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 10개 주고 싶은 책. 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들이 비극을 어떻게 할 것인가. 평화를 목숨 바쳐 갈망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분통이 터진다. 팔레스타인이 어떤 땅인가.. 올리브 나무가 무성하고 소위 성경에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넉넉한 땅이엇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어느날 내 나라에 낮선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주인은 하루아침에 목숨을 위협당하거나 쫒겨나야 한다면 나라도, 내 가족이라도 모두 전사가 되어 끝끝내 싸우고 말리라.. 그런 나를 헤즈볼라라고 부르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건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 이책은 이렇게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중동의 현실을 한 엄마의 시선으로 아프지만 감동적으로 조명했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중동 전쟁으로 104명의 민간인이 죽엇고 000명의 희생자가 났다'고 말하면 그건 그냥 인간의 생명과 가치가 단순하게 수치화된 결과를 전달받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본 전쟁은 죽어간 한 사람 한사람의 목숨과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남은 가족들에게 그 고통이 얼마나 지울 수 없이 치명적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또 무고한 레바논 사람들이 단지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에 저항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고 숨는 것이 전부인, 이 현실이 아... 막막하여라.. 무엇보다, 이스라엘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헤즈볼라를 향한 중동인들의 믿음과 역할이 수긍이 간다. (나는 그런애들은 모두 폭탄테러리스트에, 너 죽고 나 죽자는 극단주의자들인줄 알았지 뭔가.. 무식하게)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저자는 지금 레바논에 주인공인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잇다. 그런데 이 오래된 분쟁은 이미 대수롭지 않아, 우리 뉴스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들의 목숨이 걸렸는데, 우린 뉴스 한줄 접할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내친김에..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이 개입해서 잘된 나라를 보지 못했다. 지들은 세계평화를 위해서라고 늘 말하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미국이 빠져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책에서 만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도 결국 미국과 강대국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느무나 슬프지만),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중국과 일본, 이제 인도까지 끼고.. 힘없는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을지 걱정스럽다. 미국의 입김이 아직도 서울 한복판의 정책을 뒤흔드는 이런 나라에 사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호기심에 펴들었다가... 늪처럼 빨려들어가 읽었다. 그리고 감동과 눈시울을 적시는 아픔으로, 먹먹하다.. 다시 정부가 중동에 군대를 파견한다고 하면 이젠 나가서 적극적으로 맞서보리라..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나는 진정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다시 생각해본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 눈똑바로 뜨고. |
|
![]()
남부 어딘가에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이스라엘의 학살에서 살아남는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나 친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만든 무기들이 아이의 가족을 살해했다. 추악한 회색 금속 덩어리에 뚜렷하게 그렇게 씌어 있다. 아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증오하며 자라난다. 열다섯 살이 되면, 아이는 무장단체에 가담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 한 가지 목표만 가지게 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능한 많은 미국인과 이스라엘인을 죽이는 것. 그것이 비록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 공격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테러리즘이 생겨나는 진짜 이유다. - 168p
이란이 대통령선거 후유증으로 연일 해외면을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선거가 부정하게 치뤄졌다며 정정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에게 국가가 총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결연한 모습의 시위대가 불타는 버스를 바라보는 사진을 실은 신문도 있고, 민병대에게 총을 맞아 죽어가는 시민의 영상이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기도 하다. 당신은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는가? 전자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본 모습이다. 후자는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는 레바논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림 하다드가 지난 2006년 33일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전역을 공습한 전쟁을 기록한 일기다. 1969년 생인 림 하다드는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으로 유년시절을 빼앗겼으며 결국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기자가 된 그녀는 1990년 내전이 끝나고 재건의 의지를 다지던 레바논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선데이타임즈> 특파원인 영국인 니콜라스를 만나 결혼한 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두 아이 야스민, 알렉산더와 살고 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나라로 종파가 18개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공존하는 곳이다.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고 할 만큼 수많은 관광객이 사랑하는 관광지였고, 고대로부터 이어진 유적이 산재한 곳이다. 이 곳에 불길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건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선언한 이후다.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1971년 요르단에서 쫓겨나 레바논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이는 레바논 내전의 촉발제로 작용한다. 그리고 레바논 내전을 겪으면서 레바논 남부에는 '헤즈볼라'라는 무장단체가 만들어진다. 이후 헤즈볼라는 활동 영역을 확대해 레바논 의회에 진출했고, 내각에 참여하는 등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한다. 얼마 전 있었던 레바논 총선에서 낙승을 예상했던 헤즈볼라는 총선에 실패해 '제도권 정치 세력화'에 타격을 입었지만, 이들이 무장단체로 끝나지 않고 세력의 정치화를 완성했음을 보여준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가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레바논'이라는 나라를 모르고 있었다. 세계지도를 봐도 스쳐지나는 국가에 그쳤고, '이스라엘 인근에 있었구나'가 감상의 끝이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끝나지 않는 이스라엘과 인근 중동 국가의 대립은 이미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해외면에서도 소식을 접하기 힘들다. 그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지겨울 정도로 싸우고 있는 것인가? 이 대답에 이 책이 절반의 대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답은 아니다.
