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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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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는가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오늘날 모든 이들이 열망하는 가치다. 얼핏 보아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쟁과 냉전에 소모되었던 역량들을 집중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기에 모자람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이 바람은 오늘날 배신당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작 『제국』에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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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는가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오늘날 모든 이들이 열망하는 가치다. 얼핏 보아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쟁과 냉전에 소모되었던 역량들을 집중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기에 모자람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이 바람은 오늘날 배신당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작 『제국』에서 오늘날의 지구 사회는 제국주의를 대체한 새로운 통치 질서인 '제국'으로 재구성되고 있다고 피력한다. 제국은 정체, 경제, 문화적 중첩과 혼효를 통해 주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이러한 체제는 인간성을 상품의 형태로 환원시키며 인간 사이의 상호소통을 가로막는다. 오늘날 존재하는 제국의 지배영역은 과거와는 달리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삶 그 자체이므로.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다중(Multitude)이다. 전지구적인 지배체제를 갖춘 '제국'이 주민들의 삶에 교묘한 감시와 통제를 가하고, 자발적 복종을 종용하는 현실에서 저항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안토니오 네그리는 국경과 인종, 성병을 뛰어넘어서 사회적 삶 자체를 지배하고 잠식하는 '제국' 아래에서 생성된 다중들을 제국에 저항하는 잠재력으로 설정한다. 인간의 삶 자체를 통제하고 상품화 시키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상호소통과 인간 사이의 네트워크 증대이다. 그러나 이렇게 손쉬운 답변으로는 부족하다. 연대와 저항의 가치, 그 자체는 의심받는 개념이 아니므로. 정작 중요한 것은 'How', 다시말해 방법론이다.

 

 네그리와 같은 국가(이탈리아)에서 한 세대 전의 철학자 그람시는 폭력적인 파시즘에 맞선 저항방법으로 '진지전'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정면충돌('전면전')로 파시즘을 제압할 수 없을 때, 긴밀하게 연대된 개인과 집단들의 '진지전'이야말로 파시즘에 맞서는 효과적인 저항방법이라는 그람시의 방법론은 한국사회에 소개되면서 시민사회에 대한 활발한 논쟁과 함께 '참여'와 '소통의 증진'이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제국'은 그람시가 옥중에서 글을 쓰던 1930년대보다 훨씬 정교한 지배력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는 점차 단자적인 개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네그리는 그람시가 제시한 진지전의 방법론으로서 '다중'의 활성화를 제시한다.

 

 상아탑의 공허한 담론이나 인터넷 공간에서의 무책임한 글쓰기에서 멈추는 오늘날의 개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람시의 논의보다 훨씬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언급하는 네그리의 『다중』에서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취향과 취미, 혹은 현학적 말장난에서 벗어나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대화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발벗고 나설 것. 그리고 사회적 삶 자체를 잠식하는 자본이라는 '제국'에 맞서서 상호간에 끊임없이 소통하고 움직일 것. 손쉬운 결론이지만, 그 구조가 간단하지만은 않다. 국지전, 사회-문화적 가치들의 상품화, 빈곤, 환경파괴, 소수자 억압 등 제국의 지배 아래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에 관한 네그리의 분석은 매우 정교하다. 정교한 분석과 상황의 나열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인문학적 성찰이 실제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결국 '실천'이라는 항목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람시의 '진지전'이 총론이라면 네그리의 '다중'은 각론이 아닐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실천하지 않는 대다수의 침묵은 수많은 억압과 독재의 토대가 되지 않았는가. 이 책은 실천하지 않는 학문적 담론과 구호로 가득한 인문학 서적이 아니다. '처세'와 실용'이 대세인 시대이다. 그러나 정작 다중적인 네트워크의 주체인 개인들은 목전의 이득에 관해서는 수많은 처세서와 실용서를 탐독하며 눈독을 들이지만 정작 중요한 '삶의 가치'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타인과의 연대가 끊어진 단자적인 개인들은 제국의 지배 속에서 각개격파 당하지 않는가. 자신이 지배 당하는 것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로.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제도라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다른 가치들이 충돌하고 전복과 투쟁이 맞물리면서 그 안에서 대안이 생성되는 역동성이 바로 민주주의 기반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는, '실천이 결여된 학문적 논의'와 '인터넷 공간의 토론'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조용하길 바라며 개인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침묵하는 개인들은 '다중'이 아닌, 뭉쳐 있는 덩어리(대중)로 전락한다. 당신은 실패와 고립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들을 구조화시키고 '불안'과 '공포'를 유포하며 지배력을 연장하는 제국의 그늘 아래서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지는 않는가. 많은 이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나서지 않는다. 단지, '알고 있는 것'에서 멈추므로.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 사이의 간극. 어쩌면 현실의 모순과 억압적 현실을 비판하는 모든 인문학책들은 이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까. 네그리의 『다중』도 앎과 실천의 간극에 놓여 있지만 정보와 개념의 전달이 어떻게(how)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설명문이자 긴 '선동문'으로 다가온다. '선동'이라는 말이 불편한가. 그러나 '선동'이라는 말이 주는 불편함보다는 움직이지 않는 개인들을 선동하도록 만든 체계와 시스템을 응시해야 함을, 이 책은 상세히 '설명'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선동과 설명이, 대립과 투쟁이 교차하면서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2*****h 2009.04.2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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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집단 [제국]을 맞설 힘은 [다중 Multitude]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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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집단 [제국]을 맞설 힘은 [다중 Multitude]뿐이다!   냉전시대엔 우리편, 너네편으로 피아彼我구분이 확실하더니 이젠 누가 우리편인지 오늘은 '어느 적과 동침을 하는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는 내전이 끊이질 않고, 자고 일어나면 주변 나라 아니 지구촌 반대의 기침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복잡다난한 세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세상은 '테러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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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집단 [제국]을 맞설 힘은 [다중 Multitude]뿐이다!
 
