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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우리 모두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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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죄인이다.   약을 이용해서 성폭행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아무 죄도 없는 여자에게, 단지 눈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짓을 해도 될까? ‘이런 짓은 그만두자.’ 마코토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 두 사람에게 얼마나 매도 당할까? 뿐만 아니라 가이지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에게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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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죄인이다.

 

약을 이용해서 성폭행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아무 죄도 없는 여자에게, 단지 눈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짓을 해도 될까?

이런 짓은 그만두자.’

마코토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 두 사람에게 얼마나 매도 당할까? 뿐만 아니라 가이지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에게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 다음 순간, 마코토는 생각했다. 여자가 불쌍하긴 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이지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고.1)

이런 마코토와 같은 우리 주의의 수많은 소시민들의 마음가짐이 조두순, 김길태, 그리고 김수철에 이어지는 험악한 사건을 유발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저 외면하는 얼굴 없는 수많은 소시민들이 결국 소설 속에서 나가미네가 겪을 일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피해자의 인권은 누가 보장하는가 

 

자신에게 죄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법원의 일이다. 그런데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는가? 아니다.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더구나 아쓰야와 마찬가지로 가이지도 미성년자이리라. 에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쩌면 교도소에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

그 인간쓰레기들이 빼앗은 것은 에마의 인생만이 아니다. 그들은 에마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2)

 

만약 한국에서 나가미네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법원은 어떻게 판결할까?

대법원의 종합법률정보에서 판례를 살펴보아도 일단 본건과 같은 강간치사(强姦致死)의 경우는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성년자인 피고인들이 생맥주 집에서 술을 마신 후 귀가하는 종업원들을 협박하여 여인숙으로 끌고가 강간(强姦) 및 윤간(輪姦)한 사건[서울 고법 80 2214(81.11.20)]에 대하여 법원은

 

피고인들은 소년이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피해자가 그 처벌을 바라지 아니하는 등 그 정상에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으므로 형법 제53, 55조 제1항 제3호에 의하여 각 작량감경(酌量減輕)3)한 형기 범위 내에서 피고인들을 각 징역 2년에 처하고 ~

라고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가미네와 같은 경우가 발생해도 피해자의 가족에게 흡족한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소년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도, 범죄방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4)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인권보장이라는 이유로 그 법을 당연시 여기고 옹호한다. 그 법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전혀 반영되지 않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면서……

 

하지만 당신이 만약 그 피해자의 가족이 되었다면 그들을 그냥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갱생해야 하니까 처벌을 감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런 경우라면 가해자를 잡아서 피부를 한 꺼풀 벗기고 소금을 뿌려서 사막 한가운데에 두더라도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겨우 사냥총으로 단숨에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을 테니까. 분명 복수는 그 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그 자신은 마음이 파괴되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테니까……

 

 

경찰, 방황하는 정의의 칼인가 

 

경찰의 일원이기에 직접 돕지는 못하고 그저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던 하사쓰가 반장의 경찰이란 것은 무엇일까? 경찰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아니야, 경찰은 단지 법을 어긴 사람을 잡고 있을 뿐이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법이란 말이지. 그런데 그 법이란 게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5)라는 말처럼,

견찰이라는 비이냥 섞인 시민의 시선처럼 경찰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시민의 봉사자도, 정의의 칼날도 아닌 존재로 바뀐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 가족의 안전을 어디에 의존해야 할 지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1) 히가시노 게이코, <방황하는 칼날>, 이선희 옮김, (바움, 2008), p. 13

2) 같은 책, pp. 128~129

3) 법률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법원이 그 형을 줄이거나 가볍게 하는 것.

4) 같은 책, p. 88

5) 같은 책, p. 534

w******f 2010.06.13. 신고 공감 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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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아이의 영혼을 죽인 그들은 내 손으로 죽일 겁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 방황하는 칼날
"내 딸아이의 영혼을 죽인 그들은 내 손으로 죽일 겁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 방황하는 칼날" 내용보기
"영혼 살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 단어를 나영이(가명) 사건 이후, 나영이 아버지께서 아동 성범죄는 영혼 살인이라고 주장하신 데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슬프지만 고개를 깊이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맥박 종지설에 의한 심폐 기능 정지만이 살인의 결과인 걸까요? 적어도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심장이 뛰어도 맥박이 뛰어도 그 육체 안에 깃든 영혼이 사
"내 딸아이의 영혼을 죽인 그들은 내 손으로 죽일 겁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 방황하는 칼날" 내용보기

