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5%
  • 리뷰 총점8 52%
  • 리뷰 총점6 1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7.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내용보기
난해하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아버지 에드가 엔데에게 바치는 글답게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세계를 매우 몽환적으로 잘 표현해 내었다. 그래서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을 보면 <모모>보다 <자유의 감옥>을 먼저 떠올리는 내게, <거울 속의 거울>은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난해함' 이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점입가경'이다. 넘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내용보기
 

 난해하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아버지 에드가 엔데에게 바치는 글답게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세계를 매우 몽환적으로 잘 표현해 내었다. 그래서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을 보면 <모모>보다 <자유의 감옥>을 먼저 떠올리는 내게, <거울 속의 거울>은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난해함' 이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점입가경'이다. 넘기면 넘길수록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 였음을 깨달았을 때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1장(場)의 마지막에서 호르는 말한다. 우리가 만날 수 있을 때, 자신이 '모든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마침내 호르를 만났을 때 나는 그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엔데는 <자유의 감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것에 맞는 특별한 목소리를 내야만 그 말은 진실이 된다"라고 말했다. 옳다. 그리고 반갑다. 그는 이야기에 걸맞는 특별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제발 부탁이야, 지금 네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네 귀를 내 입에 바싹 붙여 줘.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하고 있어 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야. (8쪽)

 

 엔데도 호르와 같은 절실함을 통해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절실함은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해답을 찾아 가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엔데가 그에게 미하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손을 맞잡은 채 빛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살풋 떠오른다. 아마 그들은 거울 속의 거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리라.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자 후기의 A to Z 퍼즐이었다. 애써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부분들이 눈에 띄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퍼즐이 있었기에 주목할만 하다. 그것은 I, 즉 Inhaltsverzeichnis(차례)였다. 그는 I 퍼즐 아래에, '이 작품에서 차례는 별 의미가 없다! 어디서부터 읽어도 작품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라는 덧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 속의 거울>의 핵심이리라. 그 이유는 '거울 속의 거울'과 <거울 속의 거울>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으리라.

 

 나 또한 역자처럼 엘레베이터에서의 '거울 속의 거울' 놀이가 떠올랐는데, 그 상(狀)은 언제봐도 새로운 것이었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이 거울 속에 발을 들여다 놓고 또 다른 문을 향해 계속 걸어가다 보면 나올 것 같던 그 세계는 어디 있는지 등을 생각하곤 했었다. 때때로 그 끝을 찾다가 마침내 한 점(点)이 볼 때면, 어린 나이에도 그 한 점이 문의 끝은 아닐거라는 짐작이 들어 괜한 기대에 설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걸어도 그 끝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버리면, 거울 속을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으로 끝났다. 마치 13장(場)의 방인 동시에 사막인 공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처음 말했듯 이 소설은 난해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좋지 않다. 누구라도, 언뜻 보면 서로 연관이 없는 것 같은 30장의 이야기들이 한 데 엮이는 순간을 느낄테니까. <거울 속의 거울>, 그 또 다른 세계의 출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자신을. 霖

m*******y 2008.03.1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로 속의 미로
"미로 속의 미로" 내용보기
내 손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된 것으로 기억되는 <거울 속의 거울>을 이제야 다 봤다. 나는 책을 잡으면 보통은 달아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예외가 된 책이었다. 빨리 읽고 싶어도 읽어지지가 않았다. 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겁 없이 <모모>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읽은 수준으로 이 작품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며칠에 걸쳐 이 책을 겨우
"미로 속의 미로" 내용보기
 

 내 손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된 것으로 기억되는 <거울 속의 거울>을 이제야 다 봤다. 나는 책을 잡으면 보통은 달아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예외가 된 책이었다. 빨리 읽고 싶어도 읽어지지가 않았다. 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겁 없이 <모모>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읽은 수준으로 이 작품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며칠에 걸쳐 이 책을 겨우 다 읽었다. 그렇지만 처음 이 책을 폈던 순간의 당혹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무지함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고나 할까.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미하엘 엔데의 아버지인 에드가 엔데의 초현실주의 그림이 나온다. 그 그림을 보고 받은 느낌과 이 책을 읽은 느낌은 거의 일치했다. 그렇다고 내 이 작품에 대해 뭔가를 알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하엘 엔데가 아버지 에드가 엔데에게 바친 책으로, 두 예술가의 정신적 교감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 알량한 교양으로는 쉽게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책이었다. 번역자가 이 작품의 미로에서 빠져나오는데 거의 3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며칠 동안 이 책을 읽고서 어떻게 감히 논할 수가 있겠는가.