냉전시대엔 우리편, 너네편으로 피아彼我구분이 확실하더니 이젠 누가 우리편인지 오늘은 '어느 적과 동침을 하는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는 내전이 끊이질 않고, 자고 일어나면 주변 나라 아니 지구촌 반대의 기침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복잡다난한 세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세상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이젠 웬만한 폭탄테러는 성에도 차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버린 것인가?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문외한인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세계적 양상이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으로 대변되고 이것은 '우리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불안감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 다중Multitude 도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부제 속 [제국]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했다.
안토니오 네그리가 2000년에 낸 책 [제국]의 속편이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제국]의 의미는 19세기의 제국주의와 구별된다. 이 개념은 초강대국의 개념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연결된 정치,경제,군사의 지배 네트워크를 말하는데, 선진제국의 정치,군사,산업복합체들 예를 들어 IMF,세계은행등과 EU,WTO등이다. 이들은 오늘날 그 어떤 개별국보다 강력해서 지구촌 가족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네트워크 권력은 '제국적'이지만, '제국주의적'이지 않고, 그 네트워크의 구성원에게 부여된 권력 또한 평등하지 못하다. 이는 최강대국인 미국조차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며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전지구적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해  이 책이 말하는 [다중]은 인종, 민족, 지역, 성별을 포괄하는 자유주의적 계급 개념으로 다수라는 점에서 하나인 민중과 구별되고, 모든 임금노동자인 노동계급과는 개장적이고 포함적인 개념이라는데서 다중과 구별된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다중은 전지구적인 네트워크와 분산된 개방성을 지닌 현대의 거대한 계급이라고 말하고 최근의 인터넷과 같은 분산된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웹의 연결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추가가 가능하다는데 다중의 최초의 이미지나 최초의 모델로 훌륭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상황과 전지구적 갈등상태들 속에서 이들이 우리의 정치, 그리고 주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성을 전쟁, 다중, 민주주의로 나누었다. 
 
전쟁에서는 냉전을 종식시키고 지구촌 보안관을 자칭하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자행하는 극단적 비대칭상황을 세계는 인정하거나 그것을 통해 불안요소의 제거에 대한 희망마저 품게 되는 것에 문제를 삼았다. 제국에 항거하는 국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조직(테러집단, 조직등)에 의해 자행되는 갈등은 국가간의 전쟁상황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빈도수에 있어서 그리고 목표에 있어서 불특정다수와 장소를 겨냥하고 있어, 마치 월남전상황에서의 밀림속 베트콩에 당하는 미국과 연합군처럼 긴장을 놓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상황이 세계가 자국과 자국민도 피해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함으로 한편으로는 비난을, 다른 한편으로는 조기종식의 희망을 갖게 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중에서는 제국이 바라보는 시각처럼 민중처럼 동일성을 띠지도, 대중처럼 획일성을 갖지도 않다고 말하며 저자는 삶정치라는 인터넷을 기반으로한 복합적 네트워크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힘을 연계시켜 통합해 가고 있으며, 제국이 통제가 강화될수록 그 힘은 더욱 커져 결국은 제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자가 이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구의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를 제안하는 민주주의에서 네그리는 다중이 지닌 다수성과 차이성을 인정하는 '다중의 절대적 민주주의'가 제국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중의 민주주의 형태가 잘 진행되고 있는 예로 한국을 들고 있다. 저자는 전 인류가 말이 아닌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다중속에 깃들어 있는 차이를 사랑으로 극복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할 때 새로운 다중의 민주주의로 거듭날 수 있음을 말한다.
 
