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월북시인을 읽은 게 아니라 유종호를 읽은 것이다. 하지만 대학시절 스쳐지나가면서 읽었던 이용악이나 백석을 다시금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 역시 덤으로 얻은 수확이다. 백석의 유아기 상상력과 그에 관련된 먹거리 시어들을 프로이트와 샥텔이란 안경을 통해 읽어내고 있는 부분이나, 이용악 시에서 토속어나 리듬감이 좌파적 메시지의 강박을 이겨내는 것을 부각하는 부분에서는 유종호 선생 특유의 문채(文彩)가 잘 드러나 있다. 네 시인을 논한 평론 중에서는 오장환의 것이 가장 심심한 쪽이며, 임화 챕터에서는 시보다 시 주변의 논란이 짙은 편이다. 네 평론의 이러한 색깔은 당연히 시인들 자신의 시적 성취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앞의 두 편보다 뒤의 두 편이 더 좋았다. 시를 읽어나가는 저자의 망원경과 현미경은 여전하다. 특히 이 나이든 교양주의자의 예리한 핀셋 앞에서 문장과 문장 사이의 몰염치한 비약이나 나태는 피해갈 길이 없다. 그가 안이한 시행을 여지없이 타박하고 허투루 자리잡은 어휘를 꼭집어낼 때는 말과 글을 부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문장 밑둥에는 따뜻함이 흐르는데, 이는 저자의 본래적 사람됨에 세월의 경륜과 육중한 독서량이 어울린 결과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월북시인’ 테마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시와 우리말을 좋아하고 좋은 문장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권한다. 한자세대 영문학자의 이 격있고 따스한 한글 운용력은 글다운 글, 말같은 말을 더욱 받치게 한다. 그것은 동시에 한국어의 동서남북을 살펴내고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세대에서 빨리 나와야한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한다. 뱀꼬리 1.“가령 언어 세련에 대한 배타적 전념이 야기할 수 있는 생활과 유리된 시의 불모적 국지화의 위험을 정지용에게서 보았을 것이다.”와 같은 투의 민망한 영문장이 가끔 보이는 것은 그의 실수지 게으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 "20세기 초반의 한국시를 번역시 혹은 번역 시형(詩形)의 변두리 장르 혹은 하위 형식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는 저자의 ‘노골적’ 주장은 인상깊다. 즉 이 시기의 선행시편은 두시언해와 일본 근대시, 서구의 고전주의-낭만주의이고 이러한 일체 외래의 성공적 ‘번역’ 여부를 문제삼아야한다는 것. 3. 좌파시인에 대한 저자의 평론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인상비평이라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종호가 쓴 월북시인’(유종호에 방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시를 넓게 읽기 위해서 이런 책들은 분명히 많이 나와야한다. 번지수가 틀린 트집을 잡아서는 안 된다. 4.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나 단락이 좀 있는데, 문학평론의 전문적인 영역은 생략하고 몇군데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쯤에서 우리는 임화와 우리 쪽 문학적 과거와의 관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시나 산문 혹은 문학적 자서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한문을 읽었다는 흔적이 찾아지지 않는다. 육당이나 벽초의 세대에게 한문이나 한시는 기층적 교양을 이루면서 그들 산문의 형성력이 되어주었다. 이태준이나 정지용에게서도 한문의 소양이 엿보이고 그것이 그들의 글을 무잡함이나 비속함에서 건져주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이것은 그들이 고전 한문을 연구하고 섭렵하여 조예가 깊었다는 뜻이 아니다. 한문 혹은 한시에 대한 기초적 소양이 시에 대한 형태적 배려를 단순한 기교라고 하대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한문에서는 문맥에 따라서 하나의 말이 명사, 동사, 부사 등 다양한 기능을 하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또 본래적으로 꼼꼼한 정독이 요구된다. 형태론적 변별성의 결여 때문에 의미와 언어 밖의 논리에 정신 집중을 하게 되고 그 결과 낱낱의 말의 무게와 비중을 실감하게 된다. 시의 경우 압운, 평측 등의 지켜야 할 관습은 형태적 고려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 고립어이기 때문에 말의 경제적 처리에 대한 감각도 민감하게 되고 말의 절약에도 유의하게 된다. 요컨대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 맞먹는 조탁의 원리를 학습자에게 내면화시켜주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한문에 대한 기초적 소양이 마련해주는 자기 기율의 계기를 갖지 못한 것이 임화 시의 취약점에 기여하였다는 추정을 금할 수 없다… …곰브리치는 그의 주저에서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카스틸리오네(B.Castiglione)의 생각을 인용하고 있다. [조신(朝臣, Courtier)]이라는 에티켓과 사회문제와 교양을 다룬 책에서 예사로움 혹은 태연함이라는 개념을 거론하고 있는 카스틸리오네에 따르면 참다운 예술가는 참다운 신사처럼 힘들이지 않은 채 작업하고 처신한다. 가령 너무나 세심하게 다듬고 끝마무리하는 사람은 참다운 예술가가 못 된다. 이에 반해서 예사로움(sprezzatura, nonchalance)은 완벽한 조신과 예술가의 특징이다. “힘들이거나 솜씨 자랑하지 않은 채 운필(運筆)하고서도 마치 화가가 의도한 대로 저절로 그 목표에 도달한 듯이 보이게끔 쉽게 그린 하나의 선이나 붓놀림은 그 예술가의 뛰어남을 드러내준다.”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대교무교술(大巧無巧術)과 통하는 생각이라 여겨지는데…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이 가여워서 시를 쓴다”고 만해선사는 말했지만 동물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사람됨의 증거이다. 쿤데라는 “참된 친절이 절대적인 순수성과 자유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떠한 힘도 갖지 않은 수령자들에 대해서뿐이다. 인류의 참된 도덕적 시험, 가장 근본적인 시험은 인간들에게 내맡겨 있는 것들, 즉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서 근본적인 인간의 실패가 나타났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고 적은 일이 있다… |
