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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함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버릴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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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비굴함, 약자의 비굴함.결국 그 둘은 닮은 꼴이다. 비굴함은 자신을 합리화하는,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는 가장 잘 들어맞는 도구이기도 하다.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주인공이건, 조연이건, 아님 방관자로서건 아무렇지 않게 표정짓지만 그 무대 위에서 우린 각자의 대본에 열중할 뿐임을 자각하지는 못하며 살아가고 있나보다.   기성세대는 실감하기 어려운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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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자의 비굴함, 약자의 비굴함.결국 그 둘은 닮은 꼴이다. 비굴함은 자신을 합리화하는,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는 가장 잘 들어맞는 도구이기도 하다.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주인공이건, 조연이건, 아님 방관자로서건 아무렇지 않게 표정짓지만 그 무대 위에서 우린 각자의 대본에 열중할 뿐임을 자각하지는 못하며 살아가고 있나보다. 

 기성세대는 실감하기 어려운 일들이 십대들의 공간에선 너무 빈번하게 일상처럼, 대물림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의 반복되고 소리없이 진행되는 이 게임은, 이 지독한 장난은 진정 게임으로 끝났으면 싶다. 이 게임을 자의든 타의든 즐기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함께 풀어나갈 수만 있다면 싶었다.

 개인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의 풍속도가 그대로 직 하강하여 조화롭게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의 장이 오히려 조화를 거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내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강자들 스스로 변화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해 움직여 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것일까.

 개인에게 부족한 것들은 메워나가면 되었다. 남과 다름은 그것대로 멋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획일화된 규정에 못 미친다고 하여 비굴할 필요도 없어야만 한다. 강자의 비굴함은 인류 역사를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는 일들이었고 그 안에서 당당할 수 있는 한 개인이면 되는 거였다.

 이쯤에서 난 우리 안에 버젓하게 자리잡고 있는 비굴함을 털어낼 때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 필수품으로 가득 내 안에 채울 '안보이는 힘'을 생각한다.

그건 사랑이다. 그 어떤 기형적인 것들도 이 사랑이란 말 안에서는 녹아내릴 수 있으니까. 순간 얼어붙은 작은 분노들도 얼어붙지 않게 온기를 건네주니까.내가 만든 바굴함도 결국은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내가 허물어버릴 수 있음을 기억하면 되었다.  

  

i******i 2010.06.3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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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내몰린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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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내몰린 우리 아이들       힘을 가진자는 그 힘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약자에게 '지독한 장난'을 가한다. 그 권력에 기생하여 동조하는 무리도 생겨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우방에게 뒷통수를 맞기도 한다. 작지만 반란과 폭동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하지만 용서와 화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방의 약점을 하나 잡으면 하이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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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내몰린 우리 아이들

 

 

 

힘을 가진자는 그 힘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약자에게 '지독한 장난'을 가한다. 그 권력에 기생하여 동조하는 무리도 생겨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우방에게 뒷통수를 맞기도 한다. 작지만 반란과 폭동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하지만 용서와 화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방의 약점을 하나 잡으면 하이에나 처럼 물고 늘어지기에 바쁜 약육강식의 세계가 계속된다. 무엇을 보고 하는 얘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기전 국제사회의 팽팽한 긴장을 말하는 것인지 2차 세계대전 같은 큰 전장의 모습을 그린 것인지 그렇게들 생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건 우리 아이들이 매일같이 다니는 학교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왕따'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는 우선 이 왕따란 단어부터가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가 이젠 보편화되어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오르게 된 유래는 약 10년전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그동안 집단 따돌림을 의미하던 일본어 '이지메' 대신에 언론에서 애들이 흔히 쓰던말을 차용하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대중적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러한 현상이 계속적으로 지속되었으니 이 말은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일테고
그러한 사실이 상당히 씁쓸하기만 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그 명칭이 '왕따'가 아니었을 뿐이지 그와 유사한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가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집단이 가하는 폭력은 그것이 폭력이라고 인지를 못하는데 그 위험성이 있다.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따라 하는거지란 그 심리 말이다. 그일로 우리는 당시 호랑이 선생님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담임 선생님에게 혹독한 단체 기합과 허벅지에 피멍이 들만큼 사랑의 매인지 구타인지를 당하며 그 죄값을 치루었다. 대학생이 되어 시내에서 어느덧 처녀티가 나는 그 애를 우연히 만났을때 유난히 반가워하며 손수 근사한 식당으로 데리고가 비싼 음식을 사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초등학교때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를 하는데 순간 뜨끔했지만 이렇게 밝게 어른이 된 모습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어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왕따'는 우리때의 그거랑은 그 수위라든지 방법면에서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뀔 세월이 흘렀으니 그도 그럴법하다. 아무래도 폭력적인 매체에 쉽게 노출이 되다보니 실로 악질적이고 잔인해 보이기까지 할만큼 변모한듯 하다.

