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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중국 사신단의 일행으로 다녀온 기록을 남긴 연암 박지원의 기행문인 <열하일기>는 당시의 문화사를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그에 동참하지 않고 당대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박지원의 면모에서 우리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세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저작인 <열하일기>에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실질을 읽어낼 수 있으며, 박지원이 살았던 시대적 환경과 지식인들의 풍향 등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논문과 책들을 통해서 박지원과 그의 저작인 <열하일기>에 대해서 그 내용과 문학사적 의미 등을 접했지만, 실상 <열하일기> 원문을 읽은 적은 없었음을 고백한다.
읽기 위해 구입한 <열하일기>의 번역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항상 후순위로 밀려있을 뿐이었다. 물론 <열하일기>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수록되어 있는 기록들 가운데 적지 않은 작품들은 이미 다양한 기회를 통해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언젠가 한번쯤 완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에, 우선 조금은 여유가 있었던 주말을 기해 <열하일기>의 주요 부분을 번역한 이 책에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2권으로 되어있어 처음에는 약간의 부담을 느꼈지만, 정작 읽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독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열하일기>의 내용은 물론, 박지원의 문체가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이해된다.
공저자의 한 사람인 고미숙이 <열하일기>를 ‘웃음과 역설’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그 내용과 문학사적 의미 등에 대해 소개하였으며, 이 책은 그 후속 작업으로서의 원전을 번역한 것이라고 하겠다. 처음에는 <열하일기> 전체를 완역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학자들이 완역한 책이 출간되어 ‘개성 있는 편역본을 내기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자료와 사진을 곁들여 읽기 쉬운 체제로 완성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18세기에 중국을 방문했던 박지원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주요 내용들을 번역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함께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체제는 <열하일기>의 형식을 그대로 좇아서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여정에 따른 순서대로의 기록을 취하면서, 또한 그 내용들을 별도의 제목을 내세워 체제를 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인 ‘압록강에서부터 요양에 이르기까지’ 약 15일의 여정에는 ‘도강록’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며, 이어지는 ‘섭리하부터 소흑산에 이;르가까지’ 5일 동안의 기록은 ‘성경잡지’라는 제목 아래 갈무리되어 있다. 또한 ‘신광녕부터 산해관 안에 이르기까지’ 9일 동안의 기록을 남기면서, ‘일신수필’이라는 제목을 부기하고 있다. 이 책의 상권은 이상의 여정을 토대로 모두 29일 동안 박지원이 사행길에서 만난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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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상,중,하 -리상호옮김>>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 -고미숙옮김>>
2003년 고미숙교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고 완역본을 읽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이 런 저런 핑계로 세월을 지냈다가 이번에 정말 큰 마음 먹고 북한학자 리상호의 <<열하일기 상,중,하>>와 고미숙의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동시에 다른 역자의 작품을 읽는게 혼란스러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와 서 생각해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고 역시 같이 읽은게 휠씬 한문고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역자에 따란 고문의 해석방식이 다른면에서 참다운 열하일기를 접한것 같아 가슴한켠이 벅차오른다. 5월 한달을 매달리다 시피해서 읽고 또 읽고 옥편 동원하면 서 능력도 없는 원문을 찾아보면서 역시 우리 선조들의 해박한 지식과 적재적소에 맞는 애들립구사 능력에 다시금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말기 권세있는 집안(노론)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시쳇말로 지금의 고시인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홍대용,박제가,이덕무(일명 연암사단)과 교류를 통하여 당시 대세였던 북벌론 내지는 중화사대주의에 철저한 의구심을 가지고 실용주의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비록 말년에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역시 지방관직을 거치면서 민중들의 삶에 묻혀서 살아갔 다. 연암의 마지막 유언인 "몸만 깨끗이 씻겨달라"는 이 한마디가 그의 생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어쩌면 연암을 위한 하늘이 내린 천우신조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사 이래 최고의 문장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현존 하는 열하일기는 당시 연암이 집필했던 내용이 다소 누락되고 삭제된것으로 보고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조시대에 열하일기 는 문체반정의 표적 1순위 대상이었다. 사대부와 조선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문체 또한 정통성리학을 표방하던 당시의 식자들에겐 이단이나 마친가지의 충격파을 준것이다. 그래서 연암 생전은 물론 그의 손자가 영의정에 제수된 뒤에도 출판이 금지되었던 것이 다. 자연 세월이 흘러 내용들의 일부가 왜곡이 되었지만 현재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시대에 우리가 봐도 상당한 충격을 추는 작품인데 그 당시의 충격은 일파만파였으리라 짐작코도 남을만 하다.