| 유종호의 평론은 매우 독특하다. 아니, 독특하다는 표현은 오히려 가볍고 진중하지 못하다. 그의 평론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시 한번 시를 눈여겨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복잡한 서구 고급 이론을 마구 접목시키거나, 저자의 잡다한 지식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평론이 지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유종호의 평론은 그래서 읽기 편하고 읽고 나서 뿌듯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방법론은 진솔함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은 과장되지 않게 하며, 시와 시인에 대한 이해는 정확하게 한다. 때문에 시의 좋고 나쁨을, 그리고 시를 더욱 효과적으로 탐색하는 방법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그가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한국시인 다시 읽기'를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모두 4부로 진행되는 이 책은, 1부에서 임화, 2부에서 오장환, 3부에서는 이용악, 마지막 4부에서는 백석을 다루고 있다. 이들 네 명의 시인의 이름을 들어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이들은 모두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월북한 시인들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정도는 각기 다르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은 북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시세계를 바르게 우리 문학사에 위치시키는 데 상당한 방해물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저자의 애착이 가장 심도있게 나타나는 임화의 경우는, 그가 가장 활동적이고 명석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며 이론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의 시가 사회주의 활동의 한 방법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시단에서 과소평가되고 잊혀져 있었다. 그의 천재성은 이런 저런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인데, 시인으로서 그리고 평론가이며 문학사가에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그의 문학적 여로는 매우 장대하고 심도가 깊다. 또한 장용학과 이용악, 그리고 백석 역시 우리 문학사에서 과소평가되고 때로는 과대평가되기 일쑤였는데, 저자는 그들의 시를 하나 하나 꼼꼼하게 되짚으면서 그 진가를 다시 발견하려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재미는, 뽐내지 않고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저자 특유의 문체일 것이다. 그의 문장은 명강의를 듣는 듯한 재미가 있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지치지 않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 시를 바르게 보기 위한 저자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매우 묵직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시의 아름다움과 그 발자취에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그 소중함을 금새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
| 유종호 교수님이 주장하는 시 읽기의 첫 번째 길은 꼼꼼함인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오버하지 않는 해석이 시를 읽는 첫 걸음이라는 뜻이겠죠. 텍스트에 충실한 시 읽기. 아마추어 독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마추어라는 미명으로 작품 외부의 에피소드에 주목할 때, 우리는 조금씩 시와 멀어질 뿐입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 많은 대중적 시 관련서들이 그랬습니다. 저자는 꼼꼼한 시 읽기라는 다소 딱딱한 명제로 시를 읽어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이 과정은 처음에는 시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시 해석의 정전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시 읽기는 정전을 얼마나 잘 외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독자가 시의 핵으로 다가가는 과정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독자가 끊임없이 재생성해 내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네 시인을 다룹니다. 임화, 오정환, 이용악, 백석. 이들의 시들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면서, 이 시인들에 얽힌 수 많은 오해를 풀어갑니다. 그 대부분은 시 텍스트에 얽힌 오해겠지요. 특히, 시인과 얽힌 에피소드는 최대한 절제합니다. 텍스트 해석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외부 이야기들을 집어 넣습니다. 유종호 교수님의 깔끔한 문장도 기억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거든요. 어려운 얘기를 얼마나 쉽게 쓰시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