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독자들이 20세기 러시아 혁명기의 소설들을 접하기 어렵다. 1950년대 말 러시아 해빙기 이후의 작품들이 간간히 소개되어 인기를 얻고 있지만, 20세기 초 혁명 전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아직도 거의 소개된 바가 없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혁명을 체험한 작가가 러시아 혁명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혁명에 기대를 담고 있는 <벌거벗은 해>의 출간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혁명을 전후해서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내려고 했고 예술적 실험이 활발했다. <벌거벗은 해>또한 그러한 맥락 속에서 창조되었고, 때문에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작가가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들이 고수했던 플롯과 시점을 해체하였기에 독자가 작품을 쉽사리 읽어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화려한 글쓰기의 기교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은 작품 주제 구현에 매우 효과적인데,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삘냑 이후의 많은 실험적 작가들이 삘냑의 장식적 문체를 모방하여 삘냑끼즘이란 용어까지 낳았다. 무엇보다도, 번역이 참으로 좋다는 것도 이 책을 추천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 소설은 특히 시적인 면이 강해서 번역이 더더욱 중요한데, 러시아 시를 전공하신 분이 러시아어에서 직접 한국어로 직역했을 뿐 아니라, 언어유희를 사용한 부분에는 주석도 달아놓았다. 하지만 (번역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제목이 원제의 뜻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아쉽다. '벌거벗은'으로 번역된 러시아 낱말에는 원래 '굶주린' '헐벗은' 이란 뜻도 있다. 또, 무엇보다 많은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은 '해'인데, 처음에 나는 '日'로 해석했는데 이는 한국어의 '年'에 해당하는 말이다. 결국, (내가 판단하기에) '벌거벗은 해'는 '극심한 가난과 궁핍에 떨던 혁명기'를 상징하고 있는 말이고 '헐벗은 나날'이라고 번역했더라면 의미 전달에 훨씬 효과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해'가 훨씬 시성이 뛰어나기에 '굶주린 나날들'보다 '벌거벗은 해'가 더 나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아! 어렵고 어려운 번역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