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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med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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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이 Understanding Media인 미디어의 이해는 언론학도들에게는 필독서로 불린다. 커뮤니케이션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맥루한의 주 저서로 미디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잘 드러내준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미디어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인간 신체기관으로서의 미디어가 또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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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이 Understanding Media인 미디어의 이해는 언론학도들에게는 필독서로 불린다. 커뮤니케이션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맥루한의 주 저서로 미디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잘 드러내준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미디어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인간 신체기관으로서의 미디어가 또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 미디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로 기능하고 있다.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또 그 미디어가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미디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 그 미디어는 진정한 우리의 확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다양한 종류의 과도한 자극이 신체에 가해져 스트레스를 일으킬 때, 중추신경 조직은 상해를 일으키는 기관이나 감각, 기능을 단절하거나 고립시키는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한다.
m*****d 2003.06.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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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이상의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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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트위터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었던 건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처음 이 매체를 접했을 때 나는 퍽이나 신선하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140자의 제한된 글자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은 짧아서 편하다는 뭇사람들의 시선과는 별도로 적지 않은 고뇌를 필요로 했다. 길게길게 늘여뜨려 글을 쓰던 이제까지의 습성을 버리고 내 말하고픈 모든 바를 함축해 표현해야만 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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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트위터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었던 건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처음 이 매체를 접했을 때 나는 퍽이나 신선하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140자의 제한된 글자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은 짧아서 편하다는 뭇사람들의 시선과는 별도로 적지 않은 고뇌를 필요로 했다. 길게길게 늘여뜨려 글을 쓰던 이제까지의 습성을 버리고 내 말하고픈 모든 바를 함축해 표현해야만 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마는 글쓰기에 익숙잖아서 였던 건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이를 환영했다. 때마침 널리 보급된 스마트폰의 인기로 인해 더더욱 사람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짧아지게 되었다. 과목명을 웬만하면 두세 자 정도로 줄여 표현해 혹 외계어가 아닌가 의심을 품게 만들었던 대학시절 생각이 물씬 날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우리 언어의 변화는 트위터라는 매체의 보급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고전이 된 마셜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는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겠다. 얼마나 혁신적이었던지, 초판 출판 당시의 반응을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우리의 교과서는 그의 글 일부를 수록하는 것으로써 글이 지닌 중요성을 인정했다. 일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아니 읽는 사람이라 하여도, 교과서를 위주로 공부해야 소위 명문대를 간다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길 없는 말을 고려한다면, 교과서에 수록된 글로 인해 마셜 맥루언의 이름만은 아마 어렴풋이 기억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주장하였기에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그의 저서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는단 말인가?

사람들은 형식의 중요성을 간과할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해도 대화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내뱉은 말에 담긴 내용이지 그 외의 것이 아니다. 사고 교환의 방법이 유선을 통한 것일 수도 있고 문자 메시지일수도 있고 대면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을진데, 어떠한 방법을 내가 택했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면 목적은 달성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보편적인 사고를 뒤틀기에 나선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어떠한 수단을 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특정 미디어를 선택함에 의하여 그 안에 담기는 내용마저도 달라질 수 있단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외피가 내면마저도 결정짓는다니 뜬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내 이에 수긍을 하게 된다. 이미 SNS를 통해 내가 구사하는 문장의 형태가 그리고 남들과 나누길 바라는 내용조차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내가 아닌가!

친절하게도 저자는 이제껏 존재해온 많은 매체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게 중에는 자동차, 게임 등 언론 매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무리들도 다수 섞여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사람의 이동거리를, 사고의 폭을 증대시키는 데에 분명 모종의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이 변화하면 의사소통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점에서 오늘날 존재하는, 우리가 미처 미디어라 여기지 않는 것들도 이미 미디어로서의 속성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무려 1964년에 출판된 책이기에 오늘날과 같은 첨단을 기대하긴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은 ‘자동화’로 마무리 지은 것으로 보아 저자가 상당히 시대를 앞지른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그가 현재와 같은 컴퓨터의 보편적인 사용이나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시대까지 상상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어떤 테크놀러지든 우리 안에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지니며 그로부터 새로운 기술들이 출현하게끔 한다. 이 점은 앞서 살펴본 수(촉감적이고 양적인 형태)의 놀이나, 필사본 및 시각 문화라는 더 추상적인 형태를 통해 드러난 바 그대로다. 인쇄술은 중세의 zero를 르네상스 시대의 무한 개념으로 바꾸어놓았는데, 이는 원근법과 소실점으로의 수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정밀한 반복 가능성의 요소를 가져옴으로써 가능했다. 그러니까 인쇄술은 수학에서의 무한 개념에 꼭 필요한 <끝없는 반복indefinite repetition> 개념을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p176


수시로 변화할 수 있는 언어의 내용을 어느 용기에 담기건 그 모양새에 적응하는 ‘물’과 같다고 비유해도 좋을까. 책을 읽을수록 미디어가 내용물을 담는 상자박스에 지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이런 수단을 택하면 이런 메시지를 담게 되고 저런 수단을 택하면 저런 메시지를 담게 되는, 우리의 무의식에 가까운 특정 미디어 선택이 알고 보면 특정 내용을 가장 잘 소화해내기 위한 고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말이다. 한편으로는 미디어가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우물벽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디어를 선택하는 것이 언제나 우리 자신일 수는 없다. 특정 미디어가 주어졌을 때 이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우리 자신이지만, 꼭 그 미디어야만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것과 미디어 안에 담긴 내용을 결정짓는 주체는 또 다른 이일 수가 있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특정 내용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를 올곧게 유지하는 것은 곧 미디어에 담긴 내용의 올곧음을 유지하는 길일 수도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많은 정책들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시선이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q*****2 2011.11.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