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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안티 크리스트, 이 책의 주요 골자는 기독교 비판이지만 기독교 외에도 다른 부분에서의 니체의 생각도 읽어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성경의 비판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따른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가장 종교화되고 멀어진 기독교와 기독교인. 니체가 보았을 때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거야?'라고 물었음직 하고 그런 니체의 눈에는 기독교와 기독교인은 가식 덩어리로 보였을 것 같다. 원죄와 심판의 두려움에 빠져 자학하는 기독교인이나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도덕론으로 빠져 중심을 잃은 기독교 메시지나 장사꾼으로 변해 메시지를 왜곡하는 목회자들이나 니체는 다 같게 보였을 것 같다. 공격적인 언어로 쓰여 있지만 읽다보면 왠지 따뜻함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니체의 입장에서 그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제발 잘 믿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잘못에서 빠져나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난 니체의 사상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다음에 또 읽으면 다른 말을 할 것 같다. 니체를 다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바른 믿음이란 늘 계속 고민하게 한다. 계속 추구하고 변해야 하지만 때로는 그냥 멈춰있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잘 살자. 제대로 살자. 잘못된 것에 빠지지 말자. 진리를 추구하자. 다음에 또 다시 읽어 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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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리스트... 니체의 저작을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다면 후기에 해당하는 책이다. 그만큼 자신의 사상을 굳건히 한 후 쓴 책이라 읽는 내내 니체가 가진 강한 자신감을 글자 하나하나에서 느낄 수 있다. 읽는 내내 느낀 건... 니체 이 사람.. 참 까칠하기도 하지.. 였다. 좀 잘 풀어가도 될껄..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이용했다느니, 성경은 거짓말 투성이니, 자신을 성경을 읽을때 손이 닿는 것도 역겨워 장갑을 낀다느니... 초절정 까칠남이시다. 종교의 문제는 특히나 민감한 사안이다. 크리스트교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종교답게 하나의 안티 저작물이 나타나면 온 세계가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중 가장 큰 예시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일 것이다. 다빈치코드는 소설이라는 연막이라도 있지만, "안티 크리스트"는 말 그대로 크리스트교는 전면에서 비판하는 책이 아닌가... 이 책이 발간되었을 당시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게다가 크리스트 교에 동의를 한 여러 철학자들까지 같이 비판을 하고 있으니 살해 위협을 당하진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들 정도 이다.
160여쪽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사람.. 정말 글을 흡입력 있게 쓰는구나.. 였다. 철학서는 일반인이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런데 공격적이면서도 독자의 수준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까.... 또 하나는 오히려 니체는 성경과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니체이기에 성경마저 객관적인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 속에서도 나오지만 문헌학자와 철학자만이 성경이 가진 오류를 짚어낼 수 있다는 구절은 바로 니체 자신을 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니체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몇몇 고르자면 미국 문학가인 에머슨, <유물론의 역사>를 쓴 랑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쓴 쇼팬하우어, 독일의 대문호 괴테, <순수이성 비판> 등을 쓴 칸트가 있다. 처음에는 니체도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저작에도 그런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면 이들 모두를 비판하는 새로운 이론을 창설한다. 그것이 바로 초인론 인 것이다. 초인론에 대한 자세한 생각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스팅하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흔히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반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는 그 사람이 가진 이해를 전면으로 뒤집어야 하므로 논리적으로 타당한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 얇은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진리라 일컫는, 위대한 사상가라 칭하는 사람들의 이론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열정이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고인물은 썩는다 했던가.... 우리가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에 대한 사고를 멈출 때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니체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현 시대에 유행이 되고 있는 음모론은 추측에서 끝나면 음모의 수준에서 끝나지만, 거기에 논리적 근거를 달면 기존 지식에 반(反)하는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유다는 배신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예수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한 필요악인 것이다. 그러나 사해에서 발견된 고문서가 유다복음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종교계가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 과연 유다는 예수가 가장 믿고 사랑한 제자였는가, 아니면 예수를 밀고한 반역자인가... 지금처럼 전 세계의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 제2의, 제3의의 나체가 계속 등장하여 사람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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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 도덕의 계보 2.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 how to read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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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 명명되기를, 모든 학문의 시작은 철학이었고, 역사적으로 보면 과학이라는 분야도 철학에서 시작 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전문적인 과학 분야에서 교육을 받아 온 필자에게, 소위 철학은 능력 밖의 분야이다. 