저자가 던지는 시선을 통해 국내정세가 아니라 지구촌 정세임을, 그리고 국외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상황은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하는 당연한 지구촌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전지구적 통합을 향한 시각이 트였다고 해야 할까? 명저가 그 자체를 힘을 지니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에 있다. 전작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적 요구에 의해 [다중]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바뀌어야 함을 강조하는 저자에게서 무거운 힘을 느끼게 된다. 다중의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지켜봐야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n 2008.04.0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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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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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이라는 새로운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무척 좋은 책이다. 번역이 잘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이 책의 역자 조정환이 쓴 ‘아우또노미아’보다 이해하기 더 편했다. 번역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이 직접 한글로 쓴 책을 만나는 것처럼 편하게 읽었다. 아, 내용은 편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독자를 촉발한다. 두꺼운 책인데, 이렇게 리뷰를 쓰다보면 나에게 기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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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이라는 새로운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무척 좋은 책이다. 번역이 잘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이 책의 역자 조정환이 쓴 ‘아우또노미아’보다 이해하기 더 편했다. 번역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이 직접 한글로 쓴 책을 만나는 것처럼 편하게 읽었다. 아, 내용은 편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독자를 촉발한다.


두꺼운 책인데, 이렇게 리뷰를 쓰다보면 나에게 기억남는 것, 또 그것을 아주 단순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혹시, 이것도 네그리의 걱정처럼 수 많은 다수성의 생각들을 일자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호출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 발전되어 온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저자는 대의 민주주의는 이제 전지구적 규모로 움직이는 ‘제국’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는 다중에 의한 민주주의가 요구된다. 다중에 의한 민주주의는 주권이라는 일자로 다양한 욕망들을 환원시키지 않는다. 다양한 욕망들이 각자의 차이를 가진 채 존재하며 이것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정치적 행동을 한다. 이 네트워크들의 각 점들이 다중이다. 다중이라는 것은 ‘민중’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개념과도 다르다. 뇌세포를 연상하면 빠르다. 뇌세포에서 어떤 하나의 생각이나 반응을 하나의 부분이 전적으로 맡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다양한 세포들의 연합에 의한 현상이다. 넓게 보면 그 연합은 뇌세포끼리만의 연합이 아니다. 신체의 각 부분들과의 엽합이며 더 넓게는 신체와 관계 맺고 있는 신체 외부와의 연합이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네그리가 지시하는 것이 다중이든 뭐든 근대 사회에서 파편화된 인간의 삶이 바탕이라면 그러한 연합 또는 연대가 ‘자율주의적’으로 가능할까? 우리 모두는 가족이라는 틀에 갖혀있고, 직장이라는 틀에 갖혀있는데 말이다. 가족과 직장이라는 틀에 의해 우리의 욕망은 점점 더 자신 조금 더 넓게는 혈연위주의 가족만을 향해가는 상황에서 ‘다중’의 형성은 가능하겠는가?


네그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드주의 사회에서 포스트포드주의 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사회적 변화에서 제시한다. 물질적 노동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영역에 갖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포스트 포드주의로 바뀌면서 이제 노동은 물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빗물질도 생산하다. 바로 ‘비물질적’노동 사회가 되는 것이다. 비물질적 노동이란 바로 ‘지식, 사회적 관계’와 같은 것을 가르킨다. 물질적 노동은 각 영역별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다. 철강 노동에 의한 생산물과 농부의 생산물은 공통성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포스트포드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적 생산물보다는 어느 영역에서든 비 물질적 생산물이 더 중시된다. 철강 회사에서도 중요한 것은 더 좋은 철강을 생산하기 위한 물리학적 지식이고 농부에게도 중요하고 돈이 되는 것은 농산물에 대한 유전학적 지식이다.  물질적 생산물은 어느 하나가 가지면 다른 하나는 가지지 못하지만 비 물질적 생산물은 공유할 수 있다. 생산물을 공유하면 인간의 욕망은 더 이상 창의적 생산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천만에. 리눅스를 보라. 오히려, 사유의 증가가 인간의 창의성을 저해시킨다.


이 물질적 생산이 지배하는 사회는 전혀 다른 사람들조차도 하나의 끈으로 연결시킨다. 이것이 바로 전지구적 규모에서 사고하는 다중의 출현을 예고하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다.


(중간 생략)


다중은 정치경제적 조건 말고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랑이다. 아마 불교의 ‘자비’나 맹자가 말한 자기의 혈육을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넓혀 가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시키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 같다. 스피노자식 표현대로 하자면 ‘우정’이라는 표현도 맞을 것 같다. 이 사랑이 ‘다중’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낱줄이다.


이외에도 제국에 맞서 다중에 의한 민주주의를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한데, 그 저항의 무기는 총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이고 비대칭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반전희극 ‘리시스티라타’에서 펠레포네소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여자들이 공공 건물을 포위하고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방식, 또는 최근 우리나라의 촛불집회 같은 것이다.


