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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dest Winter ? 제일 추웠던 겨울
이 책은 전문 넌픽션 작가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월남전 기간에 뉴욕타임즈 기자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할 때 한국전 참전 미군 장교와 대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월남전과 한국전쟁이 유사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착상을 하게 되고 언젠가 한국전쟁을 파헤쳐 보리라는 결심을 한다. 이후 1997년부터 약 10년 간의 취재를 거쳐 이 책을 2007년에 출간하게 된다. 유사성의 배경에는 장기간 (무려 20년 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뉴딜정책의 성공과 2차 세계 대전의 승기를 잡은 루즈벨트 대통령 및 트루먼 대통령이 국난극복, 태평성대, 국운상승을 일궈내던 시기다. 그 결과 정치무대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을 우려한 공화당 우파 세력이 급변하는 아시아의 정치정세를 정략적으로 규정하면서 집권 민주당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집권 세력이 자신의 결백함을 보이려는 과도한 노력으로 한국전이나 베트남 전의 확전을 선택하게 되며 그 결과 치르지 않아도 될 젊은이들의 희생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 미국 정계에는 “중국 로비”라는 의견 그룹이 존재하면서 다양한 담론을 생산했다. 즉 집권 민주당 정부를 좌파라고 규정하면서 코너로 모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상실론’을 들 수 있다. 미국이 장개석 국민당 정부에 화끈한 지원을 안 해주니까 마오쩌뚱 같은 공산당이 중국을 다 장악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는 중국을 잃게 되었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오늘날 같았으면 공화당 최고위원회 회의 석상에 “중국을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와 같은 선동적 구호를 게시하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격이라고나 할까?. 중국상실론은 점차 국무부 내에 중공 동조세력이 있다는 식의 ‘간첩론’, 장개석의 중국 본토 회복 구상을 외면하는 것은 ‘유화론’이며, 유화정책을 펴는 자는 ‘용공’분자이고, 그들은 미국을 전복하여 공산세력에게 헌납하려고 한다는 ‘전복론’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도의 색깔론이며 그 원조가 미국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미국도 문제지만 실상 전쟁을 시작한 북한이나 이를 승인한 소련 역시 여러 가지 오판에 근거하여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애치슨 라인에서 남한이 제외된 것을 남한 포기라고 본 것이나 남한이 항복할 지경에 가더라도 미국은 돕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저자는 모든 전쟁은 정치세력의 오판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을 신뢰하는 편인데 북한이 저지른 대표적인 오판은 ‘미국불개입론’을 비롯하여 개전 직후 ‘남한 민중 봉기론’, ‘인천상륙작전 불가능론’ 등 여럿이 있었다. 그 중 특히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것은 북한 측의 패착인데 놀랍게도 중국은 자체 정보망을 통해 인천이 유망한 상륙작전 지점이 될 것임을 분석하여 김일성에게 알려줬는데도 무시당한 바 있다. 중국은 당시 일본 부두 노동자 조직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들로부터 각국의 군함들이 항구에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과 맥아더의 공격적이고 과단성 있는 성품을 분석할 때 6개의 작전 후보지 중 인천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을 콕 집어 알려주기까지 했음에도 북한은 하다못해 기뢰 설치와 같은 초보적 방어 작업조차 안 하고 있다가 당한 것이다. 미국도 전술면에서 많은 실책을 범했는데 맥아더의 정치적 결정에만 의존해서 38선 돌파 후 무작정 북진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보급선을 무한히 늘리고 부대 간 간격을 벌려 중공군의 기습, 포위, 섬멸전에 노출시킨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의 모든 전투를 다 다루지 않고 낙동강 전선, 인천상륙작전, 평북 운산에서의 미군, 중공군 첫 조우전, 함남 장진호에서 미군의 패퇴 과정, 그리고 중공군의 전술을 이해하고 반격의 추동력을 얻은 양평 지평리 전투 등 5개의 전투만을 자세히 조명한다. 