 


이 책에는 한명이 여학생과 세명의 남학생이 주된 스토리 라인을 엮어나가고 있다. 우선 혜진이라는 첫번째 왕따의 피해자인 여학생은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며 믿음도 신실한 그런 모범생이다. 단지 존경하는 인물을 예수님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그 배후에는 혜진이에게 질투심을 느껴오던 은영이란 여학생이 있었고 그런 은영이를 좋아하는 그 학교의 소위 말하는 '짱'인 강민이 있었다. 그런 강민의 사주를 받은 준서가 그 총대를 메고 혜진이를 괴롭히는데 앞장선다. 강민이라는 강한 존재를 항상 갈망하며 그 권력에 빌붙고자 하는 인물이 준서이다. 하지만 혜진이의 상황대처법은 꽤나 성숙했었고 그 모든것이 무대위의 조명이 꺼지면 끝이날 한 편의 연극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불의에맞서 나간다.

 


이쯤되면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괴롭히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 강한 집단은 새로운 장난거리를 찾기에 몰두한다. 말이 장난이지 그건 이 책의 제목처럼 '지독한 장난'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키작은 준서를 지목하게 되었다. 토사구팽 이라고 했던가. 졸지에 강민의 꼬봉역을 자처했던 준서가 이젠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한번씩 제동은 걸지만 방관을 할것인지 동조를 할것인지 개혁을 할것인지 항상 갈등하는 성원이란 학생이 있다. 성원은 강민이란 그런 강한 존재의 약점을 유일하게 알고있는 존재이다. 강민또한 발육이 남다르기 전에 준서와 같은 작은 몸집으로 불량배들의 장난거리였었다는 과거를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침없는 강민의 폭주는 그런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로 추정된다.

 


이 세명의 소년은 공통적으로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레슬링을 보는 방식은 저마다 다 다르다. 불의에 맞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며 정정 당당한 승부를 즐기는 케릭터를 동경하며 닮고 싶어하는 것이 준서의 방식이며,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결과적으로 챔피언만이 살아남는다는 시각으로 강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강민의 방식이고 선과 악을 두루 넘나들지만 근본적으로는 선이 악을 눌러주기를 희망하며 갈등하는 건 성원의 방식이다.

 


이러한 레슬링을 보는 시각이 '왕따'란 현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같아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혜진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녀가 그랬듯이 당당히 맞서는 길을 선택하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 작지만 '꿈틀'하며 행동을 취하는 준서로 거듭나며 끝을맺는다. 수많은 숙제를 남기고서 말이다.

 


저렇게 아이들은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현실도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와 학교와 어른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책 속에서도 부모님이나 학교나 '칼'이라 불리우던 선생님조차 근본적인 피해 방지 대책은 찾지 못한채 발등에 놓인 불을 끄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제 심각성을 주지했으면 사회와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인것 같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내야 할것이다.

 


책을 보는 내내 명치 쪽이 꽉 막힌 답답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건 오늘 하루 두끼를 연달아 중국음식으로 떼워서 그랬던 이유만은 아닐것이다.   
 

 

 

 

 

 

t******4 2008.04.19.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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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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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 보면, 일본소설인것만 같은데, 저자는 우리나라 작가이다. 언제부터 '왕따'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일까. '왕따'란 굳이 학교생활에서뿐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해당된다. 집단생활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왕따' 그것은 현실에서 매우 심각한 일임에는 모두다 잘 알고 있다. 학교 왕따로 인해 많은 사건들이 보도된 적이 있었고, 아마 학교에 아직도 왕따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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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 보면, 일본소설인것만 같은데, 저자는 우리나라 작가이다.

언제부터 '왕따'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일까. '왕따'란 굳이 학교생활에서뿐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해당된다.

