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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은 앨범을 통째로 들어야 하고 단편소설도 소설집으로 읽어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음원으로 듣는 음악은 히트곡만 듣게 되고 단편소설을 소설집으로 읽는 것은 대부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쓴 같은 작가의 작품은 그게 그거인 듯 반복적이라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언 매큐언의 단편 소설집을 읽으면서 왜 한 작가의 단편집을 통째로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언 매큐언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연작도 아니면서 소설 하나하나가 분리되지 않고 얽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가 같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소설집이다.
제목에 첫사랑 따위가 들어 있다고 말랑하게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칠 소설이다. 살다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소설은 보기를 처음 본다. 공포소설이나 웬만한 장르소설도 이보다는 덜 무서울 것이다. 공포소설의 악역은 애초부터 악역을 맡고 나오기 때문에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이야기로 긴장감을 즐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공포물의 주인공처럼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거대한 전지가위나 전기톱을 들고 설치는 악마도 아니고 지구를 넘보는 외계인도 아니다. 그저 외로움에 지쳐 고립된 평범한 사람들이다. 너무 평범하고 담담해서 더 무시무시하다.
첫 번째 소설 ‘입체기하학’에서는 주인공은 조부의 일기장에 파묻혀 지내는 남자다. 조부는 일기장 이외에도 포르말린에 담아놓은 형무소에서 숨졌다는 캡틴 니콜스의 페니스를 남겨두었다. 남자의 아내가 오직 일기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남편에게 화를 내며 페니스가 든 병을 깨버렸다. 남자는 조부의 일기장에 나오는 입체기하학의 방법대로 공간을 접어서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아내를 없애 버린다. 포르말린에 넣어둔 페니스정도에 뜨악해진다면 다음 소설은 읽지 못할 것이다. ‘가정처방’에서 14살 소년은 자기 여동생 코니를 강간한다. ‘나비’에 등장하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는 남자는 아홉 살짜리 소녀를 운하에서 밀어 버린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소녀의 장례식에 갈 준비를 한다.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에서 벽장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남자는 ‘나비’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처럼 여겨진다. 지금은 아니지만 결국 소녀를 죽이는 남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대부분의 소설에는 10살 언저리의 소년과 소녀들이 등장한다. 연약하고 힘없는 소년과 소녀들이 성인들에게 유린당한다. 아이들을 유린하는 성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외롭고 가여운 사람들이다. 독자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선과 악이 명쾌한 소설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악인에게도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건의 가해자가 지독히도 평범할 때 독자는 정말 난처하다.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읽어야하는지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이 소설집은 수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왜 작가가 이런 식으로 소설을 쓴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운 책이다. 작가가 원하는 것이 이런 혼란이라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함부로 읽어 보라고 말할만한 소설집은 아니다. 마치 선악과를 먹고 당황한 아담과 이브가 된 기분이다. 열지 말아야 할 어떤 것을 연 느낌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언 매큐언은 첫 소설집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서머싯 모옴 상을 받았으리라.
몇 년 전에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을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포기했다.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제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었으니 ‘암스테르담’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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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을 읽고 있는 중이다. 중반쯤 읽었는데 이전에 읽은 소설들에 비해 아직은 무난한 편이다. 또 얼마 전엔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톤먼트>를 봤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본 영화치곤 내가 생각한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럼, 난 도대체 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작품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대변해준다. 맞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언 매큐언은 이런 종류의 소설을 쓰던 작가였다.
처음 그의 소설 『시멘트 가든』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이후 기리노 나쓰오나 백가흠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나라마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희한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한 명씩은 다 있구나! 생각했는데 옮긴이의 글을 보니 이언 매큐언도 이 작품을 내놓곤 그런 소릴 들었단다. “학교 선생님처럼 생긴 사람이 글은 악마처럼 쓴다” 빙고!
이 작품은 이언 매큐언의 첫 소설집이고 표제작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실 더 이 책이 궁금했다. 그가 처음으로 낸 단편들은 과연 어떤 내용들일까? 내가 생각하던 이언 매큐언다운(?) 소설들일까? 역시 내 생각은 적중했다. 책에 나오는 작품들마다 불쾌하고 기괴한 이야기들이다. 21세기인 이 시대에 읽어도 허걱! 할 정도인데 이 책이 나올 당시의 반응이 어떠했을 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특히 이 소설집에는 사춘기의 소년, 혹은 성장하지 못한 어른을 다룬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 같이 순진무구함과는 차원이 다른 비뚤어지고 어리석은 삶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그렇게 자란 원인엔 반드시 어른들의 무책임함이 엿보인다.