단순히 종교, 석유, 인종의 문제가 아니다. 수천년 간 쌓인 분노의 폭발이다. 림 하다드는 33일간의 전쟁 일기 전에 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는지에 대답을 찾으려 한다. 우선 과거로 돌아간다. 자신이 겪었던 레바논 내전에 대한 기억, 다시 돌아온 레바논에서 기자의 신분으로 만났던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이야기. 50년도 넘은 집 열쇠를 간직하며 자신이 돌아갈 수 없다면 자신의 손자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팔레스타인인이 있으며,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노부부의 아픈 기억도 함께 새긴다. 2006년 국경지역에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한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지역을 집중 폭격했고, 레바논 전역의 주요 시설을 파괴했으며, 지중해를 봉쇄했다. 그리고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을 죽였다. 그 중 3분의 1은 어린이다. 아이들과 산악지대로 피한 림 하다드는 그 곳에서도 매일 이스라엘군의 무인 정찰기와 창문을 울리는 제트기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언제 폭격이 일어날 지 모르는 공포,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다가 어느 순간 폭탄이 떨어질 지 모르는 두려움이 책 속에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만 2세가 된 아이에게 전쟁을 알리고 싶지 않아 '밖에서 불꽃놀이가 열린다'고 거짓말을 한다.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림과 아이들, 그리고 전쟁 동안 레바논 남부에서 취재를 했던 남편 닉. 온 가족이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전쟁이 남긴 후유증은 크기만 하다. 높은 건물은 모두다 파괴된 레바논 남부를 돌아보며 림은 말한다. "이스라엘아, 대체 무슨 짓을 했는가" 전쟁 중 죽어야 했던 사람들, 그 중에는 태어난 지 열흘 밖에 되지 않은 아기도 있었다. 아기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무장한 민간인이 이스라엘군에 대항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그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가 될 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죽어가야 했다.
당신들은 테러리스트라고, 이스라엘군이 함부로 죽여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새로운 중동이 태어나는 데 산통을 겪고 있다"라고 말한 전(前) 미 라이스 국무장관처럼 그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아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나는 항상 한반도를 생각한다. 휴전 중인 한반도가 그들을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이 나라를 생각한다. 공포와 분노를 느끼며 전쟁을 견뎌낸 림 하다드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랍인과 유대인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을 믿어라"라고 그리고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라고. 그녀의 조국에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나의 조국에도. 그녀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 나의 아이에게 미움보다는 사랑을,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좋다'는 진리를 새겨주리라.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아이들은 지켰지만, 다른 아이들을 살리는 데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어머니들도 레바논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힘겨워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들도 어머니이므로. 레바논 사람이든 이스라엘 사람이든, 어머니라면 어떤 아이라도 보호하고 돌봐주고 싶은 본능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도와달라며 울부짖는 동안, 세상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영혼이 엄마 아빠의 편안한 품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이여, 당신 정부가 저지른 짓에 대해 그들과 맞서세요. 아이들의 영혼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도록, 그들이 책임을 지게 하세요. - 267p
|
|
전쟁은 잔인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소중함을 망각하게 만들기에… 하지만 그런 전쟁이 단 하루도 그치는 날이 없으며, 누군가의 불행을 마치 즐거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것마냥 무심하게 쳐다보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불과 5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였음에도,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기보다는 그 아픔을 외면하는 것에 익숙하다. 저자의 나라 레바논은 다양한 종파가 모여 사는 땅이다. 다양성이 존중된다면 아름다운 공존이 가능한,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레바논의 역사는 후자에 가깝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그들의 대다수가 어린 아이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잔혹한 행위에 대해 책임지려 들지 않았고, 오로지 상대를 향한 보복만이 난무할 따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저자는 살았다. 기독교를 믿는 레바논 사람인 그녀는 영국인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배경도 전쟁에서는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은 무차별적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헤즈볼라측의 반격도 매서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떠나는 게 제일이리라. 그렇지만 그들은 레바논을 등지지 못했다. 기자인 남편이 전쟁을 취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생각해 보면 삶의 터전을 떠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껏 가꾸어온 모든 것을 잃는다는 걸 어느 누가 반길 수 있겠는가? 전쟁의 상흔은 오래 간다. 반 세기가 지났으나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전쟁이 살아 숨쉬고 있다. 뿌리 깊은 반공 이데올로기 역시 전쟁의 부산물이다. 이념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할 리가 없음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품었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워하곤 한다. 어른들도 이러한데 하물며 어린 아이는 어떠하겠는가? 언제까지나 피난을 소풍이라 속일 순 없을 것이고 포격을 불꽃놀이라 칭할 순 없다. 아무리 어릴지라도 아이들 역시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 나름의 잣대를 세상을 향해 들이댄다. 그렇기에 균형 잡힌 시선을 아이들에게 갖게 해 주고픈 어머니의 마음도 전쟁 중에는 소용이 없다. 