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은 부드러워>는 피츠제럴드의 네 번째 장편이자, 사실상 마지막 장편입니다. 유작 <The Last Tycoon>은 미완성작이거든요. 1934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 대공황으로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은 상황에서, 이 작품은 유럽을 돌며 사치스런 생활을 즐기는 부르주아들을 이야기한다 해서 호된 뭇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작품 자체는 대공황기임을 감안하면 꽤 잘 팔렸지만, 독자도 비평가도 곱게 보지 않았다고 해요.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군데군데 번역 탓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문장의 뜻이 파악 안 되기도 했어요. 두께에 비해 극적 긴장감도 별로 없고, 인물들의 심리 역시 베일에 가린 것 같은 거리감을 줄곧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할수록 까닭 모를 눈물이 나오는 겁니다. 왜일까요? 이 정체모를 슬픔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 <밤은 부드러워>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작품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번역의 아쉬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번역판은 하나 뿐이에요. 두 명의 번역자가 공동으로 작업했는데, 그래서인지 영 못 미덥습니다. 한 장(章) 안에서 인물간의 존대가 뒤죽박죽인 부분도 있고, 문장의 주술부가 안 맞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문장들이 어색하고 미숙해요. 피츠제럴드 문장의 아름다움은 이 작품이 최고라는데,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간혹 그 아름다움의 흔적이 엿보이는 부분들이 있긴 합니다. 해서 언젠가는 피츠제럴드의 모든 작품을 원서로 읽겠다는 평생의 목표가 생겼어요.
줄거리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작품 소개 부분에 다 나와 있거든요(무슨 생각으로 결말까지 모조리 밝혔는지 모르겠네요). 참으로 이상합니다. 인물의 내면을 깊이있게 파고들지 않는데도 왜 이리 슬플까요. 어쩌면 바로 이 담담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피츠제럴드는 사랑의 격정도, 파멸의 고통도, 결코 깊이 파고들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나누는 극한 대화는 숨겨집니다. 직접적인 대화 대신 비유가, 주변 풍경이, 어떤 서술이 부각됩니다. 내면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며 부딪히는 바로 그 부분에서, 갑자기 대화문 대신 주변부의 묘사가 주로 나오는 식입니다. 그래서 인물들은 과장된 외침이나 울며 불며 매달리는 말, 천박한 욕정을 떠들어대지 않습니다. 바로 이 담담함, 이 모호함이 슬픔을 불러 일으키는지도 모르겠어요.
숨겨져 있어서 외려 더 진실되게 다가온달까요. 사실 진짜 슬픔이나 고통은 자세하게 설명하려 들수록 진부한, 혹은 과장된 묘사 탓에 무게감을 상실하기 쉽거든요. <밤은 부드러워>에서 피츠제럴드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요. 그는 니콜의 반항과 도전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암시와 비유로 모호하게 처리할 따름이죠. 그래서 오히려 더 파괴적이에요. 베이비와 토미의 이기심과 부도덕함, 니콜의 변모를 구구절절 설득하려 들지도 않아요. 다만 엷은 베일 뒤로 보이는 윤곽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추정하고, 찾아내서 감상하도록 합니다. 그냥 그 모든 과정이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이죠.
이 소설은 꼼꼼히, 주의해서 읽어야만 참맛을 음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세히 읽을수록 감탄스러워요. 피츠제럴드 특유의 묘사가 극도로 발휘되고 있거든요. 단순한 풍경 묘사인 것 같은 장면이, 파고들면 상징이나 암시인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더 번역이 불만스러운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표면은 로맨스지만, 심층 차원에서는 당대 사회에 대한 내용과 비판이 방대하게 들어 있어요. 가난과 절망에 허덕이며 신음하는 계층의 어두운 모습, 시대에 짓눌려 파멸해가는 젊은이들, 부에 사로잡힌 미국을 경멸하는 유럽인들의 시선과 적대감, 돈을 위해 양심을 팔아버린 지식인들, 부유한 생활에 길들어져 오만해진 여자들 등등. 게다가 상류층 사람들은 고급 정신병원과 요앙소의 "잠정적 고객"으로 간주됩니다. 소설에 담긴 무수한 상징과 암시, 표면적 서술 뒤에 숨겨진 "생략된 내용"들을 읽어내기 위해 몇 번 재독해야겠어요.
