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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판말고는 볼 것이 없는 책
"화려한 도판말고는 볼 것이 없는 책" 내용보기
도판과 지도는 역사라는 조금은 딱딱한 주제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책보다는 그림책을 먼저 보면서 책에 흥미를 붙여나가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 책은 도판이 너무 크고 많다는 것이다. 책 내용의 절반이상이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판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역사에 대한 설명이 빈약해진다.
"화려한 도판말고는 볼 것이 없는 책" 내용보기

도판과 지도는 역사라는 조금은 딱딱한 주제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책보다는 그림책을 먼저 보면서 책에 흥미를 붙여나가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 책은 도판이 너무 크고 많다는 것이다. 책 내용의 절반이상이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판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역사에 대한 설명이 빈약해진다. 또한 가뜩이나 부족한 지면에 도판에 나온 궁전, 무덤, 유물들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 놓았기 때문에 역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내용자체가 부실해진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아케메네스,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까지의 역사만을 기술해 놓았는데 글쎄 드문드문 연결이 되지않고 흐름이 끊기는건 나만 그런걸까? 차라리 화려한 도판을 넣은 두서너 페이지를 양보하여 지도를 넣어 이해를 돕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책을 덮은후 기억에 확실히 남는 건 하나, 이란의 고대 유물들 대부분이  대영박물관 혹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

 

  빈약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판매지수가 높은 이유는 "정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다행인건 가격으로 인해 충동구매 욕구를 느끼며 며칠간을 고민했던 이 <고대문명의 역사와 보물>시리즈를 이 책  한권으로 인해 나머지 8권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b******n 2012.01.0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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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화려한 문명 속을 거닐어보자
"페르시아의 화려한 문명 속을 거닐어보자" 내용보기
페르시아는 매우 매력적인 울림을 지녔다. 화려함에 대한 막연한 향수, 중동 지역의 뜨거운 열기, 조로 아스터교와 관련된 지역, 지금의 중동이 주는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일 것이다.   금과 은으로 치장된 화려한 장식이 떠오르고 아치형의 건축물들이 떠오르고 왕의 권력과 부귀가 떠오르고 설화들이 떠오르는 마치 꿀과 젖이 흐르는 곳과 같은 느낌,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향이 떠오
"페르시아의 화려한 문명 속을 거닐어보자" 내용보기

페르시아는 매우 매력적인 울림을 지녔다. 화려함에 대한 막연한 향수, 중동 지역의 뜨거운 열기, 조로 아스터교와 관련된 지역, 지금의 중동이 주는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일 것이다.

 

금과 은으로 치장된 화려한 장식이 떠오르고 아치형의 건축물들이 떠오르고 왕의 권력과 부귀가 떠오르고 설화들이 떠오르는 마치 꿀과 젖이 흐르는 곳과 같은 느낌,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향이 떠오르는 지역과 시대.

 

그러나 페르시아라는 단어는 매우 넓고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은 이란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이 토착화되기 전의 제국들을 이야기한다.

 

시기적으로도 광범위하지만 현재 이 지역의 종교인 이슬람교가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전의 시대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페르시아의 정체성에 대해 알려준다. 페르시아란 단어가 주는 환상과 몽롱함 뒤에 있는 다양하게 얽힌 지배 세력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페르시아란 곳을 다스린 사람들은 용광로와 같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의 중화의 개념과 비슷하기도 하다. 외부세력이 세를 잡아 지배자로 등극해도 이전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외부세력으로 토착세력들을 완벽하게 배척하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그들은 이전 왕조와의 연대 관계를 중시하고 종교를 통해 권력을 유지시켰다. 막판에 종교와 지방 분권이 큰 문제를 일으켜 서서히 쇠락하여 가지만 그 사이 연대들을 관통하여 보여준 것은 찬란하게 꽃피운 문명이다.

 

외부 세력과의 싸움 속에서 그들의 문명을 흡수하고 자신들 안에서 재탄생시킨 그들의 문화를 보았을 때 모든 양식이 혼재된 그들이 남긴 유산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한 듯 보여진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란 비슷하기에 어느 순간 균형을 잃고 그것은 그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역사의 주역의 자리에서 변방의 자리로 옮겼다. 막연한 향수와 그리움을 남긴 채.

 

화려한 책의 화보들은 그들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최소한의 증거들이다. 이질적인 것이 혼합되어 자신들의 정체성 위에 독창성을 얹은 유물들이다. 그 유물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세계를 유추해보는 맛은 쏠쏠하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그들의 유연성은 사람을 감탄케 한다. 어느 지역이든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는 데에는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것인데 유연성과 독창성은 대립되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일 것이다.

