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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 있는 그 나라만의 특색이나 문화를 만나게 되면 참 신기하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유래가 있는 것인지 안다는 것도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나? 밤에 손톱이나 발톱을 깎으면 안 된다고.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나는 밤에는 손발톱을 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암튼... ^^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가 추리소설과 만나게 되면 즐거움이 더욱 배가 된다. 이름도 생소한 라만고. 깎은 손톱이나 발톱이 적의 손에 들어가면 감염주술의 원리에 의하여 원소유자를 해치게 된다는 관념. 그래서 마다가스카르섬의 베스틸레르족의 관습으로 그들은 라만고라는 직책을 가진 자를 두어 왕족의 손톱과 발톱을 먹어 없애게 했다는데... 네일 아티스트로 일하는 홍지인은 딸을 유괴 살인 사건으로 잃게 되어 남편과 이혼한다. 딸을 잃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부터인가 악몽에 시달린다. 사이코 패스, 청부살인업자, 고문 수사관 등.. 꿈속에서 홍지인은 범죄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현실 같은 악몽에서 깨어나면 그녀의 손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통만 남는다. 첫 악몽을 꾼 날 알 수 없는 남자로부터 라만고라는 단어를 듣게 되고 갑자기 찾아온 전 남편에게서도 똑같은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며칠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 한편 꿈속에서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고 지인의 악몽이 현실을 투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라만고라는 말을 했던 남자가 라만고는 거울 속의 자신이라고 말하게 되는데....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기억에서 지우려 하는지... 만약 그 자체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이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고 스릴러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나 뜨거운 여름에 읽는 이런 종류의 소설은 완전 환영한다. 늘 우리나라 추리소설에 빈약함을 느꼈고, 우리도 우리식의 추리소설이 있기를 갈망했는데.. 결국 내가 찾지 않은 탓이지 우리나라 작가들이 글이나 소재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손톱이 빠져나가면서 홍지인은 진실과 만나게 된다. 그 진실은 추악하고 잔인하다. 만약 그게 너와 나 우리라면... 그 진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평범하고 착한 얼굴을 한 우리의 이웃. 그리고 내 친구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 뒤편에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스스로 없애기도 하고,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순전히 자신에게 유리하기 위해.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고, 얼마나 냉정해 질 수 있는지 무섭다. 나는 그럴 일이 없다고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을까? 4개월 된 자신의 아이를 때려 두개골에 손상을 입힌 아버지를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착한 사람이라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런 얼굴 뒷면에는 자신의 자식도 때릴 수 있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 그게 바로 사람이 아닐까? 베일에 쌓인 채 피해자로만 생각했던 지인의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이 책의 절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겪어도, 오랜 시간 알아도 당최 알 수 없는 종족이 아닐까?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알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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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동안 몇번이고 나의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것을 아는가? 당신은 꿈에서 살인을 당했다. 라만고가 나에게도 찾아올 지 궁금해지면서도 두려워진다. 살인을 비롯한 모든 추악한 범죄를 저릴렀던 사람들은 자신이 저릴렀던 죄악을 잊었다. 잠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던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은 정말 말그대로 오감을 자극하는 묘사였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어딘가에서 실제로 라만고에게 손톱을 먹히고 악몽을 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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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소설에 관한 개인적인 새로운 발견
깎은 손톱, 발톱이 적의 손에 들어가면 감염주술의 원리에 의하여 원소유자를 해치게 된다는 관념 때문에 마다가스카르섬의 베스틸레로족에는 '라만고'라는 직책을 가진 자를 두어, 왕족의 손톱과 발톱을 먹어 없애게 한다.
주인공 홍지인은 서른두살의 이혼녀이다. 반년전 세상 하나뿐인 딸 희수를 유괴살인사건으로 인해 잃어버리고 지금은 애인인 세준과 함께 동거중이다.
어느날 지인은 악몽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어떤 살인마에게 빙의되어 또 다른 이에게 무참하게 난자당해 죽어가는 끔찍한 꿈이었다. 자신의 눈알을 파고드는 살인자의 손톱. 사신 오영종이 조종하는 다크템플러의 칼날같은 그 손톱.