열하일기의 매력은 제목만 보고 단순한 기행문으로 착각할 수 도 있으나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을 보면 가히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역사,음악,종교,과학등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장르로 보자면 기행, 평론, 소설, 시, 르포르타주, 수필등의 다양한 형식을 넘나드면서 자유자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 이다.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4년) 당시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순을 하례하는 진하사겸 사은사의 명복으로 사행단을 구성하여 청나라에 파견단 사행단을 삼종형 정사 박명원(금성위)의 군관자제자격으로 따라가면서 시작하게 된다. 한양에서 5월 25일 출발해서 연경 과 열하를 걸쳐 다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10월 27일까지의 5개월에 걸친 대장정중 의주에서 요양, 심양, 산해관, 북경, 열하, 다시 북경을 거치는 과정을 편년체형식과 그때 그때의 견문 및 식자들과의 필담을 별도의 기로 기록한 방대한 작품이다 열하일기를 크게 일정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원론(사행일자별 작성) 도강록(압록강에서 심양까지 6월 24일 - 7월 9일) 구요동기/요동백탑기/관제묘기/광우사기 성경잡지(요양에서 광녕까지 7월 10일 - 7월 14일) 속재필담/상루필담/고동록/성경가람기/산천기략 일신수필(광녕에서 산해관까지 7월 15일 - 7월 23일) 북진묘기/거제/점사/교량/강녀묘기/장대기/산해관기 관내정사(산해관에서 북경까지 7월 24일 - 8월 4일) 열상화보/이제묘기/난하단주기/사호석기/호질/동악묘기 막북행정록(북경에서 열하까지 8월 5일 - 8월 9일) 태학유관록(열하 태학에서 8월 9일 - 8월 14일) 환연도중록(8월 15일 - 8월 20일)
각론(이론/견문/필담별 묶음) 경개록(열하일기 전반에 만난 청나라의 인사의 개인이력) 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티벳불교(당시 황교)의 수장인 반선(달라이라마)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기록) 행재잡록(연해중의 청나라의 행재소의 공문)/심세편(세상사에 대한 평론으로 북학에 대한 의견 피력) 망양록(중국인사들과의 음악에 대한 기록)/곡정필담(중국학자 윤가전과의 쟁쟁한 토론) 산장잡기(열하까지의 견문기로 특히 야출고북고기와 일야구도하기가 압권이다) 환희기(북경에 체류하면서 본 요술구경)/피서록(열하 피서산장에서 주로 중국과 조선이 시문에 대한 논쟁) 구외이문(북경과 열하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옥갑야화(옥갑에서 나눈 이야기 허생전) 황도기략(북경성과 자금성등에 대한 기록)/알성퇴술(공자묘 참배에 대한 기록) 양엽기(북경내 있는 사찰에 대한 견문기)동란섭필(수필)/보유금료소초(의학관련 지식에 대한 피력) - 이 중 고미숙의 작품에서는 각론을 일부 편역하였음.
이렇게 목차만 보더라도 연암의 지식충족욕은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진공청소기처럼 눈에 띄는 모든것을 흡수해버리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느끼는 점은 작가인 연암의 해박한 지식과 애리한 관찰력 그리고 모든것을 자기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어 떤 타인에 비해서 탁월하다는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간간히 독자들을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위트와 유머로서 독서의 맛을 한 층 더 배려한 정말 조선이 낳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까... 그리고 연암은 여행에서 견문한 선진문화와 선진산업 시설과 근대 과학이론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민 중의 생활에 이바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1. 연암은 조선최고의 과학자였다???
친구인 홍대용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연암은 당시 조선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학자들과의 필담을 통해서 연암의 자기의 과학관과 우주관, 그리고 생명기원에 대한 진화론까지 거침없이 일성하고 있다. 상대가 선진과 학과 문명으로 뭉쳐진 중국학자들 앞에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등 알았다면 스승을 받을만한 이론을 전개한다. 연암은 지구가 둥글고 자전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쾌하게 만유인력법칙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모든 물질은 티끌에서 시작한다고 인식하여 현대과학으로 보자면 원소내지는 원자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 이 벌레의 한 종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가히 다윈도 울고갈 진화론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2. 연암은 현실적인 거시경제학자였다???