 내게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퍼즐게임처럼 보였다. 난 보통 때도 퍼즐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거장의 퍼즐 앞에서야…….

 말 그대로 나는 이 작품을 ‘탐험’했다. 넘어지고 긁히고 덤불을 헤치며 끝까지 가보았지만 내 앞에는 새로운 미로가 펼쳐져있었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초현실주의 그림 앞에서 그냥 망연자실해있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章)마다 새로운 그림이 펼쳐졌고 나는 그 그림을 읽어보려고 했다. 상징과 알 수 없는 비의(祕意)로 가득 찬 그 성 앞에서 나는 몹시 초조해하며, 주문을 외며 이 마법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런 아픔의 시간을 보낸 후 실낱같은 빛을 보았던 것 같다. ‘보았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고 ‘보았던 것 같다’라고만 할 수 없는 내가 답답하지만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작품은 읽은 사람마다 그 느낌은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작은 무엇인가를 얻었을 것이다. 삶은 이 작품처럼 알 수 없는 비의(祕意)로 가득 차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논하려면 내 앞에 놓인 삶을 치열하게 살고 난 다음부터일지도 모른다.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길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거울 속의 거울>에서 실마리가 될 단서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온전히 이 책을 읽는 사람의 몫일뿐이다. 

l*******1 2009.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 안의 나
"내 안의 나" 내용보기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는 모모라는 책으로 알게 되었다. 책보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대학로에서 본 어린이 연극 혹은 뮤지컬이 더 기억에 남는다. 어린 마음에 시간에 쫓기는 어린 모모와 그런 모모를 위협하는 검은 무언가가 미약하게 남아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의 책은 모모밖에 읽지 않았지만 대표작 모모를 통해 모모와 함께 꿈과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함께 하
"내 안의 나" 내용보기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는 모모라는 책으로 알게 되었다. 책보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대학로에서 본 어린이 연극 혹은 뮤지컬이 더 기억에 남는다. 어린 마음에 시간에 쫓기는 어린 모모와 그런 모모를 위협하는 검은 무언가가 미약하게 남아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의 책은 모모밖에 읽지 않았지만 대표작 모모를 통해 모모와 함께 꿈과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함께 하며 즐겁게 그리고 고민하며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기에 이번 책 거울 속의 거울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에 책을 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귀여운 모모를 만나게 해준 그가 이번엔 어떤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되었다.  

 

거울과 거울이 마주볼 때 거울 속에 비치는 나 속에 아니 그 넘어 또 내가 존재한다. 제목은 대부분 책을 알려주는 힌트가 되기에 시작에 앞서 거울 속에 거울이란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노란 책 표지와 그 속에 그림 또한 뭔가 어둡고 의미심장해 보였다.

 

3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주인공과 그에 못지 않은 특별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첫장을 넘기면서 부터 만난 독특한 인물과 사건, 사고의 흐름에 처음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인물과 그들이 처한 색다른 상황에 단편임에도 사건 전개과 결말이 궁금에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 드러낸 30편의 단편들은 30개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진짜 미하엘 엔데가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족한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속엔 인생과 삶의 진실이 숨어있었다. 옮긴이의 말의 도움으로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외에 단편 속에 숨은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책 곳곳에 그림도 다소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시간도 좋았다.

 

3년에 걸쳐 거울 속의 거울이란 책의 미로에서 빠져나온 저자처럼 사고의 깊이와 폭이 넓어져 다음 번 읽었을 때에는 책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s***i 2008.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하엘 엔데의 철학적 이야기들
"미하엘 엔데의 철학적 이야기들" 내용보기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은 내게 참 어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모모>는 책 표면상의 글자로만 읽으면 쉬운 내용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대한 우화로 읽으면 한없이 깊어지는 그런 특성이 있으므로, 쉽게 읽고 끝낼 수 없다는 선입견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가 1995년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미하엘 엔데의 철학적 이야기들" 내용보기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은 내게 참 어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모모>는 책 표면상의 글자로만 읽으면 쉬운 내용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대한 우화로 읽으면 한없이 깊어지는 그런 특성이 있으므로, 쉽게 읽고 끝낼 수 없다는 선입견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가 1995년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로 재평가했다고 책 표지의 날개에 수록되어 있듯, 그는 작가보다는 철학가로 보아야 할 듯하다. 그래서 아주 노란 표지에 미하엘 엔데의 아버지인 에드가 엔데의 초현실주의 그림이 실린 것으로 시작한 '거울 속의 거울'은 존재부터 무겁게 다가왔다.