 "영혼 살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 단어를 나영이(가명) 사건 이후, 나영이 아버지께서 아동 성범죄는 영혼 살인이라고 주장하신 데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슬프지만 고개를 깊이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맥박 종지설에 의한 심폐 기능 정지만이 살인의 결과인 걸까요? 적어도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심장이 뛰어도 맥박이 뛰어도 그 육체 안에 깃든 영혼이 사살 당한다면 가해자는 살인을 저지른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니,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은 딸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룬 소설입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아동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물론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았을 뿐, 사회 곳곳에선 많은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날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떻습니까? 눈을 감고 싶고 귀를 닫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아동 성범죄 관련 뉴스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나가미네의 복수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사건'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그런 헛된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만약 이게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라면 나가미네의 슬픔에 짓눌려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문득 생각난 듯 책상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핑크빛 휴대전화가 들어 있었다. 에마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한 번도 전원을 켜지 않았다. 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그녀의 부모와 친구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화를 걸었으리라. 문자메시지도 보냈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나 문자메시지는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중략… 액정화면에 나타난 이름은 '아빠'였다. 날짜와 시간은 틀림없이 불꽃놀이가 있었던 밤이다.
 그는 재빨리 전원을 껐다. 가슴 깊은 곳에서 허무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휴대전화를 다시 책상 속에 집어넣고 침대에 누웠다. -60p
 
 일찍 아내를 떠나보낸 나가미네는 하나뿐인 딸 에마를 아내가 남긴 소중한 보물이라 여깁니다. 행복만이 존재하던 나가미네의 일상에 변화가 다가온 것은 에마가 고등학생들에 의해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살해당한 순간부터였습니다. 가해자인 그들은 에마에게 다량의 각성제를 투입하는데 에마는 얼마 후 급성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두 눈을 감게 됩니다. 그들은 에마가 죽은 것은 사고라고 여깁니다. 불행한 사고. 재수없게 일어난 일.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던 것은 이 사항이 에마와 나가미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마와 나가미네 역시 불행한 사고를 겪은 것이며 재수없게도 그 피해자가 자신들이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참 끔찍한 사건이었어. 내장이 모두 파열된 데다가 온몸에 화상 흔적이 있었지. 자수한 사람은 같은 반 친구 네 명이었어. 그들은 얌전한 표정으로 부모에게 끌려왔지. 그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건 피해자에 대한 속죄의 눈물이 아니었어. 경찰에 체포되어야 하는 자기 신세가 한스러워 흘린 눈물이었을 뿐이지. 녀석들은 자기를 불쌍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 녀석들 얘기를 듣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어. 왜 친구를 죽였는지 아나? 게임 소프트웨어를 빌려주지 않아서야.  
 …중략…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데, 우리는 녀석들을 사형장으로 보내는 건 물론이고 돼지우리에 처넣을 수도 없었어."
 "역시 미성년자이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그렇지만, 사건 당시에 녀석들은 술을 마셨어. 그것도 양동이로 퍼붓듯이. 미성년자라는 걸 알면서도 술을 판 가게에도 책임이 있다는 둥 어떻다는 둥, 도중에 이상한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지." -67~69p

 가해자들 중 한 명인 마코토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에마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나가미네의 연락처를 이용해 그에게 가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전화의 착신 기록을 확인하던 나가미네는 에마를 죽인 범인이 가이지와 아쓰야임을 알게 되고 아쓰야의 집주소 또한 알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에게 이 내용을 알려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게 됩니다. 전화 메시지를 남긴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어린 남학생의 목소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녀석들이 에마를 납치한 범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만약 범인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 녀석들이 미성년자라면 어떻게 될까? 만약 술을 마셨다면? 각성제를 사용했다면? 정신이 이상하다면?
 과거에 일어난 몇몇 부조리한 사건들이 그의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범인이 항상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이름도 공표되지 않고, 사형에 처해지는 일도 없다. -88p

 결국 나가미네는 경찰에 이를 알리지 않고 홀로 그 주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마를 강간할 당시 가해자들이 촬영한 비디오를 발견합니다.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비디오를 통해 확인한 나가미네는 슬픔과 분노에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에마를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의 제물로 삼았던 겁니다. 바로 그때, 아쓰야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미네를 만나게 됩니다. 나가미네는 아쓰야가 비디오 속에 등장했던 남자임을 알아차리고선 식칼로 소년의 배와 가슴을 찌릅니다. 아쓰야는 곧 사망하는데 나가미네는 사체가 되어버린 아쓰야의 바지를 벗겨 그의 성기를 도려내고 배며 가슴이며 닥치는 대로 찔렀습니다. 피해자의 유가족에서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도모자키 아쓰야 살해사건을 담당하고 계시는 경찰 관계자 여러분께.
 저는 얼마 전에 아라카와 강에서 시체로 발견된 에마의 아버지, 나가미네 시게키입니다. …중략… 저는 그를 죽인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원한이 풀렸느냐고 물으면, 절대 풀렸을 리가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러나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더 강렬한 분노와 좌절에 휩싸여 있었겠지요.
 아쓰야는 미성년자입니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에마를 죽인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가령 변호사가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주장한다면 도저히 형벌이라고 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질 우려가 있습니다. 
…중략… 물론 아무리 절박한 사정이 있어도 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벌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체포될 수 없습니다. 복수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73~174p