집단생활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왕따'

그것은 현실에서 매우 심각한 일임에는 모두다 잘 알고 있다. 학교 왕따로 인해 많은 사건들이 보도된 적이 있었고, 아마 학교에 아직도 왕따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아이들이 있을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학생시절때에도 심각할 정도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은근히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교 생활, 직장생활도 아닌 현재는 가정생활에서도 심리의 기본이 흔들리는 가족에 의한 왕따가 일어난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은 '왕따'라는 소재로 학교 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건으로 하고 있다.  한 교실에서 따돌림을 선동하고 있는 가장 힘이 센 강민이라는 아이와 따돌림을 받는 아이 준서.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겉돌기만 하는 방관자의 모습인 성원. 3명의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그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따돌림을 선동하고 있는 강민 조차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심리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준서는 강민의 지시에 따라 반의 혜진을 왕따시키면서 괴롭힌다. 마음속에서는 혜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고, 왕따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혜진의 모습에 존경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키가작고 나약한 준서는 강민의 말에 따른다.

하지만 어느날 왕따라는 타이틀이 혜진에게서 벗어나 강민의 마음에 따라 준서로 바뀌게 된다. '똥자루'라는 별명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는 준서.  강민도 따돌림을 선동하지만 자신도 키가 작고 힘이 없었을적,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모를 당했던 상처가 있다. 왕따의 가해자이지만 또한 피해자의 모습도 보여준다.

방관자의 모습으로 왕따를 시키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 관섭하지 않는 성원. 키가 작은 준서가 농구를 잘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 모습에서 성원은 이해가 할 수 없다고 한다. 장난감이 되지 않으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성원.

 

청소년들의 왕따에 대한 생각들을 잘 보여주는 책이었다. 또 세명의 주인공들 모두 레슬링이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면서 그들의 심리를 레슬링에 빗대어 보기도 한다.  '왕따'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책이었다..

 

 

" 어떤 꿈이건 꿈을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이루지 못해도?  내가 갖고 있는 꿈은 되게 어마어마하거든." 준서는 아빠에게는 살짝 가르쳐 줄 생각도 있다.

아빠는 준서 앞에 물 잔을 놓고 주전자를 높이 들어 물을 주르르 따라 주었다. 물은 하나도 안 튄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노력을 하잖아."

"나도 노력하고 있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야. 꿈은 클수록 좋지.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이 변하니까. 더 훌륭해지고 나면 자기가 이루려는 꿈은 못 이루더라도 소박한 다른 꿈을 이루기는 더 쉽지."

"응. 나도 그 꿈을 꼭 이루려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t****6 2008.04.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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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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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읽는 동안 참으로 맘이 무거웠답니다.. 진짜 이런일들이 학교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거..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이런 일들의 피해자가 될수있고,, 어쩜 방관자로써 가해자가 될수도있다는것에 놀라움을 그치못하겠다.. 울딸도 작년하반기쯤 왕따를 당한적이 있다.. 이유는 ' 없다' ...그래서 이책을 읽는동안 가슴이 더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단지 한명의 아이로 부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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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읽는 동안 참으로 맘이 무거웠답니다.. 진짜 이런일들이 학교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거..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이런 일들의 피해자가 될수있고,, 어쩜 방관자로써 가해자가 될수도있다는것에 놀라움을 그치못하겠다..

울딸도 작년하반기쯤 왕따를 당한적이 있다.. 이유는 ' 없다' ...그래서 이책을 읽는동안 가슴이 더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단지 한명의 아이로 부터 시작한 따돌림은 동조하는 아이들로 인해 더 힘들게 만든다는걸 알았다..

비웃음과 그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벌레처럼 점점 더 기어들어가고 작아지는 아이맘을 어찌 달래주어야하는지 어떤 대안도 없이 그대로 방치되어지는 아이.. 앞으로의 생활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하는지 많은 의문점들을 가지고

이책을 읽어나갔다..

 

강민은 단지 자신이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소히 말하는 짱이다.. 하지만 초등시절 똥자루라는 별명을 가질정도로

한때는 외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큰형들로 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이분분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상처를 다독이지못하면 모방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표출된다는걸 알수있었다..

강민의 꼬붕 준서... 준서는 혜진이라는 아이를 강민의 지시에 따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킨다.. 강민의 말이라면 뭐든지 하는 아이.. 준서.. 그는 외소한 체격으로 강민과 같은 무리속에 있을려고 무지 애를쓴다.. 결국엔 혜진이 다음으로 왕따를 당하고 마는 준서.. 어쩜 스스로 자처한 꼴이 되고 만다..어타깝게도 말이다..