연암의 생애를 통틀어 이용후생과 실천궁행 이 말을 빼면 남는게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적인 경제사상을 가지고 있 었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 바로 적용될 수 있고 그리고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중 중국의 수레제도, 성 쌓는법, 가루 찧는 기계, 고치실 뽑는 기계, 온돌 놓는 법, 벽돌이용법등 각양각색의 선진문화를 정말 자세히 기록하면서 조국의 낙후성과 당시 지배층의 무능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허생전을 통해 거시경제의 중요성을 강조 특히 물류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거시경제의 원할한 회전을 강조했다. 결국 만년에 들어서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주라는 부록이 게제된 과농소초라는 농서를 집필하게 된 밑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3. 연암은 자주주의적 역사학자였다???
당시의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잊지않고 있으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주장하는게 일반 사대부들의 공통된 사상이었다. 호란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임진년 명의 은혜를 잊지말자는.... 그러면서 자국이 강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국의 고서 기록을 믿고 그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런 사류을 배척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여행중 철저하게 고구려와 조선의 강역을 중국 고서인 사기나 지리지등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서 제대로 된 강역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열하에 서 만난 반선(달라이라마)과 반선에 대한 청의 태도를 오랑캐라 어쩔수 없다는 식이 아닌 청의 제국지배방식을 간파하고 조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한다고 역설하면서 구체적으로 말의 사육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계급이나 학자들이 소위 춘추대의에 젖어 맹목적인 존화양이만 외치고 있을때 '나라에 유익하고 백성에게 유익한 일이면 비록 오랑캐에게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을까 싶다 ㅎㅎ
4. 연암은 인본주의자였다???
연암은 사행중 중국의 문물을 보면서 통탄했다. 아니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국이 처한 현실앞에 식자들의 다 스러져가는 성리 학이란 학문에 매달려 민생과 후생에 대한 한치의 배려도 없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아래 민중들에 대한 고통을 뼈저리 게 느끼고 같이 호흡을 했던 것이다. 그 일면으로 산해관에서 객주에 들어 상방 정진사와 같이 배겨썼다는 호질(호랑의 꾸중)이 란 작품에서 비록 배경은 중국을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연암의 조국 조선식자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5. 연암은 종교학자였다???
연암이 열하에서 경험한것 가장 크게 충격을 준것은 티베트불교와의 만남이었다. 당시로는 정말 충격적인 해후였다. 황제의 강요 에 못이겨 반선을 접견하고 반선으로 부터 불상을 하사받고 이에 대한 처리로 골몰하고 있는 삼사(정사,부사.서정관) 그 와중에 황교(티베트불교)에 대한 연암의 철저한 판단 그리고 황교를 받는 청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인 모략을 간파하고 다시금 청나라 에 대한 색다른 면을 보게 된다. 또한 북경에 있는 천주당을 견문하고 야소(예수)나 야소회에 대한 반박등 다양한 종교적인 견해 를 피력한다.
6. 연암은 베스트셀러작가였다???
정말 연암은 타고난 작가임에 틀림없다. 장편의 작품을 초록하면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깊을줄이랴... 기행문의 형식을 빌려 군데 군데 자기의 철학, 정치학, 경제학, 음률학, 지리학, 역사학, 우주천문학, 지구과학등의 딱딱한 글과 시, 소설, 견문, 수필, 잡기등의 쉽게 읽을거리를 적절하게 분배해서 독자의 지루함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거기에다 간간히 들려주는 위트 내지는 유머한마디가 압권이다. 예로 북경에 도착하여 쉴려고 하는게 갑자기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허둥되는 청나라과 관원 을 지켜보면서 불이났냐는 말에 황제가 열하로 가서 비어있는 북경으로 몽고 기병 십만명이 처들어온다가 하여 자중을 웃긴일화 가 그것이다. 또한 북경에서 잠도 자지못하고 열하까지 가는 여정중에서도 고북고성벽에 이름 세글자 세겨넣는 여유까지...