중공군에 대한 미군의 오판은 인종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베트남인을 보는 기본 입장도 그렇지만 그들은 아시아인들을 순종적이고 겁이 많으나 버릇을 제대로 들이지 않으면 호시탐탐 거짓말과 좀도둑질이나 하려고 드는 소인배 정도로 멸시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맥아더는 압록강 주변에 엄청난 규모의 중국군이 결집하고 있다는 첩보를 청취하고, 주중인도 대사가 중국은 미국과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다는 언질을 외교 경로를 통해 전달했음에도 중국군이 들어오면 대학살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큰 소리만 쳤을 뿐 상대방이 인구 강국이며 근 20년에 걸친 국공내전을 통해 단련된 정예 강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막상 맞붙어 싸워 본 중국군은 미군이 보기에도 장비면에서만 열세이지 군대의 조직력, 사기, 용맹성, 집요함의 측면에서 존경할만한 군대였다. 기갑부대원으로 장진호 철수 과정에서 중공군 보병을 탱크 사격으로 전멸시킨 미군의 진술은 이러했다. “맞은편 절벽에서 중공군이 줄지어 내려오는데 서로가 인간 사슬을 만들어 지탱해주면서 한 명 한 명을 안전하게 내려보냈다. 마치 그들은 이런 지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한 훈련을 반복해서 받은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반복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런 게릴라 전쟁을 지난 10년간 수행한 베테랑들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근 10년에 걸쳐 다양한 계급의 군인들 그리고 정치인들을 면담하고 쓴 르포이기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인물의 열전으로서의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사령관이 팽덕회가 어떤 인품의 지휘관이었는지 알려주며 그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하게 만든 중국 농촌의 가난과 착취는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는 인력소모식 전쟁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고 부득이하게 민간인을 동원해 군수물자를 이동할 때는 60만 대군의 지휘관 신분도 잊고 기꺼이 한 사람 몫을 분담할 정도로 소탈했다고 한다. 맥아더 자신도 대단하지만 그의 어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군인이었던 아버지 맥아더의 못이룬 꿈을 아들이 이루도록 미국 육사 웨스트 포인트 입교 시절에는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 옆에 집을 얻어 뒷바라지를 했다 하니 가히 “맥모삼천”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낙동강 전선에서 무참히 죽어가는 부하 장병을 안타까워하며 전용비행기에서 눈물짓던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과 죽은 부하 장병을 위해 늦은 밤까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자신의 과오를 뉘우쳤던 에드가 트레이시 중령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용장 밑에는 약졸이 없고 덕이 있는 장수는 헌신적 병사를 곁에 두게 된다. 지도자를 꿈꾸는 이라면 늘 명심해야 할 바다. 지평리 전투 이후 한국전쟁의 진로는 우리가 아는대로 지루한 공방전, 소모전의 전개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키운 맥아더는 자신의 오판으로 중공군을 불러들이고 수 많은 병사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중국과의 전면전이나 원폭투하를 선동하였기에 마침내 51년 4월에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해임당한다. 도쿄,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뉴욕에 거치는 귀국여정마다 수 많은 군중의 환송, 환영을 받으며 금의환향하는 듯했지만 이어지는 상원 군사외교 합동위원회 청문 과정에서 식견 부족, 무모한 책략 등이 드러나고 도리어 국무부나 국방부의 딘 애치슨, 조지 마셜 등이 균형잡힌 국제정치관계와 제한 전쟁의 불가피성을 증언하고 그것이 설득력을 인정받게 됨에 따라 맥아더는 점차 몰락하게 된다. 개전을 결정하고 확전을 도모하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실제 싸우고 죽는 사람들은 평범한 민중의 자식들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에겐 왜 싸워야 하는지 잘 모르는 전쟁, 잊혀진 전쟁이었다. 참전군인들은 냉대와 무관심에 실망하면서 살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번영 그리고 그들이 이따금 한국을 방문했을 때 환영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한국인들의 인사에 보람과 자긍심을 되찾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디 미국인들만이랴? 어느 골짜기에 파묻혔는지 알 수 없는 중공군, 인민군, 국군 희생자 모두가 역사와 이념의 무자비한 행보 속에 부속품처럼 쓰이고 스러졌다. 그들의 명복을 빌며 삼가 그 영전에 술 한 잔이나마 따라드리고 싶은 심경이다. (2020.8.3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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