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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파들이 장악했던 권력이 사림에게 넘어오게 되기까지 수많은 사림들의 피를 흘리며 희생을 치러야했다. 사림들은 앞선 시대의 슬픈 역사를 외면하지 않았고, 준엄하고 냉정한 언론을 통해, 또 학문을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던 훈구파보다 도덕적, 학문적 우월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점이 사림들이 훈구파를 물리치고 집권하는 원천이 됐던 것이다. '사림열전2'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김종직,김시습,남효온, 정여창,김일손, 김굉필 모두 여섯 명이었다. 이들은 사화의 피해자이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권력과 등지고, 방랑하는 삶을 살아갔던 인물이었다. 세조와 성종, 연산대에 주로 살고 삶을 마쳤던 이들은 모두 학문을 통해, 또 역사를 기록하고 상기함으로써 훈구파들의 부당함을 거세게 공격했다. 그러다 보니 언급된 사림 대부분이 필화로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은 어느정도 예견됐던 상황이었다. 김종직은 무오사화의 화근이 되는 '조의제문'에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했고, 남효온은 단종의 생모를 복위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김일손은 '조의 제문'을 사초에 싣는 것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역사를 길이 남기려 했던 것이다. 정여창은 계유정란 당시 유배됐다 참형당한 '정분전'을 남겼다. 사림들은 어두운 과거를 망각하지 않았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노하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충신에 대한 추모를 잊지 않았다. 국가 편찬 사업을 통해 그 역사를 기록했고, 또 학문을 통해 후손에게 전하려 했다. 이런 자세는 왕위 찬탈 과정에서 앞장 서 권세와 부귀를 누렸던 공신에게는 당연히 압박으로 다가올수 밖에 없었다. 사림과 훈구파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사림파들의 희생은 컸다. 김종직이나 남효온 등은 아내와 자녀를 잃는 개인적인 슬픔을 겪었는데 거기에다 사화로 인해 부관참시를 당하거나 참형까지 당하는 비극으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갑자사화로 참형을 당한 김굉필의 제자가 김종직인 것만 보더라도 사림들이 집권하는 세상은 머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림열전2'에 등장하는 사림들은 사제지간이거나 학문을 논하며 격려하는 한편 울분도 토하는 교분을 나누는 사이였다. 또 이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꼿꼿하고 학문이 깊었던 인물들이었다. 김종직은 '조의제문'으로 이름만 숱하게 들었지만, 막상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김종직 뿐만 아니라 김시습을 제외한 사화의 희생자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사상이나 개인적 삶을 들여다 보면서,사림이 지닌 저력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사후에 오래지 않아 복권되고 부활할 수 있었던 힘도 바로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확립하려고 했던 사림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두운 역사를 비판하고 그 희생자를 결코 잊지 않았던 바로 그 정신의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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