철학과 관련된 서적을 읽어 본 경험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몇 명 이름만 알고 있는 철학자들도 중, 고등학교 시절 암기 교육의 산물일 뿐, 이해를 바탕으로 한 언급을 할 수 있는 철학자는 한 명도 없을 지경이다. 이런 말로 리뷰를 시작하는 이유는, 니체라는 철학자가 얼마나 내공이 있는 철학자냐에 따라, 그의 책 『안티 크리스트』의 내용에 대한 받아들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는 거의 대중 문화의 코드가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니, 철학 분야의 문외한인 필자도 들어 본 일이 있으니 논외로 쳐야 할 것이고, 거의 100여년간 니체의 저술이나 철학이 대중에 회자되는 정도로 판단해 본다면 니체는 분명 나름대로의 논리와 그에 따른 당연한 인정도 받는 철학자라 할 것이다. 그런 니체가 직접적인 화술로 크르스트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년 전에. ![]() 지구상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하나의 종교, 즉 크리스트교에 안티라는 적극적인 용어를 단 제목을 가진 책을 가지고, 니체가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먼저 이야기할 것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직설적인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편집과 구성면에서 별 점을 높게 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분명 니체의 내공을 모르고 있는 이유때문일 것이다. 도킨스의 종교 비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바탕이 있고 그런 설명을 함께 하는데, 니체의 그것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결론적인 그의 이야기만이 있고 논리적인 배경 설명은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물론, 니체가 책에서 이야기한 평범한 인간중에 하나인 필자가 그의 저력의 바탕이 된 근거를 하나하나 대라고 요구할 자격은 없어 보이지만, 그런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인용해 보자. "예전에 크리스트교를 믿는 것이 단순한 병이었다면, 현재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일로 간주된다. 그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메스꺼움이 올라온다. 크리스트교의 성직자가 '진리'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민다.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은 크리스트교의 신학자나 성직자 그리고 교황의 말은 하나같이 거짓이란 사실을 반드시 알았으면 한다. 하긴 그 사람들은 이미 '신'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죄인', '구세주', '자유의지', '도덕적 세계 질서'가 전부 엉터리라는 사실도. 크리스트 교회의 정체는 이미 밝혀졌다. 교회는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를 탈취하기 위한 조직이다. 가짜 돈을 만들어내는 악당들이 모인 집단이다." 어떤가? 표현은 많이 과한 편이지 않은가? 니체의 이런 표현을 보고 있으면, 니체가 정중하게 크리스트교를 대하고자 하는 예의를 일부러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예의나 정중함을 알만한 지식인이 감정을 스스로 드러내고 마는 열정을 크리스트교가 발현시켯다는 것이다. 120여년이 지난 크르스트교는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히친스, 칼 세이건등을 여전히 자극하고 있다. 책을 다 읽어 본 필자는 위에선 인용한 글의 진짜 의미는, 아래와 같은 니체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안다. "위대한 정신은 사물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이다. 무엇이든 믿는 사람은 가치를 판단할 줄 모른다. 믿는다 함은 감옥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필자가 완벽하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과학의 발전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자연에 대한 의문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며, 의문을 가지는 것도 상당한 고민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이고 이를 해석 또는 해결하는 일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쉽지 않은 일을 일부 과학자나 철학자 등이 해 왔기때문에 인류의 현재가 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보라. 가족, 친척, 친구들 중에 한 두명의 맹장 수술을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라. 약 100년전만 해도 그런 가족, 친척, 친구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맹장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고민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개복을 하고 혈관을 잇는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말이다. 100여년 동안 살려달라고 기도만을 하였다면 절대 이루어 낼 수 없는 발전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또 테레사 수녀의 과오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비해, 그냥 믿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다. 회의론자의 가치를 독서라 할 수 있고, 종교의 가치를 그냥 TV 보기로 비교할 만한 것이다. 니체의 이야기에서 필자와 궤를 같이 하는 비판적인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런 고귀한 의견을 조금만 더 잘 포장된, 글로써 드러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약간 있을 뿐이다. 그의 광기에 가까운 직설적인 포격을 느껴보라. 특히, 티모시 프리크라는 학자가 많은 사료와 함께 쓴『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출판되자마자, 『예수는 신화가 아니다 』라는 책을 즉간 출판하고, SBS, MBC 등의 프로그램에 항의하기 위해 방송국을 점령하기도 하는 소아병적인 한국 기독인들이 열린 마음으로 니체의 포격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의문을 가지는 것은 발전을 위한 첫 단추이다. 그냥 믿는 것보다 몇 천배나 어려운 일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함께 공유하면서. 인간 이성의 꾸준한 발전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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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리스트 / 프리드리히 빌헤름 니체 저
얼마나 도발적이 제목인가?
이 책은 서점에서 처음 보는 순간 주위를 둘러보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는듯 했다.
그리고 저자가 니체라니.....
신은 죽었다고 외 친 이유가 이거였나....
법의 관점에서크르스트교를 사교라 단정지은 니체의 용기에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크리스크교를 싫어한다거나 증오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성으로 불리는 니체가 이렇게 혹독한 글로서 이야기 했다는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조목 조목 니체의 분노가 느껴진다. 한자 한자 니체의 한숨이 느껴진다.
니체의 글에서는 울분과 각혈의 느낌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