 나가미네의 복수는 법을 통한 복수가 아닙니다. 그는 법의 정의를 부정하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가해자를 죽입니다. 그리고 경찰은 살인자가 된 나가미네를 체포하려고 노력하면서 나가미네로부터 '가해자'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보호합니다. 우리들은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역전된 관계를 종종 목격합니다. 나영이 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가해자가 술을 마신 상태였기에 '심신상실' 상태로 보고 징역 12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내립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성 범죄인 경우는 이보다도 더한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심한 경우, 전과 기록조차 남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찰이라는 건 무엇일까? 경찰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아니야. 경찰은 단지 법을 어긴 사람을 잡고 있을 뿐이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법이란 말이지. 경찰은 법이 상처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어. 그런데 그 법이란 게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법은 결코 완벽하지 않네.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 -534p

 법은 정의다. 그러므로 법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다. 이는 얼마나 역설적이면서도 모순으로 가득찬 말일까요. 나가미네의 복수는 법이라는 이름의 정의가 낳은, '또 다른 이름의 (비합법적) 정의'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모든 피해자들이 법의 심판 대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보복을 가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거꾸로 법이 보호하고자 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법은 마땅히 보호해야 할 존재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죄인을 격리한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 기간 보호받은 죄인들은 세간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누구에게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508p

 저는 나가미네의 복수를 바라보는 내내 슬픔에 짓눌려버릴 것 같았습니다. 제가 유난히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장녀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의 복수가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오직 법의 칼날만이 정의로운 칼날인 걸까요? 복수에 눈이 멀어 가해자를 살해하고자 하는 나가미네의 칼날은 악의 칼날인 걸까요?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아니, 무엇이 좀 더 옳은 모범 답안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방황하는 칼날이 더 이상 이 사회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k*******3 2011.11.06. 신고 공감 6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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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칼날이냐, 분노의 칼날이냐…
"정의의 칼날이냐, 분노의 칼날이냐…" 내용보기
원래 난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쓴 작품이나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그걸 소설로 엮어가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물론 대부분 쓴웃음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고 유쾌하고 통쾌한 면도 있었고 날카롭게 현대 세상을 비웃는 것이 그만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회적인 이슈를 문제화한 것이긴 하지만 기대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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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난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쓴 작품이나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그걸 소설로 엮어가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물론 대부분 쓴웃음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고 유쾌하고 통쾌한 면도 있었고 날카롭게 현대 세상을 비웃는 것이 그만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회적인 이슈를 문제화한 것이긴 하지만 기대를 하고 잡았지만 역시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5백여 쪽이 넘는 내용을 별로 지루할 틈도 없이 단숨에 읽었고 스토리 전개도 나름 서스펜스를 집어넣어 추적과 추격을 따라가지만 그 역량은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결론은 없는 결말…
 
나가미네는 열다섯 먹은 딸, 에마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다. 한편에선 딸이 불꽃놀이를 보러 가서 안 돌아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는 나가미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또 한편에선 가이지 등 세 명의 청소년들이 여자를 납치해 성폭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분 나쁜 예감에 사로잡히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구나 읽는 동안 요즘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어린아이들 납치 사건과 살해 사건 등 정말 끔찍한 일들이 모두 떠올랐다. 소름끼치는 현실이나 책에서 그리는 세상이나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에마가 희생당한 걸 알게 되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을 정도로 이야기는 끔찍하지 않는가. 만약 내가 또는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성을 지키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선 한 술 더 떠 가해자들이 청소년, 즉 미성년이라는 설정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분명 한 사람이 무참히 살해되고 그 가족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막상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들이라는 법 아래 안전하게(!) 보호된다.

 

세 명의 가해자는 분명 그 역할이나 정도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 분노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경찰이, 법이 그들을 보호하는데 말이다. 흔히들 죄를 미워하지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게 막상 내게 닥친다면 그런 소리가 나올 것인가? 영화 <밀양>에서도 ‘용서’라는 주제를 잘 다뤘지만 왜 내가 아닌 하느님이, 법이 용서를 하게 하는가 말이다. 경찰에게 잡히는 것이 더 안전한 해결방법이라는 걸 아는 가해자가 잡힐 때 잡히더라도 “조금만 더 즐기고”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나도 완전 뒤집어질 뻔 했다.

 

점점 더 사이코패스가 많아지는 세상이다. 또한 그 범죄의 수법이나 방법도 점점 더 악랄하고 더 극악무도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딸 키우는 부모들은 어디 세상 무서워서 딸 키우겠냐고 한다. 벌만이 최선의 예방은 아니지만 법이 그리고 사회가 어느 정도는 이를 막고 이를 예방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경찰이 지키는 것은 약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법일 뿐이다’라는 어느 경찰관의 말이 이처럼 와 닿는 세상에서 어찌 안전하게 살아갈까. 정의의 칼날이 아니라 어쩌면 분노의 칼날이 더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   