‘방부 처리된 사형수의 페니스’를 상속 받은 남자가 증조부의 일기를 읽다가 그 속에 나오는 기하학의 비밀로 아내를 사라지게 만든다는 기발한 이야기를 다룬「입체기하학」을 필두로 한창 사춘기를 겪는 소년의 정체성 혼란이 근친상간으로 빚어진「가정 처방」, 너무나 어이없는 결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지던「여름의 마지막 날」어머니의 비뚤어진 사랑으로 인해 뒤늦은 나이에 세상 밖으로 내몰려 살아가야만 하는 한 남자의 힘겨운 성인 신고식을 다룬「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한 소녀를 강간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내뱉는 남자에 대한 심리묘사를 제대로 그린「나비」등등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수 없을 만큼 기괴하고 잔혹하며 위험하다.
이렇듯 ‘외로움은 폭력을, 호기심은 강간을, 무료함은 살인을 낳는다’라는 광고처럼 상상력이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이언 매큐언, 그의 소설집은 한마디로 ‘강렬함’ 그 자체였다. 기리노 나쓰오나 백가흠의 소설들에서 많이 보아온 기괴함들이 이언 매큐언을 통해서도 보이듯이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라를 막론하고 다 비슷한 것 같다. 생각하면 그런 사회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 끔찍하지만 완벽한 인간 사회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그렇지 않는 한 이런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올지 않을까?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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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으로 읽는 책
서머싯 몸 상, 부커 상, 휘트브레드 상, 영미 작가협회 상 등 영미 문학의 주요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작가. 최근에 개봉한 '어톤먼트'란 영화의 원작자. 만일 단어에도 맛이란 것이 있다면 첫사랑이란 단어의 맛은 갓 찌어낸 백설기 처럼 한없이 깨끗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그것일꺼라고 난 생각했었다.
책에도 향기가 있다면 그 포르말린 냄새가 풍겨 나오는듯한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책에도 촉감이 있다면 그 거시기의 물컹함이 책장을 쥔 내 두손에 느껴졌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내를 사라지게 만든다. 참으로 황당하게도 말이다. 이 단편소설은 영국 BBC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하려 했다가 제작진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은 '나비'이다. 나비를 찾아 평화롭게 소녀와 숲 길을 걸을때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내지는 수묵화가 연상되었다. 근데 그렇게 끝나면 이언 매큐언이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끝에가서는 바지 지퍼를 내린다. 그리고 어린 소녀에게 수음을 강요한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이나 내가 아주 어렸을적인 70년대에 매월 25일은
구식 안경을 걸친 이언 매큐언의 지적인 용모를 빗대 '학교 선생처럼 생긴 사람이 글은 악마처럼 쓴다'라고했던 '옵서버'지의 표현이 가장 절묘하게 들어 맞는다. 그리고 그의 소설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인 느낌과 함께 그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여운은 꽤나 오래갈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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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상을 본 듯한 느낌이다. 그것이 한없이 비틀어지고픈 마음이어서, 폭력과 변태성욕과 두려움, 어둠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점철된 본능이어서 섬뜩해진다. 눈으로 읽고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그려지고, 거기에 내 경험과 생각이 결합되며 기묘한 변주곡을 탄생시켜내는, 제대로 소설을 읽는 맛을 찾아준 [첫사랑, 마지막 의식]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몇 프로나 믿을 수, 아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간으로 치자면 지구상의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아니겠나. 단편들로 묶여져 있지만 읽으면서 작가가 자라면서 꽤 깊고 어두운 기묘한 경험들을 했거나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거란 일관된 생각이 들었다. 각 단편들엔 주변의 어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거나, 영적인 유산으로 물려받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증조부의 일기장을 보물처럼 간직하며 분석하는 첫 번째 단편의 주인공은 일기장을 통해 알아낸 입체기하학으로 아내를 사라지게 한다. 그 사라짐이란 것이 피를 흘리게 하고 육체적인 상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지우고픈 '진짜 살해'여서 한없이 공감되면서도 찌릿하다. 또한 여동생을 강간하는 어린 아이와 두 살짜리로 키워졌던 엄마에게 버림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 ,배우였던 할머니의 강요에 다른 모습을 강요당하는 가장무도회 등에서 어른들을 향한 비틀어진 시각과 무시, 모순 등 너무 현실적이라 알고 싶지 않은,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많은 감정의 그늘들을 무시무시한 내공으로 빠져들게 한다. 역으로 말하자면 사건의 결과 그 밑바닥에는 슬픔과 무료함, 외로움, 일상의 폭력, 사회와 어른에 대한 분노라는 무의식의 세계가 깔려 있다. 인간 내면의 악마성과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자기방어, 그리고 원초적인 본능을 발현시키게끔 주인공들을 조종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은 글 하나로 읽는 이를 압도한다. 