강민과 친하면서 혜진을 따돌리도록 은근히 자극하는 아이 은영이도 한몫을 한다..

 

이책은 각자의 역활에 충실하다.. 대본없는 대본처럼.. 

여기서  이편도 될수없고 저편도 될수없는 아이들

일종의 방관자의 역활을 하는 성원과 지혜를 볼수있다..

이아이들이 조금만더 용기가 있으면 왕따가 없을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아이도 이아이들이 자기생각을 목소리(독백)한테 전하지 않고 직접 이야기를 한다면 왕따에서 벗어나지않을까 ??

하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그럼 왕따가 없어지는걸까??

 

참으로 무서운 장난이다.. 가해자는 재미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참으로 지독한 장난이다.. 가해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하지만 피해자는 죄는 없지만 죄인이다..

 

모든아이들을 내아이처럼 따뜻한시선으로 보아야겠다..오늘 작은아이가 입학을 하였다.. 선생님께서 "전 일년동안 아이들이 올바른 인성을 가질수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마디 하신다.. 그리고 곧 아이들을 공부쪽으로 너무 내몰지말라고 덧붙이신다..

사실 아이들은 너무 바쁘다,, 하늘 볼시간도 없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바삐살아간다..이들에게 따뜻하게 이야기해줄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이제 아이들에게 말할수있는 기회를 주고싶다..진정으로 이해하고 걱정하며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주어야겠다.

다시는 이런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l*******3 2008.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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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가 아이들을 황폐화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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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무 시루처럼 빽빽한 교실...재잘재잘 거리는 아이들 속에 내 아이도 끼어 있다. 시골 학교에선 학생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도시엔 미어터진다. 부모라면 모두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런저런 걱정이 끊일 날이 없다. 행여 성적이 뒤쳐질까 걱정, 친구관계 원만하지 못할까 걱정, 선생님한테 밑보일까봐 걱정... 나 또한 걱정이 많았긴 한데 되도록이면 학교일에 직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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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무 시루처럼 빽빽한 교실...재잘재잘 거리는 아이들 속에 내 아이도 끼어 있다.

시골 학교에선 학생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도시엔 미어터진다. 부모라면 모두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런저런 걱정이 끊일 날이 없다.

행여 성적이 뒤쳐질까 걱정, 친구관계 원만하지 못할까 걱정, 선생님한테 밑보일까봐 걱정...

나 또한 걱정이 많았긴 한데 되도록이면 학교일에 직접적으로 관여는 하지 않는다.

이번에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 다르게 고등학교는 대입수능 이란 걸 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서로가 마음에 부담이 생기지 싶다. 하지만 아들은 수능보다는 아직 친구가 좋고, 게임이 더 좋다~

아이들의 생활을 이해는 하면서도 걱정이 앞서기 때문에 잔소리가 나오고 다툼이 되고 그런건데 아이들의 입장에선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다보니 둘 사이엔 늘 사소한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이경화씨의 <지독한 장난>을 읽고 나니까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세대가 많이 변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우리들이 자랄때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아이들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우리 아이도 그럴까? 우리아이들도 학교 가서 왕따 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염려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폭력을 당하거나 왕따 당하는 아이들의 경우...

별 이유없이 당한다는 게 더 속터지는 노릇이다.

중요한 등장인물로 나오는 아이들 중

준서와 혜진은 직접 피해자..즉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의 경우다.

혜진의 경우엔 정말 억울한 경우이고 준서의 경우는 자신이 자처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꼭 강자에게 붙어야만 잘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주관껏 살아야 하는 것이지...

성원과 지혜의 경우는 방관자라 할 수 있다.

직접 왕따를 시키며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리는 것도 아닌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강민과 은영은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데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훌륭한 배경을 가졌지만 기대치에 못 따라서 늘 아들로써 대접을 못 받는 강민...

어긋나는 삶에는 늘 감싸고 도는 어머니가 있어서 더 어긋나게 한다.

어디서 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는 요즘 사회의 도덕성...

작년 아들이 다니는 학원에서도 학생이 수업중 욕을 해서 선생이 수업을 안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겁없이 만들고 있는지, 잔인하게 만들고 있는지...