 

책에는 30개의 단편과 18폭의 그림이 실려 있다. 각 단편에는 각각의 제목이 없이 아라비아 숫자와 그를 독일어로 읽은 듯한 단어가 적혀 있다. 제목이 붙어 있으면 그나마 내용 파악을 위한 단서가 될 듯한데, 그마저도 없다 보니 참 엄격한 분위기이다. 이야기들은 짧으면 세 쪽에서부터 길면 27쪽까지 다양하고, 분위기는 대부분 음울하고 늘어지고 절망스럽다.

누구에게는 훤히 보이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고, 눈 앞의 무용지물에 얽매여서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 언제일지, 과연 있기나 한 것일지 모르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가 있다.

첫번째 이야기를 보자. 자신을 호르라고 말하는 이는 사람이 아닌 존재인 듯하다. 완벽하게 텅 빈 건물 안, 그래서 거기서 생겨나는 모든 소리들이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버리는 건물 안에 살고 있는 나는, 오래전 경솔하게 내뱉던 외침의 잔향과 부딪힘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마주치는 커다란 고통을 겪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제 메아리가 생겨나는 그 미묘한 경계선을 절대 넘지 않도록 목소리 내는 법을 배운다. 잠들기 전에 들리는 몽롱하고 희미한 소리 이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호르는, 체험과 기 록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애써 이야기한다. 마치 너무 존재가치가 미미해져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민초民草들이 떠오른다.

 

책을 읽었으나 머리 속까지 명백하게 이해되지 않는 그의 글들은, 내가 철학을 워낙 어려워하는 터라 철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책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은 해설서처럼 반갑게 다가온다. <거울 속의 거울>에 실린 이야기들은 각각이 하나의 퍼즐이며, 이를 풀기 위한 26개의 단서를 알파벳 순서에 따라 열거함으로써 이해가 쉽도록 돕는다. 지금껏 이렇게 적극적인 옮긴이의 말은 처음 보았다. 미하엘 엔데의 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을 때는 그 잠깐 동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도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하엘 엔데의 <거울 속의 거울>은 읽을수록 지금껏 놓치고 있던 내 삶의 맹목적성과 유한함, 타인의 시선의 무의미함, 삶의 의미 등을 떠올리는 무거움이 있었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아야겠다.

y*****9 2008.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겐 너무 어려운 책
"내겐 너무 어려운 책" 내용보기
너무 쉽게 본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보르헤스의 이름으로 나를 현혹시킨 이 책의 홍보문구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몇 번을 읽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보르헤스의 작품세계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보르헤스의 벽을 넘지못한 자는 읽어라' 했던 그 글귀에 깜빡 속은  나는 또다시 미궁 속에 빠져들었다.           미하엘 엔데와 그의 '모모'. 내 어린 날
"내겐 너무 어려운 책" 내용보기
     너무 쉽게 본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보르헤스의 이름으로 나를 현혹시킨 이 책의 홍보문구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몇 번을 읽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보르헤스의 작품세계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보르헤스의 벽을 넘지못한 자는 읽어라' 했던 그 글귀에 깜빡 속은  나는 또다시 미궁 속에 빠져들었다.

    

     미하엘 엔데와 그의 '모모'. 내 어린 날의 아릿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모모의 모습은 이 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희망과 빛, 현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모모는 어떤 모습과 형태로도 등장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찾아낼 수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게다. 분명 어딘가에 모모는 있었다. 내 능력으론 좇아갈 수도,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는 형태로 그가 존재하고 있었다. 난 무얼 바라고 이 거울을 들여다 본 것일까.