이렇게 대충 정리한 연암에 대한 생각들이다. 물론 내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인것이지 보편타당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생각은 사물을 보더라도 항상 그 이면을 봐야한다는 생각과 단순히 보고 넘기 지 않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저작이다. 특히 역자가 다른 두책을 읽은것이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한작가는 북한학자이 입장에서 본 연암과 남측에서 본 연암에 대한 생각들과 해석방식 하지만 공통점은 열하일기는 조선최고의 작품이라는 점과 연암에 대한 평가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와 공간을 넘어서 연암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그가 남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어진 기와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법이 장관이더라""
그의 생애 철저하면서 일관되게 흐르는 이용후생에 대한 신념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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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이다.
많은 열하일기를 읽었다. 완역으로 된 것은, 보리에서 나온 열하일기가 가장 나은 것 같다.
고전을 읽으면서, 특히 박지원의 글을 읽으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그의 특별한 기억력에 의한 세밀한 묘사를 제대로 머리 속에 재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대부분의 고전 읽기에서 공통적으로 대면하는 어려움이다.
이 편역본의 장점은 그런 어려움을 잘 이해했다는 것이다. 적절한 시각 보조자료와 보충 설명에 의해 독자들은 훨씬 쉽게 '세계 최고의 여행기'에 다가설 수 있다. 이해하기 쉬운 편집도 빼 놓을 수 없다.
이 책이 편역이라고 해서 이 책의 번역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충분히 이해하기 쉽게 현대의 독자들을 잡아 끈다.
아직까지도 읽으면 새롭다. 연암 선생의 관찰력과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유머는 나와 같은 독자들을 끊임없이 열하일기 곁으로 잡아 끈다.
고전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하나 더, 고전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 현대인들에게 되살아 나야 하는지, 작은 전범을 보여 주는 책이다. 나는, 그나마 나은 시대에, 소박한 독서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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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외국 여행지는 중국 북경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영부영 끼여갔던 일정이었기에 여행이라 말하기 참 뭐하다. 특별한 준비 없이 바삐 움직인 일정이어서 지금 생각하니 무척 아쉽고 아깝다. 그렇게 준비없이 멍청하게 날려버린 눈먼 시간들, 내 파릇한 젊음의 시간도 눈이 멀었다. 나는 여행이야말로 뚜렷한 포인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거듭된 일상을 떠나서 무작정 가보자는 식의 여행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물론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일도 여행이 주는 일종의 기쁨이다. 하지만 일생동안 충분히 여행하고 싶은 나의 목표는 준비하고 계획해야 할 일로 가득하다. 18세기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년 9개월동안 어려서부터 꿈꾸던 이탈리아 기행을 비로소 마무리했다. 그의 정신적 사상과 이론의 지주인 아버지의 한마디에 감화된 그의 늦은 여행결정은 일상의 매너리즘 극복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정치적 상황에 몸담고 있던 그가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결핍을 그 여행기간동안 충족했고 광물학, 식물학과 회화에 대한 초보적 수준의 열정 또한 가감없이 보여준다. 내가 한다면 100% 불가능한 여행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멋진 조상이 있다. 어쩌면 바이마르 공화국시절 누구보다 가진 자인 괴테의 여행보다 우리 조상님의 여행이야말로 소박하고 거칠어서 참다운 여행맛이 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는 찬사에 부족함이 없다. 아마도 밟고 서 있던 땅이 달라서일게다.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언변이 남달라서일게다. 조선 선비의 특유한 청빈함과 성실함이 돋보이는 여행기는 그래서 놀랍기만 하다. 조선후기 박지원은 정치적 상황을 훌쩍 뒤로 하고 숙부의 서포트를 받아 청나라 사절단에 합류한다. 그는 국가의 목적과는 다르게 철저히 넓은 세계를 향해 가는 자유인이자 이방인의 모습 그대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 옛날 장시간 걷거나 말을 타고 움직여 미지의 나라로 가는 여정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길이 잘 닦여졌을 리 만무하고 산 넘고 거친 숲을 지나 이름모를 여러 동네를 거쳐 하루의 피곤함을 내려놓는 장소에 이른다. 지금처럼 단단하고 편리한 신발과 의복을 갖추었을 리 없다는 생각에 한없이 불편했을 육신의 고단함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조상님은 그 날의 일정과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를 모아 글로 정리한다. 길 위에서 글을 쓰는 일이 괜히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의 변화, 방문했던 그 날의 일정에 대한 노고, 길에서 만난 이들과의 이질적인 언어때문에 순조롭지 못했던 대화등에 재치있게 맞서는 조상님의 호방한 성격, 광활한 외국의 정취와 다양한 문물을 흘낏 들여다 본 소감등이 여행기를 읽는 동안 미소짓게 하는 요소들이다. 이번 여름에는 여행기를 써보고 싶다. 