불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 불쾌함마저도 너무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기에 생기는 문제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잠재되어 있는, 어딘가에서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많은 감정들은 때론 뒤늦은 출현으로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것도 결정적일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나비'의 외로움에 찌든 주인공은 한 소녀를 살해하지만 죄책감이나 당황스러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두 살로 키워진 성인 남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벽장 안에서 살고 있으며, 아무도 모르는 기쁨을 간직하고픈 소년의 이야기-'여름의 마지막 날'에선 그 기쁨과 추억을 담아둔 보트가 뒤집어 진다. 이 소설은 가책이 없고 담담한 비행과 기대와는 다른 상황들의 연속이다.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과 사회의 규범이 만났을때, 비정상적이고 원칙이 없는 인간이 두려워하던 상황에 직면했을 때, 탐미적인 무의식의 세계가 환상과 결합했을 때 등 보이지 않는 과정들의 결과를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린다. 각자의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험적인 소설을 읽는 것을 늘 즐거운 일이다. 거기에 작가의 전작과 후작이 기대되는 경험까지, 이언 매큐언의 글을 만난 건 최고였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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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 소설은 처음 접해 본다. 악명과 명성이 자자한 작가라서 기대와 호기심이 컸다. 듣던 대로 소재는 물론이고 이야기의 흐름 또한 파괴적이다. 이 소설집에서 실린 각각의 단편들에는 한 사람이 누군가를 망가트리거나 스스로 망가져가는 과정이 담담하고도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건 <가정처방> <나비>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였다. 표제작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기대했던 것에 비해 별 감흥이 없었다. 드라마로 제작하려다가 포르말린에 보관된 페니스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는 <인체기하학>은 줄거리는 흥미로웠지만 다소 당혹스러운 이야기였다.
<가정처방>에는 사춘기를 겪어 가는 한 소년과 그 친구가 나온다. 레이몬드는 소년에게 도둑질, 마리화나, 마스터베이션 등 소년에서 성인으로 가는 관문으로 안대하는 역할을 해 준다. 이제 첫경험이 남았다. 그런데 이는 다른 일들과는 달리 레이몬드에게서 안내 받는 게 순조로울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레이몬드와 동네에서 경험이 많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 룰루의 그곳을 보러 가기 전, 얼른 동정을 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적인 욕구로 교활하게 동생을 속이고 범한다. <나비>에서는 어느 소녀가 운하에 빠져 죽기 바로 전 목격한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결국 그 소녀를 죽게 만든 건 그였다. 누구에게나 멸시받고 따돌림 당하던 그, 소녀에게 나비를 보여 주겠다며 쓰레기 냄새 나는 운하 근처로 데려가고 추행한다. 나비를 보지 잡지 못한 건 소녀뿐만이 아니다. 이 주인공 또한 나비를 꿈꾸는 가련하고 외로운 영혼이다.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는 17살이 될 때까지 한두 살 먹은 아이처럼 양육된 한 남자의 고백이다. 그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에게 양육되면서 혼자서는 밥도 못 먹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했으며 말도 배우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가 계속 어린아이로만 남기를 바라서 아기 기르듯 길렀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애인이 생기자 그는 무참히 버림 받는다. 그리고 집중 훈련으로 어른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여전히 유모차에 타고 싶다. 요람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잔혹하고 기괴한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진짜 잔혹한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주인공들이 행하는 일이나 상상하는 일들은 결국 현실에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경험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굉장히 섬세하고도 실감 나게 그려져 실제 있었던 일들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이런 이야기 자체가 한 은유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선악을 가르는 시비지심은 아예 논할 거리가 못 되는 듯하다. 읽으면서는 내내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좌불안석했다. 어디 한 군데라도 감정이입을 하면 함께 몰락하거나 깨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무척 매혹적이기도 했다. 그건 동조하기도 어렵지만 거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이언 매큐언의 글힘 때문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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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책을 2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2권 모두의 느낌은 폭풍을 만난 듯한 느낌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글에 휩쓸리듯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글이 끝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쉽기만 한 길도 아니다. 