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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실은 정말 작은 일이라는 진실도 하찮은 비꼬기로 광주 항쟁을 등에 업어보려는 역겨운 시도도 전지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지독하리만큼 치열한 왈가왈부도 영화는 혼자 봐야 울고 싶은 만큼 펑펑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기지 못했다. 얼마전에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슬픈 영화를 보다가 슬쩍 눈물을 훔치는 남자가 매력적이라고. 대신 그 이후로도 계속 훌쩍이면 꼴불견이고 진상이라고. 나, 오늘 꼴불견에 진상 좀 많이 떨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주 그러는 편이다. 나는 아주 작은 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통령이니 정당이니 정책이니 정치니 하고 떠드는 작자들을 보면 역겹고 아니꼬와서 미친놈들 지랄하지 말라고 후려갈겨 버리고 싶다. 슈퍼맨이 그랬던 것처럼 뒤통수에 크립토나이트라도 잔뜩 박아줘야 그들에게 좀 더 바른 세상을,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교육 정책을 아무리 바꿔도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무한 경쟁을 시키든 모두 평준화를 시키든 변하지 않아왔고 변하지 않을거다. 그런 것은 애초에 제도로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해보려고 해도 바뀌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나라에서 사교육을 막고 공교육을 살려 보려고 애쓴다고 해도 막상 학부모가, 학생이,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막아도 누군가는 암암리에 과외를 하려들고 남보다 점수를 잘 받으려 한다. 학벌을 욕하고 지연을 욕해도 결국은 자기 자식은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애쓴다. 학교 수업은 배우기 위해 있는 것이지 점수를 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여전히 학생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일등이라도 올라가려 공부한다. 나라를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라. 아주 작은 것, 선생님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하자. 가끔은 학창 시절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감사했다고 인사해보자. 점수나 등수가 아니라 아는 것이 즐거워서 책을 읽고 공부해보자.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주고 그렇게 키워보자. 그렇게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사회가 변한다. 슈퍼맨은 아주 우습다. 시도때도 없는 발작은 껌 세개만 씹으면 다 낫는다고 믿으면서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아이들을 위해 바바리맨을 퇴치한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런 작은 행동들은 정말로 사회를 바꾼다. 그 작은 도움이 다른 사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슈퍼맨은 다름 아니다. 어디 멀리 크립톤 행성에서 날아온 외계의 위대한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사소한 사람들이다. 아버지를 잃었던 고아였던, 세월이 흐른 뒤에는 가장이 된, 그런 사람이다. 아파트 철거 현장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주워입은 불량 청소년들이 슈퍼맨이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팔을 걷어 다른 사람을 도왔으니까. 그 하와이안 셔츠의 네명이 차에 매달려 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차갑다. 교통 사고가 나도, 가스 폭발이 나도, 정신 병원에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둥그렇게 둘러싸고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다. 그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스스로 물을 끼얹은 한사람의 슈퍼맨이고 그 슈퍼맨을 만든 것은 그를 믿어준 친구, 그리고 아버지였다. 그래서 광주 항쟁을 끌어들인 감독의 작태는 무척이나 짜증이 났다. 마치 그가 슈퍼맨이 되어버린 것 혹은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을 지금까지 말했던 것과는 정 반대로 나라의, 몇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니까. 지금껏 내 작은 노력이 커다란 변화를 만들 거라고 이야기 했으면서 막상 그깟 쓰레기 몇몇이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까. 그런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난 아직도 믿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그들이 아니라 내 자신이고 내 스스로의 작은 노력이 다른 노력들과 함께 쌓이면 그 어떤 변화라도 능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난 그래서 이번 선거의 결과에 대해 무관심하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누가 되든 상관 없으니까. 누군가는 "너 혼자 잘 하면 사회가 잘 될 것 같지?"라고 말하겠지만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이미 그들의 권력에 굴복한 한낱 노예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잘 하고, 내 동생이 잘 하고, 내 친구가 잘 하고, 또 그의 친구가 잘 하고. 절대 나는 나 혼자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까 괜찮다. 나는 내 소중한 사람을 믿고, 그가 믿을 소중한 사람도 믿는다. 전지현이라는 배우는 아마도 또 하염없이 까일 것 같다. 마치 "중천"에 이어 "싸움"도 어마어마하게 욕을 들어먹었던 김태희처럼. 영화의 타이틀 그래픽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햇살이 비치는 그의 얼굴은 어김없이 화장품 CF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했으며 그의 발성과 감정은 그의 데뷔작인 "엽기적인 그녀" 속에서의 그와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는 정말 좋은 연기를 펼쳐주었다. 어쩌면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더 좋은 연기를 펼쳤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연기했기에 이런 영화가 된 것이다. 예쁜 여배우들에게 연기력 논란이 따라붙는 이유는 그들이 예쁘기 때문이다. 예쁜 그들은 여기저기서 많이 노출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이미지가 생겨버린다. 매번 다른 이미지를 보여야만 하는 배우에게 고정된 이미지가 생기는 것은 큰 타격이다. 그래, 그들의 연기력을 빼앗은 것은 미모만 주고 나머지는 주지 않은 신이 아니라 그들의 외모에 현혹되어 어김없이 그들을 찾았던 우리 자신이다. 황정민은, 이현석은, 슈퍼맨은, 그의 친구들의 부름에 응했다. 정말로 겁나고 두렵고 무서웠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모습은 분명 정상인이었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간 그의 행동은 마치 미친 사람이나 다름없었지만 그의 고통과 고뇌와 걱정이 거침없이 내 몸으로 햇살처럼 스며들어왔지만, 그는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이었다, 아니 행복했다. 왜냐면 그는 슈퍼맨이었으니까. 그의 아버지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은 이제 슈퍼맨이니까. 그의 작은 열쇠가 친구의 마음에 닫혀 있던 커다란 쇠문을 열었으니까. 그렇게 문이 하나씩 하나씩 열려갈 때마다 좀 더 행복한 미래가 다가온다. 이 영화가 내 마음의 커다란 문도 열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