입시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의 숨통을 쥐어 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입시가 다가 아닌데, 인생엔 늘 달려가야 할 일만 가득한데 좀 더 멀리 보고 지금 순간만이 내 삶이 아니란 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지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더 우선시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한국이란 사회를 더 밝게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s*****3 2008.02.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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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장난]-연극은 끝났다!
"[지독한 장난]-연극은 끝났다!" 내용보기
지난 달 왕따에 관한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 무서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었다. 사이버 스토킹을 통한 왕따 문제를 다룬 [못된 장난]과 왕따에게 폭력을 가하여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한 [도와줘, 제발]이 바로 문제의 그 책들이다. 두 권의 책 왕따의 심각성을 뼈져리게 느끼게 한 책으로, 피해자 모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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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왕따에 관한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 무서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었다. 사이버 스토킹을 통한 왕따 문제를 다룬 [못된 장난]과 왕따에게 폭력을 가하여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한 [도와줘, 제발]이 바로 문제의 그 책들이다. 두 권의 책 왕따의 심각성을 뼈져리게 느끼게 한 책으로, 피해자 모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지독한 장난] 책 제목만으로도 왕따에 관한 내용일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못된 장난]과 흡사한 제목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제목에 반기를 들고 싶다. ’장난’이라는 표현은 피해자가 받는 커다란 고통과 상처를 축소화시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두 권의 책은 왕따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다면 [지독한 장난]에서 왕따를 당하는 혜진과 준서를 왕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두 아이 모두 왕따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은 달라지만 그들은 용감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왕따에 대한 세 권의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들 모두 큰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폭력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한가지의 공통점은 주변 인물들이다. 왕따를 가하는 자에 대한 비난을 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는 자를 구하지 못하는 그들은 방관자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왕따의 대상이 내가 아닌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과 강한 자에게 동조하지 않았을 경우에 돌아올 비난이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왕따 문화이 존속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라는 세 부류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어른들 역시 방관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까운 문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독한 장난]은 등장 인물과 프로 레슬러들을 매치시키는 이야기의 풀이 방식이 독특한 책이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프로 레슬링은 교묘하게 반칙을 하는 자와 악한 행동을 담당하는 자 그리고 성실하게 게임을 운영하는 자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서 실감나는 연기로 통쾌한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프로 레슬러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자신과 매치시킨다. 

’미친 예수’로 통하는 혜진을 괴롭히는 일을 주도하는 강민, 강민처럼 강한 자와 친해지고 싶어 꼬봉 역할을 자처하는 준서, 혜진을 도와주고 싶지만 강민에게 대항한 용기를 갖지 못한 성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항상 꽂꽂하고 비굴해하지 않는 혜진, 강한 자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그들을 인정하는 눈치빠른 반장 지희.

왕따를 주도하고 있는 강민이지만, 한때 불량배들에게 착취와 폭력을 당했던 힘들었던 기억으로 인해 강민은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고, 그 분풀이를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서는 혜진을 괴롭히는 일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간혹 재미를 느끼곤 한다), 강민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꼬봉일을 자처하지만 결국 준서의 비굴함은 왕따의 대상이 혜진이 아닌 자신으로 바뀌면서 괴로워한다.
도도했던 왕따 혜진은 자신의 비굴했던 과거를 덮어줄 수 없었던 강민은 자신과 닮은 준서를 통해서 치유받고자 했던 것이다.

비로서 혜진의 고통을 알게 된 준서는 혜진에게 용서를 구하게 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견뎠는 줄 아니?"
"한판의 연극이다. 모두가 다 연극이야.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시간이 흐르면 배우는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어. 연극은 끝나게 되어 있다."
(본문 167p)

왕따였던 혜진은 방관자가 아닌 준서를 도와주는 편에 서게 되고, 강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성원은 혜진을 통해서 드디어 용기를 갖게 된다.

죽은 목숨이라면 죽어.
산목숨이라면 살아.
  
(본문 191p)

준서는 준서에게 쪽지를 보냈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강민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성원을 왕따시키기 위해 준서를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준서는 강민의 다시 꼬봉이 되려하지 않는다. "싫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준서는 강민에게 대항한다. 그저 강하고 재미있게만 살아보려던 강민은 자신이 점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종종 느꼈으나 멈추지 못했던 자신이 준서를 통해서 흔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준서는 이겨냈다. 비록 게임에서 졌지만 심판이 카우트다운을 세기 시작하자, 다시 일어난 것이다.