그 길에 푹 빠질 수 있을 만큼의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있기는 하지만, 그 흐름이 빠르고,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느덧 잠겨오는 물의 흐름처럼 언제 그의 책에 빠졌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폭풍의 느낌과 닮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소재의 폭 넓음과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지나치다는 점, 다 읽고 난 후에 잠시 아무생각 없이 앉아 있게 된다는 점, 조금 지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재는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도대체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여러 기분들이 복합적으로 따라온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따라오는 생각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다는 것이고, 때로는 극단적이다 라는 생각과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다 읽은 후에는 조금 황폐해지고, 지친 감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시작하고, 무슨 말을 하며, 어떻게 끝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2권의 책을 읽으면서 강렬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조금은 평범한 듯한, 또는 조금 통속적인 결말, 아니면 때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느낌을 주는 소재들. 무엇이 그런 느낌을 주는 지는, 혹은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책을 덮을 때, 만족스럽기도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이 한 구석에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다. 아직까지 저자의 책을 2권밖에 읽어보지 못했기에 무어라 판단내리기는 어렵지만, 좀 더 그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머릿속이 여전히 조금은 혼란스럽고, 내가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싶은 작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 글을 읽고, 명확한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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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톤먼트>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 이언 맥큐언. 그러나 나는 그영화 마저도 그냥 지나쳤고, <속죄>라는 원작은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을 뿐이니 '서머싯 몸' 상 수상작이라는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이언맥큐언과의 첫만남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동안 무료한 2시간여 동안을 달래기 위해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무료함이나 달래려 했던 처음 의도는 온데간데 없이 마치 다른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기대감과 죄책감 그리고 들키면 안된다는 두려움과 부끄럼이 한데 뒤섞여 나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혼란스러움과 마음을 가다듬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나니 내가 읽은 페이지라고는 달랑 32페이지 '입체기하학'을 읽은게 고작이었다. 앞으로 가정처방을 위시로 가장무도회까지 나는 기대감과 한편으로 두려움에 책장을 넘긴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스스로 다 자란 어른인체 하는 아이와 몸은 자랐지만 어느 한군데 뒤틀려서 정체성에서 다자라지 못한 어른들이 주체가 된다.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꼭꼭 숨겨놓고 펼쳐보이길 두려워하는 폭력성이 내재되어있을 것이다. 바로 그 폭력성과 부조화, 위태로움,두려움 ,잔인함의 여러 모습들을 펼쳐 놓았다. 외로움과 무관심에서 오는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입체기하학과 나비는 간간히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고 호기심에서 시작된 근친 강간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사회현상으로 인해 과부하를 일으키는 오늘날의 청소년 문화의 폭력을 벽장속 남자와의 대화와 가장무도회는 고립이라는 폭력과 인간의 이중성을 표제가 되는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처음 이 책을 다 읽을수가 있을까 하는 부담감은 읽고 난후에 후련함으로 변해 있었다. 그만큼 읽는 내내 비현실적일것만은 소재는 어느새 현실이 되어 나를 옥죄이고, 스스로 대면해야 할 현실에 도피처를 찾게 만들었다. 어찌 이리도 담담하고 건조할까 시종일관 어느 한군데 치우침 없이 중심을 잡아가는 작가의 시선에 나는 쫓아 가는 건만으로도 숨이차고 버겁기 그지없다. 마치 길을 잃고 이러지도 못하고 엄마를 찾아나서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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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혹은 그녀)의 이야기 작품의 등장인물 - 아내를 사라지게 만든 남자, 여동생을 강간하는 소년, 공개된 장소에서 즐기는 남녀, 이웃 소녀를 살해하는 남자, 벽장 속에서 사는 남자, 어린 조카를 희롱하는 이모 등 - 그(혹은 그녀)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있다.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해 있고 주위의 변화에 무관심하고 둔감하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리라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한다. 잘못된 행동(생각)을 하고도 침착하고 차분한 그들의 태도는 알아야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들은 이미 잘잘못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 듯 모를 듯, 보일 듯 말 듯,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 놓고 있는 듯 보인다. 단지 가책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듯 보이는 그(혹은 그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 작품 이야기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표제작으로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이언 매큐언은 담담한 어조로 글을 이어간다. 일상생활을 조용하게 그려내면서 그 안에 살아가는 인물은 섬뜩하게 표현한다.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차분함에 나만이 홀로 충격을 받은 듯 느껴진다.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태도에 어쩌면 작가가 그리는 작품 속이 실제 세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혼란스럽다.