실제로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편가르기에 익숙해졌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림 속에서 검은 개로 표현되었고, 헤즈볼라의 노란 깃발이 심심찮게 아이들의 그림에 등장했다. 전쟁은 아이를 아이답지 않게 만들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저자는 괴로워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뜻 모를 분노에 눈을 뜨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어머니로서 세상의 아이들을 품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는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무장할 수 있는 아무런 무기도 갖추지 못한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이기에… 동시에 그녀는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한 헤즈볼라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인 것이다. 지금도 죽은 아이들의 얼굴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 자주 그 아이들과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들은 살 수도 있었다. 부모가 밭을 가는 옆에서 서로 장난을 치면서 뛰어 놀 수도 있었다.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아이들은 지켰지만, 다른 아이들을 살리는 데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어머니들도 레바논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힘겨워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들도 어머니이므로. 레바논 사람이든 이스라엘 사람이든, 어머니라면 어떤 아이라도 보호하고 돌봐주고 싶은 본능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도와달라며 울부짖는 동안, 세상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영혼이 엄마 아빠의 편안한 품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P 267)
|
|
세상을 향해 내미는 뜨거운 손길-림하다드,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림 하다드, 박민희 역,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일기 33일>(아시아네트워크, 2008) 2008.2.20 買 2008. 2. 26 讀 악몽의 시작 한국 남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꾸는 악몽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에 다시 가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악몽을 꾼다. 제대한지 10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는 1년에 한 두 차례로 줄었지만 군대에 다시 가는 악몽은 꿀 때마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병역필’이란 이력은 꿈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난 여전히 내무생활 중이며 고참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달림을 받고 있다. ‘나 제대했는데’란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도 이젠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질긴 기억이 여전히 내 몸과 마음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못마땅하다. 하긴 여전히 나는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직장 상사와 공적일 일로 대화할 때 ‘다’나 ‘까’로 된 어미를 쓴다. ‘그것이 아니지 말입니다’란 희귀한 말을 쓰지 않는 것이 다행이랄까.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이 악몽에서 자유로울 있을까. 악몽은 악몽으로 끝날 때 참 다행이다. 악몽이 현실로 되는 때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끔찍하다. 영화 <나이트메어>에서의 프레디를 떠올려보라. 악몽이 현실로 되는 날, 삶은 공포로 물든다.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는 림 하다드가 2006년 발발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겪은 뒤 펴낸 책이다. 이 책 역시 악몽으로 시작된다. 악몽도 전염될 수 있다는 걸 전엔 몰랐다. 공포에 질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옆에 누워있던 남편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악몽 때문에 겁먹은 건 난데, 왜 남편이 창가로 달려가 저격수가 쏜 총탄이 날아들지 않는지, 폭탄이 터지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걸까?(17쪽) 악몽이면 좋았으련만, 그날 림은 악몽을 꾼 게 아니었다. 그날 베이루트 공항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았다. 림이 꿈에서 들은 폭발음은 현실이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시작됐다. 2006년 7월 13일의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것은 7월 12일 헤즈볼라가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하고, 8명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를 소탕하겠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헤즈볼라가 먼저 일으킨 일이었기 때문에, 또 마침 아랍 세계의 무슬림 무장 세력에 대한 미국의 공공연한 테러 근절 정책이 맹위를 떨치던 때였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은 헤즈볼라에게 집중되었다. 헤즈볼라는 악의 축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레바논의 역사와 헤즈볼라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의 오랜 분쟁의 역사, 더 나아가 이스라엘 건국의 과정 등을 살펴보면 일방적으로 헤즈볼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복되는 전쟁 나는 ‘전쟁의 아이’였다. 내가 추억하는 어린 시절은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며 비눗방울이나 나비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아니다. 윙 하고 폭탄이 날아드는 소리,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을 피해 어두컴컴한 곳에 쪼그려 숨어 있던, 그런 기억들이다.(19쪽) 림은 스스로를 ‘전쟁의 아이’로 규정한다. 1969년 태어난 그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계속된 레바논 내전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를 ‘전쟁의 아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시기에 겪은 전쟁의 체험은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2006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던 림에게 다시 닥친 전쟁의 포화는 악몽 그 자체였다. 