여행의 리얼리즘과 그날그날의 정밀한 묘사를 한 권의 수첩에 꼭 정리해 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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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yes24.com/document/7199988>이 계기가 되어 요즈음 여행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어쩌면 멋진 여행기를 한편 써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고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장거리 여행을 몇 차례 다녀오면서 여행에서 얻은 느낌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그때 적은 여행기는 아직도 파일함에 감추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외국에라도 갈라치면 출발 전 준비과정부터 다녀와서 마무리할 때까지 전과정을 촘촘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도 읽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맛갈나는 여행기 쓰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결국은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습니다만, 도서목록에 올려진 것은 저의 또 다른 관심사인 ‘눈물’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박지원의 산문을 새롭게 조명한 주영숙님의 책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7024977>에서 조선 남자의 눈물에 대한 연암의 열린 생각의 단편을 소개한 것을 읽고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하는 <열하일기>에서, 7월 8일 요양의 백탑이 모습을 드러내는 산모롱이에 막 벗어난 연암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135쪽)”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툭 트인 경계를 보고 별안간 통곡을 생각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연암의 독특한 울음론이 이어집니다. 울음이란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슬플 때만 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갓난 아이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을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오니 참으로 시원한 마음이 들어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한번 펼쳐내는 것이라고 해석한 연암은 그런 이유로 갓난아이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만경평야를 제외하고는 지평선을 볼 수 없는 좁은 우리나라 땅에 갇혀 살던 연암이 광활한 요동땅을 처음 보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울음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적었을 것입니다.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꽤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136쪽)” 연암은 명나라와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봉황성에서는 벽돌을 구워 집과 성을 쌓은 모습을 보고서 돌로 쌓은 우리나라의 성과 비교하여 장단점을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문의 누각을 세우는 공사에서 사용하는 거중기의 모습을 신기하게 보면서 이를 창졸간에 배울 수 없는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거중기가 실용화된 것은 연암이 연경에 다녀온 것보다 조금 뒤가 되는 1792년 정조대왕이 다산 정약용에게 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을 내어주면서 방책을 강구하라 하셨고, 다산은 신형 거중기를 제작하여 공사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니 불과 10여년 안팎의 일입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일은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저 산천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여행의 가치가 작다할 수는 없겠지만,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무엇을 챙길 수 있다면 여행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하겠습니다. 특히 다양한 그림자료들을 풍부하게 곁들이고 있어 연암이 보고 들은 것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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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신문기사에서 한 교수의 소망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일생에 가장 멋진 작품인 열하일기를 출판하는 것이 꿈이라는, 소소한 듯 보이면서도 열망에 가득 찬 글이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르는 열하일기의 우수함과 박지원의 진면목을 설파하며 그 교수는 어린 아이의 빛나는 눈망울 같은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 소망이 참 순수하고 열정적이라 기억에 깊게 남아서, 언젠가는 꼭 열하일기를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한글로 출판되지 않는다면 한문을 배워서라도, 저 교수를 찾아가서라도, 저 교수가 단연 최고라고 주저없이 손 꼽는 열하일기의 우수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몇년 만에 드디어 열하일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교수의 이름인데, 머리말의 열정과 사랑, 행복이 가득한 열하일기 소개를 보고 그 교수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간 구석구석 열하일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해서 읽는 나 조차 연구의 즐거움, 학문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인지 책은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다. 열하일기에 대한 애정을 보듯, 읽기 쉽게 편집되어 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실제 사진이나 옛 민화 등의 그림을 덧붙여 알아보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첫 머리부터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개성을 알려주면서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열하일기의 재미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점도 그렇고, 여정기를 실제 지도로 표시하여 알려주는 점도 그렇다. 출판되어진 열하일기 목록과 충실한 책들에 대한 안내도 교수의 열정과 독자에 대한 친절함 같아서 독서의 시작을 기분 좋게 해주고 있었다. 각 쪽마다 여백이 많아 읽기 쉽고 제목이나 각주등의 배치와 색깔 조합도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컬러로 화사하게 표현된 그림들도 책의 분위기를 한 껏 살려고 있었다. 단, 중간 중간에 2쪽 전부를 할애하여 실은 몇몇 그림의 경우 중국이나 한국의 분위기를 잘 살린 것도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들(역사적 그림, 민화, 실물 사진)과 분위기가 너무 동떨어져서 외톨이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옥의 티.