 

     이 책은 미하엘 엔데가 30편의 이야기를 엮어 초현실주의 화가인 아버지, 에드가 앤데에게 바친 책이라고 한다. 소설의 중간중간에 에드가 앤데의 그림이 마치 그 내용을 설명하듯 함께 실려있다. 글을 읽으며, 그림을 꼼꼼히 살피며 순간순간의 서늘함을 느꼈다. 어디에도 예쁜 구석이 없는 책이다. 에드가 앤데의 그림 역시 내 취향과는 지나치다할 정도로 거리가 멀다. 미하엘 앤데는 편 수를 더해가며 읽어 나갈수록 내 지혜의 한계와 맞부딪히게 만들고, 내 의식을 흐렸다.

    

     '신이 들여다보는 거울 속에 존재하는 악마'를 표현하는 창녀들의 여왕에게서 가장 큰 섬찟함을 느꼈다. 신과 악마가 자신을 두고 싸우는 광경을 입 밖으로 내뱉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리며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을, 인간으로서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는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신과 악마, 그리고 창녀. 이 외에도 알 듯, 모를 듯한 작품들의 내용과 의미에 몹시도 갈증이 났던 것 같다.    

    

     미하엘 앤데는 모든 작품의 의미를 쉽게 내어 주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한 번의 책읽기로 '음, 그렇군', 하거나 '아, 이거구나' 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내겐 미하엘 앤데의 '거울 속의 거울' 역시 보르헤스의 작품들과 함께 분류될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이 책을 쉽게 놓아주고 싶진 않다. 아주 묘한 작품이다. 어렵지만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병서님의 옮긴이의 글을 읽으며 내가 각각의 작품에서 받은 느낌을 그와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물론, 많은 부분 나와 시선을 같이하지 않아 당황하긴 했지만. 뭐 어떠랴. 책 읽기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모모를 읽을 때 그러하듯이 읽고 또 읽고, 조금의 시간을 두고 다시, 또다시 들춰보려 한다.

 

 

h*****1 2008.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거울속의 거울
"거울속의 거울" 내용보기
모모의 작가로 알고 있는 미하엘 엔데의 또다른 작품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과 강렬한 노란색의 표지가 참으로 기분좋아지는 첫 만남이엇다. 하지만 한장 한장 넘기는 도중 그 기대감은 당혹감으로 바껴가고 있었다. 초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채 바싹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기에 반복해서 읽어가면서도 에세이인걸까 아님 소설인가라는
"거울속의 거울" 내용보기
 

모모의 작가로 알고 있는 미하엘 엔데의 또다른 작품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과 강렬한 노란색의 표지가 참으로 기분좋아지는 첫 만남이엇다.

하지만 한장 한장 넘기는 도중 그 기대감은 당혹감으로 바껴가고 있었다.

초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채 바싹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기에 반복해서 읽어가면서도 에세이인걸까 아님 소설인가라는 원초적인 답부터 시작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에 이어 둘 그리고 셋 편하게 생각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어진 책 읽기끝에 너무도 막연하기만했던 만남은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실체를 찾아가는길 각각의 이야기속에서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것이 있었구나 라는 좀 늦은 깨달음을 안고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하고 싶다는 자만감으로 잊고 있던 저자후기를 중간에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3년에 가까운시간동안 26개의 알파벳 미로속을 헤매이다 3천개의 퍼즐을 만난듯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막 헤쳐나왔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그걸 단숨에 이해하려 했었다니 너무 큰 착각속에 만났었구나 위안이 되고있었다.

 

각각의 이야기속에서 26개의 알파벳 퍼즐을 짜맞추기위한 하나의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야기의 완벽한 이해를 한다음에야 가능한 작업이었던것이다.

Aufwachen 깨어나기, Ende 끝 또는 미하엘 엔데, spigeel 거울 등과 같이 사람들의 내면 심리상태에 대한 고도의 심리전에서 하나하나 답을 찾아가며 26개의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겨울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거울 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듯 나의 또다른 모습 인간들 내면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어 끄집어 내고 싶지않앗던 나약하고 비열한모습부터 엄마 아빠의 숭고한 정신 사랑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의미들을 찾아보며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을것이다.

꽁꽁 숨겨놓고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내보이기 싫은 마음에 자신조차도 들쳐내고 싶지 않은 나약함, 비굴함, 두려움 좋은것보다는 좋지않은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꽉채워져있는 그 깊은 내면속에 대한 자신감 부재에서 오는 것일것이다.