다중에 의한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넘어서는 직접 민주주의도 아니며, 사회주의처럼 허구한 날 전위들이 모여서 회의만 하는 것도 아니라.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다수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계속 쓸려니 자신이 안 생긴다. 올해 꼭 읽어봐야 할 책 중에 한 권임이 확실하다. 새로운 가능성을 꿈꾼다면 한 번 읽어 보시라.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 일하든 충분히 자신의 삶을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여행자가 되도록 촉발시키는 책이다.


g********m 2008.07.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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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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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부는 전쟁 2부는 다중(multituder) 그리고 3부는 민주주의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전작 제국에서 생체 정치적 특성에 대한 설면으로 ‘제국’권력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으로서 미분화된 권력이 사회 전반에 내재화 되고, 개인의 신체까지 통제하며 기호와 상징을 생산함으로써 욕망을 일치시키고 삶의 전반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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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부는 전쟁 2부는 다중(multituder) 그리고 3부는 민주주의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전작 제국에서 생체 정치적 특성에 대한 설면으로 ‘제국’권력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으로서 미분화된 권력이 사회 전반에 내재화 되고, 개인의 신체까지 통제하며 기호와 상징을 생산함으로써 욕망을 일치시키고 삶의 전반을 관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권력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되고 자신들이 통제 받고 있다는 인식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제국’의 기본 동학인 생체 정치적 생산에 대하여 인식함으로써 이러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다중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일까 ,지구적 질서의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고 있는지 '세계화’라는 전세계적인 추세속에서 다중(Multitude)의 개념과 배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실체에 대한 것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다중이(민중처럼) 동일성이 아니고 (대중처럼)획일성도 아닌 개념에서 다중의 내부적 차이는 그들로 하여금 서로 소통하게 하고 함께 활동하게 하는 공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지배권력의 대항자로 지칭되었던 인민(people), 대중(mass), 노동계급의 개념도 제국의 시대에는 다양하게 조직되고 행동하며 지구적 연결(link)을 이루는 ‘다중’(Multitude)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중과 민중 역시 하나의 통일성이나 동일성으로 인식할 수 있느냐에 따라 구분되어지고 대중의 본질인 무차별성으로 구분되어 지고 노동계급에 대한 다원적인 분류들이 독특하게 느껴지는 분류이다.


다중은 잠제적으로는 사회적 생산을 하는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오늘날은 인터넷과 같은 분산된 네트워크를 다중의 최초 이미지,모델로 비교하며 다중을 민중, 대중 그리고 노동계급과 같은 여타의 사회적 주체들과 구별하고 있다. 저자 네그리는 새로운 지구 사회에 적합한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인들의 투쟁을 이 책의 주제와 연관시킨다. 그것은 네그리가 ‘다중의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한국에서도 저항의 전통에 다중의 새로운 의미가 연결되고 있다고 본다.


즉 다중의 민주주의는 옛 소련의 권위적 사회주의 및 서구 사회민주주의 전통과도 모두 확실하게 결별해야만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미 그러한 민주주의의 추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국이 세계화의 한 쪽 얼굴로서 위계와 분리의 네트워크 권력이라면, 다른 쪽 얼굴인 다중은 협동의 새로운 회로를 창조하는 개방되고 확대된 네트워크로서, 제국 안에서 성장하는 살아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녹록하지 않은 책읽기였다. 속도를 낼 수 없고 이해하는데도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60억이라는 전지구적인 질서에 대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최근 의 학문적인 성과를 접했다는 것이 뿌듯함으로다가온 보람있는 책읽기 였다.

k****0 2008.04.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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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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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의 시대가 개막되는 시점에 다중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일까 ,지구적 질서의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고 있는지 '세계화’라는 전세계적인 추세속에서 다중의 개념과 배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실체에 대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다 ‘제국’이란 용어는 현 시대의 세계화를 통해 드러난 새로운 전지구적 주권 형태를 일컫는 말로 제국주의가 외국의 영토로 확장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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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의 시대가 개막되는 시점에 다중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일까 ,지구적 질서의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고 있는지 '세계화’라는 전세계적인 추세속에서 다중의 개념과 배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실체에 대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다


‘제국’이란 용어는 현 시대의 세계화를 통해 드러난 새로운 전지구적 주권 형태를 일컫는 말로 제국주의가 외국의 영토로 확장된 국민국가 주권에 근거한 반면 제국은 새로운 주권 형태인 네트워크 권력으로서 국민국가들과 함께 초국적 제도와 주요 자본주의 기업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제국이 세계화의 한 쪽 얼굴로서 위계와 분리의 네트워크 권력이라면, 다른 쪽 얼굴인‘다중(multitude)'은 협동의 새로운 회로를 창조하는 개방되고 확대된 네트워크로서, 제국 안에서 성장하는 살아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국은 현 시대의 세계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개념틀이다. 

 

