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다가 파괴된 사람을 사랑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그의 저서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이제껏 내 머릿속을 암울하게 지배하면서 답답하게 짓누르고 있던 일상의 부정적인 패턴들이 순간 거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레전드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소프라노의 한 시대와 또 한 시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명석하고 놀라운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일대기에 적혀있던 니체의 한 구절에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는 청초한 외모에다 담백한 글쓰기로 전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슬픔이여 안녕]의 작가 프랑스아즈 사강이 던진 강렬한 한 마디가 무감각한 상태에서 더 이상 허우적대지 말고 보다 활력있게 일상을 내다보게 만드는 마력같은 한 구절를 대했을 때와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지금의 나에게 이보다 더한 말이 또 있을까. 19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 음악계의 흥행을 도맡았던 삼인의 음악가로 롯시니, 도니젯티, 벨리니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아시다시피 오페라 작곡가로도 명성이 대단했다. 특히 벨리니(1801~1835)는 34세의 짧은 생애동안 [몽유병의 여인], [청교도], [노르마]등의 걸작을 남겼다. 1830년 3월 오페라 [캐플릿가와 몬테규가]의 베네치아 초연에 성공한 벨리니는 밀라노에 돌아와서 과로로 병상에 눕게 된다. 같은 해 7월경 대본작가 로마니와 당대의 주연급 가수 파스타와 결합하여 빅토르 위고 [에르나니]를 오페라화하려 했으나 불안한 사회정세와 까다로운 검열때문에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닫힌 문밖에는 또다른 방향으로 난 문이 있는걸까. 몽유병에 걸린 처녀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시기가 바로 그 즈음이었다. 1831년 벨리니가 30세때 만든 작품 [몽유병의 여자 La Sonnambula]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이 오페라의 인기는 바로 이색적인 소재에 있었다. 제목만 들어도 묘한 감흥을 갖게 하는 오페라가 아닌가. 몽유병를 소리내어 읽으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가. 프랑크푸르트암만 대저택 문가에서 유령처럼 서성이던 흰옷의 하이디가 떠오른다면, 이 나이에 소녀적 감성이라니 이런 젠장! 할까보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관심거리였던 연유로 몽유병에 관한 각종 정보를 대본과 악보에 넣었다고 한다. 벨리니의 작품은 단순하고 명쾌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고전의 격조와 낭만적 정서를 갖추고 있다. 관현악에서는 불충분한 점이 있다고 할 지라도 선율의 성부는 우수와 우아함을 곁들여 매력적이며, 이를 노래하는 데는 자주 벨 칸토의 극치를 나타내는 훌륭한 목소리와 어려운 기교가 요구되고 있다. 서정적인 명곡들이 많이 들어있는 오페라로 초연이후 압도적인 인기를 얻다가 차츰 그 명성이 사그라들었다고도 한다. 벨리니의 대표적인 오페라인 [노르마]처럼 말이다. 노르마의 인기를 되찾은 것도 마리아 칼라스의 등장이었는데 [몽유병의 여인]도 마찬가지로 칼라스의 무대장악력으로 대극장에서 다시 상연되기 시작했다. 사연이 이러하니 벨리니의 작품에 칼라스의 목소리를 개인적으로 외면할 수가 없었다. 육중한 몸매였던 칼라스가 가녀리고 여리여리한 분위기로 모습을 바꾸었을 때 [몽유병의 여인] 아미나는 발레리나처럼 연출되었다. 최고여야만 했던 여자, 마리아 칼라스는 무대뒤에서도 그녀를 향한 찬사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였기에 냉혹하게 연습하고 노력했다. 가만히 누워 떨어지는 열매만 쳐다보는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표독스러움과 열정은 다시금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다 결국 그로 인해 파괴된 사람, 인간은 각자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을 갖고 태어난 존재이며 유한하다는 불변의 진리때문에 자신이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일로 파괴될 뿐이다. 거친 목소리의 그녀가 시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기준이 된 이유는 이토록 단순하고 명백하다. [묭유병의 여인]의 내용은 소박하고 낭만적이다. 19세기 초 스위스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상의 소란이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진행된다. 애틋한 사랑, 마을의 축제와 같은 결혼식, 짝사랑에 몸살난 시골처녀총각들의 일상, 낯선 이의 방문으로 수근대는 사람들, 날이 저물면 하얀 옷에 머리를 풀어헤친 유령이 마을을 배회한다는 알 수 없는 소문등 약간의 줄거리만으로도 웅장과 장엄과는 거리가 먼 오페라임을 눈치챌 것이다. 요즘 같은 여름날 조용한 바람만이 서성대는 저녁녘에 들어보면 더할 수 없는 정감이 묻어난다. 도심에서 울려대는 시끄러운 굉음과 자잘한 소음들에 지쳐가는 날에 들어본다면 좋겠다. 내 머릿속을 식혀준 바람같은 아리아에 마음이 소박해진다. 감동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Maria Callas, 1957
Anna Netrebko - ah, non credea (sonnambula)- Bbc PROMS 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