사실 처음 표지의 우람하고 듬직한 장비같은 선비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설마 저 분이 연암은 아니시겠지...했더니 연암 박지원이시다... 예전에 읽은 위인전에서의 연암은 별로 인상 깊은 분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늘씬한 배우들이 역할을 맡아서 인지 평범할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장비의 체구에 유쾌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신 분이었던 것이다! 이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내가 왜곡에 빠져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 잘 알려진 것이 없구나 싶기도 했다.(단지 내가 모르는 것 뿐일 수도 있다.)
본문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혹독한 여행길 속에서도 이렇게나 자세하게 일기를 쓰셨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었다. 전쟁중에도 일기를 쓰신 이순신 장군님도 계시지만, 이것 또한 놀라움이었다. 주변 풍물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분석, 여행 일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잡담들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는 것에서 왜 그 교수가 동서고금 최고의 여행기라고 칭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암은 알다시피 북학파의 대가가 아닌가. 그는 지나며 보는 모든 풍물에 있어서 조선의 풍물과 비교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한 연구를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집에 머물면서도 그 집의 형태와 건축 양식과 과학적 이론을 면밀히 살피며 어떻게 하면 이것의 좋은 점을 조선의 것에 더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지칠 법도 한 그 관찰은 끊기는 법 없이 지속되어 여인의 모습, 사람들의 옷차림, 성격에까지 미치지 아니하는 분야가 없다. 나는 우리의 온돌문화라든지 몇 가지 분야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약간의 혼란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의 벽돌문화와 우리의 흙벽 문화, 중국의 온돌과 우리의 온돌. 정말 연암의 말대로 우리의 것에 그러한 문제들이 있었던 것인지, 그러한 문제들이 현재도 남아 있는 것인지, 개선된 것인지가 궁금해 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것조차 돌아보지 않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발전시킬 수 있고, 무엇을 가지고 세상에 제대로 설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연암은 중국의 것들의 장점을 칭찬하고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문물을 기초로 하여 장점을 받아들여 고치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학습이나, 무조건적인 조선의 비판이 아니었다. 조선의 장점에 중국의 장점을 더하고자 하는 실리 위주의 사고로 보여졌다.
상권에서는 아직 열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여행기였다. 특히 요동 벌판에 이르러 "아, 좋은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구나!" 했던 호곡장론 같은 철학적이고 사나이의 호기가 넘치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탄스럽다. 바로 그러한 철학적인 사유와 관념이 함께하면서 이 여행기를 일반 여행기와 다른 멋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읽으면서 엮은이들과 같이 깊이 있는 감탄은 아직 느끼지 못했다. 아무래도 고전에 약한 습성탓이 아닌가 하여, 이러한 책들은 한번 읽고 끝낼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기를 지속적으로 읽고 사색한다는 점에서 또 웃음이 나오는 것이, 참 대단하긴 하구나 싶다.
모처럼 보람있는 책을 찾았구나 싶은 마음에 또 다음권을,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열하일기를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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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누구누구의 무엇 이런식으로 저자와 제목을 달달 외우고 대략 이런 이야기이다 라는 식으로 알고 지내는게 다반사이다. 마찬가지로 열하일기 또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국 사신단의 일행으로 중국을 가게 된 그의 여행기 라고 알고 있는게 다였다.
알고는 있지만 읽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 특히 고전류 - 하나 하나 찾아 읽어나가는 것도 책 읽는 재미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장대한 열하일기를 두권으로 나누고 (상)권에는 그의 일정에 따라 압록강에서부터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도강록> 십하리에서 소흑산까지 심양에 이르느 < 성경잡지> 신광녕에서부너 산해관에 이르는 <일신수필> 이 실려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날그날의 일정과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것 이외에 자신의 내면의 느낌을 따로 적어내린 글들이 실려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시각적인 자료들이 같이 있어 읽어내리는 재미가 자못 더 하다.
