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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馬, 쇠를 녹여서 주물로 만든 말 : 기차 무수한 철마 중의 하나였던 나 비둘기호는 이 땅의 구속구석을 누비며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싣고 달렸다. 닳을 대로 닳아서 낡고 때 묻고 해진 시트, 거의 직각으로 고정된 불편하던 좌석, 삼등실 객차의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고향 이름을 적던 이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비둘기호란 기차를 탔었다. 경주 수학여행길 덜커덩 거리며 완행으로 경주에 갔던 기억들. 새벽 거리를 무서움과 설레임 반으로 부전역으로 걸어갔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기차의 유리창에 이름을 쓰며 수학여행을 갔었던 기억들이 지나고 나면 행복으로 가슴에서 피어 오른다. 저자는 이러한 옛 추억을 기차의 관점에서 설명을 하고, 또한 서민의 관점에서 아주 잘 묘사했다. 제목처럼 어른을 위한 동화에 꼭 들어맞는다. 점점 굳어가는 어른들의 마음을 어려웠던 옛날 일을 떠올리며 반성하게끔 만든다. “방금 너희들에게 나누어 준 이 책은 선생님 친구가 직접 쓰고 펴낸 동화책이야. 책값은 이번 주말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져오도록 해라! 이상!”이라고 하는 대목에선 없는 사람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 역시 그랬으니깐… 벽돌을 나르고 생기는 몇 십원의 돈과 나무 젓가락을 일일이 손으로 하나하나 넣고 인쇄해서 납품하던 초등학교 시절. 드문드문 택시가 오고 버스가 오고 정류장에서 형들이 오기만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 시절. 풀밭에서 나무 썰매를 타던 일. 돌 산에서 칼싸움을 하던 일. 이소룡처럼 쌍절곤을 만들고 돌리다 몸에 맞으면 비명을 지르던 일. 해가 저물고 밤 늦도록 하늘의 별을 보며 재잘거렸던 그 어려웠던 시절. 지금은 하늘을 볼 여유조차 없이 아무런 이유없이 경쟁에 내 몰려 앞으로만 달려가는 한 마리 철마가 된 모습이다. 똥통에서 인분을 퍼내는 그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 똥통을 어깨에 지고 나를 때 출렁이는 리듬을 잘 조정해서 땅바닥에 조금도 흘리지 않고 사뿐거리며 걸어가던 걸음걸이는 얼마나 신중하고 조신하였던가. 궤도 위에 대못을 올려 놓고, 기차가 지나가면 생기는 날카로운 칼이 되곤 했다. 숨바꼭질, 자치기, 비석차기 등 지금의 물질문명에선 찾아보기 힘든 자연 그대로의 놀이를 우린 즐겼고, 행복해 했었다. 물질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게 지냈던 시절이었다. 더 가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현재를 즐겁게 지냈던 것이 더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가지고 더 편안해 지기 위해 애쓰지만 돌아서면 허무할 뿐이다. 점점 경쟁사회에 내 몰리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인간다움을 느끼며 살게 할 수 있을까? 요즘 끊겨버린 철마의 기적소리는 내 가슴속에서만 메아리 치는 것 같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독백처럼 흐른다. 그 동안 나의 마음 한쪽 구석에 남몰래 감추어두었던 뭇 사람들에 대한 미움, 내가 만나고 헤어졌던 많은 사람들과 또 그들 가운데의 일부에게 내가 품었던 증오심이란 참으로 얼마나 덧없고 하찮은 것이었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화해와 용서라는 사실을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원래 울창하던 숲도 한번 산불이 나서 황폐해지면 복구의 긴 시간이 필요한 법. 어떤 증오와 환멸도 오랜 세월의 그물을 통과하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연민과 정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이다. “얘야. 난 지금껏 시간을 따라잡느라 분주하게 달렸단다. 때로는 바로 내 코앞을 달려가는 시간의 뒷덜미를 잡아챌 듯했지만 결국 시간은 나보다 저만치 앞서 달아나 버렸어. 나는 이제야 깨달았단다. 시간이란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것을… 난 그 동안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서 빨리 달리기만 했던 거야.” 어린 시절 철도 위를 달리는 내 기차는 어디로 갔을까? 찻장 밖으로 석유와 석탄을 나르던 머리에선 하얀 김을 저만치 뿜어내고, 그 긴 꼬리는 한 참을 지나야 알 수 있었던 그 기차는 어디로 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