레바논 내전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분쟁은 모두 이스라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1948년 홀로코스트라는 끔직한 비극을 겪었던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이란 사상적 바탕 위에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세웠다. 그곳에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말이다. 곧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레바논 남부 지역에 자리를 잡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PLO는 인티파다(봉기)를 시작한다. 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외부에서 온 존재가 아랍 세계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아랍 전역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암흑으로 몰아놓을 외부에서 온 존재, 이스라엘이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천, 즉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이해하지 않고는 아무도 중동과 중동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21쪽) 레바논 내전은 레바논의 무슬림과 기독교 세력간의 다툼으로 촉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유입으로 무슬림 세력이 늘어나자 레바논의 종파 간 긴장이 고조됐고, 1975년 4월 15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득 찬 버스가 기독교도 민병대의 공격을 받아 팔레스타인 사람들 26명이 살해되면서 레바논 내전은 시작됐다. 내전은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두 차례에 걸쳐 침공했다. PLO의 공격에 대한 보복행위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주권 국가인 레바논의 남부 지역을 오랜 기간 동안 점령했다. 남부 지역 무슬림 시아파 주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베이루트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 아니면 이주였다. 이스라엘의 이런 행동은 PLO에 대한 단순한 보복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슬림 세력에 대한 공격행위였다. 헤즈볼라의 탄생에도 이스라엘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두 번째로 침공하자 시아파 무장단체가 등장해 이스라엘군을 몰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무장조직이 헤즈볼라였다. 이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저항에 돌입했다. 지하드(성전)가 시작된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이스라엘 군인을 잡아 이스라엘 내에 붙잡혀 있는 레바논인과 아랍인들과 교환하는 것이었다. 2006년 발발한 전쟁도 헤즈볼라의 이런 저항 방법에서 기인한다. 살해와 학살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민간인과 헤즈볼라, 심지어 유엔평화유지군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의 공격과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무관심 혹은 이스라엘을 비호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오만이다. 그들은 중동 사람들에게는 침략자였다. 몇 십 년, 몇 백 년 동안 살아온 땅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루아침에 난민으로 전락해 빈곤한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사람들, 죽음으로 가족들과 단절된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이야말로 ‘악’이었다. ‘악’으로서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2006년 33일 동안 진행된 레바논 침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때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군인, 민병대, 심지어 유엔 평화유지군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이스라엘 참모총장 댄 할루츠의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레바논의 시계를 20년 뒤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선언은 사실로 드러났다.(86쪽) 그 실상을 림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이스라엘은 아카쉬의 집에 미사일 4발을 투하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10명이 살해됐다. 미사일은 집을 완전히 부수고, 온 가족을 땅 속에 묻어버렸다. …나머지 2명의 주검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96쪽) 또 다른 마을 슈후르에서도 가정집이 폭격을 받아 7명이 죽었다. 바플라이 마을에선 이스라엘이 가정집을 폭격해 제인 씨 가족 9명이 살해당했다. 그중 3명은 어린아이들이고 2명은 쿠웨이트 국적이었다. 이 가족이 헤즈볼라와 관계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97쪽) 뉴스 자막이 방금 남부 마르와힌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을 알린다. 이스라엘은 곧 이곳을 공격할 테니 민간인들은 마을을 떠나라고 경고를 내보냈다. …그래서 주민들은 주요 도로를 통해 마르와힌 마을을 떠나 밖으로 빠져 나왔다. 일부는 지붕이 없는 픽업 트럭을 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승용차에 타고 있었다. 그때 이스라엘 헬기들이 차량 행렬을 향해 미사일 2발을 발사해 21명을 죽였다. 그중 16명은 어린아이들이었고 임신부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유엔 임시군 의료팀도 똑같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민간인에게 떠나라고 경고하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공격했다. 게임인가?(112~113쪽) 앰뷸런스까지 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티레의 한 병원도 폭격을 당해 건물 한 동 전체가 부서졌고, 일가족 9명이 죽었다.(134쪽) 다른 공습이 여러 채의 집을 겨냥했고, 10명이 살해됐다. 이스라엘은 또 피난민 행렬을 공격해 4명을 살해했다. 남부 나바티에 마을광장에선 앰뷸런스를 폭격해 5명을 죽였다. 베카 지역에선 농민들이 몰고 가던 픽업트럭들이 공격을 받아 7명이 살해되고, 민가가 공격을 받아 두 가족, 8명이 살해됐다. …티레에선 주택가를 공격해 20명을 죽였다. 그들의 주검은 대부분 건물 잔해 아래 깔려 있다. 잔인하게도, 이스라엘은 이제 집속탄을 사용하고 있다. 공중이나 지상에서 발사되는 이 무기는 광범위한 지역에 수십, 수백 개의 작은 폭탄을 퍼뜨린다. 집속탄을 민간 지역 근처에서 사용하는 것은 무차별 공격 금지에 관한 국제적 인도주의 법률 위반이다.(142~143쪽) 인권감시단체 휴면라이츠 워치는 카나 학살이 이스라엘 책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했다. “오늘 카나 공습으로 최소 54명이 죽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였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을 ‘무차별 폭격지대’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그 지역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을, 공격받아 마땅한 전투원으로 보고 있다.”