g******i 2008.04.22. 신고 공감 6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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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정의가 될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한 정의가 될 수 있는가" 내용보기
도가니 이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앞세우는 성폭행 소재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가니 이후 작년에 개봉했던 <한공주>외에는 수작이라 할만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가니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노와 함께 공감을 이끌어 낸 작품이었지요. 이후 만들어진 작품들은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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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이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앞세우는 성폭행 소재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가니 이후 작년에 개봉했던 <한공주>외에는 수작이라 할만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가니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노와 함께 공감을 이끌어 낸 작품이었지요. 이후 만들어진 작품들은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미처 감지하지 못했거나 쉽게 외면했던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발아시키기보다는 도가니식의 작품의 흥행성에 편입한 영화로 기억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는 실화를 신랄하게 재현해 내는 작품도 있었습니다만 관객으로 하여금 폭력을 당한 것만큼이나 불쾌한 분노만을 이끌어내고 끝나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더이상 남의 일만이 아니다 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한 메시지가 따로 필요없을만큼 현실에서 고의적인 악의를 가지고 벌어지는 일들이 수두룩하게 뉴스로 보여지고 들려집니다. 그러자니 일부러 영화나 책으로까지 찾아 보기 꺼려지더군요. 차분하게 돌아보고 생각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감정만 불러일으키는 작품들만 연이어 본 탓이기도 할겁니다. 그래서인지 <방황하는 칼날>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때 알아주는 배우들에 괜찮은 연출로 기억되는 감독이 만드는 작품인데도 보기가 망설여지더군요. 그러다 원작이 하기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 한번 믿고 보자싶어 책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아내를 잃고 딸아이와 둘이 살고 있던 나가미네는 예쁘고 밝게 자라 주던 딸 에마를 하루아침에 잃고 맙니다. 그것도 악질적인 성폭행을 일삼는 일당에게 말입니다. 차라리 에마가 사고로 죽음을 당한것으로만 알았다면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비통함이 덜했겠지요. 성폭행을 위한 여자사냥을 나섰던 일행중 가이지의 보복이 두려워 끌려다니던 마코토가 양심의 가책내지 책임을 덜하기위해 나가미네에게 제보를 함으로써 나가미네는 딸이 어떤 악행에 의해 죽음에가지 이르렀는지 알게 됩니다. 에마를 성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두 사람중 야쓰이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난 후 또다른 주체 가해자인 가이지를 찾아 나섭니다.


피해자의 한恨 이 작품에서는 크게 네 가지의 시각을 가집니다. 우선 첫 번째로 처참하게 유린당한 딸을 잃고 복수하려는 아버지 나가미네입니다. 충격적인 분노에 야쓰이를 우발적으로 죽이지만 야쓰이를 죽인 것에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죽여버린 것에 후회를 합니다. 극단적인 복수가 낳는 것은 자기자신까지 파괴한다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가이지를 죽이고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겠다고 합니다. 에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전지적 작가시점을 따라 본 독자역시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나가미네의 심정에 쉽게 동화됩니다. 실제로 내 가족이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참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다 가해자가 단지 미성년이란 이유만으로(국내 경우 미성년이 아니더라도 성범죄에 대해 여전히 가벼운 처벌을 받는게 현실임을 감안할때) 가벼운 처벌로 그친다는 것을 안다면 어떨까요. 다른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유일한 가족을 잃었을 경우에 말입니다. 


소년범죄의 양가적인 양면의 날 일반 범죄자도 그렇지만 미성년자의 범죄일 경우 죄를 짓고 새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경우 편견적인 사회적 시선에 갇혀 상처받는 경우를 생각합니다. 당장 내 앞에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라며 등장한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지를 떠나서 특정한 대상이 아닌 막연히 생각할때 먼저 사회에서 고립되는 이에 대한 동정이 묻어납니다. 그런 경우를 소재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종종 쉽게 접할 수 있기도 하구요. 그런데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죄질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요. 마코토의 경우 가이지와 야쓰이와는 달리 어쨌든 가족의 울타리안에 있었던 탓인지 패악스러운 면이 덜하지만 어울릴 친구가 없어서, 보복이 두려워서라는 이유로 가이지와 야쓰이에게 끌려 다니며 끝까지 비겁함 뒤에 숨습니다.