 

p.s. 이 시리즈를 보면서 숫자에 대해서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집트 편에서도 있었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치의 높이가 100미터라고 되어있는데 이 부분의 해석이 궁금합니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12.10.3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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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를 통해 본 조로아스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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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페르시아는 백과사전식의 책이라, 그 내용을 다 리뷰하기엔 불가능 하기에 나는 이 책을 통해 조로아스터 교에 대해서만을 리뷰하겠다.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자로 유명하다. 조로아스터 교란 무엇인가?조로아스터교는 현재 이란지역을 비롯한 중동지역에 이슬람이 지배적인 종교가 되기전 국교였습니다. 그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은 기원전 600년경의 아케메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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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페르시아는 백과사전식의 책이라, 그 내용을 다 리뷰하기엔 불가능 하기에 

나는 이 책을 통해 조로아스터 교에 대해서만을 리뷰하겠다.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자로 유명하다. 조로아스터 교란 무엇인가?

조로아스터교는 현재 이란지역을 비롯한 중동지역에 이슬람이 지배적인 종교가 되기전 국교였습니다. 그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은 기원전 600년경의 아케메네스 왕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BC 599~330)에 오늘날의 이란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전파 과정에서는 여러 남신, 여신 등을 믿는 고대 토착 종교와 혼합되었으며, 후에 BC 4세기 경 그리스와의 전쟁 이후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그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시기에 이르러, 헬레니즘을 지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란에서는 헤라클레스 숭배가 확산 되었다고 한다.


후에 파르티아 제국 시대(BC 247~AD 226)에 이르러 다시금 이란화가 진행되고 유일신 사상이 확립이 되기 시작한다.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가 출현하며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발전시켰다. 사산 왕조(AD 224~651)는 조로아스터교 이외의 종교는 박해했으며, 이 시기에 경전 아베스타(Avesta)가 집대성되었고, 일상어인 팔레비어 해설판이 쓰여지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사상, 내세관,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세계관 등은 유대교·그리스도교·불교·이슬람교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동 지역에 이슬람이 도래하면서 그 교세가 크게 줄었으나, 오늘날에도 인도 뭄바이, 이란 야즈드, 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15만여 명의 신자들이 교세를 잇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를 일컬어 배화교(拜火敎), 즉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제례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작은 제단 앞에서 제례를 치르는데, 이 때 신자들은 불 자체를 숭배한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나무 막대기 헌주 등의 봉헌물에 불꽃과 냄새를 피워 경배를 표현했던 것이다. 


이 종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Spitama Zarathustra)이며, ’조로아스터’는 자라투스트라의 그리스식 발음이다. 그의 출생 연대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있는데, BC 660년 경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BC 1500년 경, 혹은 BC 6000년 경으로 보기도 한다. 그의 출생지는 학자들의 추측과 자료에 따라 두 곳 정도로 예상되는데, 한 곳은 아프칸니스탄이며, 다른 한곳은 지금의 이란 동부 국경의 옥수스 강 유역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며 알려진 것도 거의 없다. 후대의 사람들이 전승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으로, 대개 현명하고 선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출생 연도가 불확실한 만큼 이 종교가 창시된 시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열두 살에 집을 떠났고, 서른 살에 강력한 신비체험과 영감을 얻어 이후로 자신의 새롭고 독창적인 메시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에 따르면, 그는 서른살이 되던 해에 아후라 마즈다 신의 천사장으로부터 유일신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며, 그 후 8년 동안 아후라 마즈다의 나머지 다섯 천사들이 하나씩 나타나 그에게 진리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조로아스터가 계시받은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으나, 모두 그를 광인(狂人)이라 생각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사촌 중 하나가 그를 믿고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왕을 비롯한 많인 이들이 그가 전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이원론적 일신교(一神敎)로, 고대 인도-이란 또는 인도-게르만의 종교적 공유재산에 근원을 둔 신들이나 제령(諸靈)을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 아래 통괄하고, 우주를 선과 악의 두 원리로 설명한다. 아후라는 ‘주(主)’를 의미하며, 마즈다는 ‘지혜’를 의미하므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를 의미한다. 당시 대부분의 종교가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론적 종교였음을 감안한다면, 아후라 마즈다 외의 다른 신을 모두 거짓으로 선언한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당시의 다신교적 종교관의 영향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후라 마즈다가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직접 나타나지 않고, 여섯 가지 불사의 존재 혹은 천사장을 통해 나타나며, 여섯 중 셋은 남성적이고, 다른 셋은 여성적이다. 그리고 이 여섯 가지 존재는 각각 지혜·사랑·봉사·경건·완전·불멸을 상징하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아후라 마즈다의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존재를 아메샤 스펜타(amesha spentas)라고 부른다. 