(210쪽) 시돈 근처 마을에서 전날 이스라엘 공격으로 살해된 14명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을 때 이스라엘 제트기들이 나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장례식장에 있던 6명이 또 죽었다. 시리아 국경지대에서는 과일 운반인들과 트럭 운전수들이 공격을 받아 죽었다. 이스라엘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비디오게임을 하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움직이는 목표물은 무조건 공격하고 보자는 식의.(246~247쪽) 림 하다드의 일기는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된 살해와 학살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세하게 이스라엘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림 하다드의 입을 통해 당시 레바논에서 일어난 살해와 학살의 기록을 접했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읽어나가며 곧 분노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 초기를 기록한 림 하다드의 기록을 볼 때 난 ‘살해’라는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보통 전쟁에서 발생한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살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난 ‘인명피해’와 ‘살해’라는 단어 사이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를 읽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살해’였다. 그것은 군사적 행동에서는 나올 수밖에 없는 민간인의 ‘부수적 희생’이 아니었다. 이봐요, 부시!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시의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취하고자 하는 행동들은 헤즈볼라를 목표로 하는 것이며, 부수적 희생과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목표물들을 민간인 지역 안에 두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렵다는 것도 안다.”(95쪽) 부수적 희생과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미국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대로 레바논 침공시 보여줬던 이스라엘의 행동은 ‘부수적 희생’과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 참모총장 댄 할루츠의 말처럼 레바논의 시계를 20년 뒤로 돌려놓는 방식으로 이뤄졌을 뿐이다. 댄 할루츠는 이 선언을 지켰다. 베이루트에 있는 지예 발전소를 폭격해 2만~3만톤에 이르는 석유를 바다로 번져가게 해 엄청난 환경 재앙을 불러온 것이 그 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 초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스라엘의 공격이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멈추라고 요구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했다. 그렇지만 림에게는 유엔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즉각 정전을 하자는 호소를 거부했다. 15개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중 유일하게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림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믿을 수가 없다. 누군가가, 특히 유엔이 어떻게 정전을 반대할 수 있지? 전 세계가 제 정신을 잃었나? 이봐요 부시. 당신은 밤에 잠이 오나요? 당신이 정전을 미루고 있는 매순간 또 하나의 어린 생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에요. 당신 딸들이 안전하게 잠자는 동안, 이곳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요. 느끼는 게 전혀 없나요? 스스로 기독교도라고 주장하며, 다른 기독교도들을 모욕하지 말아요. 당신에게는 기독교도다운 면이 전혀 없으니까. 이봐요 부시, 당신은 너무 위선적이야!(117쪽) 또 유엔주재 미국 대사 존 볼튼은 이렇게 말했다. “민간인을 살해하려는 뜻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겨냥해 로켓을 발사하고 폭발장치를 사용하거나 납치를 저지르는 것과, 자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슬프고도 매우 불행한 결과가 빚어진 것을 똑같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132쪽) 이 말은 헤즈볼라의 테러로 인해 빚어진 민간인들의 죽음과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으로 발생한 민간인 죽음이 같지 않다는 말이다. 죽음의 차등화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말은 민간인이 얼마나 죽었는지를, 즉 희생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를 은폐한 말이다. 림은 이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볼튼 씨, 여러 해 동안의 경험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 한 명의 목숨이 레바논 사람 수백 명의 목숨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요, 알겠어요.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대로 학살할 권리가 있는 동물일 뿐이니 우리 동물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절대로 그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걸 이제 우리도 안다고요. 사냥은 사냥꾼들만이 한다는 말이겠죠.(132쪽)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게 사실이긴 하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도, 그 강대국이 세계의 패권국가라면 아무리 부당한 것이라도 그 행위는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등등의 말의 성찬에 의해 미화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랬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명분을 찾았고, 그 명분에 의해 살해와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뒤에는 패권국가 미국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알고 있는 세계의 국가들은 침묵을 지킨다.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림이 이런 말을 했을까. 세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레바논 사람들은 어떤 혐의로라도 기소되어 재판정에 서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게. 그래야만 왜 세계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지 이유라도 알지 않겠는가?(154쪽) 세상을 향해 내미는 뜨거운 손길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유엔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끝났다. 그러나 33일간 레바논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레바논에게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약 1,183명의 레바논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 3분의 1이 13살 미만의 어린이였다. 