작가 아버지의 작품이라는 책속 판화작품들또한 또 다른 볼거리로서 거울속에 감추어져있는 내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기여를하고 있었다.

처음 생각과는 많이 달랐던 책이었지만 우연히 가지게 된 만남이 특별한 인연이 되어 하나하나의 소중했던 이야기가 궁금할때마다 찾아보게 될듯하다.

나의 책 목록속에 특별함으로 간직되어 별도의 목록속에 담겨져간다.

d****0 2008.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상이 이토록 낯설구나
"세상이 이토록 낯설구나" 내용보기
보물창고에서 본격 문학 브랜드가 나왔고, <거울 속의 거울>은 그 첫 번째 책이다. 미하엘 엔데. 누구나 그렇듯이 그의 <모모>에서 폐부를 찌르는  감동을 받은 독자로서는 여러모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엔데가 전하려 한 메시지를 내가, 이해하기는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자꾸만 솟구쳤다.
"세상이 이토록 낯설구나" 내용보기

보물창고에서 본격 문학 브랜드가 나왔고, <거울 속의 거울>은 그 첫 번째 책이다. 미하엘 엔데. 누구나 그렇듯이 그의 <모모>에서 폐부를 찌르는  감동을 받은 독자로서는 여러모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엔데가 전하려 한 메시지를 내가, 이해하기는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자꾸만 솟구쳤다. 앞으로 넘겨 다시 읽어보기를 여러 차례, 결국 생전 처음으로 메모를 해 가며 뭔가를 맞춰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맞춰보기에 지친 나머지 그냥 죽 읽어내려가기로 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자. 세세히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느낌으로 읽자.'

 

그랬더니, 이 책은 어두운 자화상으로, 세상의 보이지 않는 곳을 비추는 거울로, 그 속에서 그저 막연히 꾸물거리는 인간군상에 대한 연민으로, 그리고 그럼에도 끝없이 갈구하는 진정한 삶, 자유 그런 것들로 '느껴졌다.'

 

언젠가 그런 꿈을 꾼 일이 있다. 길다란 복도 끝, 거울을 바라보고 서 있었는데, 그 속에 또 거울이 있고 거기에 비친 나의 모습. 얼마나 무서웠던지, 이후 한동안 내 방에 거울을 두지 않고 지낸 적 있다. 어쩌면, 엔데도 그런 꿈을 한 번쯤 꾸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 경험을 이토록 깊고 넓게, 상상력을 동원해 펼쳐놓았던 것일까. 지독히 난해한데도 묘한 동질성이 자꾸만 스며드는 느낌.

 

이야기 1에서 호르는 생겨나는 모든 소리들이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버리는 건물 안에 살고 있다. 그는 오래 전 자신이 내뱉었던 외침의 잔향, 즉 자신의 과거와 마주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목소리를 지워 버린다. 그는 공간에 갇혀 있는데도, 공간의 끝에 다다르지 못하고, 늘 낯섬을 느낀다. 그리고 호르는 다시 등장한다. 이야기 30에서. 평원 한가운데 폐허가 된 구조물이 있고, 문이 하나 달려 있고, 두 보초병이 언제 누가 시킨 건지 모르는 채로 그 문을 지키고 있다. 아가씨 하나가 한남자를 데리고 와 그 문으로 들여보낸 뒤 말한다.

"난 저 문 뒤에 있는 내 동생 생각을 했어요. 가엾은 내 동생 호르를요." 

 

이런 식이다. 서른 개의 이야기가 저마다 개별로 존재하면서 연결고리를 지니고, 되돌아갔다 다시 나오며, 그 연결고리는 단선적이 아니라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생각할 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 때문에 불편하기까지 하다.

 

또한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색깔로 이야기 군데군데에 섞여 든다. 보초병 이야기나 미노타우루스의 미로나, 이카로스의 날개나, 뭐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끝이라는 의미를 가진 엔데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이도 등장한다. 뭐라 할까. 그야말로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다가 현실을 잊어버리는 아이의 느낌. 세상이 이토록 낯설구나.