마침 직업이 네일아트를 하는 사람이라 손톱에 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한 편인데도 도무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현상이었다.
급기야는 꿈에서 본 그 사신을 현실에서 직접 만나게 되고 추격전끝에 교통사고로 죽어가던 사신이 지인을 바라보며 내뱉던 한마디 '네가 날 죽였어..' 죽어가던 자신의 전남편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타나 자신에게 던진 비아냥 그리고 라만고.
과연 그녀와 그녀가 살고있는 홍주의 사람들에겐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투신자살한 행려병자는 손톱이 열개 다 빠지면 라만고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소설이라는 장르상 마지막은 미리 설명하지 않는게 예의라고 판단되어져 생략하는 바이다. 공포영화는 항상 그 극적인 공포감을 조성하는 정형적인 플롯이 있고 그걸 항상 제일 마지막에 배치한다.
이 소설도 그 마지막에 모든 설명이 되어있고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듯 그 느낌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책은 아마도 필자가 처음 본 한국 공포소설 이었던것 같다.
그 이유는 문학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도 낯뜨거운 10대들이 쓴 로맨스 소설들이 버젓이 소설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팔리고 읽혀지고 영화화까지 되기도 했던 사실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이었으리라.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의 저자인 김종일씨의 책을 모르고 지나쳤더라면 개인적으로 후회를 할뻔했다.
별로 무서움을 타지도 않고 공포영화를 보러가도 무덤덤한데 옆에서 소리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놀라기 보다는 짜증부터 나는 필자가 밤새 읽은 이 책의 책장을 덮고 불을 끄고 혼자사는 방의 침대에 누웠을때 악몽이나 꾸지 않을런지 내 손톱이 라만고에 의해 뜯겨나가지나 않을런지 기분이 찝찝했던걸 보면 말이다.
김종일씨의 작가후기를 보면 자신이 왜 공포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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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엄마가 되면서부터 보다 많은 것을 바라게 되었다. 내 아이에게만은, 나의 천사에게만은 좋은 세상, 좋은 옷, 좋은 음식들을 선사하고 싶었다. 나는 헐벗어도 내 아이에게만은 좋은 옷을 입혔다. 나보다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인지라 나는 더욱 좋은 것을 찾아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에서 해주었다.
정말 억척스럽게 모유를 먹였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탓에 내 아이만은 꼭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탓에 모유도 나오지 않았는데, 특히나 고기라고는 못 먹는 사람이 친정엄마가 주시는 고기국을 코를 막고 매일 큰 대접으로 4번씩 마셨다. 피가 나고 헐어도 모두가 다 분유 먹이라고 해도 나는 억척스럽게 고집스럽게 내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그 덕분에 우리 아이에게 18개월 동안 모유를 먹일 수 있었다. 이유식도 고집스럽게 먹였다. 신선한 재료로 매일매일 귀찮아도 해먹였다. 나는 그렇게 내 아이를 키웠다.
이 땅에 엄마라면 모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니 모든 엄마들이라면 자식에 대해 각별하지 않을까?