그리고 4,054명이 부상당했고, 97만명이 이재민이 됐다. 국제앰네스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군은 7월 12일부터 8월 14일까지 약 7,000여개의 목표물에 대해 7,000번이 넘는 공습을 했다. 또 이스라엘 해군은 2,500번이나 폭격했다. 산업 분야의 3분의 2가 파괴되었고, 지예발전소 폭격으로 거대한 기름이 바다로 흘러들었다. 바다에 흘러든 기름은 지중해까지 퍼져갔으며,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복구하는데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레바논이 폭격으로 입은 피해는 이처럼 막대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공격 목적이 헤즈볼라를 소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레바논 자체에 대한 침공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지표다. 이와 관련해 국제앰네스티는 이렇게 지적한다. “공격의 유형과 범위, 민간이 희생자 숫자와 피해 규모를 보면,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증거들은 공공시설, 발전시설, 민간주택과 산업시설의 광범위한 파괴가-군사 목표물을 겨냥하다가 우연히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피해를 입히는-‘부수적 피해’가 아닌, 이스라엘 군사 전략의 의도적이고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270쪽) 이스라엘의 침공은 헤즈볼라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살해와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에 복수를 다짐한다. 증오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림은 중동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아, 이스라엘. 영원히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할 것인가? 우리 사이에서 살고 싶다면 제발 아랍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라. 이 세계에서 남자들은 전쟁을 통해 성장한다. 당신들이 도발할수록 그들은 더 강하게 싸울 것이다. 당신들은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죽임으로써, 당신들을 추격할 새로운 세대의 헤즈볼라 전사들을 만들어낸 뿐이다. 헤즈볼라를 없앨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마스를 없앨 방법은 하나뿐이다. 당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인들의 증오를 없앨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당신들이 평화를 찾을 길은 하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라. 먼저 인정하라. 당신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과 땅을 훔치고 쫓아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둘째, 사과하라. 그리고 셋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국을 만들게 해주고, 난민들에게 보상하라. 이렇게 했을 때만, 당신들과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279쪽) 책을 끝내면서 림은 두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 누구도 증오해선 안 된다고 그는 그 편지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잊지 말아라. 유대인도 아랍인도 서로를 증오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라.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레바논 저항운동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믿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를 세우도록 돕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면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의 마땅한 의무임을 믿어라. 무엇보다, 아랍인과 유대인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공정한 평화 말이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294쪽) “이 글은 증오와 복수 대신 평화와 희망을 염원하는 아랍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내미는 뜨거운 손길이다.” 림은 책 서두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평화와 희망. 좋은 말이다. 누구나 증오와 복수보다는 평화와 희망을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림의 이 말이 더더욱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2006년 33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벌어졌던 일들은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 거주하는 내가 보기에 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자, 세상의 부조리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입에서 먼저 평화와 희망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은 위선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난 림이 ‘세상을 향해 내미는 뜨거운 손길’을 맞잡고 싶다. |
|
총을 든 어른 앞에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뛰어가고 있다. 어른과 배경은 흑백 모노톤으로 처리되어 있으나 아이는 컬러로 생생해 보인다. 오른쪽 위를 향한 날카로운 총과는 무관하게 아이와 어른은 웃는 표정이다. 그래, 지금의 현실은 무장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 찾아올 평화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표지인 듯하다. 엊그제 중국이 티벳 망명정부의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외국인 관광객과 기자들이 모두 철수하거나 추방된 상태라서 라싸 시내의 상황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광주민중항쟁과 비슷한 상태라고 한다.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의 림 하다드가 처한 상황과도 비슷하다. 이제 책으로 들어가 보자.
표지 속날개를 보면 저자인 림 하다드가 딸 야스민과 아들 알렉산더를 안고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1969년 레바논에서 태어나 베이루트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레바논 내전이라는 전쟁을 겪었다. 미국으로 떠났다가 내전이 끝난 후 다시 돌아와 기자로 일한다. 그런데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이 일어나 레바논이 휩쓸리면서 33일간의 전쟁을 다시 겪는다. 이 전쟁에서 영국인 종군기자인 남편과 두 아이들을 모두 살리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림의 모습이 일지처럼 공개된다. 여기에는 폭격과 테러와 살해의 이야기가 있고, 그 와중에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 외부의 관심과 중재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들,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들 등 다양한 생각들이 흘러간다.