미쉘 푸코의 분석에 의한 통제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통제의 방식의 변화에 따라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 이행함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는 ‘제국’권력 특성의 토대가 된다. 훈육사회는 관습, 습관, 생산실행을 생산하고 규제하는 배열장치나 장치의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명령이 구축되는 사회로서 훈육제도들(감옥, 공장, 보호시설, 병원, 대학, 학교 등)을 통하여 정상과 일탈을 규정함으로써 통제한다고 한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제국은 19세기 말에 절정기에 다다른 제국주의와 다르며 자본주의의 팽창은 제국의 원동력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공저한 '제국'은 현재의 세계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데 자본은 시장의 장벽을 제거하려고 하고 국가는 자국의 경제를 지키기 위해 장벽을 보호하려고 하고 초강대국인 미국은 각종 자유무역 요구를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에 강요하기 때문에 세계화는 미국중심의 신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화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고 자본의 매끄러운 흐름을 요구함으로써 바야흐로 세계는 자본주의 발달의 절정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국은 개방적이고 팽창하는 자신의 경계 안에 지구적 영역 전체를 점차 통합하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외부를 가지지 않는다. 즉 제국과 비제국을 가르는 경계선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제국에 포섭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모두 제국 안에 있고 제국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제국에 대한 저항 또한 처음부터 봉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제국'이 쓰여진 이후 2001년 9.11과 2003년 3원의 이라크전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21세기에 들어 과거의 제국주의적인 전쟁은 제국 내부에서의 전지구적 내전으로 경향적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 안에서 제국과 같은 논리로 존재하지만 제국에 저항하는 세력을 다중(multitude)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오늘날 제국이 지칭하는 세계화의 권력구조가 전 지구를 장악하고 관리하지만 그것에 대항하는 세력은 바로 세계화 속에 심어져 있다. 저자는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유럽 제국들의 몰락을, 자본과 근대주권(국민국가)의 대립에서 자본이 승리한 것으로 분석한다.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국민국가의 영토적인 경계는 방해물로 떠오른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몰락 이후 부상한 UN은 국민국가들의 국제간 관계를 다루는 국제적 사법적 구조를 넘어, 초국적이고 전 지구적인 사법적 구조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제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완성된다. 미국은 냉전 기간 구제국주의 열강들을 자신의 체제에 종속시키면서 제국적인 질서의 구성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냉전이 약화되자 국제 경찰력을 행사할 책임은 미국의 어깨에 정확히 떨어졌다. 걸프전은 미국이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이러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다. 걸프전의 중요성은 이 전쟁이 미국 스스로의 국민적 동기의 작용으로서가 아니라 전 지구적 권리의 이름으로 미국을 국제적 정의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책 다중에서는 제국에서의 전쟁상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은 지배의 도구로 기능한다.

 

이라크전쟁 등의 변화 상황을 ‘제국’의 예외적 사례로 보거나 또는 일방주의의 강화로 보는 시각을 교정한다. 또한 ‘미국은 정의롭다’는 생각이나 가해국과 피해국의 극단적 비대칭 상황이 상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바로 그 때문에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이 쌓이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다중은 잠재적으로는 사회적 생산을 하는 온갖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공동체(community)라는 용어는 인구들의 상호작용 위에 주권적 권력으로서 군림하는 도덕적인 통일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공통된 것은 공동체나 공적인 것 이라는 전통적인 개념과도 관계가 없다. 네그리는 다중이 지닌 다수성과 차이성의 특성을 무기로 삼는 민주주의 형태가 극복의 실마리를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제국'에 이은 '다중'은 옮긴이의 말처럼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의 네트워크 권력개념을 일방주의인가 다자주의인가라는 일개 국민국가 미국의 정책문제로 환원하는 이러한 인상주의적 견해들을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하나의 세계질서로서의 제국메커니즘의 실재성을 좀 더 분명하게 단언하고 있다.  

 

 

저자들은 사회계급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다양하며 인종,민족성,지역성,성별,섹슈얼리티 등등의 다양한 집단을 포함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고 있다.그래서 다중은 한편에서는 통일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해지는 모순 속에 있는 듯이 보인다.


다중의 창조, 네트워크 속에서의 다중의 혁신, 그리고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다중의 능력이 오늘날 최초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 관념들을 늘 침식해 왔던 정치적 주권과 일자의 지배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이기에 이르렀다. 주권은 그것이 비록 일자의 신화에 기초하고 있다 할지라도 항상 피지배자들의 동의와 복종에 기초한 관계였다 (본문 中에서)

k****7 2008.04.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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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한 힘 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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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L. 프리드먼은 세계화로 인해 국경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국가간의 장벽 또한 무너지면서, 세계는 평평하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시각에서 보는 세계는 그의 통찰력대로 국경도 국가간의 장벽도 없다. 수 많은 자본이 이익이 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옮겨 다닌다. 그러한 현상의 긍정적인 면은 자본이 필요한 국가에는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이제 막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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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L. 프리드먼은 세계화로 인해 국경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국가간의 장벽 또한 무너지면서, 세계는 평평하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시각에서 보는 세계는 그의 통찰력대로 국경도 국가간의 장벽도 없다. 많은 자본이 이익이 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옮겨 다닌다. 그러한 현상의 긍정적인 면은 자본이 필요한 국가에는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이제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개발도상국들은 그러한 자본의 힘을 이용해서 눈비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것이 착하지 않다. 자본들의 근본적인 목적은 이윤추구이기 때문에 이윤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냉정하게 다른 곳으로 움직여 버린다. 그런 현상 때문에 자본들은 돈이 되는 곳에 순식간에 몰리면서 거품을 만들어지고, 자본이 빠져나간 개발도상국들은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된다.

