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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는 여성 해방 운동의 핵심 개념이다.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억압해온 남성 지배의 근원이 가부장제에서 비롯한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여성의 인권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호주제 폐지 등으로 무너져가는 가부장제를 페미니스트들이 아직도 사용하는 이유는 여성문제가 자본과 계급뿐 아니라 젠더의 문제임을 설명하는 데 나름대로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가부장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지배의 여러 형태 중 한 가지 형태일 뿐'이며 '기존의 남성 지배/여성 종속이라는 가부장제 개념으로는 남녀의 성차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정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가부장제 대신 '젠더 무의식'으로 젠더의 감정 정치를 설명한다.
젠더 무의식은 '다형도착적인' 인간이 '강제적으로' 남성 아니면 여성의 성별을 획득하기 위해 다른 성을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으로 가라앉은 타자의 흔적을 말한다. 하나의 젠더로 정체화하는 것만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억압된 젠더의 흔적은 무의식에 남아있다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정동으로 귀환한다. 젠더 무의식의 한 형태인 여성혐오는 쾌감과 밀접한 감정이다. 젠더 무의식은 사랑이 뒤집힌 폭력성이나 살인충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슬픔이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과 불안, 공포와 분노, 슬픔과 혐오로 치환되는 정동은 젠더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저자는 이러한 젠더 무의식의 특성을 총 9장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1장은 타자에 대한 젠더 무의식의 형성 과정을 살피고 맥락과 시대에 따라 가시화되는 형태로서 신여성(페미니스트), 팜므 파탈, 레즈비언 뱀파이어, 귀요미, 된장녀 등을 분석한다. 2장은 기존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부정하는 여성의 폭력성을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 수용하고 폭력이 젠더 정치에 따라 어떻게 이해를 달리 하는지를 폭력성이 지닌 유혹과 여성적 폭력을 여성 권력의 기능면에서 분석한다. 3장은 여신 메두사의 추락과 함께 성녀/창녀, 순결/불결 등으로 이분화된 여성의 자리를 통해 젠더 무의식의 정치성을 살핀다. 4장은 여성과 마조히즘의 경제성에 대해, 5장은 사회적 약자들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는 수치심이 어떻게 정치화되고 재/배치되는지 젠더의 관점에서 논한다. 6장은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통해 추락의 재/의미화를 젠더의 관계에서 분석한 글이다. 7장은 애도의 감정이 타자와의 공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젠더 정치로 작동될 수 있음을 파악하고, 8장은 사랑의 용도에 대해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9장은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마사 누스바움의 이론을 통해 혐오와 수치심, 사랑과 공감, 연민의 감정을 '정치적 감정'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서사적 상상력이 필수라고 한 주장을 살펴본다.
'이성적 주체의 자리를 인공지능에게 내어주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제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곳은 '감정'뿐이라는 저자의 말은, 이성에 대한 맹목성이 제국주의 침탈과 세계대전의 비극을 가져온 지난 날의 인류 역사를 생각해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이성의 동반자로서 감정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해방 운동에서도 젠더 감정의 정치성을 올바로 평가해야 할 당위를 지닌다. 여성혐오로 인해 여성문제의 본질이 흐려질 즈음 미투 운동으로 다시 촉발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논의, 발전되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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