요즘 들어 갑자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편 읽게 되었다. 워낙 신문이나 언론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주변의 아랍국들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무장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주변으로 끝없이 확장해 가면서 원래 터전을 잡고 있던 사람들을 엄청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이 책의 초반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에서 58년째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끝없이 이어지는 침공과 학살은 무조건적인 복종과 분노의 구약 하나님을 떠오르게 한다. 이 상황은 아직도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무섭고 막막하다. 더구나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강대한 서방 세력들 때문에 공정함이나 관대함은 기대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1948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인근의 역사는 참 복잡하다. 레바논의 역사를 알지 못해서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면, 책 뒤편에 나온 '옮긴이의 말'부터 읽고 책을 읽기 시작해도 좋을 듯하다. 내전과 전쟁으로 죽어간 많은 아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제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특히 지금껏 많은 전쟁과 피해를 겪은 이슬람 아이들이 평화와 희망을 믿을 수 있기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의 한 어머니도 바란다. |
|
게임에선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적을 죽이기 위해 총을 쏘아대고
영화나 tv에선 상대방이 피흘리며 쓰러질때까지 마구 때리고.
우리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한다며 장난감을 산다..
그리고 우리는 진짜가 아니니 괜찮다고 말하지만.....
이건 마음의 평화를 죽이는 폭력이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까지 지구촌곳곳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있다
옛날에는 먹을것을 위해,그리고 지금은 국가간의 여러 목적으로..
세상은 왜 이런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간 레바논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마음은 한없이 찢겨지는 고통과 슬픔으로 안절부절 어쪌줄 몰랐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위해 지켜주고 보호해주고픈 마음은 어느부모나 똑같은 심정일게다.
소중한 어린시절,다시 되돌아 오지 않을 시절에 행복의 추억보다
더 많은 시간을 두꺼운 벽들로 둘러싸인 복도에서 유탄을 피하며 공포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다.
아랍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숙명의 숙명의해 1948년. 그해 팔레스타인이 죽고 이스라엘이 태어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 이야기들은 당신의 가슴을 찢어놓고 많은 의문을 갖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아이들이 자라서 모든이야기의 양면을 다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왜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팔레스타인들의 집을 빼앗고
레바논 사람을 공격하는 걸까?
빈부의 격차로, 종파간 갈등이란 이유로 전쟁을 합리화 시킬수는 없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집 열쇠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본다면
내가족,이웃이 언제 어디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남겨진 이들에게 가슴아픈 상처와 고통 받는걸 가슴으로 이해 한다면 이세상 어떤전쟁이나 폭력도 있어서는 안된다.
전쟁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가슴아픈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느곳이든 다시는 전쟁없길 우리는 바란다.
우리는 그저 평화를 원할뿐이다.
|
|
<엄마의 33일 전쟁일기?> 우리나라 또는 대부분의 평화로운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자녀를 양육하면서 “육아일기”를 쓰는 게 보통이다. 육아일기는 아이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재의 기쁨이 주제가 된다. 하지만, 레바논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살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이 책의 저자 림(Reem)은 2006년 7월 12일부터 같은 해 8월 13일 까지 33일 동안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아 고통 받았던 생생한 경험을 “엄마의 전쟁 일기”형식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이 33일간의 일기에는 현재의 삶이 주는 기쁨도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도 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런 고통스런 경험을 고스란히 기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이 끝나고 처음 이 책을 내보라는 권유를 저자는 단박에 거절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져간 많은 레바논 사람들 또는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만이 이 이야기를 쓸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저자는 곧, 33일 이라는 어찌 보면 참으로 짧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183명(이중 1/3이 열세 살 미만 이었음)의 사망자와, 4,054명의 부상자 그리고 97만 명이나 되는 이재민을 만들어낸 이 전쟁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통해 전쟁의 무참함과 동시에 이 전쟁을 중단 하기 위해 용서와 평화를 호소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임무임을 깨닫게 된다. <?xml:namespace prefix = o /><?xml:namespace prefix = o /> <중동전쟁의 새로운 양면을 만나다> 아랍-이스라엘 분쟁(Arab-Israeli wars) 즉, 우리 에게 중동 전쟁으로 잘 알려진 이 전쟁은 그 뿌리가 깊다. 중동전쟁은 아랍과 이스라엘 양 민족의 태곳적의 오랜 숙명적 대립에서 유래 했다. 기원전 가나안(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땅에 나라를 건국한 유대인은 망국 후 유랑 민족으로 전락 하였으나 조상의 땅인 가나안 언덕에 돌아가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재건하는 것을 민족의 비원(悲願)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민족적인 비장한 염원은 점차 정치적 운동으로 까지 확대 전개되고, 636년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공략되는 것을 시작으로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의 지역이 이슬람교도에 의해 점거되어 이슬람의 성지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중동전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제국의 약화와 전쟁의 승리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미끼로 삼아 아랍과 이스라엘 양쪽에 양다리를 걸치면서 아랍민족과 유대민족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영국의 비열한 책략에 있었다. 