이 소설 서두부터 나는 '나'와 만났다. 소설 속 주인공 홍지인이 그러했듯 내가 마치 그 소설 속의 '나'에게 빙의된 것처럼 그가 느끼는 고통을 오롯이 느끼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손톱>이라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까지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은 그만큼 특별했고 나를 소설 속을 빠져 들게 만드는 그런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도 매일 꿈을 꾼다. 내 꿈도 매일같이 다양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의 꿈은 우리의 일상적인 꿈들과는 사뭇 다르다. <손톱>에서 홍지인이 꾸게 되는 꿈은 세상에 마땅히 단죄되어야할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과 그 응징에 대한 악몽이다. 작가는 그 악몽을 통해 세상에서 자행되는 죄악의 정화를 이야기하고, 독자에게 그런 인면수심이 되지 말기를 당부하는 듯하다. 생생하게 묘사된 소설 속 사건들을 읽으며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몇 번이나 거듭했다. 그리고 홍지인의 악몽을 통해 드러나는 인면수심들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그랬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홍지인에게 빙의되어 소설 속의 사건을 내 삶의 그것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몇번이나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반복했는지 모른다. 빠른 사건 전개와 빼어난 흡입력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장르소설이 척박한 우리 나라에서 이 소설은 정말이지 값진 수확이다. 김종일은 평소 공포소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단숨에 빠져들 만큼색다른 소재와 탁월한 글솜씨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게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는 이 소설의 탁월한 미덕이었다. 그래서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이 소설의 영화화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TV뉴스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건들로 즐비하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식 키우는 엄마로써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계모에 대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김종일은 작가의 말을 통해 모든 사건들은 실제가 아닌 허구임을 밝히고 있지만, 현실은 이 소설보다 더 잔인한 일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김종일은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른 인간에게도 재생의 기회를 부여한다. 아니, 어쩌면 그는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고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들의 세상을... 애초에 그런 죄악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묵직한 여운을 느끼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나도 그런 세상을 꿈꾸기로 했다. 내 아이에게만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공포소설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선뜻 손에 들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절대 그러지 말기를 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정말이지 작가의 후속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나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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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의 이혼녀 홍지인.비극적인 범죄로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고 상처받은 그녀.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몽. 그녀는 그 악몽 속에서 자아를 잃고 '오롯한 타인'으로 거듭난다. 그런데 이 '타인'들이 어째 영 예사롭지가 않다.? 싸이코 연쇄 살인마에, 손 맛 운운하는 살인 청부업자,퍽치기범에 고문 기술자까지 ... 그리고 지인은 그 악몽 속에서 타인의 의식인 채로 생생한 고통을 느끼며 『손톱』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악몽에서 깨어나면 멀쩡하던 손톱이 생으로 빠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기묘한 현상에 시달린다. 결국 이 불길한 현상는 한 행려병자와 남편의 입을 통해 '라만고'라는 생소한 단어로 지인에게 한걸음 더 깊숙이 다가오는데. 당신이 까맞게 잊고 있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라만고' 매일 밤 악몽을 꾸게 하고, 그녀의 손톱을 빼먹는다는 이 라만고는 과연 무엇일까? ********************************************************************
『손톱』에서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다. 특히 초반부의 '흡인력'과 '속도감'이야말로 손톱이 가진 최고의 강점이 아닌가 한다. 이는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성이 극단적으로 선악간 양극형으로 이분되는 공포소설에서 '예지몽'혹은 '사이코 메트리'를 한단계 뛰어넘어 꿈을 매개로 완전한 '자아의 교체 =탈바꿈 '이라는 새로운 설정으로 땡기는 맛을 더욱 가중시키는 한편, 시기적절하게 '라만고' 라는 기발한 소재를 등장시켜 '어머,손톱 먹는 쥐 얘기는 들어 봤어도 사람은 처음일세 , 정말 이런 게 있기는 한건가?.등등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고취시키는데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는,작가가 공포의 광도를 높이기 위한 '소설적 장치'를 더 이상 울궈 먹기식이 아닌, 오로지 작가 자신의 힘으로 심도있게 관찰,개척하고,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도 생각해 본다. 이러한 노력은 김작가의 전작 <벽>과 <일방통행>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공명= 맞울림'이란 물리학 용어를 인간과 인간의 소유한,혹은 꼭 필요로 하는물건에의 애착 관계,인간대 인간의 관계로 재조명 한 뒤, 아지랑이 괴물의 '무기'로 탈바꿈 시킨 점이나 당연히 승리하리라 예상했던 주인공이, 끔찍한 폭력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져내리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낸 공포를 보여준 <일방통행>.에서도 그러했다.