# 작가 이야기 소설 [암스테르담]을 시작으로 [속죄]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Atonement], 그리고 [첫사랑, 마지막 의식]까지 이언 매큐언을 만난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이 작가를 알아 가는데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벌써 나는 그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 마다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다는 글은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과장이 아니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논란 속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나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나의 이야기 복잡하고 시끄러운 삶 속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빈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침묵의 시간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침묵은 세상을 향하여 나를 보호하기 위한 벽을 쌓기 위함이 아니다. 내 안에서의 침묵은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는 시간이 되리라고 보고, 나와 타인 사이의 침묵은 서로 더 가까워지는 시간, 서로를 더 아껴주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고 본다. 침묵이 주는 여운은 직설적인 솔직함으로 나를 표출하는 것 보다 타인에게 그리고 나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는데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고 나는 믿는다.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도구가 아닌, 세상과의 소통, 타인과의 조화의 도구로 쓸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삶에서 '세상과의 소통, 타인과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수긍하리라 본다. 그러나 이것이 또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도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일생의 과제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언 매큐언은 우리에게 이것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리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작품에 녹아있는 그의 시선을 따라 가며 나의 삶의 길 또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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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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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가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중이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영화의 몇 장면을 원작의 구절과 비교하며 소개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글과는 무척 생경한 느낌이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묘사는 암스테르담에서는 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도대체 작가 이언 매큐언은 어떤 사람일까, 그의 글에 숨쉬는 냉소적인 미소, 살기 돋는 글들은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제목으로 하는 이 단편 소설집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사랑에 대한 몽환적인 그리움을 나는 만나지 못했다. 차례로 수록된 단편 8편 모두 기이하고 놀랍고 끔찍하기까지 했다. 표지와 제목은 마치 가면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욕망이 숨김 없이 드러나는 듯한 글, 작가에게 그저 놀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8개의 소설 중 '여름 마지막 날' 이라는 글은 노을지는 여름날의 저녁을 담아놓은 듯 슬픈 사랑, 외로움을 작가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언 매큐언은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추악함, 단순한 궁금증을 넘은 지나친 호기심, 냉소적인 감성을 끄집어내어 문학이라는 장르에 걸맞는 작품으로 재 탄생시켯다. 단편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과 성에 대해 정체성 확립이 안된 미성숙적 감성을 지녔거나 어른이 되기 전의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겪는 혼란스러운 감정, 온통 검정인 듯한 배경들, 그 안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인공들의 심리적 묘사는 소름 돋는 전율이 느껴진다.
소재 자체가 놀랍고 엽기적이며 한 편으로 인간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잠재되고 있는 욕망의 표출이 아닐까 궁금하게 만든 입체기하학과 가정처방, 읽고 있었지만 내용파악이 잘 되지 않아 다시 읽어온 내용을 다시 읽어야 했던 극장의 코커씨, 영원한 아이로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사회로의 부조화를 담은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웃에 사는 한 소녀를 살인까지 감행하게 된 한 남자의 글의 담담한 심경을 담은 나비는 의외의 전개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되어 조카를 추행하는 가장무도회, 표제작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지루함의 반복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되는 인간의 그 미묘한 욕망과 사랑의 몸짓과 서로 간에 교감,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이 담은 것, 이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여름의 마지막 날. 이 느낌은 영화 프로에서 소개하던 바로 그 구절을 만날을 때 느낌이었다. 그러기에 이 단편은 내게 더 깊게 가깝게 다가왔다. 다른 단편이 보여준 혐오스러움과 차가움의 검붉은 빛이 아닌 슬픈 미소의 연두빛 같다고 할까? 멋진 표현으로 말하고 싶었으나 나의 한계인가 싶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이언 매큐언이,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쓴 같은 사람, 그렇다면 다른 작품에서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력을 가진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펼치고 있을까. 이제 서서히 그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