요양에 이르러 통곡할 만한 곳이라 말하는 호곡장론 심양에서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그들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 지나는 곳마다 마주치는 사람과 그들의 사는 모습과 기구, 생활양식등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적고 느끼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려 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행기는 지금도 많이 쏟아져 내린다 대부분 그 지역의 묘사와 그리고 느낌 찬사 그래서 나도 가보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목적(?)이 있는 듯한 여행기... 하지만 그 옛날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출사를 거부하고 벗들과 실용적인 학문을 논하던 한 선비에게 새로운 세상이란 그저 호기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하면 배워 우리에게 적용을 시킬까하는 생각과 한곳도 그냥 지나침이 없이 역사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안타까움과 그것을 잊지 말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말한다 중국의 제일 장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저기 기와조각이나 똥덩어리야말로 진정 장관이다. 어찌 성지 궁실 누대 점포 사찰 목축 광막한 벌판 아스라한 안개 숲만 장관이라고 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장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의 실용적인 장관도 놓치지 않는 그의 호방함에 후련함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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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로 박명원이 정사에 임명되었다. 이에 연암은 삼종형박명원의 개인수행원 자격으로 따라 나선다. 그해 5월25일 한양을 출발하여 10월27일 다시 한양에 도착하니 장장 5개월에걸친 여행이다. 여행은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시작되어 연경까지 2천3백리길을 여행하면서 보고겪은 것이다. 여행이 여기서 끝났다면 열하일기 또한 다른 연행록과 차이가 없었으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황제는 연경에 있지않았다. 열하에 가있었던 것이다. 이 열하를 여행한것이 열하일기를 다른연행록과 다르게 만들었고, 열하일기란 제목이 붙게되었다. 이 책은 열하일기를 완역한 것이 아니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란 책을 보고서 였다. 헌데 책을 사서 막상 읽으려고 하니 완역본이 아니란다. 다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읽기 시작한다. 이 책 상권은 연암집 11권과 12권에 실려있는 도강록, 성경잡지, 일신수필 3개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날짜상으로는 6월24일부터 7월23일까지의 기록이고, 지리상으로는 의주성에서 산해관까지 이다. 1편 도강록은 6월24일부터 7월9일까지 15일간 압록강을건너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때는 여름, 장마비가 내리던 시기였나 보다.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요동벌을 지나는동안 장마로 불어난 강을 건너기위해 때로는 며칠씩 발이 묶이기도 한것 같다. 날짜별로 되어있는 이글들은 연암이 여행하면서 말위에서, 길위에서, 주막에서 매일 쓴것 이라고 한다. 옛날에도 국경을 건널때는 소지품을 검사했나 보다. 비장과 역관들은 행장만을 풀어 뒤졌지만, 하인들은 웃옷을 풀어헤치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도 더듬어 본다고 한다. 그러나 의주 장사치들은 수색에 앞서 이미 몰래 강을건넜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부를향한 인간의 욕망은 똑같았나 보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중국의 문물은 연암에게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들의 우물과 물지게를 보면서 보다 쉽고 편하게 되어있는것을 발견한다. 또한 그들의 주택구조를 보고, 기와와 벽돌을 이용한 것을보고 우리의 그것과 비교해본다. 그러면서 보다 실용적인 그것들을 오랑캐의 것이라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비꼬기도 한다. 벽돌을 굽는 가마를 보면서는 그 원리도 자세히 적어놓고 있지만, 자기를 굽는 우리네것과 비교하여 장단점까지도 말하고 있다. 길을가면서 결혼식 행렬을 보면 궁금하여 견딜수가 없다. 그 행렬을 따라가 직접보고 묻기까지 한다. 연암의 호기심은 어느누구도 따라갈수가 없다는 생각이든다. 봉황성에 도착하여서는 그곳이 옛 안시성이란 소리를듣고 생각에 잠긴다. 후세의 옹졸한 선비들이 부질없는 중국의 역사기록만 믿고서 패수니 평양이니 하는것을 한반도 우리안에 가두어 자기나라의 국토를 스스로 줄인것을 한탄하기도 한다. 2편 성경잡지는 7월10일부터 7월14일까지의 기록이다. 심양에 머물면서 일반 민가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를 살펴보기도 하고, 관가에 들어가 관인이 죄인을 심문하고 따귀형을 집행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상례를 보고 싶어 상갓집에 들러서는 조문을 하기도 하고, 시가지와 점포를 둘러보다가 상인들에게 글을 써주기도 한다. 국수집을 뜻하는 기상세설을 전당포에 가서 술한잔 먹고 써주지만 주인의 얼굴이 뾰투룽 하다. 자신의 글씨를 못마땅해 하는줄 알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 그집을 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 도강록과, 성경잡지가 연암집 11권에 실려있는 내용이란다. 