 

호르가 존재하는 공간, 그의 삶의 방식, 문, 미로, 미로를 빠져나오게 돕는 실몽당이의 부재 그리고 거울. 이 외 이 책에 등장하는 숱한 사물과 상황은 그야말로 고도의 메타포를 이루고 있어 낱낱이 풀어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거울이라는 사물. 그것이 모든 메타포를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을 억지로 해 보았다.

 

거울 속에는 세상이 존재하고, 그것은 실재이면서도 그저 비치는 상일 뿐이고, 거울 속에 비친 거울 속으로 들어갈 수록 삶은 모호해지고, 모든 것이 혼재된다. 거울 속 세상은 그저 꿈일 수 있지만, 반대로 내가 사는 세상이 거울 속에 비친 허상일 수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갇혀 사는 것일까? 혹, 살기는 하는 걸까? 그런, 유치한 존재론적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겨우 한 번을 읽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을 읽어야 이 책 내용이 체화될까 싶은 암담함 때문이다. 옮긴이는 3년이라 했는데, 옮기지 않고 그러려면 두 배는 걸리겠다. 재미로 읽을 책이 아니어서, 폭넓게 권하기는 힘들겠고, 엔데를 좋아하는 이라면 일독이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다.

p****1 2008.03.07. 신고 공감 0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자~ 이제 퍼즐을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되~
"자~ 이제 퍼즐을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되~" 내용보기
위대한 화가 피카소의 작품이 고흐나 밀레등 다른 화가들의 것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작품의 '난해함' 때문일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이 가지는 주목할만한 '가치'는 이전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들을 선보임으로써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데 있다. 피사체를 단방향이 아닌 다각도로 관찰해서 하나의 평면에 표현해낸 방식이라고 하는데 심하게 일그러지고 뒤틀린 사람
"자~ 이제 퍼즐을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되~" 내용보기
 

위대한 화가 피카소의 작품이 고흐나 밀레등 다른 화가들의 것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작품의 '난해함' 때문일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이 가지는 주목할만한 '가치'는 이전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들을 선보임으로써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데 있다. 피사체를 단방향이 아닌 다각도로 관찰해서 하나의 평면에 표현해낸 방식이라고 하는데 심하게 일그러지고 뒤틀린 사람과 사물의 형상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네가 언제쯤 내 목소리를 듣게 될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그래, 너, 지금 내가 말을 걸고 있는 '너' 말이야. p.8" 이 책의 첫 줄을 읽는 순간 피카소의 그림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당황스러움에 사로잡혔다. 노란색 표지와 초현실주의 표지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일까. 어느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렵사리 진도를 나갔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혼란스러워 졌다. 정말... 난해하다. ^ ^;;

 

'아들은 아버지이기도 한 스승의 뛰어난 지도 아래 날개를 꿈꾸었다.' 라는 부분에서 미로의 도시를 떠나고 싶어하는 아들이 등장한다. 미로의 도시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영웅이요 전설이 되곤 했는데 그것은 '행복한 사람'에게만 허용된 것이었다. 아들은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기에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미로를 떠나는 '시험'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아들은 시험에 실패하고 그 이유는 바로 그에게 손내미는 사람들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치러야 할 시험은 '순종하지 않는 것' 이었다.

 

'여기는 방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막이다.' 에서는 신랑이 신부를 찾아 사막을 횡단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안내자는 눈 앞에 보이는 직전거리보다 돌아서 갈 것을 권유하지만 신랑은 눈에 펼쳐 보이는 가까운 거리를 선택한다. 그러나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이 펼쳐질 뿐. 우여곡절 끝에 신부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늙은이가 되린 후다. 신랑은 사랑하는 신부에게 자신이 신랑임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신부는 신랑을 데려다준 안내자와 함께 신랑을 찾아 사막으로 뛰어든다.

 

책에는 모두 30여편의 짧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위에서 예를 든 경우처럼 어떤 판타지스러운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주인공들을 그리고 있다.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하면서도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거나 탈출한 이가 전설이 될만큼 벗어나기 힘든 공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구속받는 인간의 내면, '자아' 뭐 그런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 어렵다.