[지독한 장난]은 왕따의 문제점을 고발하기도 하지만, 왕따를 당하는 자에게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으며, 가해자에게는 반성할 줄 아는 용기를 주고 있다. 다른 책과 달리 책을 읽은 후에도 답답하거나 먹먹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따 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책 속에는 방관자로서의 어른들의 모습도 보여진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수 없게 벽을 쳐 놓은 어른들은 가장 무서운 방관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다. 또한 피해자와 가해자 스스로 자신을 이겨낼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 책은  지금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 깨달음으로 인해 어두운 내용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s*****2 2010.02.08.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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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바꿔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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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중학생 준서는 키가 작다. 강민은 힘이 센 반항아로 등장하고 준서는 키가 작지만 농구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농구를 많이 한다. 겉으로 보기엔 준서의 꿈이 농구 선수 같은데 준서의 꿈은 레슬링 선수이고 종하하는 레슬러는 빅마운틴이다. 준서는 강민에게 달라붙어 당당하게 산다. 강민과 준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자기반 혜진을 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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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중학생 준서는 키가 작다.


강민은 힘이 센 반항아로 등장하고 준서는 키가 작지만 농구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농구를 많이 한다. 겉으로 보기엔 준서의 꿈이 농구 선수 같은데 준서의 꿈은 레슬링 선수이고 종하하는 레슬러는 빅마운틴이다.


준서는 강민에게 달라붙어 당당하게 산다.


강민과 준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자기반 혜진을 괴롭힌다. 혜진의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장애인이다. 교통사고 때문에 그러는데 그래도 혜진은 엄마를 돕고 웃으면서 산다.


혜진이는 정말 용감하고 씩씩한 것 같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잘 대해준다.


어느날 아이들과 준서는 농구를 하다 준서가 너무 못하고 골을 넣지 못하자 강민이 준서를 무시하고 아이들을 이용해 준서를 왕따시켰다.


갑자기 강민이 그러니까 준서는 무척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도 날 것 같다.


강민은 친구가 키가 작고 골을 못 넣는다고 해서 왕따를 시키는 것은 너무 쪼잔한 것 같다. 친구가 골을 못 넣으면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준서는 혜진이의 마음을 대충 알았을 것이다.


지금 혜진이는 인기가 많다.


강민은 툭하면 준서를 때리고 쓰레기 봉투에 넣고 찬다. 또 준서가 가지고 있는 빅마운틴 사진을 친구를 이용해 찢도록 시킨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친구를 많이 사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a********g 2008.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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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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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될 수 있다?]       정말 끔찍하다. 끔찍하다....아이가 커 갈수록 교실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관심이 간다. 특히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걱정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 아이만 바르게 잘 키운다면...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아이를 키운 사람들은 어쩌면 그 안이한 틀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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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될 수 있다?]

 

 

 

정말 끔찍하다. 끔찍하다....아이가 커 갈수록 교실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관심이 간다. 특히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걱정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 아이만 바르게 잘 키운다면...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아이를 키운 사람들은 어쩌면 그 안이한 틀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아이들 세계에서는 참으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4학년인 딸아이가 작년에 왕따에 대한 경험을 했기에 이런 글이 예사롭지 않다. 반에서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중심에 있는 아이(모든 어른들의 눈에는 최고의 모범생인 아이였다)로 부터 미움을 받고 모든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우리 딸은 모든 아이에게 대하듯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 모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방학할 무렵에 일어난 일이라서 심각하지 않게 마무리 되었지만 솔직히 교실에서 벌어진 왕따 문제의 심각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공부도 잘 하고 모범적인 아이라고 해서 왕따의 가해자가 되라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제대로 되지 못한 선생들은 이런 아이들을 늘 열외로 놓기도 하기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독한 장난> 제목만으로도 온몸에 싸한 기운이 느껴진다. 왕따의 가해자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한결같이 하는 말이 "그냥 장난친 거에요"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왕따의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장난을 친 것뿐이고 모든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즐기거나 무관심하게 바라보면서 은연중에 방관자가 되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도 혜진은 말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그 중심에는 아이들의 우상처럼 보이는 강민이 있고 강민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던 준서는 혜진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된다. 그리고 이런 친구들의 관계를 방관하고 지켜보는 인물의 표본으로 성원이 등장한다. 이들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관계의 변형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은영은 어느순간에 피해자에서 벗어나고 가해자였던 준서는 강민으로 인해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강민 역시 과거에는 다른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미묘해진다.