경전 《아베스타(Avesta)》에 의하면, 태초에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영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을 선택한 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사인 스펜타 마이뉴(spentas mainyu)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택한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훗날의 아흐리만, ahriman)이다. 앙그라 마이뉴는 다른 이름들로도 불렸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 혹은 사탄이다. 그의 주위에는 악마의 무리가 있어서 명령에 따라 사람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한다. 이러한 교리를 통해서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에서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계보를 체계화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한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세상은 선과 악이 싸우는 투쟁의 현장이며,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자유 의지를 활용하여 이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 때 인간은 선을 선택하여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 때 선과 악은 한쪽이 존재해야지만 다른 한쪽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선의 천사들이 원래의 자연종교적 ·물신숭배적(物神崇拜的) 특성이 약화되고 아후라 마즈다의 뜻대로 움직이는 비주체적 천사가 되고, 반대로 악의 천사들은 주체성을 회복하고 아후라 마즈다와 직접 대결하게 된다.


  여기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은 2단계로 되어 있다. 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고, 제 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자(死者)의 육체는 그들의 독특한 장사(葬事)법인 풍장(風葬) ·조장(鳥葬)에 의해 독수리와 들개들의 밥이 되지만, 영혼은 천국의 입구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천사 미드라가 죽은자의 삶의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한다. 저울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심판을 받은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나는데,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계곡 너머의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 같은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계곡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 


한편 조로아스터교의 사후 세계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하밍스타간 (Hamingstagan)'이라는 곳이 있다. 하밍스타간은 양쪽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중간 상태를 말하며 혼합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저울질했을 때에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오늘날 천주교가 인정하고 있는 연옥설과 유사하지만, 연옥에서 용서받은 영혼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하는 천주교의 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편 천국과 지옥에 간 영혼은 거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아후라 마즈다가 예정해 놓은 종말에 이르러 구세주가 나타나면, 모든 영혼들이 부활하고, 악한 영혼은 순화되어 선한 영혼과 합류한다. 그러나 사탄과 악령들은 완전히 소멸된다. 



  조로아스터교는 인류 최초의 계시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종교란, 객관적인 불변의 집단이 아니다. 그것 역시 여타의 사회적 집단처럼 사회의 문화, 이념, 사회풍토, 타종교의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인도의 베다(Veda) 종교 혹은 훨씬 이전의 인도-아리안 계 토속 신앙과도 연계되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또한 비슷한 시기에 융성했던 불교, 유대교, 기독교, 마니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1,000년

이상 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의 지위를 누려왔다. 그 기간동안, 조로아스터교의 일신론이나 이원론적 세계관, 예를들어 선과 악의 대립구도는 많은 제도권 종교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난해한 교리와 그 공동체의 차별적 신분제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신 앞에서의 평등을 주창하며 생활 속의 종교로 자리 잡은 이슬람에 밀려 오늘날에는 소수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로아스터교는 현재 이란지역을 비롯한 중동지역에 이슬람이 지배적인 종교가 되기전 국교였습니다. 그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은 기원전 600년경의 아케메네스 왕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BC 599~330)에 오늘날의 이란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전파 과정에서는 여러 남신, 여신 등을 믿는 고대 토착 종교와 혼합되었으며, 후에 BC 4세기 경 그리스와의 전쟁 이후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그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시기에 이르러, 헬레니즘을 지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란에서는 헤라클레스 숭배가 확산 되었다고 한다.


후에 파르티아 제국 시대(BC 247~AD 226)에 이르러 다시금 이란화가 진행되고 유일신 사상이 확립이 되기 시작한다.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가 출현하며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발전시켰다. 사산 왕조(AD 224~651)는 조로아스터교 이외의 종교는 박해했으며, 이 시기에 경전 아베스타(Avesta)가 집대성되었고, 일상어인 팔레비어 해설판이 쓰여지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사상, 내세관,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세계관 등은 유대교·그리스도교·불교·이슬람교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동 지역에 이슬람이 도래하면서 그 교세가 크게 줄었으나, 오늘날에도 인도 뭄바이, 이란 야즈드, 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15만여 명의 신자들이 교세를 잇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를 일컬어 배화교(拜火敎), 즉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제례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작은 제단 앞에서 제례를 치르는데, 이 때 신자들은 불 자체를 숭배한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나무 막대기 헌주 등의 봉헌물에 불꽃과 냄새를 피워 경배를 표현했던 것이다. 