 

 자본이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데 힘을 하면서 세계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시장 또는 생활공동체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가장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언어일 뿐이다. 이러한 지구적 현상에 대해서 네그리는 '제국'이라고 표현한다. '네트워크 권력'이라는 주권, 초국적 기관들, 주요한 자본주의 기업들 그리고 다른 권력들과 더불어 지배적인 국민국가들의 주권을 가진 '제국'이란 것이다. 이런 제국은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통제와 항상적 갈등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면서 위계와 구분의 네트워크를 확산 시킨다. 다른 하나는 서로간의 차이가 존재하면서도 서로 소통하고 함께 행동할 있게 하는 공통성을 발견할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한다.

 

  번째 얼굴의 모습으로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이 미국이다. 세계의 경찰국가로써 역할 지위를 차지하며, 지구의 정의와 평화를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통제와 갈등이다. 하지만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의 상황은 미국이 통제할 있는 한계를 점점 벗어나고 있을 정도로 나빠지고 있다. 결국에는 갈등과 전쟁이 난무할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는 번째 얼굴을 통해서 우리 시대는 전지구적 전쟁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확정적이고 실체가 없는 적들에 대한 실제적 전쟁들로 나아갔다"라고 한다. 국가간의 전쟁을 넘어서 테러라고 불리는 사소해보지만 충격이 형태의 폭력은 세계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저자의 지적이 정확하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네그리는 이러한 전쟁은 '방어'에서 '안보' 정책을 변동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한다. 방어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보호방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면 안보는 어느 곳에서나 항구적인 군사활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법적인 폭력도 예외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관타나모수용소'에서 자행되는 미국의 위선과 폭력과 빨갱이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지난 시대와 지금을 관통하는 반공주의를 쉽게 이해할 있다. 밖에도 다른 네트워크 권력들이 가진 폭력과 야만성도 책을 통해서 많이 나열 되어 있다.

 

  번째 얼굴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희망이나 기대를 수가 있다. 책의 제목이자 핵심적인 내용인 '다중' 모습이다. 저자는 다중에 대해서 너무 추상적으로 설명을 한다. 문장으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다양한 특성들을 설명한다. "다중은 정신적 신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지배하는 살아 있는 살이다."든지 "만인의 지배라는 법칙을 실현할 있는 유일한 사회적 주체이다." 같은. 중에서 가장 이해가 쉽게 정의한 저자의 말이 "서로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소통하고 협력하고 공통적으로 행동하는, 없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복잡한 개념과 특성을 가진 다중의 힘에 대해서 저자는 환상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다중의 창조, 네트워크들 속에서의 다중의 혁신, 그리고 공동으로 의사결정 있는 다중의 능력이 오늘날 최초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 한다. 여기서 저자가 현재의 민주주의와 저자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다르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로 다중의 다양성을 포함하지 못하고 하나로 수렴된 권력에 지배를 받는 것이고 저자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다중의 다양성이 권력으로 표현되는, "다중이 자기 자신을 지배 있게 " 말한다.

 

 사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다중들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하나의 힘을 나내는 , 다중의 힘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이라는 이기적인 동물의 특징을 보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을 되는 것이 아니면 다중들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그들의 힘을 발휘하려 하지 않는다. 타인이나 차이에 대한 배려나 이해보다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또한 다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읽은 저자는 "다중의 구성적 힘을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사랑이다" 한다. 하지만 제국의 강력한 주권과 지배력이 발휘하는 위계와 구분의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세상에 사랑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쉽게 납득 가지 않는다. 하지만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듯이 제국의 하나의 얼굴이 너무 강하면 다른 얼굴 또한 반작용이 나타나듯이, 다중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작용에 의한 피해가 커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ps> 다중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도 내가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2주가 넘게) 투입했지만, 확신을 수가 없다. 단지 내가 이해한 것을 최선을 다해서 쓰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책의 내용에 대해서 아리송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인문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고, 이런 책과 내용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봐야 책이 같다.

h*******k 2008.04.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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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원으로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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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합격점을 줄 만한 그런 존재. 언젠가 다른 이념으로 교체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의 큰 대안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 운용되고 있는 국가들 중 그것들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 아니 그 이전,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힘의 원천으로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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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합격점을 줄 만한 그런 존재. 언젠가 다른 이념으로 교체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의 큰 대안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 운용되고 있는 국가들 중 그것들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 아니 그 이전,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힘의 원천으로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되는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적 권력으로 이행하는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해 논했던 <제국>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통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그 작품에서 하지 못 했던 - 그래서 비관론들이 난무하고 수많은 질문과 비판을 낳았던 - 답을 '다중'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통해 내어놓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크게 전쟁, 다중, 그리고 민주주의로 구성된다. 더 이상 우리의 전쟁은 일부 국가들간의 전투로 볼 수 없는 상황이며, 아무리 국지전적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수많은 나라들의 이권 다툼과 세력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제국 주도의 전지구적 전쟁으로 보아야 하는 이런 전쟁들. 그리고 그런 전쟁을 종식시키고 만들어질 '좀 더 민주적인 세계'. 그리고 그를 위한 민주주의의 힘의 원천으로서의 다중을 논한다.