 

이들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풀어갈 것인가 보다도 이 작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잠재한 무관심과 잠재된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왕따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방관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꾸물거리면서...

 

중학생 학부모 한 명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엄마만 모르고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아는데 이걸 말해줄 수 없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의 부모 역시 자신의 아이가 그럴리 없다고 믿지 않는게 현실이라고 한다. 부모에게 자식을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이들을 신뢰하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우리 아이는 아니야"라고 섣부르게 단정짓지 말라고 하더라. 내 아이가 어느 순간에 왕따를 당할 수도 있고 왕따를 시키는 지독한 장난을 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는게 현실이라면서..정말 섬뜩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아파하면서 읽은 작품이다. 어느 순간에 이렇게 변해버린걸까?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과연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옳은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c******u 2008.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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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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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가슴속에서 아우성치는 욕망들에 지쳐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걸려드는 목표물에 자신들의 욕망을 분출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부 잘하는 혜주가 존경하는 인물이 예수님이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일생을 살고 싶고 예수님과 꼭 닮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그만 혜주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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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가슴속에서 아우성치는 욕망들에 지쳐 뭔가 재미난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걸려드는 목표물에 자신들의 욕망을 분출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부 잘하는 혜주가 존경하는 인물이 예수님이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일생을 살고 싶고 예수님과 꼭 닮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그만 혜주의 별명은 미친 예수가 되어 버린다. 그런 혜주를 놀리고 소외시키는 근본 대상은 바로 여자 친구 은영이다. 그런 은영에게 맘을 둔 강민이는 혜주를 앞장서서 놀리고 그런 강민이란 친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준서는 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더란 말이 있다. 혜주에게 정말 미운 대상은 준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몸집이 작고 왜소한 준서가  단지 덩치 큰 강민이란 친구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쌍한 꼬붕 새끼로 보였을 것이다. 혜주의 행동과 말이 좋게 보이면서도 마음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는 준서는 정말 가엾다. 결국 자신이 혜주와 입장이 바뀌어 모든 반 아이들의 놀림이 되는 것도 사필규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코 강한 자 이지 못한 강민이는 비겁자이다. 자신이 겪었던 추한 모습을 상대방 아이들에게 똑 같이 겪게 하고 왕따를 시키는 가해자의 대장이다. 힘만 세면 최고라 생각하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겐 절대 덤비지 못하는 못난 놈이다. 아이들이 정말 자신을 좋아해서 따르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자신을 두려워하기에, 자신들이 왕따가 될까 봐 두려워하기에 강민이를 따르는 것뿐임을 그 자신도 분명 알 것이다.  왜 자기 자식을 그렇게도 모르는 지 강민이 엄마의 행동은 정말 강민이를 그렇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하다.


사춘기 아이들이 얼마나,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을까? 갈수록 심해지는, 결코 장난이 라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지나친 행동들 때문에 준서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져가는 지 그 아이들은 당해보지 않고 알 수 있을까.....

혜주의 용기 있는 부르짖음에 준서의 마음 속 올가미가 한층 풀려나고 그런 혜주에게  마음껏 응원을 하게 된다.

과연 진정한 용기란 무엇일까?  적절한 때 자신의 소신 있는 생각과 의지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성원이와 준서처럼 마음 속 소리에 자신 있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것이다.


왕따에서 벗어나는 길은 왕따가 바뀌는 것뿐임에도 이제 뒤늦게 용기 내어 싫다고 거절하는 준서에게 정말 힘껏 박수를 쳐 주었다. 산목숨이면 살아! 라고 자신에게 쓴 편지답게 준서는 멋지게 강민이를 대적했다. 자신을 거스른 성원이를 왕따로 지목하고 또 다시 꼬붕이 노릇을 하라는 강민이에게 멋지게 승리한다. 정말 용기있는 행동을 한 멋진 준서에게 힘껏, 정말 있는 힘껏 박수를 쳐 주었다.


미 프로 레슬러들의 과격한 경기와 그들이 내뱉는 험한 말처럼 아이들이 바름에서 일탈되어 갈까봐 무섭기만 하다.  어떻게든 과도한 반칙으로 승리를 거두는 결과와 정직하게 원칙대로 살아가는 삶의 결과가 비록 차이가 있을지라도 과정이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과 매스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 그런 사회 속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살았으면 한다.  아룰러  우리들의 아이들이 따돌림 받는 혜주나 준서에게 손 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아이들로 커나가길 정말 바라게 된다. 한편의 이야기이지만 정말 실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마치 내 생활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글을 쓴 작가의 능력에 놀랄 뿐이다.


