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밥상
싱크대 여닫이장 한 가장자리
뚜껑이 반쯤 열린
달콤하고도 불량한 저 물엿병에
모래알만한 개미들이 줄줄이 끌려가 익사했다
먹이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천리만리 달려갈 때
그 길은 다만 식사에 충실한 일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많은 시간
세상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기 위해
얼마나 먼 바닥을 기며 무서운 노동의 땀을 흘렸던가
그러나 먹이가 혀끝에 닿기도 전에 깨져버리는 희망
산다는 건 결국 그렇게 위험한 밥상을 구하는 일이었다
떨어지기 전
병의 입구에 매달려
세상에 걸린 줄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숱하게 발을 저었을까
무서운 일이다 세상에 차려진 밥상을 찾는 일이란
앞서간 이들의 되풀이되는 익사를 보면서도
먹이를 좇아 반질반질해진 길을 뒤따르는 이들 역시
이 아침에도 끊임없는 발을 들여놓는다
달콤한 맛에 지옥이 함께 있다
밥상을 찾는 일이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앞서간 이들의 되풀이되는 익사를 보면서도 / 먹이를 좇아 반질반질해진 길을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산다는 건 결국 그렇게 위험한 밥상을 구하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고,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 (「아우슈비츠 이후」)는다. 그런가 하면 ‘밥상에 놓은 새끼 주꾸미 / 온몸을 바쳐 발가벗고 앉아 있’는 것을 ‘질근질근 씹’ 는다. ‘살의의 이빨을 두려워 말’(「주꾸미」)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죽음 위에 나의 삶이 서고 나 또한 언제라도 남의 삶에 거름이 될 수 있는 상황, 모순이라 할 수 있겠다. ‘쥐 잡으려고 독약 섞어놓은 고구마를 / 쥐는 먹지 않고 강아지가 먹’고,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 마당을 지켜보던 / 뇌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나더러 여보라’(「모순에 대하여」) 부르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맛에 지옥이 함께 있’는 모순 가득한 삶은 오랜 전부터 계속되었다. 미친년 언니에게 ‘장목을 달여 먹이면 낫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 무당이 할아버지에게 일’러 ‘오빠의 억센 손아귀에 언니의 턱뼈가 벌어지고 / 할아버지는 장목 달인 물을 입속에 밀어 넣’어 끝내 ‘골방에 뉜 언니의 머리는 북쪽으로 향했다’(「금낭화」). 아버지는 ‘내 작은 팔 하나의 무게에도 힘겨’(「연(鳶), 곤두박질치고 마는」)워하고, ‘나는 열 달 내내 / 출산을 위해 챙겨두었던 가방을 들고 혼자 분만실까지 왔다’(「분만실까지」). 그러나 모순 가득한 삶 위에 숭고함이 있다는 것이 우리 삶이다. 그리하여 ‘폐차장에 그를 버리고 비를 맞으며 돌아서는 길’에 ‘뜨겁게 쓰러지는 법을 배‘(「폐차를 하며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운다. ‘63빌딩 수족관에 사는 임금 펭귄은 밤마다 남극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수족관에 사는 펭귄」),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는 ‘꼭 솟대에 앉은 새’다.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 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