그러면 다중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군중이나 대중같은 획일화되거나 수동적인 주체가 아닌,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래서 만인에 의한 만인의 지배라는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주체로서의 '지구 시민'을 일컫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참 흥미로운, 그리고 상징성있는 그런 인류의 구분법이라는 느낌과 함께, 그렇게 분류됨으로 인해 인식될 힘에 대해 새삼 몸을 흠칫했다. 꽃은 꽃으로 불리는 순간에야 꽃이 되는 법이듯, 우리네 인류도 자신이 그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야 그 힘을 인식하는 법이니까.


이 책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이 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시켜, 결국 탁상공론이 아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래서 60억의 지구 시민들이 자신들의 힘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기 위해 최대한 그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런 그들의 노력은 세익스피어부터 도스토예프스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심지어는 스타트랙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인 예시와 메타포를 통해 자신들의 사유와 논리를 담는다. 그런 그들의 노력은 비록 굉장히 난해하고 쉽게 잡히지 않는 개념적인 내용들을 좀 더 흥미롭게 읽고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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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설명은 수많은 예시들로 현학을 넘어낸다. 그렇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한 편은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안내자가 된다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쉽지만은 않다. 총 500 페이지에 달하는 본문과 100페이지 정도의 주석들을 따라 읽는 '다중'에의 대장정은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다 읽고 책을 덮은 후에도 그 개념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그 이미지 만으로도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60억분의 1일 뿐인 나 자신이, 어쩌면 한없이 하잘것 없을지도 모를 나 자신이 이 세계에, 이 세계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막연함. 그런 막연함에 대해 '다중'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너는 민주주의의 근원으로서 존재하는가. 라는.

책장에 두고, 두고두고 꺼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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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텍스트의 압박은 이 책을 읽는 최고의 압박이었다. 좀 더 읽기 편한 편집이 아쉽지만, 그 압박만 넘긴다면 저자들의 멋진 저작에 찬사를 내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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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 2008.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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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민주주의의 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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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의 전작 [제국]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세계는 세계화라는 시스템과 냉전이 무너지면서 마치 하나의 유기물처럼 세계가 서로 영향을 받고 움직이는 패러다임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네그리는 그것을 제국이라 칭하게 된다.    [다중]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 떠올린 내용은 전작과의 관련이 매우 클 것이라는 기대였다. 더군다나 마이클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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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네그리의 전작 [제국]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세계는 세계화라는 시스템과 냉전이 무너지면서 마치 하나의 유기물처럼 세계가 서로 영향을 받고 움직이는 패러다임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네그리는 그것을 제국이라 칭하게 된다.

 

 [다중]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 떠올린 내용은 전작과의 관련이 매우 클 것이라는 기대였다. 더군다나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추측은 내게 확신을 주었고, 서문을 읽어내려 갔다. 하지만 역시나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학적으로 어려운 문장은 읽는 속도를 늦추게 되었고, 더군다나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정치철학에 가까운 도서이기 때문에 생각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솔직한 고백을 하기를 필자는 본 도서를 완독을 하지 못했다. 본디 서평이라는 것은 그 책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인데, 서평을 읽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내용이고 어떠한 용도이다라고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을 했다. (감히 필자가 말하건대 이 책의 난이도는 엔간한 논문 및 전공책들보다도 높다.)

 

 두 번째 특징은 매우 평범한 이야기를 분석적이며 논리적으로 옷감을 짜내듯 해석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에서도 밝혔듯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은 마치 현미경을 통해서 단어를 분석해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첫 챕터인 전쟁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과거의 생존의 수단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의 전쟁. 그리고 전쟁의 절대화는 과거의 십자군 전쟁처럼 신성시 절대시 되는 갈등으로 표출된다. 즉 간단하게 말하면 정치적인 전쟁이란 이미 도구화가 진행되어 권력의 이념적인 방향에 따라 남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와는 공존 할 수 없는 패러다임이며 글에서 언급된 볼테르가 우리에게 현실적인 직언을 하는 듯 하다.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을 어떠한 힘에 의해 억눌린다면 난 그 자의 편에 서겠다.”

 

 제국의 패러다임과 그것을 유지하는 다중 사이에는 이러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다중이란 다르지만 서로 차이점에 대해서 융합하는데 큰 무리가 없으며 서로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아마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서로의 소리를 낼 수 있는 데서 공통점(the common)을 찾을 수 있는 자들을 다중이라 부르는 것 같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치이론에는 패권 안정론이라는게 있다. 팍스 로마나나 팍스 아메리카나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러한 강대적인 일방적 질서 하에서 평화는 유지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국은 외부에서 적을 찾지 못해 내부의 갈등에 의해 몰락되어가고 있고, 거기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은 다중이라는 빛이다. 과연 우리에겐 스스로를 빛낼 수 있고 남의 빛을 수용할 수 있는 다중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쉽게 정치에 대해 육두문자를 날리기 전에 세련되게 말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읽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반론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h******9 2009.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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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다양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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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다양성의 시대   언제부턴가 우리는 몰개성화와 획일적인 사고방식 대신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고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사회적 풍조를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 ,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은 기존의 관점에서 통일성이 부여된 민중의 개념을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믿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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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다양성의 시대


