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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사 새옹지마/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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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의 새옹지마는 화복은 돌고 도는 것이니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고사성어다. 진보학자로 알려진 이영희 선생이 이런 제목으로 책을 썼다니 좀 뜻밖이다. 더구나 소설로 분류되어있어서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다. 책을 받아 읽어보니 11편의 수필 중에 소설 형식으로 쓴 내용이 있다. <D검사와 리 교수의 하루>가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의 분류를 소설로 한
"인간만사 새옹지마/ 리영희" 내용보기

'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의 새옹지마는 화복은 돌고 도는 것이니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고사성어다. 진보학자로 알려진 이영희 선생이 이런 제목으로 책을 썼다니 좀 뜻밖이다. 더구나 소설로 분류되어있어서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다. 책을 받아 읽어보니 11편의 수필 중에 소설 형식으로 쓴 내용이 있다. <D검사와 리 교수의 하루>가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의 분류를 소설로 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수필이라고 하기엔 좀 더 무겁다.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사회상을 조명해준 내용을 '인문사회'로 분류한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생의 삶이 꿰어진다. 선생은 6.25전쟁이 일어난 날부터 7년 동안 군에 복무했고, 신문사와 대학에서 근무했다. 새벽에 사복경찰들에게 연행되어 2년간 감옥살이를 했고, 두 번 더 구속됐는데 이유는 늘 같았다. 반공법 위반이었다. 두 번 해직됐으면 그 수만큼 복직 되었다. 이 책에는 통역 장교로 군 생활 했던 중 겪은 일화와 구속되는 과정, 당시 사회의 모습에 대한 선생의 생각이 들어있다.

 

 

 

이 책은 70년대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현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립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독립지사나 후손들은 가난 속에 험난하게 살고 있고, 친일파들은 특유의 기민한 사회성 덕분에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앞에 두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간절히 희망한다는 선생의 바람이 2019년 현재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생각해보면 선생의 희망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자신과 사회에 엄격한 반면 아내에 대한 아래의 글은 선생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으면서 결혼생활의 지혜도 얻을 수 있는 내용이다.

 

 

 

나는 아내에게 작은 일에서는 제법 이론적으로 어쩌구저쩌구 하며서 이긴 듯했다가는, 말 싸움이 끝나고 보면 결국 내가 졌다는 자각에서 아내를 존경하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서투른 이론이나 논리는 사랑의 너그러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30년이 지난 결혼생활을 하고서야 겨우 터득했으니 한심한 남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교복자율화 시행을 앞두고 자녀들과 한 대화에서 유행과 사치에 대한 내용도 무척 설득력이 있어 소개해본다. 1983년에 쓴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좋은 내용이다.

 

 

 

(...)진실로 문제되는 점은 유행과 사치가 여성의 예속상태를 영속화시키는 효과라 하겠다. 그것은 여성의 해방을 방해하고 나아가서는 민족의 해방까지 저해하는 기능을 한단다. 유행과 사치는 3중의 예속관계를 조성한다. 첫째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예속, 둘째는 자본에 대한 인간의 예속, 셋째는 한 국가 내지 민족의 다른 국가에 대한 예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행을 따르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인격적 예속이다.

 

 

 

통역 장교로 복무한 군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들으면 무척 황당하다. 장교가 권총이 없어 모양새가 빠진다는 것이나, 무기를 시장에서 몰래 구입한다는 내용도 그렇지만 20대 장교가 기생을 얻기 위해 총까지 쏘았다는 내용은 기가 막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일생 반성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데서 선생의 성정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있었다.

 

 

 

소설 구성인 <D검사와 리 교수의 하루>는 선생의 경험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회상형식인 이 소설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온 리 교수를 검사가 심문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검사는 사회의 엘리트 길을 빠르게 걸어온 인물이고 리 교수를 설득해 유신헌법을 찬성하게 하는 것이 이 심문의 목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하면 할수록 검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가고 나중엔 기어이 검사를 바보로 만들면서 끝을 맺는다. 검사의 위엄 뒤에 숨은 허술함이 독자를 시원하게 만들면서 한편으론 지금 우리도 여전하지 않은가라는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마르코스를 위한 변명>에서 선생은 각 나라가 처한 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문제를 조금만 살펴보면 '문제로 규정된 대상적 존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문제라고 주장하는 그 자신들의 사회적, 도덕적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유대인 문제는 백인 기독교 문명과 도덕의 문제이고 미국의 인종문제는 다문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백인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재일 한국인들을 문제화하는 것은 한국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을 거부하는 그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화살을 쏘기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라는 선생의 주장은 오늘 나에게도 지적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범우사 문고로 나온 얇은 책이지만 그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번쩍거리는 빛으로 순간을 현혹하는 무수한 인공불빛에 노출 된 우리는 매일 피로하다. 하지만 지구가 생겼을 때부터 밤하늘에 떠있는 별빛을 보며 피곤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신간을 뒤적이는 일도 재미있지만 오래된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아주 예전에 느꼈던 차분한 독서의 기쁨을 잊지 않게 해준다. 시골에 내려와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 느끼는 편안함을 이 책에서도 느꼈다.

t******e 2019.08.16. 신고 공감 6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