이기적인 부모의 사랑 피해자가 누군가의 자식이듯이 가해자도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부모에게 버려지다시피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문제에 빠지는 이도 있지만 때론 부모의 모자란 관심과 방조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쓰이와 가이지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야쓰이와 가이지, 그리고 마코토의 부모 모두 자식을 옹호하고 보호하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먼저 자식에게 잘못에 대해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경찰에 잡혀서 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씁니다. 잘못을 한 소년이 잘못을 뉘우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슬퍼서 울었다는 것처럼 자식에게 제대로 된 사랑과 가르침을 주지 못한 자신들에 대한 방어제로 자식의 죄를 먼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죄를 지은 편에서 오히려 피해자를 압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도 합니다. 영화 <한공주>의 경우 피해자의 부모들은 공주에게 합의를 강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범죄의 경우 세상에 알려질때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의 딜레마 아직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형사 오리베를 통해 수사를 하는 과정중에 피해자와 피의자에 대한 불합리함을 되돌아봅니다. 나가미네가 야쓰이를 죽임으로써 수사는 에마의 성폭행 살인범을 쫓는 것에서 야쓰이의 살인범인 나가미네를 쫓는 것으로 변합니다. 가이지가 붙잡힌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처벌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형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법이 정한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법이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통제시스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예외로 두는 무관심한 사회적인 책임 더 많은 피해자와 성폭행 비디오가 있고 또다른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자 누군가 언론에 정보를 빼돌리고 미디어는 이 사건과 사건의 관계자들을 유흥의 먹이감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은 가십거리를 원하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든말든 아랑곳하지 않은채 우선적으로 소문의 부스러기에 열광합니다. 흔히 찌라시라 일컫는 수많은 연예인의 X파일들 역시 확인된 바 없이 궁금증과 관음증, 내가 남보다 더 알고 있다는 우월감에 일파만파 퍼져갑니다. 사회적으로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에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소문과 이야기거리로 소모되는 과정에서 고통받습니다. 나가미네 역시 에미를 잃고나서 자신 역시 무관심함으로 그런 사회적 문제를 외면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이지가 과연 어디에 숨어있는지, 나가미네는 무사히 복수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나가미네의 복수를 응원할 수만도 없고, 가이지가 무사히 경찰의 손에 잡히는 것은 더더욱 바래지지 않습니다. 방송에서의 시민들 인터뷰처럼 나가미네가 법의 심판에 범인의 처벌을 맡겨야 한다는 제3자의 마음이 아니라 법의 부당함앞에서 나가미네의 무사함을 바라는 마음이 커집니다. 하지만 가이지의 처벌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가미네가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 아버지를 도와 펜션을 운영하는 와카코를 만나 도움을 받자 실날같은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나가미네의 복수를 떠나 그의 삶에 대한 구원에 대한 바람입니다.


「방황하는 칼날」을 볼 생각이 들었던 건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이어「용의자 X의 헌신」, 「몽환화」들을 읽고 난 후 그의 작품이 흥미위주이거나 신랄한 글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라는 믿음에서였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방황하는 칼날」에서도 사회적인 문제를 단순히 흥미로운 하나의 사건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쉽사리 간과할 수 없는 일에 우리가 저마다 사회적인 구성원으로써 얽혀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의 가족을 통해서 가해자역시 누군가로부터 소중한 존재임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디테일함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둘러싸고 우리가 생각할 바를 안겨줍니다.「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한국의 여건과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분노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에 머무르지않고  법에 대해 무엇을 바래야할지 우리가 개선해야 될 점이 무엇인지 생각을 던져줍니다. 사건과 처벌에 대한 방관과 관음으로 인해 제 2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2***s 2014.08.13.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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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의 복수에 동의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의 복수에 동의할 수 있는가?" 내용보기
<비밀>, <용의자 X의 헌신> 등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현실. 이들의 계속되는 범죄와 이에 따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 작가는 소년범죄의 심각성이 불러일으키는 불가피한 결과를 사회문제의 측면으로 끌어내 이야기하고 있다.몇 년 전에 아내를 잃고 외동딸인 에마와 둘이 사는 나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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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용의자 X의 헌신> 등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현실. 이들의 계속되는 범죄와 이에 따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 작가는 소년범죄의 심각성이 불러일으키는 불가피한 결과를 사회문제의 측면으로 끌어내 이야기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아내를 잃고 외동딸인 에마와 둘이 사는 나가미네. 그런테 친구와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 간 딸이 집에 오지 않는다.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딸의 처참한 시체. 성폭행을 당한 후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범인의 집에서 범인이 찍어놓은 성폭행 당시의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그때 범인 중 한 명이 들어오고, 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범인을 살해한다. 그리고 나머지 범인을 찾기 위해 끝없는 방황의 길로 접어든다. 이때부터 나가미네는 피해자 가족이 아닌 용의자가 되고, 경찰은 도망친 또 다른 범인을 쫓고 있는 그를 막기 위해 지명수배령을 내리는데….
작가는 소년범죄에 대한 다양한 세상의 시선을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드러내고 빠른 전개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사람들이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법이란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

게다가 범인을 체포하고 격리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죄를 저질러도 보복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작가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형사반장 히사쓰카와 오리베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이제껏 아무 의심 없이 정의의 칼날이라 믿어온 '법'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딸을 잃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나가미네, 도주하는 성폭행범, 이들을 추적하는 형사들, 성폭행범의 친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여자, 나가미네에게 범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수께끼의 남자,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의 아버지가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들과 더불어 『방황하는 칼날』을 읽으며 독자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세상’이다.