3편 일신수필은 7월15일부터 7월23일까지의 기록으로 신광년에서 산해관까지 560리의 여정이다. 연암은 연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한다. 연행에서 보고 느낀것중 제일 장관이 무엇인지 한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오랑캐에게서 보고 배울것이 없다고 하는 일류선비들이나, 하루빨리 오랑캐를 소탕해야 한다는 이류선비들의 변함없는 절개를, 스스로를 삼류선비라 칭하는 연암은 ‘중국의 제일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는 말로 그들의 허례와 실익 없는 명분을 조롱하기도 한다. 수레가 용도별로 규격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는 그 원리를 자세히 기록하여 놓고 있으며, 조선에서는 길이 좁아 수레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수레가 있으면 길은 자연히 생기게 되어 있는 것을, 그들의 문물은 청나라의 그것이나, 명나라의 그것이나 동일하거늘, 그저 오랑캐의 것이라는 핑계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 일류, 이류선비 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 밖에도 연암은 여행도중 겪게 되는 일상적인 일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적고 있다. 주막에서 술한잔 마시는 일이며, 길을 가다 만나는 만주족들과의 실랑이며, 청나라측 통역과의 일이며, 때로는 폭소를 자아내게 하고 때로는 사뭇 엄숙하기 까지 하다. 내용만으로도 열하일기가 왜 문체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것도 같다. 조선시대 연행은 수십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연행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 기록들은 남아 있을진대, 다른 연행록들은 알려지지 않은데 반하여 열하일기만이 유독 관심을 끌게 되는 이유는, 명문가에 태어나고서도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거부한 연암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북벌과 중화사상에 젖어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연암에겐 부서진 기와조각이나 똥덩어리만도 못하게 생각 되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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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쉬운 책이다. 머리글에도 있지만 보리 출판사에서 완역본이(북한에서 번역) 나왔기 때문에, 완역에 대한 부담이 없다 한다. 그래서 읽기 좋게 만든 것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딱딱한 텍스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 페이지마다 적절한 그림들이 들어있어 훨씬 이해하기가 좋다. 이 책은 의주를 출발해서 산해관까지의 여정이다. 중국의 변경을 지나고 있고 아직 중국 내부에는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나라의 옛 수도인 심양(성경)을 돌아봤으니, 어느 정도 맛은 본 것일 것이다. 정사인 사촌 형의 수행원으로 가게 되는 박지원의 경우에는 공적인 부담감이 전혀 없다. 그래서 행동이 자유 분방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밤에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누는 행위도 하고, 중국 서당의 서생을 찾아가기도 하고 재미있게 살아간다. 이처럼 이 여행기인 열하일기에는 해학이 담겨 있다. 그리고 중국 풍속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신단 일행들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재미있는 여행기이다. 이 여행기에 담고 싶은 것은 중국 문명의 발전을 소개하고, 이것을 조선에도 적용하자고 하는 것이다.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학문이 북학이고, 박지원은 북학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 촌놈이 중국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경이로우며 그것을 하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이용 후생 철학을 소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것이 벽돌이다. 조선의 경우에는 돌로(바위로) 성을 쌓는다거나 집을 짓는 경우가 있지만, 청에서는 벽돌을 사용한다. 규격이 정해진 것을 사용하고, 가마를 사용하여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것은 수레이다. 수레의 종류에 따라 바퀴의 규격이 정해지고 바퀴의 규격에 따라 길이 만들어지고, 앞 수레의 바퀴를 따라 가는 것이다. 생산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학파들이 수레의 사용을 강조하여나 보다. 의주에서 산해관으로 가는 길이, 예전 고구려의 영토였고, 또 최근의 후금과 명과의 격전지였기 때문에 다 가는 곳곳마다 장군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곳에 얽힌 사연들이 있다. 박지원의 역사 인식이 민족주의 정서에 가까우며, 고구려에 대해서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중국인이나 만주인이나 모두 조선을 고려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상편을 정리하자면 북학파로서 중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 민중의 이용, 후생에 힘쓰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으로 중국인과 호탕하게 소통하고, 이해하며, 웃음으로 여행기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