아이들에게, 특히나 사춘기 아이들에게 단순한 따돌림이라도 그 영향은 그 영혼을 상처 나게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왕따가 되는 상대방이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한창 때의 마음 속 욕망과 여러 복합적 열정을 다른 곳으로 표출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겪게 되는 청소년 사춘기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지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s*****1 2008.1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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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아이들만의 지독한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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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아이들만의 지독한 장난]최 상철   왕따에 관한 책은 여럿 보았다. 정말 역겹다 싶을 정도로 왕따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한 글도 있었고, 정말 눈물 나올 정도로 아이들의 세계를 잘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지독한 장난 또한 현재 문제되고 있는 왕따를 논쟁점으로 다룬 이야기이다. 또한 가해자, 왕따, 언제든지 왕따가 될 수 있는 제삼자의 시각을 돌려가면서 보기 때문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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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아이들만의 지독한 장난]최 상철

 

왕따에 관한 책은 여럿 보았다. 정말 역겹다 싶을 정도로 왕따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한 글도 있었고, 정말 눈물 나올 정도로 아이들의 세계를 잘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지독한 장난 또한 현재 문제되고 있는 왕따를 논쟁점으로 다룬 이야기이다. 또한 가해자, 왕따, 언제든지 왕따가 될 수 있는 제삼자의 시각을 돌려가면서 보기 때문에 왕따의 모습이 어떠한지가 더욱 상세하다.

성원은 말한다. 지금의 왕따를 없애면 또 다른 왕따가 생길 뿐이라는 것을... 우리 학교에서도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 5학년때 같은 반이던 한 아이는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다가 갈수록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갔다. 그렇게 더러운 아이라는 평을 들으며 6학년에 올라갔을 때에도 처음에는 아이들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더럽고 지저분한 아이로 전락했다. 왕따는 자기 스스로 만든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도 왕따를 만들고 있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어느 순간 왕따가 되어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나는 내가 왕따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닌 언제든지 왕따가 될 수 있는 제삼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제삼자에 속하기 때문에 왕따에 대한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제삼자의 또다른 제삼자의 시각속에서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따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왕따는 다시 제삼자가 되어버리고 어느새 자신이 왕따가 되어버린다. 평소에는 무슨 행동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던 것이, 그것이 트집을 잡혀 어느새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왕따라는 말은 어쩌면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왕따란 말은 왕으로 따돌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왕따 중에서도 힘있는 아이들에게 밟히고선 더럽다며 침까지 맞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라면서도, 막상 왕따 곧 이지메는 일본의 어른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전파되고, 이 문화라 할 수 없는 문화가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어른들은 자기들 세대에서는 왕따 따위는 없다고들 한다.

"어유, 요즘 세상 무서워.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말야."

그것 또한 무책임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분명 자신이 무시했던,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 괴롭혔던 한 아이의 모습이 또렷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따는 단지 순환에 불과할 뿐이다. 어느날 나는 성원이와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왕따를 시키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왕따와 친구가 된다면? 그러면 왕따가 없어지겠지?"

그렇다면 가해자가 다시 왕따가 된다. 어느 방법을 써도 소용없다. 어느 곳에서나 모자라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그보다 힘있는 사람들의 장난감이 되어 무수히 짓밟혀야 한다. 밟지 않는자도 똑같다. 그들도 어느새 한패가 되어, 함께 왕따를 짓밟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레슬링에서도 그러하다. 작가가 등장시킨 챔피언 케리라는 인물은, 예술적인 반칙을 통해 챔피언 자리를 1년 이상 유지한다. 그리고 진정한 레슬러라 할 수 있는 빅마운틴은, 케리의 반칙을 이겨내지 못하고선 결국 케리의 엉덩이 밑에 얼굴을 깔리고선 소속사를 떠난다. 왕따나 이렇게 반칙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결코 왕따가 사라지는 날을 고대하지 않는다. 그런 날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이데아 또는 천국의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는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래도록 기다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 가장 크게 고통받는 사람만이라도 없애자는 노력을 말이다. 안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지구가 멈추는 날 키아누 리브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잔인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면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대하지 않으면서도 살짝 세계에 왕따란 것이 사라지면서 모두가 함께 지내는 날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정말 행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s****3 2008.1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