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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보아왔던 사회과학 혹은 역사책중에 가장 충격적인 고발이 담겨있다. 19세기말 인도와 중국, 브라질에서 기근으로 인해 수백만도 아닌 수천만이 죽었다니. 수천만의 죽음이라는 것이 세계대전과 같이 명백하고도 집중적인 폭력이 아닌 서서히 목을 졸라가면서 행해진 범죄란 것이 너무나도 놀랍기만 하다.
역설적으로 20세기의 변형된 초국적 자본의 제국주의는 그나마 그 죽임의 정도가 덜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 진보된 형태라고 변호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에 대해 부수적으로, 황하라는 강은 수십년~수백년 단위로 범람에 의해 그 하류가 변한다는, 단지 퇴적에 의한 지류의 변화가 아니라 산둥반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어귀가 변하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만큼 자연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단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이 기근들과 그로 인한 죽음들을 범죄라고 말하는 것은 위정자들의, 그리고 당시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이 몰락시켜버린 토착정권의 구호시스템 때문이라는 것. 제국주의자들은 끊임없이 그와 같은 홀로코스트가 가뭄과 홍수때문이라고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심한 것은, 아니 그 영향을 수십배 증대시킨 것은 그들의 계획적이고도 무지스러운 범죄라는 것이다. 으...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의 동학혁명도 이와 같은 기후의 극변과 정치질서의 몰락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일부였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고.
저자의 글쓰기가 놀라운 것 하나는, 여태 20년 가까이 기상학 주변에서 머물렀음에도 이 책의 설명에서처럼 ENSO의 효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글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기후학자들이 연구비를 좇아서 100년만의 기상이변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지껄이는 자세에서 또 한번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
19세기 말, 초창기 근대 기상학자들이 취한 의도적인 반동정 정치입장에 비해 현대 기후학자들은 얼마나 저열하고도 즉자적 수준에서의 정치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