사람들의 어이없는 죽음, 메리의 변모, 토미의 이기심과 뻔뻔스러움, 베이비의 오만함과 냉혹함, 맥키스코의 도덕적 타락, 본질적으로 무책임하고 자기애적인 니콜, 그리고 딕의 파멸과 자기파산……. 이 모든 것을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씁쓸하고 서글퍼요. 번역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와 감동은 느껴집니다. 정말이지, 꼭 원서로 느껴보고 싶어요.
평생 피츠제럴드를 깎아내리기 바빴던 헤밍웨이가 유일하게 칭찬한 소설이 이 <밤은 부드러워>인데요. 그는 거듭 생각할수록 이 작품이 훌륭하다고, "정말 아름답고 슬픈 소설"이라 여러 번 칭찬했습니다. 저도 조심스럽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우아한 비극이지만, 이 속에 과장이나 호들갑, 신파는 없어요.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의 몰입이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독자는 순수한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훤히 드러나는 인물의 내면과 목소리에 동화되어 느끼는 "강요된 슬픔"이 아니라, 그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느끼는 순수하고 오롯한 "자신의 슬픔", 독립된 감정을요. 이 작품은 베일 너머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신비로움과, 담담한 리얼리즘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상하리만치 슬픈 소설입니다. |
|
밤은 부드러워/F. 스콧 피츠제럴드/김문유.김화영/현대문화 피츠제럴드는 미국 문학에 눈을 뜨게 해준 길잡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 피츠제럴드를 알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은 읽어야 나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는 구절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어야 했지만 같은 책을 세 번이나 읽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츠제럴드를 말할 때면 헤밍웨이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헤밍웨이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한 사람이 피츠제럴드였지만 헤밍웨이가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고 나서는 두 사람의 우정은 역전되어 갈등을 지속하다가 파국을 맞게 된다. 헤밍웨이의 강한 지배욕과 경쟁심리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이다. 책을 읽다 보면 피츠제럴드가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파혼을 당했던 피츠제럴드가 문학적 성공에 힘입어 약혼을 취소했던 미모의 약혼자와 다시 결혼을 한 뒤 호화로운 사교계의 생활에 빠져들게 되고 그 후 아내는 신경쇠약 증세를 일으켜 입원을 하고 피츠제럴드 자신도 술에 탐닉하는 불행한 시기를 보내다가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말았다. 의사인 딕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서 신경쇠약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니콜을 만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한다. 니콜의 재산이 탐나서 결혼을 한 것이라는 의심과 자신을 의사로만 생각하는 니콜의 언니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회복되지 않는 니콜의 병세와 집착에 지쳐 점점 술에 의지하게 된다. 영화배우 로즈마리와 사랑에 빠진 것도 그러한 생활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술 때문에 택시 기사와 말다툼이 일어나고 경찰 폭행으로 이어져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고 병원 진료에도 계속 말썽을 일으키던 딕에게 니콜은 토미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통보하고 딕은 고향인 미국으로 떠난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화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딕에 대하여 특별한 변호를 하지 않는다. 대신 줄곧 유럽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월감을 표현하는 다소 엉뚱한 모습을 보인다. 그 자신이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하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설 속에서 나타난 피츠제럴드의 여성관은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여성관일 것이다. 여자들은 한 남자의 세계 안에 존재할 때 행복한 것이며 남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여자들의 인생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느냐가 아니라 오직 남자를 잘 만났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관은, 갑부가 된 개츠비가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찾으려고 나타난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불 꺼진 무대 아래서 허탈한 모습을 감출 수 없는 배우와 같은 삶을 살았던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한 여자에 대한 애련하고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꼭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