  언제부턴가 우리는 몰개성화와 획일적인 사고방식 대신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고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사회적 풍조를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 ,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은 기존의 관점에서 통일성이 부여된 민중의 개념을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믿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해서 다중(multitude) 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저자의 이전 저작 ‘제국’에서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 형태가 어떻게 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엿볼 수 있었다면 이번 저작 ‘다중’ 에서는 그러한 제국 내부에서 자라고 있는 대안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일종의 네트워크로 모든 차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성격을 띈다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은 그리 쉬운 책은 아니다. 쉬운 책이 아니라 함은 그만큼 배경 지식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동안 가져왔던 철학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분량 뿐만 아니라 정치 체제에 관한 다양한 논의에 있어서도 그 호흡이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기 때문에 짧은 글타래 상에 그의 사상을 요약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한번에 주욱 읽어 내려가기 보다 하나하나 의미를 곱씹어가며 읽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으로 느껴지는 글귀를 하나 생각해본다면 주체적 다양성의 시대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기존의 사람들의 대상으로서의 객체적, 그리고 획일화된 통일성으로 인해 다양성이 부정되었다면 지금의 이 시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시대에 있어서는 대상이기 보다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다양한 사람들 - 물론 그 성격은 ‘다중’으로 함의될 수 있다 - 의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h******k 2008.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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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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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을 읽고   광범위한 주제만큼이나 깊이있는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다중의 힘을 역설하는 저자의 필력이 느껴진다.인사말에서처럼 자본과 권력에 대하여 자랑스러운 사회적 투쟁의 역사를 가진 우리 한국의 역사를 되씹어 가면서 책을 읽어나갈수가 있었다.특히나 딱딱한 주제인만큼 수회에 걸쳐 이어읽어 나가는 데 많은 인내가 요구되었다.저자는 이책의 전편으로 제국이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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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을 읽고

 

광범위한 주제만큼이나 깊이있는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다중의 힘을 역설하는 저자의 필력이 느껴진다.
인사말에서처럼 자본과 권력에 대하여 자랑스러운 사회적 투쟁의 역사를 가진 우리 한국의 역사를 되씹어 가면서 책을 읽어나갈수가 있었다.
특히나 딱딱한 주제인만큼 수회에 걸쳐 이어읽어 나가는 데 많은 인내가 요구되었다.
저자는 이책의 전편으로 제국이라는 글을 국내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특히 이번 쇠고기관련 촟불집회에서처럼 한국의 다중이 보여준 힘은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일시적이면서도 폭발적인 힘을 가진 다중의 힘이야말로 한국이 전지구적 질서의 구축에 중추로서의 역할에 대한 개연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냉전은 종식되고 전 지구적인 질서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보다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와 통치의 정치적 구도는 다중에 의한 이상적 민주주의 즉 다중 민주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감에따라 다중에의한 저항과 자율 , 노동자들의 해방 투쟁의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다.
또한 전지구적 전쟁상태  즉 냉전이라는 지구 질서의 허위적 평화상태에서 다양한 요구와 내부적 구분에 의한 전쟁의 새로운 시작은 제국이라는 냉전 시대의 전 지구적 질서 상태를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하여 질서를 유지하게 하고 있다.
이책에서는 다중을 민중이나 대중, 노동 계급이라는 여타의 사회적 주체들과는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민중의 통일섣이나, 대중의 무차별성, 또는 노동계급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대한 반사적 개념과는 달리 다중은 견제적 정치적 측면의 전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포함한다.
어찌보면 다양한 다중의 개념을 요약하기는 어렵고 책을 읽어 감에따라 나타나는 모자이크의 형태라고 생각된다.
이책은 세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번째로 전쟁에 대한 부분에서는 전지구적 전쟁상태의 변화에 대한 내용을 권력과 지배에 대한 저항의 형식을 역사적 사건을 빌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열대지방의 흰개미처럼 개체 자체의 지능과는 별개로 흰개미떼들의 소통에 의한 장대하고 정교한 구조물의 건축을 떼지성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이 떼지성은 근본적으로 소통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부분은 다중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 고찰을 하고 있다.
맑스 주의에서 출발한 노동의 발원에 의한 다중의 출발은 산업 자본에의한 노동 계급적 다중의 개념보다는 다양한 인종, 경제적 계급 , 지역등에 대한 포괄적인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부분은 전지구적 다중 민주주의의 실현의 요구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고 제국의 자본 논리에 의한 민주주의 질서의 허구성과 대의로서 경제적 삶 정치적 개혁방향에 대한 실천적 개혁제안을 하고 있다.
정치관련 서적이니 만큼 분야를 한정적으로 다루기 어려운만큼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그 대상을 두고 있다.
이책의 깊이 있는 고찰에 대한 몰이해는 본인의 무식에 따른 이해부족으로 돌리고자 한다.

c******n 2009.0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