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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은 세번째 보게되었다. 출장으로 일정보다는 조금 늦게 보긴했지만, 노자를 인문학으로 풀어쓴 책도 본적이 있긴하다. 대부분의 책들은 유가와 노장사상의 분별을 통해서 설명하지만 왠지 나는 채우고 비우는 것으로 보면 보완적이나 단계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장자에서 유가의 허접함을 볼때 노장사상가들은 유가를 공부한 흔적들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유가또한 노장사상을 본 흔적이 있다. 이를 반목으로 볼 것인가 보완적으로 볼 것인가는 또 차이라고 생각한다. 도덕경을 보다보면 왜 이 사상이 법가로 흐르고, 무위자연의 장자로 흘렀는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정확한 학설도 아니고 내 나름의 생각으로 보면 도덕경도 치도의 한 방법이고 어떤 면에서 유가보다 날카롭고 확실하다.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작위적이지 않은 흐름속에 만고불변의 엄격한 기준이 있다. 이런 이성적인 관찰은 사람에게 확고부동한 법치를 통한 사계절과 같이 순환하고 어김없이 때가되면 찾아오고, 사물의 이중성을 보면서 유무상생의 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한다. 반면 이런 자연의 인위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은 모습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장자의 창의적인 도전이 아닐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세상을 보는 지식이 될 수도 있고, 유가와 같이 쌓아서 고루한 편견이 될 수 도 있을듯 하다. 어째던 받아든 책은 원문과 해석으로만 되어 있어 죽죽 읽기가 쉽지는 않다. 한두가지 해설서를 겸해서 본다면 더 좋을 듯 하다. 노자타설이라는 책이 좋다는 추천을 받아본 적이 있지만, 두권짜리 책을 나도 본적이 없다. 다만 도올의 노자강의와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이 원문과 해설, 각기 다른 해석에 대한 견해들을 포함하고 있어 처음 접한다면 이런 책과 함께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기존에 본 책들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한문의 의미에 중심을 둔 해석인지, 부족한 원문의 의미에 깨달음을 둔 설명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2천년전의 언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한문에 익숙하지도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세종대와의 은총인 한글의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금 익숙지 않은 점이 조금 어려운 점이다. 깊이를 알아가기에는 읽는 이의 배경지식이 좀더 필요한 원문과 해석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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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그후로 몇 번 더 도덕경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곱씹어가면서 도덕경을 읽었다. 솔직히 말해서 도덕경은 쉬운 책은 아니다. 쉽게 읽혀진다기보다는 음미하면서 깊은 뜻을 헤아려가면서 읽어도 읽어도 쉽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는 그냥 표시해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읽어보면 나도 모르게 아하 이거구나 싶은 부분이 있다.
약 5000자 속에 인생의 참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이런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것또한 감사한 일이다. 쉽게 읽혀지지 않기에 시간을 두고 읽으면서 점점 더 우러나오는 맛이 있다고 해야할까. 다른 도덕경의 해설서같은 경우에는 저자의 견해가 깊이 표현되어서 본연의 말씀이 가려진 경우도 있었고 나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은 노자도덕경을 원문그대로 싣고 한자의 독음을 표시해주었고 주석을 달아서 알기쉬운 설명을 담고 있다는 점이 간결하고 나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특색이 있다.
도덕경의 말씀이 좋아서 현재는 불교방송에서 혜거스님의 도덕경 강의를 듣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의 심플함이 마음에 든다.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공부해나가면서 보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도로써 백성과 임금을 도우려는 자는 전쟁으로써 천하를 억지로 해서는 아니 된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서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깊은 가르침을 전해준다.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았다.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함께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말고 물 흐르듯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생각해본다.
도는 어찌보면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여러구절들이 와닿기도 하고 나만 알기에는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시대일수록에 이런 고전이 널리 읽혀져서 삶의 방향을 정해주고 보다 인간을 최우선시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이익이 되는 것만을 쫓아갈 것이 아니라 이런 책이 내 영혼을 살찌우게 해 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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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고전에 관심이 많다.
이왕이면 강좌도 같이 듣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있지만 지리상의 문제로
읽는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터라 참 많이 아쉽던 참이었다.
문장 속에 담긴 깊은 뜻,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혹은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거나 내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알고
싶고 궁금한 점이 너무 많은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스마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깊은 울림이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꼭 읽고 싶었다.
다음 글은 읽어가던 중에 내 마음을 한참 붙들고 있었던 24장의 내용이다.
마치 내게 잘 읽고 잘 기억해두라면서 넌지시 조언하는 듯 느껴져서 옮겨본다.
기획만 하는 자는
아무것도 세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자는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현명하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밝게 드러내지 못한다.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어지게 되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생략)
이미 나스스로도 몇 차례 느꼈던 부분이었기에 이 대목에서 일시정지한 듯
멈추어서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예쁘지는 않아도 우아하고 품위있게 나이들어가는 내 모습을 꿈꾸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말이 앞서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은 많은데 정작 해 볼 엄두를 못낸 채, '다음 기회에'라며 마냥
미루고있는 나를 질책하는 듯 느껴졌음이다.
여러가지 뜻을 품고 있을 한자로 써내려간 도덕경에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겠
지만,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제대로 듣고 배우고 싶기에 '노자도덕경'에 거는
기대가 참으로 높다.