여기서 저자의 속도감 있는 문장이나,일광성 있게 한가지 사건을 향해 뻗어가는 치밀하고, 탄탄한 구조에 관해 새삼스레 다시 말할 필요성은 없다고 보고 손톱은 장르문학,특히 공포 소설이 가진 배척당하기 쉬운 '사악한 오락성'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독자의 가슴에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달 할 수 있는가를 확연히 보여 준 수작임에 틀림없다. 사실 작품 말미에서... 어디에서 기인 된지 모를...약간은 불편하고,곤욕스러운 감정을 느꼈는데 소소?하긴 해도 자신또한 작은 라만고를 가진 죄있는 인간임을 어쩔수 없이 인정하고야 말았다. 누구의 손에도 손톱은 달려있다. 육체를 훼손할 물리적인 손톱에서 타인의 영혼을 암팡지게 할 퀼 수 있는 독을 품은 숨겨 둔 손톱까지 ... 그 것에 할퀴어진 적도 할 퀸 적도 있을 것이다 분명. 그러나 박힌 가시를 뺄 수 있는 것도 손톱이요, 상처를 쓰다듬고 약을 바르고 어루만져 줄 것도 손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손이란 아이러니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손톱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문장에서 나름 그 해답을 찾아 보았다. 선의 끝은 악이요. 악의 끝은 선이다 - 라로 슈푸코 ....선과 악은 분명이 다른 것이다.할퀴는 손톱과 치료하는 손처럼. 그러나 그들은 한 모태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와 같다고 본다. 뛰어 봤자 라만고 손바닥이라고 냉소하는 지인의 말처럼 선과 악 또한 뛰어 봤자 ’인간의 마음’ 속인 것이다.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이 수많은 흉악한 범죄들, 차마 인간의 겁데기를 쓰고 저질렀다고 믿기지 않는 만행들. 희생자만 남긴 채 영원히 비밀의 늪으로 가라 앉아 버리는 사건과 사건. 우리는 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너무나 많고, 용서를 구하는 이들은 너무나 적다. 그리고 작가는 그 또한 결국 인간의 사악한 마음 속에서 나오고 있음을 '라만고'라는 특이한 영혼의 이등법을 대입시켜 아프게 일깨워준다. 지인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일까? 그른 것일까? 나는 알수 없다. 글쎄 답이 없는 것이 답이 되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결국 인간이 인간이 단죄할 방법은 인간이 만들어 낸 법 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리 법의 심판을 받고 그 책임을 물어 형을 산다고 해도 참회가 없는 형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옥이든 신의 심판이든 그건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일테고.. 가장 이상적이나 가장 이루기 어려운 것 ...........라만고의 정화 . 느리게 진실로 뉘우친 자들만이 도달 할 수 있는 세상 내가 찾은 메세지는 근본적인 '영혼의 재생=뉘우침'은 법이란 테두리를 거치기 전에, 우리의 내면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그리고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그 따뜻한 재생을 간절히 원하고,믿고 있슴을 『손톱』을 통해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손톱을 접하는 한국의 독자들이 공포소설은 잔인하고, 끔찍하기만 하다는 선입견을 털어 버릴 좋은 기회임과 동시에 허기진 한국 공포 문학계를 채워 줄 단단한 반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다카노 가즈아키가 한번 거세게 흔들어 놓았던 내 자신의 사형 찬성론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음 또한 같이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까탈스러운 애정(?)을 담아『손톱』아쉬운 점을 몇가지 들어 보라면, 1)배경이 되고 있는 네일아트숍의 전경이-손톱을 작은 캠퍼스 삼아 온갖 색체로 가득 찬 화실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지 않고 있다는 것,2)세준의 '여편네'란 칭호의 의아스러움,3)수연 패거리의 '그 예외적 상황'이 독자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 다는 점이 세가지를 꼽겠다. 끝맺음으로 김종일 작가님의 공포문학계의 (무시무시한!!) 정진을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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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어느 영화 제목에서 보았던 것 같은 어디선가 보았던듯한 기억이 있는 제목이었다. 그렇게 겁도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펼쳐든 책을 몇장 넘긴후... 후회가 밀려들었다.