이 종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Spitama Zarathustra)이며, ’조로아스터’는 자라투스트라의 그리스식 발음이다. 그의 출생 연대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있는데, BC 660년 경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BC 1500년 경, 혹은 BC 6000년 경으로 보기도 한다. 그의 출생지는 학자들의 추측과 자료에 따라 두 곳 정도로 예상되는데, 한 곳은 아프칸니스탄이며, 다른 한곳은 지금의 이란 동부 국경의 옥수스 강 유역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며 알려진 것도 거의 없다. 후대의 사람들이 전승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으로, 대개 현명하고 선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출생 연도가 불확실한 만큼 이 종교가 창시된 시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열두 살에 집을 떠났고, 서른 살에 강력한 신비체험과 영감을 얻어 이후로 자신의 새롭고 독창적인 메시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에 따르면, 그는 서른살이 되던 해에 아후라 마즈다 신의 천사장으로부터 유일신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며, 그 후 8년 동안 아후라 마즈다의 나머지 다섯 천사들이 하나씩 나타나 그에게 진리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조로아스터가 계시받은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으나, 모두 그를 광인(狂人)이라 생각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사촌 중 하나가 그를 믿고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왕을 비롯한 많인 이들이 그가 전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이원론적 일신교(一神敎)로, 고대 인도-이란 또는 인도-게르만의 종교적 공유재산에 근원을 둔 신들이나 제령(諸靈)을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 아래 통괄하고, 우주를 선과 악의 두 원리로 설명한다. 아후라는 ‘주(主)’를 의미하며, 마즈다는 ‘지혜’를 의미하므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를 의미한다. 당시 대부분의 종교가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론적 종교였음을 감안한다면, 아후라 마즈다 외의 다른 신을 모두 거짓으로 선언한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당시의 다신교적 종교관의 영향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후라 마즈다가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직접 나타나지 않고, 여섯 가지 불사의 존재 혹은 천사장을 통해 나타나며, 여섯 중 셋은 남성적이고, 다른 셋은 여성적이다. 그리고 이 여섯 가지 존재는 각각 지혜·사랑·봉사·경건·완전·불멸을 상징하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아후라 마즈다의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존재를 아메샤 스펜타(amesha spentas)라고 부른다. 


경전 《아베스타(Avesta)》에 의하면, 태초에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영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을 선택한 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사인 스펜타 마이뉴(spentas mainyu)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택한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훗날의 아흐리만, ahriman)이다. 앙그라 마이뉴는 다른 이름들로도 불렸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 혹은 사탄이다. 그의 주위에는 악마의 무리가 있어서 명령에 따라 사람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한다. 이러한 교리를 통해서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에서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계보를 체계화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한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세상은 선과 악이 싸우는 투쟁의 현장이며,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자유 의지를 활용하여 이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 때 인간은 선을 선택하여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 때 선과 악은 한쪽이 존재해야지만 다른 한쪽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선의 천사들이 원래의 자연종교적 ·물신숭배적(物神崇拜的) 특성이 약화되고 아후라 마즈다의 뜻대로 움직이는 비주체적 천사가 되고, 반대로 악의 천사들은 주체성을 회복하고 아후라 마즈다와 직접 대결하게 된다.


  여기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은 2단계로 되어 있다. 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고, 제 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자(死者)의 육체는 그들의 독특한 장사(葬事)법인 풍장(風葬) ·조장(鳥葬)에 의해 독수리와 들개들의 밥이 되지만, 영혼은 천국의 입구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천사 미드라가 죽은자의 삶의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한다. 저울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심판을 받은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나는데,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계곡 너머의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 같은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계곡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 


한편 조로아스터교의 사후 세계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하밍스타간 (Hamingstagan)'이라는 곳이 있다. 하밍스타간은 양쪽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중간 상태를 말하며 혼합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저울질했을 때에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오늘날 천주교가 인정하고 있는 연옥설과 유사하지만, 연옥에서 용서받은 영혼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하는 천주교의 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편 천국과 지옥에 간 영혼은 거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아후라 마즈다가 예정해 놓은 종말에 이르러 구세주가 나타나면, 모든 영혼들이 부활하고, 악한 영혼은 순화되어 선한 영혼과 합류한다. 그러나 사탄과 악령들은 완전히 소멸된다. 