영국은 아랍인에 대해선 후세인-맥마흔 조약을, 유대인에게는 벨푸어 선언을 통해 양자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모순된 언질을 함으로써 양 국가의 협력을 얻어낸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중동 전쟁의 새로운 양면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다소 이스라엘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을 무자비한 테러리스트로 비난하는 동시에, 레바논의 희생에는 무지 하기만 했던 편협한 나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중동 전쟁의 뿌리와 그로 인해 파생되어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에도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소박하고 정직하게 삶을 일구어 온 사람들이 핍박 받아 마땅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 사람의 인생이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삶의 모든 것들이 빛깔을 잃어야만 하는, 가슴을 찢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전쟁의 대의명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직접 중동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도 전쟁의 잔혹함과 무참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어떤 전쟁도 단 한명이라도 무고한 사람의 죽음 내지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더욱이 우리의 희망인 여리고 순수한 아이들이 이러한 어른들의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그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도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님에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많은 분노를 느꼈다. 이스라엘과 미국제 폭탄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증오하며 성장하기 쉽다.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새로운 테러리스트 세대’로 자라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이 테러리즘이 생겨나는 진짜 이유라고 말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을 멈추기 위해, 아이들에게 아래와 같이 평화와 화해 그리고 용서를 당부한다. 저자의 맨 처음의 우려처럼, 언뜻 보면 가족 모두 무사하게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저자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어 보인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 앞에서 정신적인 상처와 희생의 아픔은 호소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어쩌면 저자는 처음 책의 저술을 제안 받았을 당시, 스스로 우려 했던 것 처럼 아래와 같은 당부를 할 자격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아래의 당부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분노와 복수심으로 까맣게 불타 페허가 되어 버린 아이들의 가슴에 얼마나 큰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
|
내가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똑똑하고 민족성이 강한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생각을 했고 레바논은 중동지역에 있고 내전으로 종교 갈등이 있는 나라라고만 생각 했다. 그다지 관심 있게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 림 하다드가 쓴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를 보면서 새로운 중동 이야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어떻게 세워졌을까? 세계2차대전이 끝나면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많이 들어오면서 아랍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세웠다. 여기에서 피난을 레바논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레바논은 1943년 프랑스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기독교도가 주도 하였다.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리고 고대유적지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러나 유입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원인으로 레바논 내전이 16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왜 시작했을까? 팔레스타인행방기구, 헤즈볼라의 테러 때문일까? 그러나 림의 33일간의 전쟁일기에서 이런 이유라면 헤즈볼라와 전쟁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무고한 어린이와 민간인들이 거의 피해를 보고 레바논의 기반시설인 도로 공항 항구 발전소 방송국 등 모두 파괴를 하였다. 이런 것이 테러리스트를 잡는 것인가 이것은 레바논과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침공을 하면서 당당할까 아무리 자국민을 포로를 되찾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하고 죽였지만 아무 상관도 없는 민간인과 어린이가 너무나 많은 피해를 당했다. 나는 림의 33일간의 전쟁일기를 읽으면서 힘들었다. 마음도 너무 아팠다. 아니 분노까지 치밀었다. 림의 일기에서 매일같이 민간인과 특히 어린이들의 희생 그중에는 생후15일된 아이도 있었고 임신한 부녀자도 있었다고 한다. 또 유엔임시군 구조팀, 의료팀에게도 위협을 하였다. 민간인들은 떠나라고 해놓고 공격한 것 유엔평화유지군의 죽음까지 그들은 어떻게 해서 세계평화를 지키는 유엔에서 파견한사람까지 공격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강대국인 미국의 지원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림은 야스민과 알렉산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종군기자인 닉의 아내이다. 림은 두 아이와 함께 안전한곳으로 피해서 두 아이를 지켰다. 그렇지만 폭격 속에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그 들의 엄마도 나같이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키지 못했다 얼마 마음이 아프겠는가? 림은 야스민과 알렉산더에게 전쟁을 알려주기 싫어서 매일같이 천둥소리라고 하면서 거짓말을 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한 것도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뒤를 받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미국은 전쟁을 묵인했다. 좀 더 해야 한다고 했다. 급기야 부시의 국가안정보좌관은 헤즈볼라를 잡기 위해서는 민간인들의 죽음은 부수적인 희생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어의가 없는 말을 한다. “잊지 말아라. 유대인도 아랍인도 서로를 증오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라.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레바논 저항운동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믿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도록 돕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의 마땅한 의무임을 믿어라. 무엇보다,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는 평화를 이롤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공정한 평화 말이다.” p294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우리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아닌가? 우리도 하루빨리 안전한 세상이 왔으면 생각하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이제는 전쟁 없길 바라며, 림의 조상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