 

뜬금없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거울 속의 거울> 이라는 미로 속에 갇혀 버린 느낌. 내 앞에는 3천조각 퍼즐이 널부러져 있다. 조급해 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끼워맞춰 가야 겠다.

m******n 2008.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하엘 엔데와 보르헤스 그 사이 어딘가
"미하엘 엔데와 보르헤스 그 사이 어딘가" 내용보기
책장을 덮고 나니, 굳이 중요한 글귀를 새기고 기억하는 것이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잘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하나의 색채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는 비즈이기 때문이고 그 비즈들을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의미 하나의 글귀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어우러지는 흐름을 읽거나 각각의 색채를 주목하거나 마지막으로 비즈들을 재구성해
"미하엘 엔데와 보르헤스 그 사이 어딘가" 내용보기

책장을 덮고 나니, 굳이 중요한 글귀를 새기고 기억하는 것이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잘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하나의 색채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는 비즈이기 때문이고 그 비즈들을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의미 하나의 글귀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어우러지는 흐름을 읽거나 각각의 색채를 주목하거나 마지막으로 비즈들을 재구성해서 또 다른 목걸이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첫 장에는 차례가 없다. 게다가 한 작품마다 따로 소제목도 붙어있지 않다. 오로지 우리에게 남겨진 하나의 명제는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거대한 제목뿐이다. 거울 속에 거울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4차원의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것은 무한하게 반복 또는 복제된다. 어떤 것이 시작이었는지 처음이었는지 원본이었는지는 무의미하다. 무수한 거울 속에서 단 하나의 가치란 지금 그 거울을 무엇을 비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울은 실체가 없다. 거울 자체는 오로지 자신의 매끈한 겉면에 무엇인가를 비추는 역할을 할뿐이다. 고로, 거울이 비추고 있는 것이 나라면 그 거울은 끊임없이 나를 복제 해내고 창조해낸다.

 

남미의 소설가 보르헤스를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우스 떼르띠우스」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거울과 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아니러니 하게도 이 책은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책이다. 거울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양 하고 있다면 아버지 역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울은 표면적인 적을 카피하는 것에 그치지만 아버지는 미하엘 엔데의 근간을 세우고 엄숙하면서도 다정하게 창조적 열정을 불태우게 해주었다(이 책의 두 번째 단편에서 나오는 스승이자 아버지가 아마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울과 아버지의 관계를 보르헤스를 열쇠로 내가 풀어냈다면(혹은 풀어냈다고 믿는다면) 이 책의 다른 여러 가지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물론 답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고 다녔다는 세계 여행가도 결국에 가서는 아무 것도 아닌 자의 안내를 받아서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는 정말 아무도 아닌 것이 아니라 딱히 규정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통칭이다. 내 생각에는 여기에는 독자도 미하엘 엔데도 그리고 미하엘과 엔데도 포함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의 미로와 같지만 그 미로를 풀어내는 열쇠는 아무도 아닌 자들에 맞춰서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처음에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면(처음에 나오는 부분은 모호하게 의도된 바대로 시점과 인칭이 바뀐다) 한 번에 통독으로 훑고 구성이 눈에 조금 잡은 다음에 정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읽을 때마다 그 의미와 맛과 형태가 바뀌리라 장담한다. 이 책은 이러한 열린 구조와 모호하지만 통일된 색채로 언제고 다시 읽어도 그 재미가 반감하지 않을 작품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보르헤스의 작품과도 같이 말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작품의 열려있는 구조 그리고 하나의 끝이 없는 미로를 보고 있는 느낌, 거기에 정해진 하나의 답이 없다는 것까지. 실마리를 잡으려고 하면 무수한 갈래 속에서 어떠한 것도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하게 되지만 그것 또한 맛인, 그런 작품 말이다. 참고로 읽다가 분에 번뜩하는 느낌이라서 기억을 해두었는데, 어쩌면 미하엘 엔데 본인도 이 글을 쓰면서 보르헤스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22번째 단편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에 있는 장님 신사와 운명의 본질에 대해 토론도 했다.’ 여기서 나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에 있는 장님 신사는 분명히 보르헤스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여담을 넘어, 이 서평에는 전체적인 감상만 에둘러 썼다. 하나의 열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계속 말했던 차였고, 책을 읽기 전에 이 서평만 먼저 읽는다면 자유로운 유영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열쇠 또한 한 번의 읽음에 그저 치기어린 단평을 넘어서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함께 읽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열쇠를 푸는 시간을 가지면 더욱 좋은 책이다.

 

r******n 2008.03.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