형무소를 조명하면서 다시 드러내주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로는 씻을수 없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지만 서울은 그 흔적을 조금씩 탈색해가고 있다.
개발의 그림자는 여전히 2010년 설날의 왕십리 세입자에도 남아있었다. 설날에 구청앞에 모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그들이 왠지 서글프다.
이책을 다 읽고 나서 [서울을 통해 근대역사를 조명해본다]는 이책의 취지를 전혀 모르고 단지 달달한 숨겨진 서울찾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택한 내 자신이 부끄럽지만 한편으로 이 책의 선택을 최근 내가 한 책 선택 중 베스트로 꼽을만큼 나에게는 유용한 책이었다. 아직도 개발진행형인 서울이 되돌아오지 않을 메아리겠지만 20년이 더 흘러 내가 60이 되었을때는 단순 과거를 반복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보존과 창조가 공존하는 그런 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