나가미네의 복수에 내심 동조하면서도 ‘심정은 이해하나 경찰에 맡겨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세상. 자기의 생활만 보장되면 다른 사람의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세상. 나가미네는 자신도 딸을 잃기 전까지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른 사람의 일에는 무관심한 세상의 일부였음을 고백한다. “왜 그런 녀석들이 태어나고 방치된 것일까? 세상은 왜 그런 녀석들이 일을 벌이도록 놓아둔 것일까? 아니, 놓아둔 것이 아니다. 다만 무관심할 따름이다. ……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기 역시 세상을 이렇게 만든 공범자라는 사실을. 공범자에게는 죗값을 치러야 할 책임이 똑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에 선택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러한 세상을 만든 또 하나의 공범자로 ‘법’을 지목한다. 사람들이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법이란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 게다가 범인을 체포하고 격리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죄를 저질러도 보복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형사반장 히사쓰카와 오리베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이제껏 아무 의심 없이 정의의 칼날이라 믿어온 ‘법’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8 2011.12.22.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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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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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를 통해 딸이 성폭행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 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치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다. '방황하는 칼날'은 히기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2008년에 나온 책이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다시 주목을 받게 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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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를 통해 딸이 성폭행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 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치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다. '방황하는 칼날'은 히기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2008년에 나온 책이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다시 주목을 받게 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허나 사람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사람은 살아야 옳은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솔직히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약한 어린이나 여성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무거운 중형이 내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내를 여의고 홀로 딸을 키우는 평범한 직장인 나가미네 시게키에게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들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딸 에마를 위해 장만해 준 유카타... 옷 입기가 까다로워 에마는 도와 줄 친구와 만나러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다. 아버지 나가미네의 바람과는 달리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 온 딸... 에마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를 타게 되자 누군가 나가미네에게 연락을 해온다.

 

세 명의 청소년이 있다. 아쓰야, 가이지, 마코토... 아버지의 차를 몰래 가져 온 마코토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지만 마고토의 마음은 자신들이 납치한 소녀에게 가 있다. 야쓰야, 가이지가 에마를 약에 취하게 한 후 성폭행을 하고 사고로 죽게 만든다.

 

딸을 잃은 슬픔에 분노하고 있을 때 아쓰야, 가이지가 범인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 나가미네... 그는 아쓰야의 집에 들어가 정보제공자가 알려준 비디오를 보게 된다. 비디오 속 딸의 모습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야쓰야를 죽이고 마는 나가미네... 그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증거물품을 남기고 가이지를 잡기 위해 나선다.

 

죽은 아쓰야의 집에서 발견된 비디오테이프는 경찰들을 정신적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아직은 어린 청소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너무나 흉악하고 질이 나쁘다. 가이지를 죽일 수 있게 나가미네를 잡고 싶지 않은 경찰도 있지만 비록 보호해 줄 가치가 없는 놈이라 고해도 경찰이란 신분 때문에 나가미네를 잡을 수밖에 없다.

 

나가미네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나가미네가 하려는 행동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높다. 여기에 아버지의 차를 가지고 아쓰야, 가이지와 함께했던 마코토와 그의 아버지는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자는 마코토를 찾아오고...

 

아쓰야, 가이지가 아직 열여덟 살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적용이 너무나 가볍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그들이 가벼운 죗값을 치루고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 어떤 모습일지... 악한 마음이 한가득 들어 있는 그들이 과연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죄는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딸이 살아가는 존재 이유가 되었던 나가미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가이지를 죽인 다음에 그는 어떤 선택을 할지... 솔직히 자수가 아닌 더 나쁜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가미네를 도와 준 여관 집 여인 와카코의 복잡한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나였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분명 소설임에도 감정이입이 너무 되다보니 이런 청소년들은 아예 사회에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엄중한 법 적용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죄에 대한 반성이나 죄의식 없이 너무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분노하고 아프고 화가 난다.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는 법... 허나 그 법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요 근래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사건을 보면 알 수 있고 굳이 이런 청소년에게까지 평등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솔직히 나가미네가 복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책을 덮은 지금도 마음이 복잡하다.



q******5 2014.03.27. 신고 공감 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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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에 칼과 총을 들이댄 사회파추리소설!
"소년법에 칼과 총을 들이댄 사회파추리소설!" 내용보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소재로는 낯선 장르이다. 리얼리티가 부각된 작품이랄까. <백야행>의 묵직함도 있지만 <호숫가 살인사건>에서 다룬 것처럼 사회 부조리를 파고든다. 그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사회파 추리소설. 소설적 재미보다는 일본의 소년법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작품.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도 비슷한 소재였는데, 두 책을 비교해 보는 것도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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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소재로는 낯선 장르이다. 리얼리티가 부각된 작품이랄까. <백야행>의 묵직함도 있지만 호숫가 살인사건>에서 다룬 것처럼 사회 부조리를 파고든다. 그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사회파 추리소설. 소설적 재미보다는 일본의 소년법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작품.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도 비슷한 소재였는데, 두 책을 비교해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이다. 일본 소년법이 문제가 많긴 많나보다. 이렇게 많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이니.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상황. 미성년자의 범죄, 그리고 법의 심판이 아닌 사적인 복수를 다룬 영화들은 많이 있었다. 법정스릴러의 대가인 존 그리샴의 원작을 바탕으로 1996년에 개봉된 <타임 투 킬>이 그 대표적일 것이다. 이 작품은 <방황하는 칼날>보다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다. 총이 난무하고 피가 낭자하며, 인종문제까지 들고나온다. 게다가 변호사 출신 작가답게 법정과 법전이 등장한다. 하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경찰의 사명과 법 사이에서 고뇌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경찰과 매스컴에 자신의 범죄사실과 살인 예고를 알릴 만큼 착하고 유약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방황하는 칼날>은 내게 중의적으로 다가왔다. 그건 딸의 복수를 위해 칼과 총을 잡은 아버지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정의의 칼'이라고 여겨졌던 법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마구 흔들리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그런 면에서 '방황하는'이기보다는 '흔들리는'이나 떠도는'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한 게 아닐까.