내나름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눈 앞에
늘어선 한자들을 보고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분명히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도덕경은 짙은 안개 속의 숲과 같아서 한 발자국 옮기기도 쉽지 않았고
어쩌면 사막의 모래 바람에 갇혀 방향조차 잡을 수 없이 지평선 저 멀리
오아시스를 쫓아 헤매면서 신기루의 환영을 굼꾸는 것 같다 라고 쓴 저자의
서문이 왜그리도 절절이 내 마음에 와 닿던지...
이미 여러차례 도덕경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가 지레 지쳐서 포기하기를 여러번.
이번에는 나도 저자가 했듯이 한글자 한글자에 마음을 담아서 그 깊이를 느껴가며
필사를 해볼 생각이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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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는 풍운과 전란의 시대였던 만큼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이 탄생했다. 그 중 도가철학의 시조로 꼽히는 노자가 있었다한다.
노자는 실존인물이라는 설과 가공인물이라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노자가 실존인물이라 주장하는 쪽은 노자도덕경을 노자의 철학을 담은 창작물로 보고 있으며, 가공인물로 보는 이들은 도가학파의 인물들이 시대를 지나오면서 당시 존재했던 도가 사상들을 집대성 한 것으로 본다.
성리학의 지배하에 있었더 조선이나 중국등에서 도학은 당연히 홀대 받았고, 중요한 경전이 될 수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많은 이들이 도학의 사상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나또한 무위자연이라는 도학의 사상이 뚜렷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만큼 알지 못함에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도덕경을 꼭 한번 읽고 싶었다. 도덕경을 한자 원문채로 읽는 것은 이미 능력밖의 일이기에 번역서를 찾았고, 이 책은 신흥식 선생이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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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은 기원전 4세기전에 씌여진 것으로 추청되고 있으며 원래는 상/하로만 나뉘어져 있었다 하며 한나라 대에 장과 절로 나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노자 도덕경은 총 5000자, 81장 중 상편 37장, 하편 4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도 총 81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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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제 일 장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고 하는 것은 괜찮으나 항상 도라고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도 괜찮지만 항상 그 이름이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로 시작한다. 첫 구절에서 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며, 노자의 도덕경이 도가철학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 안에 도교가 녹아있음을 느낀다. 아주 심오한 철학구절인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조금만 한다면, 동양사람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받아 들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잘 설명하거나 말로 풀기는 어려울지라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도가 철학이 녹아 있으며, 한 원형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뒤로 갈 수록 어렵고 복잡한 철학서의 내용이 전개되므로 억지로 무리하게 이해하기 보다는 매일 한장씩의 필사를 통해 도덕경의 내용을 내 속에 녹여보려고 한다. 몰입과 무식한 만큼 성실하게. 를 목표로 도덕경을 필사해 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엔가 조금씩 도덕경을 통해 덕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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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교수님의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을 무척 인상적이고 재미있게 읽어서 도덕경 원본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해설 없이 한자 원본과 한글 번역본으로 이루어진 책이어서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1~2편을 제외하고는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이 책을 도전한다면 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는 강신주 작가의 책을 읽어본다음 도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1장에 "도를 도라고 하는 것은 괜찮으나 항상 도라고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로 시작되는 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는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지만 하나님, 알라 같이 이름을 달리하면서 원수같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이 따르는) 신의 이름을 정하는 과정이 바로 자신의 욕심이나 이기주의를 종교의 가르침보다 우선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는데, 바로 그런 생각을 노자가 제일 먼저 썼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17장의 지도자에 관한 글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입니다. 여기에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란 아래 있는 백성들이 있는 것만 알게 하는 것이요. 그 다음으로 친하고 칭찬받는 지도자이며 그 다음은 두려워하게 하는 지도자요 그 다음으로는 업신여기게 되는 지도자이다. 믿기 부족할지 몰라도 불신할 수야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그것이 귀한 말이다. 공을 이루고 일이 이루어져도 백성들이 모두 내가 스스로 그리 되었다고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가장 츌륭한 지도자이다." 19장의 글도 1장의 내용을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성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들의 이익이 백 배가 될 것이요 인을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들이 다시 사랑하고 효도할 것이다. 도덕이나 철학이 (학자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학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나, 본래의 의미보다는 형식만 추구하는 것은 존재하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라는 뜻이라 생각되는데, 어떤 일을 추구하더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 노자의 기본 사상인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63장에서는 일을 하는 자세에 대한 글이 있는데,, 저도 앞으로 이를 가슴속에 새기면서 살아가야할 것 같습니다. 천하의 어려운 일이라 해도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일이라 해도 반드시 미세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로써 성인은 끝까지 큰일을 하지 않고도 고로 능히 그 큰일을 이루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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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을 읽었다.
이 책을 역주한 신흥식님의 '노자도덕경'은 깔끔하고 간결한 느낌이 든다. 필사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궁서체로 적혀있다. 아무래도 1장의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 가장 와닿았다.
갑자기 김춘수의 시 '꽃' 이 생각난다. 흥미롭다. 노자의 사상과 대비되는 내용이기에. 어느 생각이건 맞는 말이고 생각의 차이겠지.
아이러니 한 것은 노자의 생각도 언어로 표현되었다는 것. 각설하고, 이 책 <노자 도덕경> 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도를 회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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