무섭다..ㅠㅠ 잔인하게 무서운 책이었다.
공포영화를 보듯 장면장면이 살아서 내게 들어오는것 같았다. 그때문에 책읽는 속도가 이렇게나 느려질 수도 있구나..생각했다.
밤시간에 스탠드를 켜놓고 보던 책들과는 달리 이책은 환한날, 환한 공간에서 읽게 되었고. 장면이 지나가면 잠시 책을 놓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공포영화를 좋아는 하지만 온몸에 힘을주고 소리지르면서 보는 내게는 -_-;; 약간은 고통이었다.
그래도 이미 시작된 일, 읽어야 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무서우면서도 자꾸 나에게 "라만고"가 뭔지 궁금하지 않아? 라면서 책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홍지인의 꿈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면서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무엇인가 더 있을꺼야 라고 자꾸만 암시를 한다.
꿈속에서 극악무도한자들의 몸에 빙의되어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과 같은 고통을 맛보는 홍지인. 그리고 그 꿈 하나마다 사라지는 손톱.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듯 나타났던 그녀의 죽은 딸 희수, 그녀에게 헛소리를하며 사라진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전남편.
그녀가 사는 이곳 홍주에서 6월 15일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향해 점점 다가오는 라만고의 실체와 그녀의 꿈에 등장한 사람들이 조여오는 압박.
그리고 점점 드러나는 라만고.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다가오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지금 밝혀버리면 읽는 재미가 없을테니 이쯤에서 접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읽었던 어떤 공포소설보다 잔인하고, 공포스럽고, 어떨때는 눈뜨고 읽지 못할 것 같았지만..,. 우리나라 공포소설의 새 장을 열어줄 책이란 것은 인정하고 싶다.
노약자나 임산부, 공포영화가 꿈에 나타나는 분들은 부디 읽지 말라고 권고한다. 라만고가 당신이 잠든밤 당신의 꿈에 나타나 당신의 손톱을 야금야금 먹어치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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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포스릴러라는것이 다소 믿겨지지 않는다. 공포소설을 좋아하기에 본 책 '손톱'을 보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가짐은 한번에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공포 및 추리소설들의 특성상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소설의 재미나 긴장감이 확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몇장을 읽으면서까지 소위 말하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 그 뒤를 아무리 잘 표현해놓아도 이미 실패한것에 대한 변명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때가 많다.
하지만 본 소설은 단 몇페이지를 읽으며 기대이상의 느낌을 받았으며 오랜만에 책을 놓지 못하고 들고 다니며 읽는 재미를 맛보았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기존의 소설들과는 다른 시작이 실제로 소설이 끝나면서 너무 큰 반전을 느끼는 또 다른 자극제가 되었던것 같다.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아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남편과 이혼한 이혼녀 주인공은 실제로 심리적 상태가 극도로 불안한 생활을 하게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꿈들을 통해서 현실과 꿈이라는 두가지 공간과 상황에서 헤메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손톱' 가장 중요한 이야기거리와 소설을 이어가는 매개체를 너무 잘 선택한것 같다. 사람에게 '손톱'은 가장 중요하면서 실제로는 그 중요도를 모르고 살아갈만한 인체소유물이다. 그리고 손톱은 총 10개로 더 있지도 덜 있지도 않는 고정되어 있다. 실제로 이야기의 주 시간적 구성의 기본적 개념이 되어주는 손톱은 악몽(악몽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의 생활공간이라고 해야 옳을것 같다.)을 꿀때마다 하나씩 빠지게 된다.
긴장감의 극도는 바로 이 '손톱'이 하나씩 빠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손톱은 10개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손톱이 빠지는것과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가 서로 부딪치며 소설의 중반과 후반을 갈수록 주인공의 심리적 대립이 최고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극적인 반전을 이룰수록 그 허망함을 클 것이다. 본 소설에서의 허망함은 그 끝을 말하기가 곤란한 정도이다. 두꺼운 책이지만 읽은 페이지가 적어지는 느낌이 이렇게 아쉬울때가 또 없었을것 같다.