  

2004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200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출연했으며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남자 다케노우치 유타카가 형사 역을 맡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한오치>에서 인자하고 편안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테라오 아키라가 아버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추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런 핫한 소재와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만든 연출력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다시 한번 영화만큼은 한국이 일본을 몇 발짝 앞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회파 추리소설도 자신의 방식대로 참 잘 쓰는구나,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심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동안 그에게는 작품성보다는 대중성에 더 방점이 찍힌 게 사실이다. 독자들도 그걸 원하고. 하지만 가끔 이런 이슈들을 들고 나와야 그의 진가가 더욱 상승할 것이다.

 

오히려 법은 범죄자들을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뺏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뺏기지 않았다. 더구나 미성년자인 경우, 어쩌면 교도소에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

올해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도가니>의 열풍을 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그중에서도 사회파 추리소설을 많이 떠올렸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설이 많이 필요하다. 부조리에 대한 천착과 문제 제기, 비상식에 대한 외침,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저항의식. 2009년 온 국민을 분노에 차게 만들었던 나영이 사건이나 아버지가 딸을 수년간 성노리개로 삼았던 믿지 못할 실화, 한 마을의 주민이 정신지체아 소녀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 고등학생들이 한 여중생을 윤간한 사건 등 우리 주변에는 약자에게 행해진 가혹한 형벌이 많이 있다.

 

기사나 보도에서 그치지 않고, 분노로 머물지 않고 바꿔야 한다. 그래서 소설가에게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시각과 의식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펜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이게 소설이라는 대중적인 장르와 결합해서 목소리를 내야한다. 더 깊게 들어가 이런 사건이 발생한 근본 원인에서부터 인간 심리까지 파헤치고 또 파헤쳐야 한다.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과 홀로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숨기려 하지 말고 수면으로 올라오게해서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용기 있는 소설가를 만나는 상상을 했다.

 

어디 이런 작가 없을까?

 

세상을 바꿀!

 

d********1 2014.09.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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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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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가 남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그 이름은 여자일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꽤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게 되고 그걸 깨뜨린다는게 사실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주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온 세권중 두권이 일본작가 작품이었다. 그리고 또 우연찮게도 그 두권이 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미성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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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가 남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그 이름은 여자일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꽤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게 되고 그걸 깨뜨린다는게 사실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주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온 세권중 두권이 일본작가 작품이었다. 그리고 또 우연찮게도 그 두권이 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미성년자의 범죄라는... 오늘 아침에 포털 사이트에서 본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요즘 10대들에게 있어서 '강간은 하나의 경력'이라고 적혀 있던 기사였는지 클릭을 하지 않아서 전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 추측컨데 제목 그대로가 기사이지 싶다.성관념의 부재라고 해야하나 시대상의 재해석이라고 해야하나. 너무 문란해져 버린 세상에서 나는 어느 기준에 나를 맞추고 살아가야 하며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나가미네. 그에게 하나뿐인 딸이 강간을 당하고 죽는다. 알고보니 십대들에게 당한것이었는데 우연히 찾아간 곳에서 딸의 장면을 녹화해 둔것을 보고 울분에 처한 그. 그때 마침 집주인이자 딸에게 그런 짓을 한 십대중의 한명을 무참히 죽이고 다른 공범을 찾아서 떠나게 된다. 경찰들은 딸의 강간범을 찾는 팀과 이제는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를 찾는 팀, 2개로 나누어서 일을 진행하는데 마지막에 서로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게 된다. 나가미네는 그의 딸을 죽인 십대를 향해서 또 경찰은 그 십대를 보호하기 위해 나가미네를 향해서 그리고 한쪽 구석에 몰린 십대 소년. 나가미네가 그 소년을 죽이면 두사람의 살인범으로 잡히게 된다. 그렇다고 아직 살인범으로 몰기에는 증거가 미약한 십대소년을 그대로 놓아둘수도 없다.

