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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만들며 사는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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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현의 동화 소재는 언제나 소외된 자들이다. 조대현의 눈길은 언제나 소외된 자에 머물러 있다.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대개 사회주의적 사고 바탕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흔히 소외 계층에 속하는 인물을 작품으로 다루면 시쳇말로 진보니, 좌파니 평등이니 하는 이념적 용어로 평가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조대현의 작품은 소외 계층에 속한 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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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현의 동화 소재는 언제나 소외된 자들이다.

조대현의 눈길은 언제나 소외된 자에 머물러 있다.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대개 사회주의적 사고 바탕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흔히 소외 계층에 속하는 인물을 작품으로 다루면 시쳇말로 진보니, 좌파니 평등이니 하는 이념적 용어로 평가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조대현의 작품은 소외 계층에 속한 인물을 다루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으로 분류될 수가 없다. 거기에는 경제적 정치적 평등 문제나, 분배의 문제나 가진 자에 대한 대척적 적개심이나, 개혁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들을 이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대현의 눈길이 소외된 자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눈길은 그냥 긍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따뜻할 뿐이다. 그것은 다분히 종교적 인애(仁愛)라고 말해도 된다.

해피엔딩-.

적어도 이번의 단편집 <옥탑방 은지네>에 실린 8편의 이야기들은 한결 같이 해피엔딩이라고 분류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파란만장의 곡절 끝에 결국 행복한 마무리를 이루는 낭만이 넘치는 이야기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시골 넓은 집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복잡한 서울의 옥탑방에 살게 된 은지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시골로 되내려가서 살자고 엄마한테 떼를 쓴다. 그러다가 옥상에 정원을 가꾸고 사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자기 집이 있는 옥상에도 화분을 놓고 꽃과 식물을 가꾸면서 행복을 가꾸면서 살게 된다. (표제 단편 ‘옥탑방 은지네’)

섣달 그믐날, 지하철에서 동냥하며 살아가는 시각장애자가 찬바람 부는 늦은 저녁 귀가하는 길에 날치기꾼에게 그날 번 돈을 털린다. 그런데 그 날치기꾼이 그 돈 임자의 행색과 가진 것의 분량을 보면서 되돌려주고 간다. 그 시각장애자는 그것은 오히려 횡재로 여기고 자기의 돈이 아니라 하나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양로원에 기부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한 시각장애자의 생각을 아내도 아들도 기쁘게 동의한다.(‘하나님의 몫’)

그 외 나머지 여섯 편도 외국에서 건축 디자인 관련 박사 학위 가지고도 취직을 못해서 건축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삼촌(‘행복 설계사 삼촌’)처럼 행복을 창조하는 지혜로운 삶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이 모든 작품들이 행복 설계사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실직으로, 정신 지체자로, 낳은 아기를 버려야 할만큼 가난함으로, 농사짓고 살아야 하는 젊은이, 짜장면 한 그릇 값의 용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할아버지 등 고통과 외로움과 차별과 외면의 눈길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어려운 형편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런 사정을 오히려 행복으로 삼게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행복을 만들어가는 지혜와 행동(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그대로 행복감으로 감염되게 한다. 결국 어린 독자를 행복하게 하거나, 행복의 의미를 터득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미움이 사랑으로, 불행이 평화와 기쁨으로, 어려움이 가능성 있는 희망의 세월로 변화함을 보여 주는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k******e 2008.07.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