전도유망한 미국인 정신과 의사 ‘딕 다이버’는 동료 의사인 ‘프란츠’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스위스의 정신병원에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미국인 환자인 ‘니콜 워렌’이란 미모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니콜’은 재력가의 딸로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의지하며 성장하지만 부녀간의 관계가 성적인 관계로 변질되면서 남성공포증 증상을 보여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환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남성공포증에도 불구하고 ‘니콜’은 ‘딕’에게만큼은 호감을 보이며, 그녀의 미모와 안타까운 처지에 연민을 느낀 ‘딕’은 ‘니콜’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남편이자 주치의로서 그녀를 보살피게 된다. ‘니콜’의 재력 덕분에 ‘다이버 부부’는 그녀의 요양을 위해 지중해 국가인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를 떠돌며 상류사회의 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니콜’의 보호자로서의 부담감이 원인인지, 아니면 상류사회 생활에 대한 회의가 원인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닉’은 술에 의지하게 되고 스스로를 망가트리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몇 년 전 프랑스의 리비에라 해변에서 만났던 ‘로즈마리’라는 여배우와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딕’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딕’의 변한 모습에 실망한 ‘니콜’ 역시 몇 년 전 프랑스의 리비에라 해변에서 만났던 ‘토미’라는 남성과 함께 ‘딕’을 떠난다. 이혼 후 미국으로 돌아간 ‘딕’은 병원을 개업하고, ‘니콜’과의 결혼으로 미뤄두었던 학문에의 열정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만한 소문들이 ‘니콜’에게도 전해지지만, 그의 편지가 뜸해지면서 그가 미국의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의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게 된다. 이상이 F. 스콧 피츠제럴드가 7년에 걸쳐 집필했다는 자전적 소설인 ‘밤은 부드러워’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7년에 걸쳐 집필한 필생의 역작이라 하기에는 인물들 간의 갈등구조도 뚜렷하지 않고, 줄거리 상에 극적인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 조금은 밋밋한 소설로 5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생각하면 읽기에 많이 부담스러운 소설이다. 사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위대한 개츠비’를 제쳐두고 이 소설 ‘밤은 부드러워’를 먼저 선택하게 된 것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후 작품들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요절한 후 사후에 재평가 되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함께 전후 시대 미국 문학사에서 최고의 작가로 추앙 받고 있는 작가라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뒤에 실려 있는 작가 연보를 한참 동안 정독하였다. 작가 연보를 훑어 보고 나서야 왜 이 소설을 자전적 소설이라 칭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프랑스의 리비에라 해변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집필을 위해 장기 체류를 한 곳이며, 그 곳에서 ‘다이버 부부’의 모델이 된 미국인 명사 제럴드 머피와 사라 머피를 만났다고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로즈마리’는 그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만난 ‘로이스 모런’이 모델이 되었으며, ‘토니’는 프랑스에 거주할 당시 그의 아내 ‘젤다’가 벌인 애정행각의 상대였던 프랑스 조종사인 ‘에두아르 조장’이 모델이 되었던 것 같다. 그의 아내 ‘젤다’의 신경 쇠약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찾은 곳은 스위스의 ‘프랭잰스 진료소’라고 하니 소설 속의 배경과 등장 인물들은 실제 그의 삶 안에 존재하던 공간과 인물들이며, 주인공 ‘딕’은 알코올 중독으로 요절한 자신을 투영한 인물인 것이 분명하니 ‘자전적 소설’이라는 평이 과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작가 연보를 다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한가지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으로 상류사회의 생활에 발을 들여 놓은 경험이 있을 법한 그가 - 사랑하는 아내 ‘젤다’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소설 대신 할리우드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알코올 중독으로 피폐해져 가는 상황에서 - 바라 본 상류사회는 비판의 대상이었을까, 아니면 동경의 대상이었을까? (BOOK : 2015-046-0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