  조로아스터교는 인류 최초의 계시 종교들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종교란, 객관적인 불변의 집단이 아니다. 그것 역시 여타의 사회적 집단처럼 사회의 문화, 이념, 사회풍토, 타종교의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인도의 베다(Veda) 종교 혹은 훨씬 이전의 인도-아리안 계 토속 신앙과도 연계되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또한 비슷한 시기에 융성했던 불교, 유대교, 기독교, 마니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1,000년

이상 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의 지위를 누려왔다. 그 기간동안, 조로아스터교의 일신론이나 이원론적 세계관, 예를들어 선과 악의 대립구도는 많은 제도권 종교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난해한 교리와 그 공동체의 차별적 신분제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신 앞에서의 평등을 주창하며 생활 속의 종교로 자리 잡은 이슬람에 밀려 오늘날에는 소수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조로아스터교는 중앙아시아의 일부 민족이 신봉하는 종교로 남아있다.



y******4 2012.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찬란한 페르시아 제국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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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고대 문명, 하면 이집트나 그리스만 떠올리지만 그들에 못지 않게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지역이 바로 페르시아였다.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역을 2백년 동안 지배하면서 피지배 민족들의 종교와 문화, 풍습을 모두 관대하게 허용했던 대제국 페르시아...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와 문물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침략군에게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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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고대 문명, 하면 이집트나 그리스만 떠올리지만 그들에 못지 않게 찬란한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지역이 바로 페르시아였다.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역을 2백년 동안 지배하면서 피지배 민족들의 종교와 문화, 풍습을 모두 관대하게 허용했던 대제국 페르시아...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와 문물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침략군에게 철저히 파괴당했고, 지금 그 흔적인 수도 페르세폴리스의 불탄 궁전 잔해에 약간만 남아있는 정도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계자인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도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의 침공을 당하면서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는 기록과 자료가 매우 적어서 그 정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보존되어 있는 유물과 역사 기록만 보더라도 페르시아 제국은 이집트나 인도, 중국에 못지 않은 유구한 전통을 가진 찬란한 제국이었음이 분명하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화를 동경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 바란다.

x***2 2010.04.0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간략한 당시의 역사와 유물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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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페르시아는 현재의 터키와 이란을 비롯한 광대한 영역에서 영토를 유지를 하고 있었던 대제국인데 역사에 등장을 하는 부분들이 고대 그리스와의 전쟁으로 알려진 부분이 많은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리스와의 전쟁을 제외를 하고 본다고 하여도 강력한 세력을 유지를 하고 그러한 세력에 걸맞는 관료체계를 유지를 하면서 거대한 지역을 절대적인 권력으로 다스렸던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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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페르시아는 현재의 터키와 이란을 비롯한 광대한 영역에서 영토를 유지를 하고 있었던 대제국인데 역사에 등장을 하는 부분들이 고대 그리스와의 전쟁으로 알려진 부분이 많은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리스와의 전쟁을 제외를 하고 본다고 하여도 강력한 세력을 유지를 하고 그러한 세력에 걸맞는 관료체계를 유지를 하면서 거대한 지역을 절대적인 권력으로 다스렸던 황제들에 대한 기록이 등장을 하고 있고 놀라운 문화를 유지를 하였다는 사실이 많은 유적을 통하여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이란인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믿는 종파가 다른점만이 아닌 민족의 구성도 다른다는 사실이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을 통하여서도 부각이 된 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한 이슬람의 지배하에서의 모습은 제외가 되었고 이슬람이 지배를 하기전의 모습만을 담고 있습니다.


기마병이 강력하였던 고원지대의 민족들이 평원으로 이주를 하면서 페르시아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고 정착민족으로 살아가던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을 하고 그 나라들의 문화적인 특성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고 많은 자치권을 인정을 하여서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사용을 하였던 점들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특징으로 작용을 하여서 많은 부분이 이슬람의 전성기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보여집니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민족이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을 하였고 계속하여서 왕조가 변경이 되었지만 그들만의 특징을 유지를 하고 주변국들을 압도를 하는 문화적인 특성을 유지를 하였다는 사실을 유물을 통하여서 알려주고 있는데 역사에 대한 서술이 미진하고 오히려 유물과 유적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 더욱 많은것이 책의 특징이면서 평가가 낮은 부분으로 작용을 한것 같습니다.


페르시아의 역사에 대하여서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다른책을 권하고 싶고 페르시아의 문화가 담겨있는 유적과 유물에 대하여서 선명도가 높은 사진으로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체적으로 비중을 나누면 글은 2정도이고 사진이 8의 비율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2.09.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