경찰은 나름대로 어려운 선택을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뜻하지 않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랬다면 어땠을가. 만약 저랬다면 어땠을까. 각각 개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에 끼여든 나가미네의 도주를 도와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마지막 아주 절정인 순간에 기어든 그 여자를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나가미네는 목숨을 걸고서 딸의 살인범을 잡으려고 했던 건데 저 소년을 죽이지 않아서 그 자신은 죽던가 또는 잡히던가 둘중에 하나인데 그 여자로 인해서 책이 비극적으로 끝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물론 그 여자는 나가미네를 돕고 싶었던 거였겠지만 결론은 최악이었다.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실제상황이었다면 그 여자는 아마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잘못하는 십대들을 또는 다른 사람들 무조건 내가 나가서 죽여 없애야 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지만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살아야지 내가 안전하겠구나 라는 생각은 항상 한다.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나이 든 사람도 나이 들지 않은 사람도 전부 사람이 무섭다.
b***8 2010.10.1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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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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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의 두께를 가늠하며 살포시 책 표지를 한번 쓰다듬는것에서부터 시작해 읽기 시작한 책-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읽혀 내려가는 책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시작부터 걱정했던 두께였는데... 지금 이렇게 나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방과후>책으로 처음 이 작가를 만났었는데, 그 이후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을 읽어보노라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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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의 두께를 가늠하며 살포시 책 표지를 한번 쓰다듬는것에서부터 시작해 읽기 시작한 책-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읽혀 내려가는 책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시작부터 걱정했던 두께였는데...

지금 이렇게 나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방과후>책으로 처음 이 작가를 만났었는데, 그 이후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을 읽어보노라고 생각만 했던 내가 저자의 이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어제 오늘만 해도 대구에서는 집단 초등학생 성폭행이 뉴스에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 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사회는 점점 더 황폐해져가는것만 같다. 저자는 이같은 사회에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소년범'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아내를 잃은지 얼마 안 된 나가미네씨- 그에게는 에마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불꽃놀이가 있던 날 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에마는 청소년 2명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죽게 된다.

그리고 그 청소년들이 에마를 폭행하고 찍은 비디오테잎을 눈앞에서 보게 되고, 그 가해자 중 한명을 그 자리에서 칼로 난도질해 잔인하게 죽게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 가해자 가이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청소년이라는 이름만으로 살인을 저질렀어도 '소년법'이란 법으로 심한 처벌은 가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제껏 아무런 의심없이 법의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말을 하지만, 진정한 그 법이란것이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상처받게 만들고 있는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았던 책이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려가고 싶었던, 쉬게 만들지 않는 책이었다.

재밌었다^^

 

 

별안간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단지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사람은 커다란 기계에 있는 하나의 톱니바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기계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t****6 2008.05.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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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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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고 외동딸과 둘이 사는 나가미네. 목숨보다 더 소중한 딸이 성폭행 당한 후 끔찍하게 살해 당한다. 딸 에마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살아도 살아 있는게 아닌 나가미네. 그러던중 뜻밖에 가해자를 알게 되고, 그들의 아지트에서 나가미네는 범죄자들에게 유린당해 죽어간 딸아이를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되고 마침 들어오던 가해자인 아쓰야를 부엌칼로 살해한다. 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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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고 외동딸과 둘이 사는 나가미네. 목숨보다 더 소중한 딸이 성폭행 당한 후 끔찍하게 살해 당한다. 딸 에마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살아도 살아 있는게 아닌 나가미네. 그러던중 뜻밖에 가해자를 알게 되고, 그들의 아지트에서 나가미네는 범죄자들에게 유린당해 죽어간 딸아이를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되고 마침 들어오던 가해자인 아쓰야를 부엌칼로 살해한다. 그 이후 나가미네는 오직  딸의 복수를 하고 딸의 곁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나머지 가해자인 가이지를 찾아 나선다.

 한편 경찰은 가해자중 아쓰야가 살해된 걸 발견하고 범인이 나가미네임을 확인한 후 여러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인 동시에 나가미네로부터 살해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가이지를 찾나선다. 제보가 들어왔고, 가이지를 향해 나이미네의 총구가 겨눠졌을 때 총소리가 난다. 경찰의 가이지를 보호하기 위해 나가미네에게 발포 된 총소리…….

 그렇게 나가미네는 딸 에마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아쓰야를 충동적으로 죽인 가해자로서의 처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한다. 나가미네가 범죄를 저지른 단 하나의 이유는 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가벼운 처벌로 끝나기 때문이다. 본인의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 복수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오히려 법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이 범죄자들에게 형벌이라 할 수 있을까?"

 가슴 아프지만 어쨌든 소중한 내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부모로서 돌아올 수 없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과연 용서일까?

 이런 사회 문제 중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피해자의 고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피해자의 고통은 어떤것보다도 반드시 선행되어야하고 꼭 해결되어야 하면서 꼭 중요시 되어야만 될 사회문제이다.!
 
 문제는 갱생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깝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도움이 무색하다 못 해 특별히 격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발전가능성이 충분한 아이들을 평가한다는 자체가 잘못되긴 하지만 그 중간의 법이 있어서 여기에도 저기에도 적용되어, 갱생과 격리를 해야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현재 미성년자는 촉법 소년법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 형사 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범죄 행위를 하였어도 처벌을 받지 않으며 보호 처분의 대상이 된다.) 으로 보호 처분 대상이 된다.

m*****8 2024.09.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