현실과 공상...공상과 현실의 대립... 선과 악...악과 선의 대립... 결국 이러한 상반되는 대립적 존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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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본격적인 공포스릴러는 처음 읽어보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공포를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읽다가 너무 무섭고 떨려서 그만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다음 장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몇 번씩이나 서로 충돌하며 싸워야 했다. 생소한 '라만고'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홍지인이라는 인물에게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 그녀가 겪는 공포와 고통이 읽는 내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어 내가 마치 홍지인인 것 같은 착각 속에 공포심이 더욱 극대화되었던 것 같다. 공포영화를 봐도 나는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통해 공포심을 유발하는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피를 보여주는 등 특정 장면을 통해 느껴지는, 혐오감이 앞서는 공포감보다는 특정 분위기를 통해 관객의 심리를 압도하면서 느끼게 하는 공포감을 선호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비내리는 날 빨간 점퍼를 입은 아줌마가 살해당하는 장면처럼. 이 책 처음부분을 읽을 때는 첫 장부터 너무나 잔인한 살해장면이 등장해 읽기가 좀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이다. 공포스릴러라고 하더니 잔인한 살해 장면을 통해 공포심을 유발하는 소설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처음의 그런 나의 생각은 여지 없이 틀렸다. 이 소설에서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은 잔인한 살해장면보다도 홍지인이 꿈에서 깨어난 후 겪게 되는 일들이 훨씬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곧 영화화된다고 한다. 이 책의 느낌을 100% 잘 살려낸다면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역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이야기를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작가 김종일님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김종일님도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공포소설 작가는 인성자체가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편견은 오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소설장르는 비단 판타지소설 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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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로 제법 알려졌다는 김종일님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었다 내 손끝에서 매일 조금씩 자라는 손톱이 무사한지 자꾸만 확인하면서 한번에 읽어버렸다 사실 며칠씩 걸리면 악몽을 꿀까 무척 두려웠음을 시인한다 공포영화는 아무렇지않게 즐기면서 보지만 공포소설은 몇날 몇일동안 꿈을 꾸게 한다
너무 더워서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여름날 갑작스럽게 시작된 악몽은 주인공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여섯살의 어린 딸이 유괴후 살해되고 남편과 이혼한 홍지인은 친구 민경과 함께 네일샾을 운영한다 그녀는 악몽속에서 청부살인자이고, 아무이유없이 사람들을 헤치는 사이코패스이며 퍽치기범이고 강간범이다 매번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깨어나보면 손톱이 하나씩 사라졌음을 알게된다
혼란스러운 그녀에게 다가와 [라만고]에 관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행려병자 느닷없이 찾아온 전남편도 [라만고]라는 말을 흘리고 사라지지만 이미 며칠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데....
손톱을 먹고 주술을 거는 라만고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의 시 <거울>과 묘하게 어울려 두려움과 혼란은 점점 커져만 간다 홍지인은 꿈속의 인물들이 실재하는것이 아닐까 의혹을 갖게되고 연인인 세준과 함께 실마리를 찾아나선다 지인의 말을 의심하던 세준과 민경도 그녀의 악몽에 자꾸만 끌려간다
과연 열개의 손톱이 모두 사라지는 날 악몽이 사라질지 아니면 꿈속에서처럼 죽게될지 ....
지인의 꿈속의 인물들은 실재했고 꿈과는 달리 살아있었지만 과거에 저지른 악행은 기억하지 못했다 자기자신조차 잊고있는 비밀스런 일을 라만고는 알고 있다며 거울속의 자신이 바로 라만고라고 말하고 자살한 행려병자... 꿈속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이들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을 당한것이다
주인공 홍지인과 연인 세준, 친구 민경이 잊고있는 그들의 과거 그 과거가 지금 그들을 악몽속으로 몰아가고 있는것이다 과연 라만고와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을지 궁금하다
작가가 표현하는 악몽이나 하나 둘 빠져나가는 손톱이 지금 나에게도 일어날수 있는 일인듯 살짝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